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뭉친 그리스, 페르시아 대군을 깨다

69호 (2010년 11월 Issue 2)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기원전 480년 9월 23일 새벽, 미처 날이 밝기도 전에 지엄한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륵세스는 아이갈레오스산으로 올랐다. 그곳에는 이미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동이 트자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된 듯한 에게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섬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평온한 아침, 탐욕스러운 황제는 일생일대의 장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378척의 그리스 함대는 600척이 넘는 페르시아 함대와 격돌하기 직전이었다. (페르시아 함대는 원래 1000척이 넘었으나 폭풍과 이전의 전투로 400척 이상이 파괴된 상황이었다.)
 
크세륵세스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페르시아는 이미 3라운드 경기에서 2라운드를 이겼다. 테르모필라이에서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그리스 육군을 전멸(1라운드)시켰고, 테베와 아테네를 점령(2라운드)했다. 그리스 땅에서 남은 곳은 스파르타가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아테네의 함락으로 ‘보트 피플(boat people·난민)’이나 다름없게 돼 버린 아테네의 수군 뿐이었다.
 
그리스군의 내분(內紛)
그리스 수군이 아테네군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었다. 아테네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스파르타와 여러 폴리스, 식민지 전력으로 구성된 연합부대였다. 그러나 육군의 패전으로 그리스 해군은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페르시아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육군과 해군이 동시에 진격할 조짐을 보이자, 비()아테네 계열의 수군은 “그리스의 남은 땅을 지키기 위해 펠로폰네스 반도로 후퇴해서 육군과 연합작전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아테네의 보트 피플들은 “그렇게 한다면 자신들은 이탈리아로 항진해서 정착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스군 내부의 갈등은 꽤나 심각해서, 회의석상에서 막말이 오갈 정도였다. 그리고 이 소식은 그리스 진영에 심어 놓은 페르시아 첩자들에 의해 바로바로 황제에게 전해졌다.
 
크세륵세스의 목표는 펠로폰네스 반도가 아닌 그리스 해군이었다. 그것만 궤멸시키면 그리스는 항전을 포기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리스 해군은 좁은 살라미스 해협 안에 틀어박혀 있어서 공격할 수가 없었다. 좁은 지역에서는 병력의 우위라는 장점을 살릴 수 없었고, 1대 1의 격돌에서는 그리스군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군은 그리스군을 넓은 바다로 끌어내려 했지만, 그리스군은 바보가 아니었다.
 
크세륵세스가 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살라미스 해협을 봉쇄하고 장기전으로 가서 그리스군이 와해되기를 기다리는 전술이다. 승리가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크세륵세스는 시간이 없었다. 다음은 그리스군의 내분에 기대를 거는 것이었다. 그리스인의 지역갈등과 정치적 야비함, 정치가의 타락은 통일제국을 이루고 있는 페르시아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페르시아는 황금과 협박으로 그리스 도시들을 농락했고, 종종 쉬운 승리를 거두어왔다. 그리스군 내부의 험악한 분위기를 매일 같이 듣고 있던 크세륵세스는, 결국 내분에 좀 더 기름을 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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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뱀’ 데미스토클레스
페르시아는 그리스군 지휘관 한 명을 매수했다. 아테네의 사령관 데미스토클레스였다. 페르시아 쪽에서 데미스토클레스에게 붙인 별명이 ‘그리스의 뱀’이었다. 데미스토클레스는 음모와 술수의 달인이며, 뇌물을 밝히고 충분히 타락한 정치가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리스 최고의 전략가이기도 했다.
 
크세륵세스 황제는 페르시아에 협조만 하다면, 전쟁 후 그를 사면하고 가족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가 좋아하는 황금도 상당한 액수를 불렀을 것이다. 뱀은 미끼를 물었고, 데미스토클레스의 노예인 시킨노스가 황제를 찾아와 9월 22일 밤 그리스 함대들이 해협을 탈출해 고향 앞으로 달아날 것이라는 정보를 전했다. 갈 곳이 없는 아테네 사령관은 황제의 품을 택했다. 그간의 그리스인의 행태로 볼 때 사령관의 배신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살리미스 해전
크세륵세스 황제는 함대를 살라미스 해협 양쪽 입구로 나누어 파견해서 달아나는 그리스 함대를 요격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승리의 날을 감상하기 위해 전망대에 올랐다. 하지만 날이 밝도록 그리스의 도망선은 한 척도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날이 다 밝은 후에야 비로소 그리스의 도망선 80척 정도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해협 입구를 지키는 페르시아 함대를 보더니 바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좁은 해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페르시아 함대에는 절대 금기였다. 하지만 페르시아 함대 한 척이 후진하던 그리스 도망선을 추격해 들어가자, 뒤에 있던 페르시아군 전체가 빨려들 듯 해협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이 부분이 오랜 미스터리다. 페르시아군은 왜 절대 금기 사항을 거스르고 해협으로 진격한 것일까? 그리스 해군이 내분에 빠졌다는 소문에 페르시아 지휘관들이 자만했던 것일까? 아니면 밤새도록 그리스군을 기다리느라 짜증이 났던 것일까? 혹자는 전망대에 있던 크세륵세스가 조급해진 나머지 진격 명령을 내렸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페르시아의 전 함대가 자진해서 불리한 장소로 돌진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살라미스 해협은 살라미스 섬과 그리스 본토 사이의 좁은 해협이다.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안선도 복잡하다. 후진하던 그리스 함대가 섬을 통과하자 마치 깔대기 모양으로 바다가 다시 넓어졌다. 바로 이 지점이 그리스군이 노린 장소였다. 그리스 전함은 깔대기의 넓은 바깥쪽, 페르시아군은 좁은 안쪽에 위치했다. 바다의 폭이 그리스군 쪽이 좀 더 넓으므로 그리스군의 횡렬이 더 길어졌다. 횡렬이 길면 적의 행렬보다 튀어 나와 있는 배가 짧은 쪽 전함의 측면을 쉽게 들이받을 수 있다. 여기에 해안선을 이용해 매복해 있던 그리스 소함대까지 합세해 페르시아군의 측면을 공격했다.
 
