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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Biz

“앗, 뜨거워” 라면 시장 ‘건면 전쟁’ 후끈

문정훈 | 272호 (2019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풀무원은 2005년 기름에 튀기지 않고 열풍에 건조한 면으로 라면을 만들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농심이 ‘신라면 건면’을 내놓으면서 ‘건면 라면 시장’에 전선(戰線)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객이 건면 카테고리를 인식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면 전쟁’의 향방에 관심이 모아진다.


풀무원은 오랫동안 건면 제품에 공을 들여왔다. 원래 인스턴트 라면에 쓰는 면은 기름에 튀긴 면인데 풀무원은 기름에 튀기지 않고 열풍에 건조한 면으로 라면을 만들었다. 바로 ‘생면식감’이라는 브랜드다. 풀무원이 튀기지 않은 건면 라면 생면식감을 처음 출시한 것은 2005년이었지만 그전부터 풀무원은 냉장 생면 등 튀기지 않은 면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일본은 건면 라면 시장이 전체 라면 시장의 30%에 육박하지만 한국의 건면 라면 시장은 이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원래 인스턴트 라면은 튀긴 면을 쓴다. 면을 튀기지 않았다는 것은 열량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량이 높다고 다 맛있지는 않지만 맛있는 음식치고 열량이 낮은 음식은 찾기 힘들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의 소울 푸드(Soul Food)를 봐도 열량이 낮은 경우는 드물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 라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라면 소비자들 중에서 국물에 녹아 난 그 풍부한 열량의 맛을 거부하고 ‘나는 열량이 낮은 건강한 라면을 먹겠어!’라며 건면으로 넘어올 신규 고객이 얼마나 있을까. 과연 새로운 건면 제조 시설에 투자해서 수익을 뽑아낼 수 있을까? 기존에 판매하고 있는 튀긴 면 라면 제품을 자기잠식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들이 여러 라면 제조 업체로 하여금 건면 라면 시장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게 했다.

전통의 라면 강자 농심은 고심에 빠져 있었다. 농심은 원래 ‘치고 빠지는’ 식의 마케팅을 하지 않는 기업이다. 브랜드를 하나 만들면 되든 안 되든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 있는 기업이다. 유독 장수 브랜드 비중이 높은 농심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신라면’이다. 1986년 첫 출시 이후 1991년 대한민국 라면계를 평정하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농심의 간판 브랜드다. 그런데 국내 라면 시장 내 신라면의 시장점유율의 비중이 최근 십여 년간 꾸준히 떨어졌다.

특히 오뚜기 ‘진라면’의 부상과 2015년 이후 라면에서 다양한 취향을 추구하는 국내 라면 소비자들의 ‘탈충성’ 소비 행동 때문에 신라면의 브랜드 이미지는 노쇠해 갔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 농심은 최근 신제품을 대거 출시했다. 한 해에 신제품 라면을 한두 개 정도밖에 내지 않던 농심이 한 해에 예닐곱 개의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 신제품 출시 주기를 매우 짧게 가져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라면의 영광을 계속 가져가고 싶은 욕망도 여전했다. ‘전통의 1등 브랜드인 신라면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면서 다양한 신제품으로 시장을 장악한다’는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고 싶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업계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필자는 농심의 이 ‘딜레마’에 대해 언제나 단언하듯 이야기했다. 농심이 신라면에 대해 갖고 있는 오랜 집착을 버려야 진짜 신제품으로 진짜 신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신라면은 이제 너무 노쇠한 브랜드라 다시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신라면이 뒤에 ‘건면’을 달고 나왔다. 과연 잘한 일일까? 기름기를 쏙 뺀 신라면이라.

2011년 하얀 국물로 유명했던 ‘꼬꼬면’이 나왔을 때 각종 매체에서는 웰빙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에 의해 향후 라면 시장은 ‘빨간 국물 라면’과 ‘하얀 국물 라면’ 시장으로 나뉠 것이라 했다. 당시 필자가 서울대에서 맡고 있는 ‘농식품 브랜드 마케팅’ 수업시간에서도 ‘웰빙 트렌드’와 연계한 ‘라면 천하 적백(赤白) 이분론(二分論)’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학생들은 하얀 국물 라면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망측한 일은 생기지 않는다’였다. 소비자들이 왜 라면을 먹는지, 어떤 가치를 소구하는지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 하얀 국물 라면 시장이 생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필자의 견해에 다수의 학생은 ‘교수님은 왜 시장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핀잔을 줬다.

