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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과 ‘폴리코노미 리스크’

‘미국 우선주의’의 불확실성 대비하라

박상현,정리=김윤진 | 400호 (2024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라는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로 인한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 확대가 글로벌 경제의 큰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공교롭게도 AI 사이클로 상징되는 기술혁신 동력의 약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미국 경기침체 리스크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미 대선 불확실성의 확대는 금융시장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해리스 부통령의 공약만 보면 바이드노믹스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정책 전환의 리스크가 크지 않다. 하지만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대변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 2기 공약은 정책 전환 리스크를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교역, 투자 및 자본시장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대미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진 점을 고려할 때 미 대선의 향방은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폴리코노미 리스크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미 대선, 다시 안갯속으로

미국 대선 구도가 바이든 대통령 후보 사퇴로 짙은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한때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 사태로 트럼프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주식시장에서는 트럼프트레이드1 , 채권시장에서는 트럼프플레이션2 우려로 국채 금리가 즉각 급등했다. 미 대선 향방에 미국 금융시장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해리스 부통령이 등장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세론은 한풀 꺾인 모습이다. 오히려 각종 여론조사에 해리스 부통령이 앞서고 있다는 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당선 확률에서도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역전하는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두 달여 남은 미 대선이 예측 불허의 초접전 양상으로 접어든 셈이다. 해리스 부통령의 등장과 예상 밖 경쟁력은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돌발 변수로 대선 판도를 흔들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의 이변이 점쳐지는 분위기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즉 트럼프 집권 2기 시대 개막도 여전히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미국 대통령 선거 특성상 전국 단위의 지지율이 높다고 당선을 확신하기는 어렵고 승부는 결국 스윙 스테이트(경합주)3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주요 스윙 스테이트에서 미세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앞서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여론 조사기관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스윙 스테이트를 제외한 대의원 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고 있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리한 입장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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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두려워할까

2016년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당시 글로벌 주식시장은 일시적으로 패닉상태에 빠진 바 있다. 선거 당일 국내 주가가 급락하고 채권시장에선 금리발작(=금리 급등) 증상이 나타났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및 관세 공약이 재정수지 악화와 물가 압력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그보다 금융시장이 단기 혼란에 빠졌던 이유는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을 금융시장이 전혀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트럼프 집권 2기를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어 지난 16년과 같은 금융시장 혼란이 발생할 여지는 적다. 하지만 그래도 금융시장은 물론 전 세계는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에 두려움 혹은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정치가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소위 폴리코노미4 리스크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보다 더욱 강해진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무역 및 산업 정책에서는 대중국 관세 60% 인상으로 상징되는 미국 우선주의를 통해 미국 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외교 및 안보 면에서는 철저한 현실주의와 고립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동맹국이라도 방위 비용 분담을 통해 충분한 대가를 미국에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대만이 미국 군사적 방위로 반도체에서 큰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에 방위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NATO 등 국제기구 탈퇴를 통해 국제질서에 대한 개입주의에서 현실주의로 안보 철학을 변경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지정학적 사태 등이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공산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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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미-중 갈등도 더욱 격화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집권 1기 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역협정을 통해 갈등 관계를 봉합하는 등 대중 관계에 있어 강온전략을 병행한 바 있다. 그러나 집권 2기 들어 공약대로 대중 관세를 추가 인상할 경우 미-중 간 갈등이 극단적 상황으로 흘러갈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경 노선도 문제지만 중국이 미국과의 타협보다는 힘의 대결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문제다.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한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 대미 강경 기조가 애국주의 고취를 통해 안정적 지지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될 여지가 있다. 대만 문제에서도 중국이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강력한 대만 통합 의지를 드러낼 수도 있다. 또한 산업적으로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더욱 강화될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5 전략 및 첨단산업 기술 규제에 맞서 중국은 전기차, 이차전지 및 반도체를 포함한 AI 산업을 육성하는 고품질 발전 전략을 꾸준히 추진 중이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예상되는 미국의 대중국 기술 규제 압박에 대응할 준비 체제를 상당 부분 구축한 셈이다.

