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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가 방글라데시로 간 까닭은?

박용 | 62호 (2010년 8월 Issue 1)
패스트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로 잘 알려진 일본기업 패스트리테일링이 최근 방글라데시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수 박사가 설립한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신용대출) 기관인 그라민뱅크와 손을 잡고 저소득 빈민을 위해 1달러 미만의 의류 상품을 판매하기로 했다.
 
방글라데시는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전체 인구(약 1억5000만 명)의 36.3%를 차지하는 빈자(貧者)의 나라다. 상위 20%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20대 80의 법칙’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버려야할 시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패스트리테일링은 이 가난한 나라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이후 미국 유럽 시장에서 신흥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일본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일본 언론은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를 통해 저소득층 시장에 접근하려는 일본 기업의 상담 건수가 1년 만에 세 배로 늘었다고 전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도요타는 1만 달러 정도의 저가 콤팩트카인 ‘에티오스’로 인도 시장 공략에 나섰고, 캐논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50달러짜리 포토 프린터를 앞세워 인도 매출과 직원을 지난 3년간 갑절로 늘렸다. 일본 정부는 올해 개도국의 중산층과 저소득층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민관 파트너십 연구 모임을 결성했다.
 
눈을 아래로 낮춘 일본 기업의 도전이 불황의 돌파구가 될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 아직 단언할 수는 없다. 1990년대 후반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의 프라할라드 교수가 가구당 연 소득 3000달러 미만의 40억 명에 이르는 빈곤층, 즉 ‘BOP(Bottom of Pyramid)’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후 저소득층을 겨냥한 저가 휴대전화, 100달러짜리 컴퓨터 등이 등장했지만 실제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정지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저소득층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새로운 제품과 사업모델을 고민하지 않고 선진국 시장에 맞춘 전략과 사업모델을 고집하거나, 질과 양을 조절해 가격을 낮추는 식의 ‘아웃렛형’ 전략을 택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품질을 희생해 가격을 낮추는 식의 저(低) 원가 전략이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고 제살깎기 식의 가격 경쟁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패스트리테일링의 행보에 시선이 쏠린다. 이 회사는 자사의 사업모델과 역량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800만 명의 저소득층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현지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 브랜드인 그라민뱅크와 손을 잡았다. 선진국 시장에 팔고 남은 제품을 떨이로 쏟아 붓는 식의 ‘아웃렛형 전략’ 대신 현지 밀착형 접근법을 택했다. 기업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수익을 올리며, 가난하다는 이유로 더 비싼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거나 상품 시장에서 소외되는 ‘빈곤의 불이익(Poverty Penalty)’을 해결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기존 관행과 사업모델을 바꾸는 혁신도 필요하다. 100달러짜리 노트북 개발 프로젝트가 넷북으로 이어졌듯이 불리한 제약 조건을 극복하는 BOP 모델이 거꾸로 선진국 시장으로 역수출될 수 있다. 중국 시장에서 개발한 저가 의료기기 사업모델로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을 공략한 제너럴일렉트릭(GE)의 역혁신(Reverse Innovation)이 대표적이다.
 
브라질,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한국산 TV, 냉장고, 에어컨 등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일본 등 선진국 제품에 밀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혁신으로 무장한 글로벌 기업의 공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의 70%, 공식적인 통계로 잡히는 시장 규모만 5조 달러에 이르는 BOP 시장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의 서막은 이미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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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박용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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