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열다섯 해째, 매년 연말이면 DBR 스태프들은 1년 중 가장 큰 행사를 준비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냅니다. 연사들과의 첫 접촉 과정에서부터 그해 포럼의 분위기를 가늠해 보는 것도 이 시기의 익숙한 풍경입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코리아’라는 브랜드에 대한 연사들의 호감과 관심이 커지고 있음이 체감할 때면 남다른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올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K-콘텐츠의 선전 덕분인지 한국 방문을 앞두고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연사가 유독 많았습니다. K-뷰티 산업을 연구한 레베카 카프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꼭 사가야 할 쇼핑 품목들이 있다”며 강연 후 일정에 대해서도 설렘을 전했습니다.
무대 밖 설렘과 달리 무대 위에서 다뤄진 의제들은 여느 해보다 무겁고 본질적인 질문을 향했습니다. 올해 포럼을 관통하는 화두를 한 단어로 정리하면 ‘wild(거친, 통제 불가능한)’였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가속화되고 있지만 동시에 지정학적 질서는 거칠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두 흐름이 맞물리며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고민의 깊이 역시 한층 깊어지고 있습니다.
연사들이 공통으로 강조한 주제는 급진적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조직의 태도였습니다. 마틴 리브스 BCG헨더슨연구소 소장은 효율성만 관리하는 전통적 전략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고 진단합니다. 그는 미래를 상상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회복탄력성을 조직의 핵심 역량으로 내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술 영역에서도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인공지능(AI)은 이제 선택이 아닌 조직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상수입니다. 톰 데이븐포트 뱁슨대 교수는 AI 기술의 발전 속도와 조직의 채택 속도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좁히는지가 기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 지적하며 업무 흐름 전반을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올인(All In)’ 전략을 주문했습니다. 아울러 생성형 AI 프로젝트의 95%가 기업에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으며 기술을 의미 있게 작동시키는 리더십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변화에 대한 대응 전략을 레베카 카프 교수는 더욱 정교하게 짚어냈습니다. 그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기술 채택 주기와 폭발적인 R&D 투자로 AI 확산에 따른 ‘모방 비용’이 크게 낮아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에 선발 주자의 공식을 빠르게 학습하되 최신 기술을 도약의 지렛대로 삼아 선두를 추월하는 역동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초미의 관심사인 지정학적 전략도 깊이 있게 논의됐습니다. 조지 프리드먼 지오폴리티컬퓨처스 회장은 현재를 지난 80여 년간 이어져 온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미·중 갈등으로 불확실성은 커졌지만 동시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위기에 함몰되기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선택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그의 조언은 기업 경영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올해 포럼의 화두, ‘wild’는 단순히 무질서나 혼란이 아니라 ‘예측과 통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란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정교한 예측이 무력해진 시대, 전략의 목표는 ‘더 정교한 예측’이 아니라 ‘판단 기준의 정립’이 돼야 합니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하기보다 그 안에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지금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일 것입니다.
포럼 현장에서 마주한 연사들의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불확실성은 제거해야 할 방해물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을 위해 올라타야 할 파도라는 사실입니다. 첫눈과 함께 마무리돼 더욱 특별했던 포럼 현장에서의 제언들이 2026년이라는 새로운 바다를 향해 닻을 올리는 데 든든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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