이처럼 트럼프 집권 2기는 집권 1기 때보다 미국의 중국과의 갈등은 물론 동맹국과의 마찰이 심화될 수 있어 글로벌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여지가 크다. 트럼프 집권 1기 초기 일부 정책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와 주식시장은 4차 산업혁명 붐에 힘입어 호황을 유지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열기가 식고 2018년 미-중 무역갈등이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경제와 주식시장도 큰 고통을 받은 바 있다.

문제는 현 글로벌 경제가 트럼프 집권 2기 MAGA 정책 충격을 흡수할 체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미국 경제의 경기침체 우려도 다시 증폭되기 시작했다. 미국 경제와 주식시장을 지탱하던 AI 등 기술혁신에 대한 과열론이 대두되면서 성장 동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경제와 산업 패러다임이 AI 등 디지털로 대변되는 기술혁신 사이클 중심으로 이미 옮겨온 만큼 2000년 초반 IT 버블 붕괴와 같은 사태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신기술 제품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일시적 수요가 둔화되는 캐즘(Chasm)6 국면을 거치게 되는데 현시점이 AI 캐즘 국면일 수 있다. 즉 AI 사이클 성장세가 다소 주춤해지는 국면에서 자칫 트럼프 집권 2기 정책 불확실성이 미국 기술혁신 동력을 크게 약화시켜 미국 경제를 침체로 진입시킬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물가 리스크도 간과할 수 없다. 한층 강화된 트럼프 전 대통령의 MAGA 공약에는 물가를 자극할 만한 요인이 내재돼 있다. 9월 미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서게 되면 고물가가 진정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집권 2기 출범은 물가 불안 심리를 재자극할 위험이 크다. 관세 인상 및 불법 이민자 규제 강화는 수입 물가 및 임금상승률 상승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개입도 서슴지 않을 태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 연준의 금리 결정과 관련해 대통령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할 위험마저 내비쳤다. 앞서 지적한 폴리코노미 리스크의 증폭은 물가, 금리 흐름에 큰 변동성을 유발하면서 침체 리스크를 가능성을 키울 것이다.

트럼프 2기 출범은 미국 밖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 미-중 갈등 격화는 중국 경기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다. 올해 중국 경제는 각종 내수 및 부동산시장 부양정책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갈등이 격화될 경우 심각한 경기 둔화 리스크에 직면하면서 중국 경제가 사실상 침체 국면에 빠질 위험도 있다. 위상이 약화됐지만 중국은 여전히 글로벌 제조공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중국 경제 불안은 글로벌 경제의 악재이자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차이나 리스크로 이미 큰 고통을 받고 있는 한국 경제에 또 다른 차이나 리스크가 전이될 수 있다는 의미다.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미국의 대중 추가 관세 인상 및 여타 국가에 대한 보편적 관세 인상이 글로벌 경제의 극단적 자국우선주의를 강화시켜 글로벌 교역 및 제조업 경기의 심각한 침체를 불러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트럼프 집권 2기, 글로벌 외환시장의 변동성도 높일 듯

글로벌 외환시장도 미 대선 결과를 경계하는 눈치다.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경우 기존 바이든 정책의 기조를 계승할 것으로 보여 정책 전환 리스크보다 미 연준의 금리인하 사이클에 기댄 달러화 흐름, 즉 달러 약세가 나타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시 외환시장 셈법은 복잡해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 공약만 보면 미국 국채금리는 상승할 개연성이 크고 달러에도 강세 압력이 작용할 여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강력한 보호주의 및 산업 정책 강화는 달러 강세 재료다. 2018년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달러화도 강세를 보였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공약과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약달러를 선호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강달러로 미국 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밴스 의원 역시 달러 약세의 필요성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밴스 의원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미국 제조업체들에는 세금과 같다고 밝힌 바 있으며 달러 강세가 미국 산업 공동화의 원인이라는 시각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집권 2기 출범 시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역시 달러 가치 절하, 즉 달러 약세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 이후 미 연준이 달러를 더 찍어내도록 설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대선 공약에는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았지만 ‘제2의 플라자합의7 ’를 추진해 달러 약세를 유도할 개연성도 있다.

