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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의 Negotitation Newsletter

비밀 협상을 추진한다면 신중하라

우정이 | 69호 (2010년 11월 Issue 2)

1993년 고(故)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테러 집단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지도자들과는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라빈 총리가 평화협상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일축하는 와중에도 이스라엘 정부 관료들은 노르웨이에서 아무도 모르게 PLO 지도자들과 비밀 협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결과 오슬로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이 협정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수립하고 서안과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철수하며 오슬로 평화협정을 향후 협상의 토대로 삼겠다고 합의했다. 라빈 총리, 야세르 아라파트 PLO 지도자,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교 장관은 이 협상을 이뤄낸 공적을 인정받아 1994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라빈 총리는 PLO와 협상에 임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결국 다음 해 협상을 반대한 극우파 유태인에게 암살당했다.
 
격렬한 정치적 대립 속에 있는 지도자들은 적과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암암리에 협상을 진행하는 사례가 많다. 비밀 협상으로 긴장된 대치 상태를 끝내는 방법은 그만한 장점이 있지만 이것이 초래할 결과를 고려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의외로 많다.
 
2010년 분쟁해결 저널(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에는 미국 뉴욕대 연구진 줄리 브라운과 에릭 S. 딕슨이 저술한 논문 ‘테러리스트와는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 비밀 협상의 이론과 실제’가 실렸다. 라빈 전 총리처럼 대중 앞에서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뒤로 몰래 협상을 진행한 국가 지도자들의 사례를 점검한 논문이다. 로버트 무킨 교수의 저서 ‘협상의 법칙(Bargaining with the Devil: When to Negotiate, When to Fight)’을 참고한 브라운과 딕슨의 논문은 정치 숙적과 비밀리에 진행하는 협상의 위험성과 혜택을 분석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지도자들이 비밀 협상을 선택하는 이유는 협상을 시작하기 민망할 정도로 과거 공공연하게 적을 악마로 몰아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을 향해 욕을 퍼부었더라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면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오게 마련이다.
 
이론 상으로 비밀 협상은 지도자들이 대중 앞에서 정치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조용히 변화를 추진하도록 돕는 수단이다. 협상이 결렬될 때 당사자들은 조용히 현업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비밀 협상은 발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도 크다.
 
협상의 법칙’에서 소개된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지도자의 1985년 사례를 보자. 당시 만델라는 테러 활동 혐의로 23년 형에 처해져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 ANC의 지지를 받았던 만델라는 수감 생활 중에도 민권 문제에 대해 정부와는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정부가 인종차별 정책을 끝내라는 국제 사회의 거센 압력에 직면하면서 만델라는 협상의 때가 왔음을 감지했다. ANC가 정부와의 직접 회담을 극구 반대했기 때문에 만델라는 비밀리에 여당 지도자와 만나 협상을 가졌다. 만델라는 친한 ANC 동료에게조차 평화협상 계획에 대해 넌지시 암시만 했을 뿐, 직접 언급은 피했다.
 
만델라는 적과 협상하면서도 지지자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힘든 작업을 수행했다. 만델라가 시작한 협상은 인종 차별 정책이 없는 새로운 남아프리카 건설을 위한 심도 있는 협상으로 이어졌다. 자신 또한 협상을 통해 수감생활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만델라가 추진했던 비밀 협상은 확실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협상 상대방이었던 정부가 만델라의 변절을 ANC에 고발하거나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면 협상은 언제라도 쉽게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불구대천의 원수와 비밀리에 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지도자는 협상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고 브라운과 딕슨은 설명했다. 비밀 협상에 임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거나, 협상이 결렬되기라도 하면 지도자는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인격자가 될 뿐만 아니라 능력까지 없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반대로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지지자를 기만한 행위를 좀더 쉽게 용서받을 수 있다.
 
때문에 지도자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어떻게든 실패를 피하려는 이런 태도는 너무 일찍 많은 양보를 하도록 만들어 자신의 협상력을 스스로 낮춰버리는 위험도 있다. 같은 당 사람들이 불신하고 배격하는 정당과 협상에 임하지 말라는 압력이 거세다고 생각해 보자. 공적으로는 ‘협상 불가’를 외치면서 극비리에 협상을 진행하는 전략은 커다란 위험을 내포한다. 자신의 명성과 원칙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대안을 찾는 일이 훨씬 현명하다.
 
<협상의 법칙>에서 무킨 교수는 적과 손을 잡으려는 지도자들이 직면하는 3대 오류를 설명했다. 첫째, 감정적 덫에 갇혀 반사적 결정을 내린다. 둘째, 대안의 비용-편익 분석을 소홀히 한다. 셋째, 비밀 협상으로 초래되는 윤리적·도덕적 문제를 관리하는 데 실패한다. 정치적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적과 협상하는 길만이 최선이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해 보자. 같은 편 동료를 적으로 돌리지 않으면서 협상에 성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같은 편 사람들을 협상에 참여시켜라 지지자들이 무조건 협상에 반대할 거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협상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토론회를 열어라.
2.자신의 책임 범위를 파악한다 정당을 대표하지 않는 개인 자격으로 협상에 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동료를 안심시켜야 할 상황이 있는가 하면, 정치 지도자나 행정부 관료들이 지지 유권자의 대변인 역할만 해야 하는 협상도 있다. <협상의 법칙>에서 무킨 교수는 철저한 비용-편익 분석을 한 결과 협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면 협상을 시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동료들이 적을 악마로 규정하는 감정적 덫에 빠져 있다면, 협상이 필요한 이유를 마지막으로 설명하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3.대안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앞서 말했듯, 모두가 반대하는 적과 협상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때 여러 비난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대중의 외면이나 ‘그러게 내가 뭐랬어’라는 동료의 조소를 피하기 위해 협상에서 너무 쉽게 양보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쉽다. 협상이 실패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철저히 파악한다면 거의 모든 협상에서 자신의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다.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대 로스쿨의 협상 프로그램 연구소가 발간하는 뉴스레터 <네고시에이션>에 소개된 ‘Think Twice before Launching Top-Secret Negotiation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콘텐츠 공급(NYT 신디케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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