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회사 일이 재미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상 시스템이 일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보상을 받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보상은 직원들의 내적 동기를 떨어뜨리며, 보상을 받지 못한 직원들의 불만을 키워 오히려 성과를 떨어뜨린다. 직원들이 아예 내적 동기가 없거나 과제를 단기적으로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때는 보상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일에 대한 내적 동기를 높이는 유일한 길은 보상이 아니라 구성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농구장에 들어설 때마다 경기의 결과가 내 미래에 끼칠 영향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돈과 명성에 관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농구 게임은 내게 비즈니스로 변해가고 있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농구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마다 농구가 내게 주던 마법과 같은 즐거움은 사라지고 있었다.”
미국 최고의 프로 농구 선수였던 빌 러셀이 은퇴 후에 한 이야기이다. 빌 러셀은 NBA(미국 프로농구)에서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진 흑인 농구 선수이다. 1956년부터 1969년까지 13년간 보스턴 셀틱스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무려 11번의 NBA 우승을 차지했다. 딱 2번만 우승을 놓친 셈이다. 하지만 그가 프로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농구를 즐기지 못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농구가 주던 마법 같은 즐거움은 도대체 어디로 갔던 것일까? 왜 그는 농구가 즐겁지 않았던 것일까? 농구가 주는 기쁨으로 농구를 잘하게 됐고 프로선수가 됐는데 말이다.
보상 때문에 일이 하기 싫어진다?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스탠퍼드대 심리학과의 마크 래퍼 교수가 시행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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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살펴보도록 하자. 마크 래퍼 교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을 실험 대상자로 모집한 후 아이들을 3개 조건 중 한 조건에 무작위로 배정했다. 첫 번째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에게는 “여기 있는 매직펜으로 그림을 그리면 상을 줄게요”라고 말했고, 그림을 그린 후에는 약속대로 상을 줬다. 두 번째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에게는 “여기 있는 매직펜으로 그림을 그리면 돼요”라고 말했고, 그림을 다 그린 후에 기대치 않게 상을 줬다. 세 번째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에게는 두 번째 조건처럼 “여기 있는 매직펜으로 그림을 그리면 돼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어떤 상도 주지 않았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정리하면 첫 번째 조건에서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보상에 대해 알려줬고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기대한 보상을 줬다. 두 번째 조건에서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보상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린 후에 기대치 않게 보상을 줬다. 세 번째 조건에서는 그림을 그리기 전 보상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고 그림을 그린 후에도 보상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실험이 마무리되는 듯싶었지만 진짜 실험은 2주 후 몰래 진행됐다. 2주 후에 연구자들은 2주 전 아이들이 사용했던 매직펜과 종이를 교실에 배치한 후 어떤 조건에 있었던 아이들이 자유시간에 그림을 더 많이 그리는지 관찰했다. 아이들의 그림 그리기에 대한 내적 동기를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자유시간에 자기들이 원하는 걸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자유시간에 매직펜과 종이를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 즉 그림 그리기에 대한 내적 동기가 높음을 의미한다.
자, 그럼 다시 연구 질문으로 돌아가서 어떤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이 매직펜과 종이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썼을까?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첫 번째 조건에 배정됐던 아이들이 자유시간에 그림 그리기를 가장 많이 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림 그리기에 대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림 1) 이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에 가장 적은 시간을 썼다. 첫 번째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자유시간의 8.59%를 그림 그리기에 썼지만 두 번째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은 16.73%, 세 번째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은 18.09%의 시간을 썼다. 두 배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왜 아이들은 보상받은 일을 가장 싫어했을까? ‘과잉정당화 효과(overjustification effect)’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보상이 주어지면 보상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추론한다. 즉, 그림 그리기 전에 보상에 대한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보상을 얻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중이야’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림 그리기라는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림 그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누가 재미없는 ‘일’을 자유시간에 하겠는가? 그림 그리기가 이미 보상을 위한 일로 치환된 상태였기 때문에 자유시간에 그림 그리기를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 실험의 핵심은 보상을 통해 아이들의 내적 동기가 오히려 낮아졌다는 점이다. 보상 전에는 즐거운 일로, 보상 후에는 하기 싫은 일로 그림 그리기를 생각했다는 것이다.보상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은 어땠을까?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그리기’를 일로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좋아서 하던 그림 그리기를 했을 뿐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은 그림 그리기에 쓴 시간 측면에서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었다. 세 번째 조건과 달리 두 번째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보상이 주어졌다. 그래서 두 번째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 활동에 시간을 덜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과잉정당화 효과의 정의를 되새겨보면 쉽게 풀릴 수 있다.
