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적 혁신 위한 4가지 맞춤형 솔루션

24호 (2009년 1월 Issue 1)

게리 P. 피사노, 로베르토 베르간티
 
세계 곳곳에서 뛰어난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있다. 또 정보기술(IT) 덕에 이런 아이디어에 접근하는 비용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그 어떤 기업이든 폐쇄적 혁신만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건 너무 빤한 상식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잠재적인 파트너의 수와 협력 방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나쁜 소식도 있다. 바로 선택의 폭이 늘어나는 바람에 경영진이 최고의 옵션을 선택하기가 한층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지적재산을 공개하고 이를 커뮤니티 멤버들과 공유해야 할까, 엄선된 일부 파트너와의 협력 관계만을 키워나가야 할까, ‘집단 지성(wisdom of crowds)’을 이용해야 할까?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과 같은 개방형 협업 모델에 대한 높은 관심에도 외부 인재를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각각의 협력 형태는 저마다 전략적 장단점을 갖고 있다. 자사와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방법을 택하면 새로운 기술, 디자인, 제품,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구조나 조직화 원칙(본 연구진은 이 두 가지를 일컬어 ‘협력적 구조’라고 부른다)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관계를 맺는 기업이 너무도 많다. 고위 중역들이 어떤 종류의 협력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본 연구진은 단순한 형태의 틀을 개발했다. 20여 년 동안의 연구와 이 분야에서 쌓아 온 컨설팅 노하우의 산물인 이 틀은 기본적인 2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는 바로 ‘자사의 전략을 생각했을 때 협력 네트워크가 얼마나 개방적 또는 폐쇄적이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 네트워크를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어떤 해결책을 도입해야 하는지 등을 결정할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네트워크가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개방된 정도에 따라 협력 네트워크의 특성이 크게 달라진다. 완전히 열려 있는 협력 관계 또는 크라우드소싱의 경우 공급자, 고객, 디자이너, 연구소, 개발자, 학생, 취미 생활자, 심지어 경쟁자까지도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다. 스폰서가 하나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알려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할 때 여기에 도움을 줄 능력이나 자산이 있는 모든 사람이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다. 리눅스, 아파치, 모질라와 같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이런 부류에 속한다. 반대로 폐쇄형 네트워크는 비공개 모임 같은 성향을 띤다. 이런 경우에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당사자가 혁신에 도움이 되는 역량과 자산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극소수의 파트너와 손을 잡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협력 네트워크의 형태에 따라 지배구조도 달라진다. 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여러 당사자 가운데 ‘킹핀’이라 불리는 하나의 기업에서 어떤 문제가 가장 중요한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떤 해결 방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어떤 해결 방법을 도입해야 할지를 모두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네트워크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수직적 네트워크라 볼 수 있다. 반대로 수평적 네트워크도 있다. 수평적인 네트워크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동등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며, 핵심 주제를 결정하기 위한 권한을 공유한다.
 
학계에서 발표하는 잡지나 대중을 상대로 한 언론 모두 협력적 혁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개방형 구조’라는 것이 무조건 ‘수평적 관계’를 뜻한다고 잘못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개방되어 있으며 수평적인 접근방식이 항상 우월하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개념은 무척 잘못된 것이다.
 
박스 기사 ‘협력을 위한 4가지 방법’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협력의 종류는 폐쇄적이며 수직적인 네트워크(엘리트 서클), 개방적이면서 수직적인 네트워크(혁신 센터), 개방적이며 수평적인 네트워크(혁신 공동체), 폐쇄적이며 수평적인 네트워크(컨소시엄) 등 크게 4개로 나눌 수 있다.
 
어떤 형태가 자사의 혁신 전략에 가장 잘 맞을지 결정하고자 할 때에는 각각의 형태를 선택했을 때의 장점 및 단점을 살펴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직적 역량, 구조, 자산이 필요한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박스기사 ‘가장 적합한 협력 방식을 선택하는 방법’ 참조) 장단점을 살펴본 다음 회사의 전략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협력의 형태를 선택해야 한다.

 
개방형 네트워크 vs. 폐쇄형 네트워크
네트워크 규모가 커지면 네트워크에 공헌을 해 줄 대상을 탐색하고, 걸러내고, 선정하는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에 동조할 참여자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폐쇄형 네트워크의 경우 개방형 네트워크에 비해 필요한 참여자 수가 훨씬 작을 수밖에 없다.
 