이러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달러 약세 유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이자 명분은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과의 경상수지 추이다. 2018년 미-중 갈등 이후 미국의 대중국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대유로, 대일본 및 대한국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큰 폭으로 증가했다. 미국 입장에서 경상수지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는 이들 국가에 대해 강력한 통상 압박을 가할 수 있고 그중에는 통화가치 절상 요구도 포함될 공산이 높다.

최근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고 엔화 가치의 추가 절상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일본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기조 강화가 엔화 가치 급등의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미 대선을 앞두고 일본 정부의 선제적 대응도 엔화 강세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일본 정부가 트럼프 집권 2기 출범 시 과도하게 저평가돼 있던 엔화 가치가 주요 통상 이슈로 불거질 수 있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이다.

다소 과장된 시나리오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여타 주요국 통화가치 절상 압박이 환율전쟁으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 그 시발점은 미-중 갈등이 아닐까 싶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관세와 함께 위안화 절상을 요구한다면 중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중국 정부가 오히려 이런 통상 압박에 맞서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매각할 경우 국채금리가 요동치는 동시에 외환시장도 변동성 확대라는 악재를 맞이할 것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트럼프 집권 2기에 발생할 수 있는 외환시장 시나리오 중에 하나임은 분명하다.


어느 후보가 당선돼야 AI 등 기술혁신 사이클에 유리할까

결론적으로 섣부르게 판단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은 주로 방산, 전통적 에너지 업종, 태양광, 철강금속 등 산업재 업종을 트럼프 수혜 업종으로 간주하고 기술주는 피해 업종으로 바라본다. 트럼프 측 공약에서는 군사력 강화, 화석에너지 지지, 인프라 투자 확대가 눈에 띈다. 바이드노믹스 폐기 시 청정에너지 및 반도체 공급망 구축 불확실성 등으로 이차전지, 반도체 및 자동차 업종이 피해를 볼 여지가 있다. 해리스 부통령 당선 시에는 바이든 정책 기조가 지속된다는 측면에서 기술혁신 사이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일반적인 시각과 다른 상황이 펼쳐질 여지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대세론 부각 당시 비트코인 가격이 트럼프 수혜로 각광을 받았다. 집권 1기 당시와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우호적 시각을 보였기 때문이다. 트럼프 측은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아메리카 퍼스트’도 외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고율관세와 더불어 트럼프 측은 강력한 대중국 AI 산업 규제도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측이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및 반도체지원법 폐기 혹은 지원금 축소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역설적으로 첨단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여지는 상대적으로 크다.

또 하나 눈여겨볼 현상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텃밭이자 자금줄 역할을 하던 실리콘밸리의 민주당 지지 열기가 이전만 못하다고 알려진 점이다. 그 배경에는 ‘규제’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AI 규정 방안이 담긴 행정명령을 통해 AI 안전 실험 결과와 관련 기술 정보 등을 미국 정부에 보고하도록 규제했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도 강화됐다. 구글과 애플에 대한 반독점 행위에 대해 이전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주목할 것은 AI 행정명령을 주도한 인물이 해리스 부통령이라는 점이다.