과잉정당화 효과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보상 때문에 그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한 활동을 하기 전에 그 활동에 대한 보상이 있다는 걸 사전에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보상 때문에 그 활동을 하고 있다고 지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조건에 배정된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 보상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보상 때문에 그림 그리기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림 그리기를 ‘일’로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전히 본인이 좋아서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2주 후에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스스럼없이 그림 그리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빌 러셀은 농구를 사랑했고 즐겼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밌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프로선수로 데뷔하기 전까지였다. 프로선수가 된 이후로 그는 농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농구에 대한 보상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돈이다. 돈을 받으면서 러셀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서 농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농구가 재미없고 싫었다.
사람들은 하는 일에 보상을 바란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불만과 불평도 쌓이게 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보상과 처벌이라는 시스템을 기초로 사회 전체를 운영한다. 기업도 보상 시스템을 운영한다. 기업을 운영하는 CEO도 인센티브를 통해서 직원들의 동기를 끌어올리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상을 동기부여라고 부른다.
CEO 입장에서 보상으로 동기를 올릴 수만 있다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직원 입장에서도 열심히 해서 보상받으면 좋지, 무슨 문제가 있냐고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보상이 주어지면 단기적으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보상이 주어지면 사람들이 그 일을 싫어하게 된다는 데 있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다. 보상과 처벌이라는 시스템으로 사회 전반을 운영하다 보니 대부분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싫어하게 된다. 그것도 평생을 말이다. 죽을 때까지 싫어하는 일을 하게 되는 꼴이다. 대학 합격이라는 보상을 위해서 싫어하는 공부를 18년 동안 어쩔 수 없이 하고, 대학교에서는 학점과 취업이라는 보상을 위해서 4년 동안 공부를 억지로 하게 된다. 취업 후에도 보상은 계속된다. 성과급도 있고, 연봉 인상도 있고, 승진도 있다. 보상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에 삶은 힘들어진다. 하루도 즐겁게 일하기 어렵다. 출근하면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점심시간 후에는 퇴근 시간만 기다린다. 주중에는 주말을 기다린다. 금요일은 행복한 날이지만 일요일 저녁이 되면 부담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공부하는 것이 괴로운 일이 아닐 수도 있고, 직장에서 하는 일이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즐겁고 재밌는 일이 될 수 있다. 보상이 없어도,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보상이 없을 때 일의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보상이 주어지면 즐거움은 사라진다. 하기 싫은 일이 된다. 보상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싫어하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게 된다. 그래서 인생이 힘들고 고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내적 동기가 낮아지면 장기적으로 성과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돈, 보상, 인센티브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인데 어떻게 좋은 성과가 날 수 있겠는가? 보상의 효과는 단기적일 수밖에 없다.
보상 시스템의 모순보상에 대한 기념비적인 논문으로 로체스터대 심리학과의 애드워드 데시 교수가 발표한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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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다. 그는 보상의 효과에 관한 128개의 논문을 분석한 후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실체가 있는 보상은 어떤 형태이든 내적 동기를 낮춘다.”
내적 동기를 낮춘다는 의미는 보상이 주어지는 일을 결국 싫어하게 된다는 뜻이다. 보상의 효과는 싫어하는 일로 마무리되지 않고 결국 성과와 성취동기를 낮춘다. 데시 교수에 의하면 우리는 세 가지 경우에 보상을 준다. 첫째, 열심히 할 때, 둘째,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때, 셋째, 훌륭한 성과를 보일 때이다. 이 모든 경우에 보상은 내적 동기를 떨어트린다는 것이 디시 교수의 최종 결론이다.
그런데 보상을 받은 사람만 내적 동기가 떨어지는 게 아니다.