폐쇄형 네트워크를 선택하겠다는 결정에는 2가지 암묵적인 의미가 포함돼 있다. 첫째는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지식 분야가 가장 도움이 될지를 파악했다는 뜻이다. 둘째는 해당 분야에서 문제 해결에 적합한 협력자를 찾았다는 뜻이다.
 
세련된 가정용품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기업 알레시는 포스트모던 건축 분야가 흥미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에 적합한 영역이며, 이 분야에서 최고 인재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단언했다. 알레시는 포스트모던 건축 분야에 몸담고 있는 200여 명의 협력자를 초빙해 흥미로운 제품 디자인을 만들어 볼 것을 요구했다.
 
어디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지, 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지, 핵심 인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면 알레시의 엘리트 서클과 같은 폐쇄형 네트워크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개방형 네트워크의 최대 장점은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탤 참여자를 많이 끌어들일 수 있으며, 그 결과 엄청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개방형 네트워크를 선택한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적합한 지식 영역이나 해당 영역에서 적합한 전문가가 누구인지를 찾아낼 필요가 없다. 개방형 네트워크는 그야말로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파티를 여는 것과도 같다. 그저 파티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손님을 유인할 만한 유흥거리를 만든 다음 괜찮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개방형 네트워크를 선택한 경우라면 반드시 해결책을 제시한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고 결코 상상조차 못한 사람이나 조직에서 흥미롭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을 통해 티셔츠를 판매하는 업체인 스레들리스닷컴(Threadless.com)은 바로 이런 콘셉트를 활용하고 있다. 이 업체는 일반 대중으로부터 디자인에 관한 아이디어를 구한다. 스레들리스닷컴은 총 60만 명의 회원이 참여하며, 매주 800개의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하는 혁신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방법을 통해 스레들리스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다.(회원들과 웹사이트 방문객이 어떤 디자인이 좋을지 투표를 하지만 스레들리스 직원들이 어떤 디자인을 제품으로 생산할지 결정하면 이 디자인을 만들어낸 회원에게 보상해 준다)
 
그러나 개방형 네트워크에도 나름대로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두드러진 단점은 바로 최고 협력자를 찾아내고 도움을 이끌어내는 데 폐쇄적인 방식만큼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참가자 수가 늘어나면 개별 참가자가 내놓는 해결책이 선택될 가능성은 낮아진다.(특히 문제 자체가 모호할 경우 그 가능성은 더 낮다) 따라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은 폐쇄적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쪽을 선호한다. 개방적 네트워크는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과 평균적인 해결책 간의 간극이 크지 않고 최고의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뛰어난 해결책을 놓친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심각하지 않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개방형 네트워크는 다음과 같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될 때 가장 효율성을 발휘한다. 우선 참가자가 제안하는 해결책을 평가하는 비용이 높지 않아야 한다. 간혹 선별 과정이 매우 저렴하고 빠른 경우도 있다.(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코드의 특정한 모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버그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반대로 추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방법이 있긴 하지만 돈과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소수의 뛰어난 아이디어만을 원하게 된다. 소수의 뛰어난 아이디어만을 얻기 위한 방법은 뛰어난 아이디어를 내놓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재의 헌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폐쇄형 네트워크가 더 적합하다. 

 
간단하지만 오싹함이 밀려오는 사례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심각한 질병 때문에 최고의 치료법을 찾으려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개방형 네트워크를 선택해 인터넷상에 공개하고 조언을 구해 50여 개의 관심이 가는 치료법을 발견했다. 그러나 다시 2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그 첫 번째는 바로 통계학자가 ‘표본 선정의 오류’라고 부르는 문제다. 즉 이 50가지 아이디어가 과연 최고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사실 가장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는 의사들은 환자를 돌보느라 바빠서 인터넷상에 올라온 이런 질문에 답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대신 시간이 남아도는 의사들이 답변할 것이다.(시간이 남아돈다는 것은 물론 좋지 않은 징조다) 둘째 문제는 바로 50개의 아이디어를 평가하려면 (병원 방문 등)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올바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밖에 없을 수도 있다.(여러 차례 수술을 ‘시도’해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질병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충분한 조사를 통해 최고 전문가가 누구인지 찾아낸 다음 그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는 한편 또 다른 전문가 1, 2명으로부터 새로운 의견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이유다.
 