그럼에도 필자의 판단은 확고하다. 대한민국에 하얀 국물 라면이 설 곳은 없다. 그건 라면이 아니다. 작년 오뚜기의 쇠고기미역국 라면이 큰 인기였을 때도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확신했다. 호기심이 동해 한 번 곁눈질을 할 순 있어도 이 오랜 소울 푸드를 버릴 순 없다. 대한민국 사람의 소울 푸드는 본디 빨간 맛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번에 농심이 출시한 신라면 건면은 심상치 않다. 일단 먹어보면 대한민국 소울 푸드의 본질에 충실하다. 물론 빨간 국물이며 화끈하다. 높은 브랜드 인지도의 신라면의 가장 큰 문제는 ‘익숙하지만 흥미롭지는 않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제품에 흥미가 붙었다. 희한하게 신라면 뒤에 ‘건면’이 붙으니 노쇠한 이미지가 아니라 젊은 이미지가 피어오른다(이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포장지 사진만 다시 찍으면 좋겠다).

신라면 건면의 출시는 꼬꼬면, 미역국 라면의 출시와 그에 따른 반짝인기와는 결이 다르다. 라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조짐이 보인다. 건면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에 ‘신라면이 사도(邪道)의 길에 빠졌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그리고 풀무원은 웃음 짓고 있다. 라면의 세계를 건면과 기존의 튀긴 면으로 이분하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던 풀무원이 아니던가! 국지적 도발도 없던 건면 라면 시장에 전선(戰線)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군과 적군이 갈리기 시작하고 있다. 대중이 드디어 건면 카테고리를 인식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풀무원의 건면 라면 브랜드인 ‘생면식감’은 구매자 그룹이 분명했다. 다이어트를 하는데 라면을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람 또는 아이와 함께 라면을 먹고 싶은 엄마. 생면식감은 충성고객들이 애정으로 꾸준히 구매하는 라면이지만 충성고객의 숫자는 적고 초기에 비싼 가격의 이미지가 박혀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농심에서 새로 출시한 신라면 건면은 대중적인 관심을 받는 제품이 되고 있다. 누구나 아는 대중적인 브랜드 ‘신라면’의 힘이다. 출시 40일 만에 무려 1000만 개가 팔렸다.

풀무원은 기존의 튀긴 면 라면과 경쟁하고 그것을 눌러야 하는데, 이런 와중에 신라면 건면의 등장은 큰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동상이몽이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신라면은 신라면 건면만 잘되길 바라고 있고, 풀무원은 이 건면 라면 시장을 신라면 건면과 함께 키우며 동반 성장하길 바라고 있다.

그리하여 풀무원은 전 세계 광고사에 길이 남을 명 광고를 수도권 버스정류장 53곳에 부착했다. 그중 하나는 신라면의 최대 경쟁자인 진라면 브랜드를 갖고 있는 오뚜기 본사 앞 버스정류장 앞에 떡 하니 붙었다. “신나면(신라면) 건면 출시로 대한민국 라면 시장이 기름에 튀기지 않은 생라면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뚝이(오뚜기)가 함께하실 차례입니다. 웰컴! ‘신나면(신라면) 건면’.” 도발적이다. 리더의 위용이 느껴진다. 오뚝이 친구는 과연 건면 시장에 뛰어들어 농심의 속을 긁을 것인가, 아니면 튀긴 면의 수호자로 남을 것인가? 이 건면 라면 시장이 커지면 결국 그 승자는 프리미엄을 노리는 풀무원이 될까, 아니면 브랜드 인지도 1위, 영광의 브랜드, 더 젊어 진 신라면 건면이 독주할 것인가?

며칠 전 풀무원은 새로운 건면 제품을 출시했다. 여름 시장을 노린 ‘생면식감 꼬불꼬불 물냉면’이다. 최근 몇 년간 인스턴트 냉면 시장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브랜드는 농심의 ‘둥지냉면’이다. 3년 만에 무려 14.5%의 매출 신장을 보인 농심의 간판 여름 제품이다. 농심이 풀무원의 건면 시장을 어루만져 주니 이번엔 풀무원이 농심의 냉면 시장을 툭 건드린다. 오래된 애증의 연인을 보는 듯하다. 앞으로 이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너무 재미있어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다.

필자소개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Food Biz Lab 연구소장 moonj@snu.ac.kr
문정훈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 경영과학과를 거쳐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외 주요 식품 기업과 연구소를 대상으로 컨설팅하고 있으며 주 연구 분야는 식품산업 기업전략, 식품 마케팅 및 소비자 행동, 물류 전략 등이다.
  • 문정훈 문정훈 | - (현)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
    - (현) Food Biz Lab 연구소장
    -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
    moonj@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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