기술혁신 사이클이 어떤 후보 당선 시 유불리한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힘들다. 다만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미국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 의지가 분명하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팬데믹 이후 미국 경제의 글로벌 패권 주도권이 한층 강화되고 글로벌 자금의 미국 유입이 확대된 배경에는 기술혁신 사이클이 있었다. 미국이 중국을 점점 더 견제하는 이유도 기술혁신 사이클에서 확실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승자독식 게임인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 중심주의를 고착화시키기 위한 정책은 트럼프 및 해리스 정권의 공통 현안이다. 결국 AI 등 첨단산업 부문에 있어 양 후보 정책은 큰 차별성은 없고 미국 경제와 산업은 첨단산업, 즉 기술혁신 사이클 중심으로 미 대선 이후에도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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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불확실성 리스크에 노출된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

중국 경제 둔화에 따른 차이나 리스크로 큰 타격을 입고 있는 한국 경제는 자칫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아메리카 리스크에도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대중국 견제가 한층 강화된 악영향이 일부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긴 했지만 한편으로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특히 반도체 공급망 구축 시도는 한국 경제에 낙수효과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현상이 대미 수출 급증이다. 24년 1~6월 한국의 대미국 수출액은 643억 달러로 대중국 수출액 634억 달러를 넘어섰다. 2003년 대중국 수출액이 대미국 수출액을 앞서기 시작한 이후 22년 만에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대미 수출 호조 배경에는 반도체 및 자동차 수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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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도 대미 노출도를 크게 높였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약 2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고 이 중 한국이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 현황을 보더라도 대미 직접투자 쏠림은 더욱 뚜렷하게 확인된다. 2023년 기준 한국 기업의 해외직접투자에서 미국 비중이 43.7%로 1988년 이후 3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중국 투자가 19억 달러로 2.9%를 차지한 것과 대비된다. 기업들의 대미 투자 증가는 국내 대미 수출로도 이어진다. 대미 투자가 10% 늘면 대미 수출은 약 0.2%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더욱이 한국 기업들의 대미 진출이 미국이 주도하는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혹은 보호주의를 피할 수 있고 중장기적 산업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서학 개미로 대변되는 개인투자자들의 대미 투자 확대도 팬데믹 이후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 미국 주가 급락 여파로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은 지난 7월 말 기준 약 770억 달러에 이른다. 최근 주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은 연초 대비 13.4%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보유 기업들은 엔비디아, 테슬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이 대부분이다. 팬데믹 이후 한국 경제의 대미국 산업 및 금융시장 의존도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중국 경제의 기침이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이제는 미국 경제의 기침이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에 더 큰 후폭풍을 일으키는 구조로 변모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하는 미 대선 결과에 대해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이 당연히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해리스 부통령 당선 시에는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바이드노믹스 승계라는 점에서 불확실성 리스크가 제한적이지만 트럼프 집권 2기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복잡한 퍼즐 맞추기 게임이 시작될 것이다. 일단은 긍정적 영향보다 부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바이드노믹스의 폐기는 미국에 투자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는 큰 부담이자 악재다. 정책 폐기로 약속된 지원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축소될 경우 투자 계획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경제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가장 큰 불확실성은 대미 수출이다. 국내 수출 사이클 회복에 견인차 역할을 한 대미 수출 모멘텀은 관세 인상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약화될 소지가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전망8 에 따르면 미국이 FTA 상대국인 한국에도 보편적 관세 10%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은 약 152억 달러 감소한다. 2023년 대미국 수출액이 1160억 달러였음을 고려하면 약 13%가 감소하는 셈이다.

이와 더불어 중국산 제품에 대한 60%의 추가 관세 조치에 따른 가격 폭등도 국내 수출 및 경제에 악영향을 줄 여지가 있다. 다소 비관적 전망이지만 스위스 투자은행인 UBS그룹은 모든 중국산 제품에 대해 60%의 신규 관세가 부과되면 중국의 연간 성장률 수준이 반토막 날 것으로 내다봤다. 즉 2025년 중국 GDP 성장률이 2.5% 수준 이하로 추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물론 이는 트럼프 재집권 이후 예상되는 시나리오 중에서도 극단적 사례이긴 하다. 하지만 만약 현실화된다면 중국 경제는 심각한 침체 내지 금융위기에 빠지게 된다. 가뜩이나 중국 경제가 부채 리스크로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관세 폭탄 시나리오는 중국 경제의 침체를 부채질할 여지가 크다. 그리고 트럼프 집권 2기 정책 불확실성으로 중국 경제의 침체 혹은 금융위기가 현실화된다면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는 또 다른 위기에 노출될 것이다.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의 대중국 의존도가 이전에 비해 크게 낮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 위기는 곧바로 한국 위기로 전이될 공산이 높다.

