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난히 리콜 사례가 많다. 품질 경영의 대명사였던 일본 도요타가 ‘리콜 파문’으로 곤욕을 당하고 있다. 도요타는 전 세계적으로 사상 최대 규모인 1000만 대 차량을 리콜했다. 도요타에 대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미국 GM도 130만 대 차량을 리콜하기로 했다.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각각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냉장고와 드럼세탁기를 리콜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소나타와 산타페에 대해 리콜을 실시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리콜을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품의 복잡성이 증대되면서 리콜은 어느 기업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됐다. 리콜을 결코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는 이유다.
리콜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기업이 대외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 ‘위기관리 트레이닝’을 연재하는 김호 더 랩에이치 대표로부터 기자가 직접 위기관리에 대한 코칭을 받아봤다. 김 대표는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을 대상으로 위기관리 코칭을 실시하고 있다. 4시간 동안 이어진 코칭에서 김 대표는 어느 회사에서나 일어날 법한 가상의 리콜 사례와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제시했다. 언론 인터뷰나 청문회 등 공식석상에서의 일문일답에 대한 대응법을 집중 소개한다.
1.부정적인 사안을 긍정적 언어로 표현하라
기자 역할을 맡은 김 대표(Q): 협력 업체의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도 구매 담당자가 일종의 뇌물을 받고 협력 업체를 선정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CEO 역할을 맡은 기자(A):우리는 50년 동안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져버린 적이 없다. 뇌물 수수는 절대 있을 수 없다.
김 대표의 코칭→부정적인 사안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언어를 꼭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 진보 진영에서 쓴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an Elephant!)>가 있다.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의 상징이다. 진보 진영이 공화당을 공격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코끼리는 상상하지 마’라고 말하면, 오히려 사람들은 코끼리를 생각하면서 오히려 공화당 쪽으로 기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골프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국회 의원들이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해 공격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국회 의원의 공격에 당시 이 총리는 국회 의원의 공격(부정적 언어)을 자신의 입으로 반복하면서 ‘브로커랑 놀아나지 않았다’, ‘골프 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는 오히려 이 총리를 떠올리면 브로커나 골프가 연상되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2006년 미국 일리노이대 한국인 석좌교수가 국내 유명 A대학에 스카우트되어 왔다가 되돌아간 적이 있었다. 이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자로부터 A대학에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미국에 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 1년밖에 있지 않았는데, 한국 대학을 잘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즉답을 피했다. 대신 미국 대학 교수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하는지 설명했다. 그는 A대 교수들이 진짜 공부를 안 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있던 미국 대학에서는 노벨상을 수상했던 80대 노교수도 연구실에서 밤샌다는 말로 갈음했다.
이 원칙은 여러 상황에서 응용될 수 있다. 예컨대 ‘이번 투자가 위험한 것이 아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위험하지 않다’는 대답보다는 ‘우리 회사는 재무적으로 탄탄하다. 최근 채권 발생에서도 신용 등급이 좋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금리에 발행했다’라고 얘기하는 게 효과적이다. 위 질문에 대해서는 ‘경찰이 조사를 벌이고 있는 사안에 대해 결과가 나오기 전 뭐라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 같다’로 말하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뇌물 수수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을 때에는 ‘사실과 다르다. 협력 업체는 공정한 절차로 선정됐다’ 등으로 긍정적인 단어를 쓰는 게 좋다.
2.‘만약’이라는 질문에 ‘맞대답’하지 마라
Q: 이번 사건으로 T사의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A:뇌물 수수에 관한 사항은 조사 중이다. 뇌물 수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관련자를 처벌할 계획이다.
→크라이슬러와 벤츠가 합병할 때 커뮤니케이션 최고 책임자는 다섯 단어를 직원들의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강조했다. ‘Do not answer hypothetical questions’였다. 가상 질문에 대해서는 함부로 답하지 말라는 뜻이다. 질문에 ‘만약’이 포함되어 있다면 일단 긴장해야 한다. 항상 팩트를 기반으로 답해야 한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는 ‘그건 가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말하기가 힘들다’고 하는 게 낫다. 다만 ‘T사는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할 계획이고, 이에 대한 사항은 답변을 드리겠다’고 말하면서 ‘브리징테크닉(bridging technique·다리를 놓는 것처럼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기술)’을 쓰는 게 좋다.
질의응답을 할 때 아마추어들은 질문에 대한 대답만 대답한다. 하지만 프로들은 질문을 짧고 명확하게 얘기하고, 마지막에 자신의 주요 메시지나 솔루션을 덧붙인다.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은 질의응답에서 ‘Let me say’를 쓰는 걸로 유명하다. 마찬가지로 ‘제가 중요한 말을 한 가지 할 게 있습니다’라고 말을 꺼내는 게 좋다. 이를 잘하려면 자신의 입장(position)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이 입장을 표현할 키 메시지도 있어야 한다. 여기서 키 메시지는 부정적 사안이라도 긍정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는 ‘신뢰가 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는 말보다는 ‘소비자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행할 것이고,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