보상의 특성상 대부분 직원은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럼 이 직원들의 내적 동기는 어떻게 될까? 하던 일을 계속 열심히 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내적 동기가 급격히 떨어진다.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인의 성과와 보상을 받은 직원의 성과를 비교해 보며) 다음 해에도 보상을 받기 어렵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웬만큼 잘해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의 실력과 능력을 잘 안다. 그래서 특출난 실력을 갖춘 직원이 아니면 시간이 지날수록 보상금 받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 그럼 어떤 자세를 취할까? 최소한의 일만 하게 된다. 해고되지 않을 정도의 일만 하게 된다. 요즘 이런 태도를 ‘조용한 사직’이라고 표현한다. 직장을 떠나지는 않지만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일만 하는 태도를 뜻한다. 어차피 보상금도 받지 못할 텐데 열심히 일할 이유와 가치를 전혀 찾지 못한다. 이런 직원들의 태도는 결국 회사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보상금의 원래 목표는 모든 직원의 동기를 높이는 것이지만 보상금은 결국 모든 직원의 동기를 낮춰 버리게 된다.
보상은 직원들의 내적 동기만 낮추는 것이 아니다. 보상금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회사에 불만을 품게 된다. 보상금 시스템이 없었을 때도 회사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직원은 회사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불만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보상금 제도가 생긴 후에 훨씬 더 많은 불만을 품게 된다. 보상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직원이 보상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 대부분 직원이 회사에 불만을 더 품게 되는 셈이다.
성과가 좋지 않은 직원들은 회사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을 거라고 판단한다. 사실과 상관없이 직원들은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직원들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고 회사가 생각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실제로 회사가 그렇게 생각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회사 차원에서는 단순히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기를 바랄 뿐이다. 보상제도 역시 그런 목표의 하나로 실행했던 것이다. 결국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불만은 직원들의 착각이고 오해일 수 있다. 그런 오해와 착각이 보상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성과가 좋지 않은 직원들은 보상금 지급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한 기준과 성과로 보상금을 받을 직원을 선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준이 잘못됐고 다른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업무의 다양성과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보상금 지급 시스템은 공평하지 않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지표가 개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보상 시스템에 대한 끝도 없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모든 불만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불만의 기초는 보상금이 존재했기 때문이고, 누군가는 보상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보상 시스템을 이용해서 얻을 것이 별로 없다. 직원 처지에서도 그렇고, 회사 차원에서도 그렇다. 직원은 하는 일을 싫어하게 되고, 일에 대한 동기도 떨어지며, 결국에는 성과도 하락하게 된다. 회사가 감당해야 할 손해도 막심하다. 수많은 보상금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매출과 이익이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매출과 이익의 증가는 단기적으로만 일어날 뿐이다. 많은 재원을 쓰고 회사는 직원과 돈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더군다나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게 되는 상황을 만들 뿐이다.
물론 보상이나 인센티브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두 가지 경우가 그렇다. 첫째, 애초부터 일에 대한 내적 동기가 없을 때이다. 이 경우에는 보상을 지급함으로써 잃어버릴 게 별로 없다. 어차피 하기 싫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상을 줘서라도 일하게 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두 번째 경우는 급하게 끝내야 할 과제가 있을 때다. 현대사회에는 급하게 마쳐야 하는 과제가 많다. 내적 동기가 작동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회사에서 바쁘게 진행되는 과제가 이에 속한다. 특별히 이런 과제가 직원들이 싫어하는 과제라면 충분한 보상과 성과급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외적인 동기라 할지라도 말이다. 여기서도 한 가지 지켜져야 하는 조건은 그 일이 단기적으로 완전히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거나 연속적인 형태로 주어진다면 보상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보상보다 중요한 건 인간의 자율성결국 지켜야 하는 건 인간의 자율성이다. 보상이 내적 동기에 치명적인 이유는 인간의 자율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던 일조차도 보상을 주면 그 일을 싫어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자율성 훼손에 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보상은 조작이다. 돈으로 매수해서 그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이다. 보상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다. 아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유의지로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기부여가 아니고 조잡한 조작이다.
자유로운 인간이 보상으로 구속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먹고살아야 하는 인생의 현실이고 아름다움이라고 미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우리를 보상으로 스스로 힘들게 할 뿐이다. 회사를 포함한 우리의 현실은 자율성을 훼손하는 수많은 보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삶이 고되고 힘들다. 많은 사람이 보상을 통해 타인의 동기와 성과를 조작하려고 한다. 명분이 있어 보이고 동기부여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보상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모든 일에 보상을 제거할 수는 없다. 먹고살아야 하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에 대한 내적 동기를 올리는 건 보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적 동기를 치명적으로 낮춘다. 보상으로 외적인 동기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단기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일에 대한 내적 동기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직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직원들은 일에 대한 자율성을 느낄 때 일에 대한 의미와 즐거움을 찾게 되고 결국 좋은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