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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성패, 준비 단계서 결정된다

DBR | 49호 (2010년 1월 Issue 2)
다음 몇 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자. 첫째, 케이와 아이반 부부는 딸 제인에게 1만 달러를 그냥 줄 건지, 아니면 정식으로 빌려줄지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서로 눈길을 피한다. 제인은 출장 요식업 사업을 시작할 종자돈이 필요하다고 몇 번씩 얘기했었다. 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아이반은 제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돈을 주마”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반면 케이는 그런 남편이 영 마땅치 않다.
 
둘째, 두 기업의 경영진이 합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A사 경영진이 두툼한 분량의 합의서 초안을 나눠주며 먼저 말을 꺼냈다. 하지만 B사 경영진의 대표는 합의서 초안에 문제가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A사의 경영진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며 “어쨌든 일을 진척시켜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결국 두 기업의 CEO가 전화 통화를 하고서야 합의점을 찾았다.
 
셋째, 한 은행이 대형 쇼핑몰에 신규 지점을 개설했다. 그런데 영업 첫날 폭우가 쏟아져 천장 몇몇 군데에서 비가 새는 게 아닌가. 언제 수리를 해줄지를 놓고 지점장과 건물주 대리인 간에 언쟁을 벌어졌다. 이후 수년간 두 사람은 냉랭하고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다.
 
 

 
이처럼 협상이 난조를 보일 때 당신은 어떤 진단을 내리겠는가? 상대방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며 탓할 수도 있고, 당면한 문제가 너무나 복잡해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을 문제점으로 꼽느냐와 무관하게 협상 당사자들이 협상 전 탄탄한 토대를 마련해놓았다면 이런 난감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협상 준비 과정에서 상대방을 배제시키는 사례가 많았다. 협상 준비가 끝난 후에나 밀고 당기기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에게 어떤 사안을 이끌어내거나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협상 가능 영역(bargaining zone) 점검, 협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 조직원들이 필수 협의 사항으로 꼽는 점 등 협상 준비 단계에서 꼭 챙겨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따라서 협상 준비 단계에서도 반드시 양측의 공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협상을 어떻게 진행해나갈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시간을 할애에 상대방과 논의해야 한다. 만약 이 과정을 생략한다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전 협의의 중요성
왜 굳이 별도 시간을 할애해가면서까지 사전에 협상 진행 방향을 논의해야 할까? 협상 테이블에서 곧장 문제나 제안 사항을 제시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을까?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자레드 커핸 교수, 헨 슈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힐러리 안게르 엘펜바인 교수는 협상 사전 논의에 관한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이들은 협상 사전 논의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협상의 최종 성패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가라는 객관적인 데이터에만 좌우되지 않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얼마나 흡족한 협상 결과를 이끌어내느냐는 문제는 다음 4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이해득실을 보여주는 객관적 데이터, 둘째, 협상 과정에서 협상 참가자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셋째, 협상 과정은 협력적이고 공정했는가, 넷째, 상대방과 생산적 공조 관계를 구축했는가. 따라서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려면 협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협상 진행 과정을 단순히 운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 사전 협의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정 협의
상대방과 협상 과정을 논의할 때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갈 몇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일단 굳이 사전 준비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상대방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버드대 로스쿨의 로버트 보르도네 교수, 질리언 토드 교수는 그 해답으로 “효과적인 협상 방안을 미리 의논해야 장기적으로는 시간 소모를 줄일 수 있으며 더욱 가치 있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라”고 충고했다. 일단 협상 과정 논의 필요성에 대해 상대방과 합의를 봤다면 이제 세부 사항을 검토해야 할 때다. 상대방과 의견 조율을 거쳐야 할 사항은 다음 8가지다.
 
1.누가 협상에 참여하는가? 이미 알고 있는 주요 협상자 외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변호사, 지원 팀 등 전문가를 불러야 하는가? 팀 단위로 협상을 진행한다면 팀 구성원을 어떻게 짜야 하며, 협상 테이블에서 이들은 각각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첫 번째 협상에 누가 참석할지에 관한 합의를 끝냈다면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등장으로 당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보르도네 교수와 토드 교수는 협상 과정이 복잡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면 실무 협의단의 구성원 수를 줄이거나 소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조언했다. 기업 합병이 의제에 올랐다면 한 팀은 노동조합과의 협의 사안을 집중 준비하고 다른 한 팀은 기술 이전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식이다.
2.협상 장소는 어디인가? 상대방이 오거나 우리가 그쪽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은 금물이다. 상대방은 협상 장소에 대해 전혀 다른 장소를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측 홈그라운드에서 진행한다면 제반 환경과 감정 등을 통제하기가 수월해지는 만큼, 결정적인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미국 터프츠대의 제스월드 W 사라큐스 교수는 오히려 상대방이 있는 직접 감으로써 정말 진지한 태도로 이 협상에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상대방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호텔 회의실 등과 같은 제3의 장소를 선택하거나 이메일, 전화 등 원격통신을 이용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협상 장소나 의사소통 방식에서 특별히 선호하는 사안이 있다면, 상대방에게 이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당신이 왜 이 장소나 이 방식을 택했으며, 이 일이 상대방의 이해관계나 고려 사항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라는 뜻이다. 특별히 원하는 장소나 방식이 없다면 상대방과 그 결정에 따르는 장단점이 무엇인가를 논의한 후 장소를 결정하는 게 좋다. 이때 협상 장소와 같은 사소한 부분은 먼저 상대방의 편의를 배려해라.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3.기본 전제를 충실히 이행하는가? 케이와 아이반 부부의 예를 보자. 케이는 남편이 딸에게 사업 자금을 주겠다고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면 어쩌나를 걱정하고 있다. 이때 케이는 남편과 기본 전제를 미리 정해둬야 한다. ‘제인에게 돈을 그냥 줄 것인지, 빌려줄 것인지에 대해 나는 얼마든지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의향이 있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당신이 이 문제를 나와 함께 결정하고 우리 두 사람이 제인에게 일치된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약속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버드대의 구한 수브라마니안 교수는 전제 조건에 대한 사전 합의가 매우 유용한 수단이 라고 충고한다. 어떤 위치에서 협상을 시작하는지도 중요한 요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협상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라도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한두 가지 전제 조건을 미리 제시할 필요가 있다.
 