트럼프 집권 2기 정책 리스크가 직간접적으로 한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으로는 취약한 내수 경기를 들 수 있다. 수출 경기가 반도체, 자동차 및 조선 3대 업종을 중심으로 그나마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수경기는 갈수록 회복 모멘텀이 둔화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집권 2기발 정책 리스크가 가시화된다면 내수 부진 속에 수출 경기마저 둔화되면서 국내 경기가 예상치 못한 부진의 늪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지난 트럼프 집권 1기 당시에도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경기가 맥을 못 추고 미국과 한국 증시 간 차별화가 심화된 바 있다.

환율 변동성 확대도 예상된다. 미 연준의 금리인하 사이클 본격화와 함께 트럼프 재집권으로 통상 압박이 강화될 경우 킹달러 현상이 급격히 약화, 즉 달러-원 환율이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에 대한 한국, 유로 및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큰 폭으로 확대됐기 때문에 트럼프 2기 정부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원화, 유로 및 엔화의 급격한 절상 요구 내지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


미 대선 등 폴리코노미 리스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시점

미국 경제가 기술혁신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미국 경제만 좋고 여타 비미국 경제는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예외주의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 대선 불확실성이라는 폴리코노미 리스크는 글로벌 경제 중 미국만 선전하는 예외주의 현상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

폴리코노미 부작용은 잇따라 전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에 큰 악영향을 주고 있다. 8월 초, 엔화 초강세발 유동성 충격이 일본 증시의 대폭락 등 글로벌 증시 폭락 사태를 가져왔다. 그런데 이 엔화 초강세를 촉발한 배경에도 폴리코노미가 있었다. 일본은행이 조기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원인 중 하나가 일본 정부의 압박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회의가 열리기 이전부터 일본 정부는 엔화 강세를 위해 일본은행이 적극 나서 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슈퍼 엔저 후유증으로 초래된 현 기시다 총리의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려면 엔화 강세 전환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일본은행은 전 세계 중앙은행 중 유동성을 대규모로 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중앙은행이다. 일본은행의 자산 규모가 GDP 대비 약 130%에 이를 정도로 일본은행은 대규모의 양적완화 정책 기조를 유지 중이다. 이처럼 글로벌 유동성의 주된 공급원인 일본이 정치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 ‘피크 차이나 혹은 차이나 런’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리스크가 글로벌 자금의 대이동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중국 리스크가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 취약성에서 기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의 본질은 결국 시진핑 체제 리스크, 즉 정치 리스크였다. 중국 체제 특성상 폴리코노미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으며 아직도 중국의 정치 리스크는 중국 증시와 경기의 회복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경제 체력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면서 글로벌 경제는 유동성의 힘과 기술혁신 사이클에 기대어 간신히 회복세를 유지 중이다. 따라서 유동성 흐름과 기술혁신 사이클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는 폴리코노미 리스크에 경제와 금융시장은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집권 2기 불확실성은 집권 1기의 경험에서 비롯되고 있다. 물론 당선 자체가 불확실해진 마당에 트럼프 리스크를 너무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철저히 비즈니스맨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향을 볼 때 공약이 100% 이행될지도 불투명하다. 공약 이행이 미국 경제에 입힐 심각한 내상을 트럼프 전 대통령도 간과하긴 힘들다는 현실론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집권 2기 현실화 여부를 떠나 한국 기업들은 미 대선이라는 폴리코노미 리스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 정책 기조에는 공화당, 민주당을 불문하고 미국 우선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경제의 예외주의를 지속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특히 기술패권의 글로벌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하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 대선 결과로 어떤 정부가 탄생하든 미국 내 첨단산업 육성 정책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싫든 좋든 당분간 미국 기술패권주의에 한국 기업 및 산업이 편승할 수 있는 전략과 방안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폴리코노미 리스크에 좌고우면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경쟁력과 체력을 강화해야 하고 여기에 기업들의 선제적 투자도 필요하다. 당연히 정부의 강력한 중장기 산업정책도 뒷받침돼야 한다. 대선 결과에 따른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 급변의 리스크에 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은 어떤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까. 이미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글로벌 신공급망 정책에 편승한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와 수출의존도는 중국 경제 부상 이후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대선 결과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대응 전략이 수정돼야 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의 ‘원칙’을 지키는 전략이다.