페르시아군의 패배
페르시아군 함대에 대혼란이 발생했다. 페르시아군은 밤새도록 매복 작전을 수행하느라 이미 상당히 지쳐 있었다. 게다가 함대의 절반은 반대편 입구를 봉쇄하러 가 있었다.
 
페르시아군 선박 일부는 뒤로 돌아 넓은 곳으로 빠져 나가려고 했지만, 좁은 해협에 전 함대가 몰려든 탓에 배를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갤리선은 모두 목선이라 충각으로 파괴돼도 가라앉지 않고 바다에 떠 있었다. 부서진 배와 잔해로 바다의 선박밀도는 더욱 높아졌다. 박치기로 선박이 기동을 상실하면 배에 타고 있던 전투병이 적선으로 뛰어 올랐다. 그리스군은 중장보병이고 페르시아군은 경장보병이어서 백병전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일부 병사는 바다로 뛰어 들었지만 페르시아군은 대부분이 수영을 할 줄 몰랐다. 페르시아군이 우왕좌왕하자 그리스 함대의 일부는 쐐기꼴 대형을 만들어 페르시아군 대형 한쪽을 종단했다. 페르시아군 대형이 둘로 나뉘자 대형을 뚫고 나간 그리스 함대는 다시 배를 돌린 뒤 횡대로 전환해서 페르시아군의 한쪽 대형을 포위했다. 포위된 함대는 페르시아가 소집한 용병 함대 중에서도 제일 우수한 페니키아인 함대였지만,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는 전멸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좁은 해협에서 배들이 뒤엉켜 싸우다 보니 전투는 11시간이나 지속됐다. 가라앉는 쪽은 페르시아군이었다. 반대편에 파견된 함대는 살라미스 해협 안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보고 꼼짝하지 않았다. 밤이 되자 전투가 끝났고, 이로써 크세륵세스의 그리스 정복의 꿈도 날아갔다.
 
계략에 걸려든 페르시아
페르시아의 패배는 크세륵세스가 데미스토클레스의 계략에 걸려든 게 결정적이었다. 그리스인의 정치적 수준과 애국심은 너무나 형편없어서 언제 어디로 튈지 몰랐다. 크세륵세스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분열과 배신을 기대하고 있었다. 문제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리스인이 갑자기 배신할 수 있다면 갑자기 단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크세륵세스는 이 점을 깨닫지 못했고, 데미스토클레스는 크세륵세스의 심리를 역이용했다. 그리스 연합군의 다른 폴리스 지휘관들과 달리, 아테네의 제독 데미스토클레스는 애초부터 살라미스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넓은 바다에서 해전을 벌일 경우, 수적으로 열세인데다 기동성도 떨어지는 그리스 배들이 페르시아 함대를 당해낼 수 없으므로 반드시 살라미스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따라서 데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의 내분을 잘 알고 있는 크세륵세스에게, 그가 믿을 만한 거짓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림으로써 함정에 걸려들도록 부추겼다.
 
유연한 전략을 사용하지 못한 점도 결정적 패인이다. 페르시아는 자신의 국력과 체제에 너무나 큰 확신을 가졌다. 과거의 성공과 기존 체제의 위력에 경도된 나머지, 자신의 방식이 어디서나 무적이라고 믿게 됐다. 그러나 경직된 체제는 언젠가는 무너진다. 살라미스 해전이 바로 그 경우다.
 
사실 그리스군은 약점이 많았다. 병종만 해도 페르시아는 제국 내의 많은 국가와 민족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으로 다양한 병종을 보유했다. 하지만 그리스군이 보유한 병종은 중장보병과 수군뿐이었다. 기병은 아예 없었고 궁수, 경보병은 있다고 해도 형편없었다. 페르시아가 살라미스 해협을 봉쇄하고 장기전을 택했다거나, 후대의 로마군처럼 유연하게 맞춤형 전술을 개발했다면 그리스를 쉽게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그리스군에게 제일 유리한 지역에서, 그리스군이 유일하게 잘 싸울 수 있는 방식대로 싸워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임용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yhkmyy@hanmail.net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