알레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50명이라는 디자이너 수를 생각하면 차라리 온라인상에서 공개 디자인 공모전을 열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뽑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알레시의 세계적인 명성을 생각하면 많은 디자이너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레시는 한 가지 또는 소수의 최적 해결책이 있는 기술적 문제를 풀기 위해 전문가를 찾은 것은 아니다. 알레시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거를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알레시는 아름답고 감정적이며 상징적인 디자인과 같이 무형 자산으로서 뛰어난 가치를 갖고 있는 콘셉트를 찾는다. 알레시가 원하는 콘셉트에는 분명한 정답이나 오답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알레시가 공개 공모전을 연다면 수천 개의 아이디어가 탄생할 것이고, 이 때문에 알레시는 각 아이디어를 평가하기 위해 엄청난 지출을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알레시는 시장의 욕구를 예측해 파격적인 디자인을 출시하는 전략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상품 출시 초기에 상당수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워한다. 따라서 알레시는 스레들리스처럼 고객에게 어떤 디자인을 선호하는지 질문하는 형태로 고객에게 평가 비용을 떠넘길 수도 없는 입장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알레시는 공개 공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공헌자로부터 몇 가지 뛰어난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열린 네트워크를 선택했다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의 커다란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된 여러 개의 작은 덩어리로 나눠 참가자들이 낮은 비용으로 얼마든지 자율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하면 그만큼 많은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스레들리스의 티셔츠 디자인을 제안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정교한 디자인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야 하거나 실을 잣는 법, 셔츠를 만드는 방법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리눅스의 오픈소스 커뮤니티는 원래 모듈을 기반으로 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 담당자들이 총 400만 개가 넘는 코드로 구성된 애플리케이션의 다른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참가자들이 공헌을 하고 업무를 공유하며 다른 참가자가 제안하는 해결책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 플랫폼이 있었기에 지난 10년 동안 개방형 협력이 한층 쉬워질 수 있었다.
 
물론 모든 문제를 규모가 작은 여러 개의 덩어리로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급진적일만큼 혁신적인 제품 콘셉트나 제품 구조를 개발하는 일은 전체를 하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경우라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는 폐쇄형 네트워크를 채택해야 한다. IBM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지멘스, 삼성, 프리스메일, 인피니온,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파트너를 엄선해 메모리, 실리콘 온 인슐레이터(silicon-on-insulator) 부품, 반도체 제조 공정 등 반도체 관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공동 개발 협력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수평적 지배구조 vs. 수직적 지배구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수직적 지배구조와 수평적 지배구조 간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선택할 권한을 갖는 당사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수직적 구조에서는 특정한 조직이 선택권을 갖게 된다. 이 경우 혁신을 위한 노력이 나가야 할 방향을 통제하고 혁신을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평적 구조에서는 특정한 조직에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으며 협력자 가운데 일부 또는 모두가 모여 의사결정을 내린다. 수평적 구조에는 혁신에 따르는 비용, 위험, 기술적 과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해당 조직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제안된 해결책을 평가할 만한 역량과 지식을 갖고 있다면 수직적 지배구조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노센티브닷컴에 자사가 안고 있는 과학적 문제를 올리고 자문을 하는 기업을 생각해 보자. 이 사이트에 공개되는 문제들은 각 기업이 진행하는 훨씬 규모가 큰 연구개발(R&D) 프로그램의 일부분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런 기업들은 관련 기술 및 시장(사용자의 요구 및 기술적인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스템 구성을 정의하고 다양한 협력자의 업무를 조율할 수 있다.
 
반대로 수평적인 네트워크는 그 어떤 참여 조직도 필요한 만큼 충분히 넓은 시야를 갖고 있지 못하거나 필요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때 적합하다. 다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살펴보자. 오픈소스 프로그램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코드를 사용할 때 버그가 발생하거나 특정 하드웨어 드라이버에서만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문제 등 사용자들이 직면하는 문제에 도움이 되는 해결책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사용자가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해결책을 고안하고 시험하기에 가장 좋은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사용자들이 문제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IBM의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컨소시엄을 생각해 보자. IBM 이외의 반도체 업체들이 마이크로프로세서 디자인에 반드시 필요한 지식, 기술,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직적인 지배구조를 택할 수가 없다.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협력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질 때에만 협력자가 네트워크에 참여하려 하는 경우에도 수평적 지배구조를 택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IBM이 구성한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모두 지난 몇 년 동안 다함께 힘을 모아 개발한 기술을 자사의 공장 및 생산 시설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왔다. 바로 이런 이유로 IBM과 컨소시엄 참여기업 모두에 기술 개발 과정에 대한 강력한 발언권이 부여됐다.
 
