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빅 네임’보다 ‘빅 맨’이 장수하는 이유

박용 | 76호 (2011년 3월 Issue 1)

아이돌 스타들이 장악한 대중문화 시장에 새로운 블루칩이 등장했다. 7080세대의 전성기에 서울 종로 음악다방 세시봉에서 활약했던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이장희 등세시봉 스타들이다. 왕년의 포크송 스타들은 화려한 분장, 식스팩과 S라인 없이도 통기타를 멘 꾸밈없는 모습과 실력으로 틈새시장을 창출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에게 열광하는 고객들이 중장년층은 물론 그들의 화려했던 과거를 전혀 모르는 젊은이들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최근 두 번 출연했을 뿐인데, 고객들의 반응은 놀랄 정도로 뜨겁다.

그들은 어떻게 대중의 가슴 속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스위스 취리히대 이곤 프랭크와 스테판 노이쉬 교수는 흔히 셀렙(Celebrity)이라고 불리는 인기스타들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자신의 재능(Talent)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홀로서기형(Self made) 스타와 미디어에 의해 제작된(Manufactured) 스타다. 음악다방을 통해 실력을 입증한 세시봉 스타가 전자의 대표적 사례다.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스타는 후자에 속한다.

홀로서기형 스타의 인기 비결은 재능이다.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의 경기와 플라시도 도밍고와 같은 대가의 공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어설픈 개인기로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스포츠, 클래식 분야에 홀로서기형 스타들이 특히 많다. 반면, 제작된 스타들은 일반인에서 스타로 거듭나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시청자에게 노출되면서 단기간에 인기를 축적할 수 있다. 하지만 활동 무대는 재능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덜 엄격한 대중문화 등 일부 영역에 국한된다.

모세 애들러 미국 콜럼비아대 교수는 사람들이 슈퍼스타에 열광하는 현상을 소비자본(Consumption Capital) 이론을 응용해학습의 과정(learning process)’으로 설명했다. 소비자본 이론은 노래, 연기 등 스타의 재능에 대한과거의 소비경험(past consumption experience)’이 스타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애들러 교수는 여기에다른 사람과의 대화라는 요인을 추가했다.

예를 들어, 박지성 선수의 팬들은 그의 축구 경기를 접했던 과거 경험뿐 아니라 그의 성격이나 소속 팀, 리그 등과 관련한 지식들을 알아가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등의 학습 과정을 통해 스타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간다. 역량이 비슷한 여러 인재 중에서 특정 스타만이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슈퍼스타가 되는 이유도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통한 소비자본 축적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많은 팬을 가진 슈퍼스타도 소비자본 형성이 중단되면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특히 재능이 부족한 연예인들이 인기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가십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남들이 아는 스타는 나도 알고 싶다는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에 힘입어 인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본업이 아닌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에 끊임없이 출연하는 게 다 이유가 있다.

홀로서기형 스타들은 다르다. 굳이 토크쇼에서 가십거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재능만 녹슬지 않았다면 한두 번의 방송출연만으로도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다. 실제로 세시봉 스타들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며 소비자본을 축적하자, 그들을 몰랐던 젊은층들까지 팬이 됐다.

기업 경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케팅과 홍보로 만들어진 제품이나 최고경영자(CEO)는 롱런하기 힘들다. 마케팅과 홍보에 들인 막대한 투자가 중단되고, 맨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 시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십상이다. 스타 CEO와 금융 전문가가 즐비했던 세계적인 투자은행(IB)과 보험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한때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을 받았던 엔론도 내실은 없고 부정회계로 꾸며진 사상누각임이 드러나 시장에서 퇴출됐다. 친환경 에너지 기업이라고 홍보하던 BP는 원유 유출 예방과 대응에 철저하지 못했다. 진정한 슈퍼스타는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잊혀질 뿐이다. 불꽃처럼 잠시 타오르고 마는빅 네임(Big name)’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빅 맨(Big man)’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