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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검토해야 할 ‘다이아몬드 모델’

문휘창 | 44호 (2009년 11월 Issue 1)
미국 하버드대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1980년 <경쟁 전략(Competitive Strategy)>이라는 책을 발간해 세계 경영학계의 슈퍼스타로 등장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이 바로 잘 알려진 ‘산업매력도 분석 모델(5 forces model)’과 ‘본원적 전략 모델(generic strategy model)’이다. 이에 관한 내용은 DBR 42호에 실린 ‘전략의 기본은 무엇인가?’에서 다뤘으니 이번 글에서는 포터 교수의 다이아몬드 모델(diamond model)에 관해 알아보자.
 
현재 많은 한국 기업들은 포터 교수의 1980년대 작품인 산업매력도 분석 모델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1990년대 작품인 다이아몬드 모델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제대로 쓰이지도 못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다이아몬드 모델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이아몬드 모델은 뛰어난 분석 도구이므로 이를 잘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경영 문제 해결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다이아몬드 모델을 처음 소개한 포터 교수의 저서는 <국가의 경쟁우위(The Competitive Advantage of Nations)>다. 근대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Wealth’를 ‘Competitive Ad-vantage’로 바꾼 명칭이다. 이는 단순한 ‘부(富)’가 아니라 근원적인 ‘경쟁우위’를 다룬다는 의미다. 포터 교수는 전통 경제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학을 제시한다는 포부로 이 책을 집필했다.

 
이렇듯 다이아몬드 모델은 처음에는 국가의 경쟁우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국가뿐 아니라 기업이나 개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석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경제, 경영뿐 아니라 기타 다양한 분야로도 분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포터 교수는 경쟁력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4가지 측면에서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새로운 분석 틀인 다이아몬드 모델을 제시했다.
 
경쟁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
1.생산 조건(Factor Conditions)
우리는 흔히 천연자원이 많아야 잘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천연자원이 많은 나라는 대부분 못사는 나라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 중국, 인도, 멕시코 등의 국가는 대부분 가난하다. 최근 중국 경제가 떠오르고 있지 않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 중국 경제가 급성장한 이유는 천연자원이 많아서가 아니라 1970년대 말부터 대외개방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이 세상에서 잘사는 나라들은 대부분 천연자원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포터 교수는 천연자원 자체보다 부족한 자원을 극복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일본의 경박단소(輕薄短小) 전략을 언급했다. 일본은 모든 것을 가볍고, 얇고, 짧고, 작게 만드는 과정에서 자원(material)과 공간(space)을 절약할 수 있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노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노동 절약형 기술이 주로 발전해왔다. 미국의 천연자원은 양이라는 절대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풍부하지만 상대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의 석유 매장량은 매우 풍부하지만 미국 내 소비가 워낙 엄청나 항상 많은 양의 석유를 수입해야만 한다. 미국의 중동 정책의 초점이 항상 석유자원 확보에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호주나 뉴질랜드와 같은 국가들도 천연자원만 가지고 선진국이 된 게 아니다. 자원을 개발하고, 가공하고, 운반하는 선진국형 기술이 뛰어났기에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즉 호주의 농업은 브라질의 농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호주나 뉴질랜드를 방문해보면 농산물에 대한 엄격한 심사 때문에 입국 심사가 매우 까다롭다. 즉 관련 기술이나 제도적 보완 없이 천연자원만 갖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하나도 없다.
 
포터 교수는 생산 요소를 천연자원이나 값싼 노동력과 같은 기초 요소(basic factor)와 높은 기술과 같은 고급 요소(advanced factor)로 구분했다. 고급 요소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나라야말로 선진국이라는 주장이다. 일부에서 인건비가 낮아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는 후진국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실제로 선진국은 모두 인건비가 높고 후진국은 모두 인건비가 낮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도 이제 인건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2.수요 조건(Demand Conditions)
한국과 중국의 경제를 비교할 때 중국의 ‘거대한 시장’이 항상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물론 시장의 크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포터 교수는 경쟁 우위를 결정할 때 수요의 크기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주요 선진국의 경쟁력 있는 제품은 그 나라의 시장 크기가 커서 우수한 게 아니다. 소비자의 까다롭고 수준 높은 요구를 충족시켰기에 경쟁력 있는 제품이다.
 