4가지 중 어느 형태를 취하든 외부 협력자를 끌어들이려면 금전전, 비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구직시장에서 눈에 띄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점, 동료 집단에서 한층 높아지는 명성, 심리적인 만족감, 솔루션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기회와 같은 비금전적 인센티브는 금전적 보상을 대체 또는 보완할 수 있다. 각 협력 형태에서 어떤 종류의 인센티브가 가장 적합한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혁신 공동체에 참여할 경우 심리적 만족감이 따라올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형태의 협력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심리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알레시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알레시는 엘리트 서클에 속한 디자이너들에게 판매량에 따른 로열티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제품 마케팅 단계에서 디자이너 이름을 적극 활용하는가 하면 디자인 과정에서 상당한 자유를 보장하기도 한다.
 
전략의 문제
협력 형태를 선택할 때는 단순히 각 형태의 장단점을 고려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가치를 구축하고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전략이 변하면 적합한 협력 형태도 변한다.
 
아이폰에 사용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애플이 어떤 접근 방식을 활용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접근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애플 전략의 핵심은 바로 완벽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실 애플 제품이 주는 즐거움이자 애플을 차별화하는 요소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주변기기 등 모든 것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애플은 사용자의 경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각 부품을 통제하기 위해 폐쇄형 협력 방식을 선호해 왔다. 애플은 1세대 아이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폐쇄형 협력 방식을 택했으며, 초기에 출시한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엘리트 서클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폰이 시장에서 인기를 얻자 애플은 아이폰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능 및 애플리케이션을 추가해야 하는 문제에 부닥치게 됐다.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틀을 바탕으로 애플에 어떤 선택권이 주어졌는지 살펴보자. 우선 아이폰으로 다양한 모바일 뱅킹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등 어떤 애플리케이션이 유용할지 정의한 다음 최고 소프트웨어 설계 담당자를 선별해 해당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게 할 수도 있었다.(다시 엘리트 서클 방식을 택하는 경우)
 
또 특정한 애플리케이션 개발 과정을 여러 개의 간단한 과정으로 나눈 다음 톱코더닷컴(TopCoder.com)과 같은 공개 사이트를 찾아 소프트웨어 개발 담당자들에게 각 과정에 적합한 코드를 개발해 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혁신 센터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 일련의 개발 과정을 제3자인 개발자에 공개한 다음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을 정의하고 개발하도록 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혁신 공동체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 인튜이트와 같은 업체와 협력하여 모바일 뱅킹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컨소시엄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 이 모든 방식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각 방식은 아이폰 플랫폼에 매우 다른 영향을 끼친다.

 
애플이 엘리트 서클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어떤 애플리케이션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했다. 또 해당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에 가장 적합한 파트너를 찾아낼 수 있어야 했다. 애플은 선택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너무나 많아 독자적으로(또는 소규모의 협력 그룹만으로) 아이폰 고객이 유용하다고 생각하거나 흥미를 느낄만한 애플리케이션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애플은 수천 개의 아이디어가 꽃 피우게 내버려 둔 다음 시장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선택할지 결정하게 하는 쪽을 택했다. 즉 엘리트 서클, 컨소시엄, 혁신 센터 방식을 배제한 것이다. 결국 애플은 2008년 3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제3의 개발자로 공동체를 구성해 아이폰의 운영 시스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아이폰으로 사용자에게 직접 공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애플리케이션이 유료로 제공될 경우 개발자가 수익의 70%를 갖고 애플은 30%를 갖기로 했다.)
 