4.무엇을 논의할 것인가? 당신이 상대와 무엇을 논의할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해도 상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브레인 스토밍을 통해 어떤 논제가 나올 지를 예측해 이를 목록으로 만들어라. 혹 사전 준비 단계에서 이 사안들에 대해 미리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충동이 들더라도 이는 잠시 미뤄두는 게 좋다. 경제 상황이 나아질지, 혹은 악화될지와 같은 미래 기대 및 위협 요인에 대해서도 미리 점검해보자. 글 첫머리에 언급한 건물 관리업체의 늑장 대응에 화가 난 은행 지점장의 예를 보자. 관리업체의 대출 상황 등을 미리 예상하고 협상에 임한다면 건물 관리, 수리 기간처럼 계약 사항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도 업체의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다.
 
5.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기업 합병을 논의하는 두 당사자가 서로 다른 접근법으로 협상에 임한다면 시작 단계에서부터 서로 어긋날 수 있다. A사 경영진은 합의서 초안을 제시함으로써 우위를 점하고 들어가려는 계산이었다면 B사 경영진은 첫 단추부터 차근차근 함께 합의점을 찾아가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서로 다른 접근으로 마찰이 이는 경우, 처음부터 협상은 좋지 않은 결과를 안고 시작하는 셈이다.
 
우리는 협상가들에게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협상에 임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중 하나는 양측 모두를 위한 가치 창출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 측의 실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보르도네 교수와 토드 교수는, 앞으로 다가올 협상이 이러한 접근법을 적용해볼 만한 성격이라면 협상 상대에게 당신이 원하는 바를 설명하고 양측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선택안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라고 충고한다.
 
이를 통해 당신은 협상 상대가 전혀 예상 밖의 접근법으로 협상에 임할 생각임을 미리 파악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갑자기 구체적인 합의서 초안을 제시하거나 첨예한 의견 대립을 불사하고라도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호 논의를 거쳐 양측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협상 전략을 미리 선택해야 한다.
 
6.어떠한 윤리 기준을 따를 것인가?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은 대개 공정성과 정당성을 지키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판단 기준은 각자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부도덕한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잘못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타 기업의 행태를 그대로 따름으로써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의 리사 L 슈(Lisa L. Shu) 교수, 맥스 H 베이저먼 교수, 노스 캘리포니아대 프란체스카 지노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 윤리 강령에 서명한 후 수학 문제를 풀게 했을 때 다른 사람의 답안을 훔쳐보는 행동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났다. 물론 협상 당사자 양측이 윤리 강령에 서명을 하는 일은 없겠지만, 협상 과정 전반에 걸쳐 공정하고 정직한 태도로 협상에 임하며 이를 통해 도덕적인 협상결과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미리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이는 협상에 참여한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쳐 의사결정에 신중을 기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다.
 
7.협상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협상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이냐는 사안은 때때로 법률 문제로 번질 수도 있기에 미리 의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구두 합의만으로 충분한가? 합의 사항에 대해 서면 동의를 받아둬야 하는가? 공식 협상에서는 협상 종료 후 그 내용을 서면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일반적이다. 협상 결과에 대한 최종 승인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논의해야 한다. 양측 모두 제안서를 다시 회사로 보내야 한다면, 승인에 따르는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 합의서 발송이 늦어지거나 절차가 지연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에는 법적 효력을 지니는 의사결정권을 누가 행사할지에 대해서도 미리 논의해야 한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누군가를 물색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8.언제까지 협상을 마무리 지을 것인가? 언제까지 당사자 양측이 협상을 타결할지를 명확히 한다면 협상 돌입 후에 따르는 스트레스와 혼란을 피할 수 있다. 서둘러 협상을 끝내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설사 당신이 협상 진행을 재촉하더라도 더욱 수용적인 태도로 나올 것이다. 때로는 협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사람으로 협상단을 구성해달라는 요구를 상대방에 제시할 수도 있다.
 
양측 모두 협상 마감 시한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원하는 협상 마감 시한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자칫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계속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협상 일정에 따라 각각의 시기에서 얻고자 하는 목표를 미리 정할 수도 있다. 마감 시한 설정은 협상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시작 단계에서 제시해야 할 이슈는 무엇이며, 이후 순차적으로 어떤 이슈를 들고 나올지에 관해서도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보르도네 교수와 토드 교수는 단순한 이슈일수록 먼저 합의점을 찾고 이후 복잡한 문제를 진행시켜 나가라고 제안했다.
 
물론 이 8가지 확인 사항이 모든 협상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이외에 추가로 체크 리스트에 넣어야 할 사항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건 잠깐 시간을 내 미리 협상 과정을 점검한다면 장기적으로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번역 |박연진 jinyhanmail@hanmail.net
 
편집자주 이 글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의 ‘협상 프로그램 연구소(www.pon.harvard.edu)’가 발간하는 뉴스레터 <네고시에이션(Negotiation)>에 실린 ‘Start Your Talks Off on the Right Foot?’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NYT 신디케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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