스위스 기업들은 고급 시계 분야에서 선두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위스의 시계 시장이 다른 나라 시장보다 규모가 커서가 아니다. 스위스 사람들의 시계에 대한 기호가 워낙 까다로워서 기업들이 정교하고 고급스런 제품을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핀란드의 정보통신 산업이 발전한 이유도 이 분야의 소비자 기호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즉, 세련되고 까다로운 소비자는 제품의 질과 서비스에 상당히 높은 기준을 갖고 있어 기업에게 그 기준을 맞추도록 저절로 압박하는 셈이다.
 
일본의 전자 제품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이유도 소비자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오디오 장비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식 수준은 놀라울 정도다. 일본인들은 광범위한 제품 정보를 수집하고 가장 최신 모델을 원한다.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높은 요구는 생산자들의 신속한 개선을 야기하고, 최신 모델에 대한 욕구는 끊임없는 기술 발전을 촉진한다. 요즘 한국의 전자 업체들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 또한 이 부문에서 한국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의류와 음식에 대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 결과, 이탈리아 업체는 이 분야에서 모두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독일인들이 자동차에 대해 남다른 지식과 애정을 보였기 때문에 벤츠나 BMW가 탄생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이 스포츠, 영화, 음반 등 대중연예 분야에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었기에, 해당 산업에서 미국이 세계적 리더에 오를 수 있었다. 국민적 열정은 한 산업이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발전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한국 기업들은 국내 시장이 좁다고만 탓할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열정이 잘 어우러진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3.관련 산업(Related Industries)
경쟁력을 분석할 때 하나의 기업 또는 하나의 국가를 독립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분석 단위는 해당 국가 내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관련 산업의 클러스터다. 미국 영화산업 경쟁력 분석 단위는 워너브라더스나 파라마운트가 아니라 할리우드이며, 미국 첨단 산업의 분석 단위는 구글이나 애플이 아니라 실리콘 밸리라는 뜻이다. 한국 전자 산업의 경쟁력도 삼성전자 등 개별 기업으로 평가할 게 아니라 전자 산업과 정보통신 산업 등을 종합적으로 봐서 평가해야 한다.
 
이때 해당 산업의 클러스터뿐 아니라 관련 및 지원 산업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스위스에 유명 제약 회사가 많은 이유는 과거 스위스 염료 산업의 국제적 성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본이 팩시밀리 부문에서 리더가 된 이유는 일본 복사기기의 강점 덕을 봤기 때문이다. 일본 전자 키보드가 유명한 이유 또한 악기 분야에서의 강점을 가전 제품에 결합했기 때문이다.
 
관련 기업들이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강화되고, 이를 전달하는 시간과 거리도 줄일 수 있다. 이탈리아 구두 생산 업체들은 가죽 생산 업체들과 새로운 스타일과 제조 기술에 대해 정기적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 구두 제조 업체들은 화판을 보면서 가죽의 짜임새와 색깔을 연구한다. 가죽 제조 업체들은 새로운 제품의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패션 동향에 대해 빠른 통찰을 얻는다. 한국 동대문 시장의 경쟁력도 이러한 클러스터 및 시너지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국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한두 기업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관련 및 지원분야가 종합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국제 경쟁력이 있는 하나의 산업을 발전시키면 이 산업이 또 다시 새로운 경쟁력 있는 산업을 낳는다. 이 산업이 다른 산업의 가치사슬에 경쟁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4.경영 여건(Business Context)
경영 여건은 ‘전략, 구조, 경쟁’을 말한다. 일각에서는 이중 국내 경쟁이라는 요인에 대해 소모적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국내 경쟁이 기업들에게 중복된 노력을 기울이게 만들어 ‘규모의 경제’를 방해하기 때문에 거대 기업 한두 개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도 한때 이 주장을 받아들여 ‘빅 딜’이라는 명목하에 억지로 산업 구조조정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선두에 있는 국가들, 심지어 스위스와 스웨덴같이 작은 나라에서도 강력한 현지 경쟁자들이 존재한다. 스위스의 제약 산업, 스웨덴의 자동차와 트럭 산업에는 엄청난 수의 국내 경쟁자가 있다. 더 큰 나라에는 경쟁자가 더 많다. 미국의 컴퓨터나 소프트웨어 산업이 그 예다. 즉, 국내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룬 한두 개의 기업만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글로벌 경쟁에서 성공적인 기업들은 이미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기 때문에 발전과 혁신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규모의 경제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제품을 판매하면서 규모를 점차 늘릴 수 있다. 국내에서 미리부터 규모의 경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앞지를 수 있었을까. 일본 업체의 생산 및 시장 조건은 미국 업체보다 훨씬 뒤쳐져 있었다. 하지만 일본 자동차 시장은 미국 시장보다 경쟁의 강도가 훨씬 치열했다. 미국에는 자동차 회사가 실질적으로 GM, 포드, 크라이슬러 3개뿐이었다. 반면 일본 시장에서는 9개의 회사가 서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일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도요타, 혼다가 미국 시장으로 진출해 미국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이뤘다. 일본 자동차 업체가 세계적 업체로 거듭난 건 경쟁이 치열한 일본 시장에서 이미 성공했기 때문이다.
 