1) 미국 주도 공급망 재편에 최대한 참여해야

우선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최대한 참여하는 기존 전략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으로 바이드노믹스 정책이 일부 폐기될 수도 있겠지만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전략의 큰 틀은 유지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미국 내 현지 투자 진출 혹은 캐나다 및 멕시코 등 미국 니어쇼어링(near-shoring) 국가에 투자를 확대하는 전략은 지속돼야 한다.

2) 기술혁신 사이클의 낙수 효과 놓치지 말아야

둘째, 기술혁신 사이클에서 국내 기업이 낙수효과를 최대한 얻을 수 있는 중장기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AI 등을 중심으로 한 이번 기술혁신 사이클의 주도권은 사실상 미국과 중국이 나눠 가지고 있다. 한국이 IT 분야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기술력이나 자금력에 한계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 대선 이후 미국과 중국 간 기술혁신 사이클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가열될 것이다. 따라서 더욱 적극적인 국내 기업의 생존전략이 필요하다. 중국과의 협력이 미국 규제로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미국 혁신 기업과의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혹은 인수합병을 적극 검토해서라도 미국 기술혁신 사이클에서 국내 기업들이 과실을 챙겨야 한다. 대만 TSMC가 미국 엔비디아와의 협력관계 강화를 통해 국내 반도체 기업보다 이번 기술혁신 사이클에서 큰 수혜를 입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따른 피해 최소화해야

셋째, 자국우선주의 정책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팬데믹 이후 한국과 미국 간 교역 규모가 크게 확대되는 과정에서 미국 입장에서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 규모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는 공화당 및 민주당 어느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뜨거운 통상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통상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할 경우에는 단기간에 중요한 통상 마찰이 빚어지고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 규제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따라서 기업과 정부가 함께 한미 간 제기될 수 있는 통상 이슈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선제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4) 유동성 이슈 및 외환시장 변동성에 대비해야

마지막으로 유동성 이슈 및 외환시장 변동성에 대비할 필요성도 있다. 미 대선 불확실성, 미 연준의 금리정책 기조 전환, 그리고 일부 제기되고 있는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글로벌 유동성 흐름이 크게 변화되면서 외환시장 및 원자재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난 8월 초 소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통칭되는 유동성 충격이 주식시장은 물론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런 유동성 충격은 향후에도 빈발할 여지가 있다. 미 대선 및 미 연준의 통화정책 변화가 예상치 못한 유동성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트럼프 후보 당선 시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는 물론 유동성 흐름이 급변할 여지가 크다. 기업들 역시 환관리 등 기업 차원의 유동성 확보와 현금 보유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 대선이 국내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미 대선을 진짜 기회로 삼으려면 다가오는 대선 결과로 촉발될 수 있는 불확실성 리스크를 피해 가는 것이 우선이다. 원칙을 지키면서 단기적 및 중장기 차원에서 미국 대선 결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 박상현shpark@imfnsec.com

    iM증권 전문위원

    박상현 전문위원은 성균관대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30여 년간 연구원 및 이코노미스트로서 리서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을 시작으로 대우경제연구소, 대우 루마니아은행 및 대우증권 투자분석부, 리딩투자증권을 거쳐 현재 iM증권 매크로 담당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다수의 경제 관련 포럼 위원과 경제 세미나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경제 흐름을 꿰뚫어보는 금리의 미래』 『테크노믹스 시대의 부의 지도』(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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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김윤진truth311@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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