애플이 구글의 휴대전화용 운영 시스템인 안드로이드를 채택한 제품을 출시했다면 두 종류의 협력 전략을 선택했을 수 있다.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여서 아이폰보다 훨씬 많은 개발자가 안드로이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애플이 제3의 개발자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에 애플의 사내 전문가들이 직접 개발하거나 하드웨어 제조업체로 구성된 엘리트 서클의 도움을 받아 개발한 독점적인 하드웨어 기능을 추가하기로 결정했을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효과적인 전략 수행을 위해 여러 개의 협력 방식을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버 사업과 메인프레임 컴퓨터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혁신 공동체와 컨소시엄을 성공적으로 이용한 IBM이 대표적인 경우다. IBM의 전략은 하드웨어의 차별성과 서비스를 바탕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IBM은 이런 목표를 세운 뒤 운영시스템(OS)을 상품화하기 위해 리눅스를 받아들이고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노력했다.(IBM은 세계적인 컴퓨터 제조업체 가운데 초기에 이런 방식을 받아들인 업체 중 하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IBM은 하드웨어 차별화를 위해 최첨단 마이크로스프로세서 기술을 보유해야만 했다. 인텔과 같은 경쟁업체에 뒤지지 않기 위해 점점 규모를 키워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IBM은 반도체 기업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개발비를 분담했다.
 
이처럼 두 종류의 혁신 접근 방식을 동시에 사용한 결과 IBM은 경쟁이 치열하고 역동적인 시장에서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거둘 수 있었다. IBM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략의 핵심 요소는 해당 기업이 갖고 있는 독특한 자산과 역량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1개 이상의 협력 모드를 선택할 때 중역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독특한 자산 이나 역량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가.’ ‘가치를 높이기 위한 최고 방법은 무엇인가.’ 이윤을 얻기 위해 협력 역량 자체를 활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노센티브닷컴은 엘리 릴리가 내부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개발한 혁신 센터에서 발전해 분사된 조직이다. 알레시는 200명이 넘는 디자이너와의 관계가 갖는 가치를 잘 활용하고 있다. 알레시와는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에 이 디자이너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알레시는 다른 기업들이 알레시가 보유하고 있는 네트워크에 속하는 디자이너 가운데 각 기업이 갖고 있는 구체적인 요구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한다. 알레시는 그 결과로 탄생한 제품이 판매될 때마다 로열티를 받는다. 현재 알레시가 로열티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자사 전체 수익의 30%에 이른다.
 
새로운 경쟁우위의 원천
다른 전략 변수와 마찬가지로 혁신에 대한 협력적인 접근 방식에는 다양한 선택이 존재하며,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장단점이 발생한다. 본 논문에서 언급한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각 접근 방법은 올바른 상황에서 사용되기만 한다면 매우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특정한 협력 방식이 무조건 다른 방식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 개방형 네트워크가 언제나 폐쇄형 네트워크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며, 수평적 네트워크가 항상 수직적 네트워크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협력에 관한 효율적인 접근 방식을 개발하려면 우선 자사가 택하고 있는 전략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혁신을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인가.’ ‘(알레시의 경우처럼) 경계를 무너뜨리는 독특한 제품을 만들려는 것인가.’ ‘(IBM처럼)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인텔, 타이완 세미컨덕터와 같은) 덩치가 큰 라이벌에 뒤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의 애플처럼) 자사 제품의 애플리케이션을 늘리려고 하는가.’
 
우선 자사가 갖고 있는 어떤 독특한 역량을 협력 프로세스에 접목하려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 분야에서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기업은 새로 진입한 기업에 비해 엘리트 서클을 활용하기에 훨씬 유리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산업 분야에 속해 있더라도 기업의 역량이 다르고 전략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협력 네트워크 형태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따라서 혁신 업무를 담당하는 고위 경영진의 역할은 더 커졌으며, 더욱 전략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단순히 가장 우수한 인재 및 창의력이 뛰어난 인재를 고용하거나 혁신에 적합한 내부 환경을 구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협력 네트워크를 설계하고 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법을 잘 이해하는 인재만이 혁신 분야의 새로운 리더가 될 수 있다.
 
번역 김현정 jamkurogi@hotmail.com
 
게리 P. 피사노(gpisano@hbs.edu)는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경영학 교수이다. 로베르토 베르간티(roberto.verganti@polimi. it)는 이탈리아의 밀라노 공대에서 혁신 경영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2009년 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출판부에서 선보일 <디자인 중심의 혁신: 경쟁의 규칙을 바꾸는 방법(Changing the Rules of Competition by Radically Innovating What Things Mean)>의 저자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3호 Future Food Business 2019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