경쟁은 심할수록 좋다. 경쟁은 비용을 낮추고, 제품의 질과 서비스를 개선하며, 새로운 제품과 공정을 만들어내도록 서로 압박한다. 개별 기업은 물론 치열한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쟁자의 적극적인 압박은 기업들의 혁신을 자극해 장기적으로는 해당 기업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기업 간의 효율적인 경쟁이 없다면 해당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경쟁이 경쟁력을 낳는다’는 뜻이다.
 
다이아몬드 모델의 구조
이 내용은 포터 교수가 4년 동안 10개국(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일본, 한국, 싱가포르)의 총 100개 산업을 연구하면서 찾아낸 결과다. 그렇다면 왜 어떤 국가는 특정 산업에서 국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4가지의 경쟁력 관점을 종합해 좋은 경영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림 1>에서 보듯 다이아몬드 모형의 4개 요소들은 개별적으로, 혹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한 국가의 기업들이 생겨나고 경쟁하는 여건을 창출한다. 이 다이아몬드가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가질 때, 산업 또는 해당 분야의 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다이아몬드 모델은 상호 강화 시스템이다. 즉 결정 요소 한 개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기업은 다른 결정 요소의 우위도 창출할 수 있다. 기업 간의 경쟁 관계가 잘 정립되면 기술 혁신이 일어나 생산 조건이 향상되고, 이는 다시 수요 조건을 업그레이드시킨다.
 
경쟁력 평가는 이렇듯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기존 경제학 이론은 이 중에서 한두 가지 결정 요소, 특히 생산 조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현대의 고도화된 산업 구조를 설명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포터 교수도 “전통적 비교우위론은 좋게 말하면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나쁘게 보면 틀린 이론이다(at best incomplete, at worst incorrect)”라고 평가한 바 있다.
 
사례 연구: 한국 경제의 주요 이슈
이제 다이아몬드 모델을 한국 경제에 적용해보자.(그림 2 참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 경제의 주요 문제점을 ‘고비용 저효율’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 경제의 일부분, 특히 생산 조건에만 해당하는 문제다. 기초 생산 요소에 해당하는 고비용은 한국의 인건비가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에 비해 비싸다는 뜻이다. 고급 생산 요소인 저효율은 우리의 기술이 아직 선진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수요 조건도 문제다. 한국 시장의 크기는 중국보다 훨씬 작고, 시장의 질도 몇 개 산업을 제외하면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 이를 해결하려면 국제 시장을 더 많이 개척해야 하고 시장의 질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특히 시장의 질과 관련한 문제들은 소비자의 안목이 제품의 품질뿐 아니라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선호하는 수준까지 높아져야 해결할 수 있다.
 
관련 산업의 기초 조건을 보자. 한국의 통신 여건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교통 여건은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나 교통 문제가 심각하면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나 4대강 개발 프로젝트가 나왔겠는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생활 환경이나 교육 조건의 수준이다. 외국의 유능한 경영자나 교수들이 한국 생활을 꺼리는 이유는 한국의 전반적인 생활 환경이 국제적 수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경영 여건의 중요 이슈는 다음과 같다. 블루오션 전략을 택할 것인가, 레드오션 전략을 더욱 발전시킬 것인가?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윤리 경영과 투명 경영을 강화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 발전, 수도권과 지방의 국토 균형 발전은 어느 정도의 수준이 적당한가? 이상의 문제점들은 모두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주요 문제점들이다. 좋은 분석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회의와 토론만으로 방법을 찾아내려고 한다면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또한 중요 이슈를 빠뜨리거나 몇 개의 항목이 겹쳐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좋은 분석의 틀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중요 설명 변수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 둘째, 변수들의 중복이 없어야 한다. 셋째,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을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이아몬드 모델은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매우 좋은 분석의 틀이다. 독자들이 이 모델을 잘 익혀 여러 분야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기를 기대한다.
  • 문휘창 문휘창 | -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현)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장
    - (전)미국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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