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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코오롱제약 '아프니벤큐' 시장 진입 전략

리서치는 꼼꼼하게, 실행은 과감하게. 정체된 입병약 시장 판도 바꾸다

주재우,조진서 | 233호 (2017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경험이 적었던 B2C 의약품 사업에 진출한 코오롱제약이 첫 신제품 ‘아프니벤큐’로 9개월 만에 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1) 겉보기에는 성장이 정체된 구내염 치료제 시장이지만 기존 제품들에 만족하지 못해 시장에서 제외돼 있었던 ‘비고객’ 환자 65%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제품을 설계

2) 약사를 공략하는 영업조직의 규모가 작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최종소비자 대상의 브랜드/마케팅 전략을 추진

3) 대표이사부터 담당 부서장과 PM, 외부 컨설팅 업체까지 4년간의 준비기간 동안 제품의 철학을 공유하고 신뢰를 형성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피곤해지면 입안에 염증이 돋는다. 음식을 먹거나 말을 할 때, 혹은 숨을 쉴 때마다 짜증 나게 아프다. 치료약이 없는 건 아니다. 국내 구내염 치료제 시장은 ‘바르는’ 연고 오라메디와 ‘지지는’ 소독약 알보칠이 양분해왔다. 하지만 아예 약을 쓰지 않고 버티는 사람도 많다. 귀찮게 입속에 맛도 없고 피부에 쓰라린 약까지 바를 것 없이 그냥 푹 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2016년 말 시장의 판도가 급변했다. 코오롱제약이 가글액 형태의 아프니벤큐1  를 선보였는데 이 제품이 출시 9개월 만인 2017년 2분기에 시장점유율 1위로 뛰어올랐다. 25억 원으로 잡았던 2017년 매출 목표도 반년 만에 달성했다. 신제품 출시에 따른 마케팅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이례적인 성장이다. 의약품을 살 때는 소비자들이 보수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익숙한 브랜드, 쓰던 약을 고른다. 그런데 아프니벤큐는 출시되자마자 선두권으로 뛰어올랐다. 특히 이전까지 입병약을 쓰지 않았던 ‘비고객’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아프니벤큐의 인기는 치료 효능이 혁신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새로울 것이 없는 소염진통제다. 가글액 형태라 기존 입병약들에 비해 사용하기에 편리하다는 것이 거의 유일한 성분상의 차별점이다. 코오롱제약은 여기에 집중해서 아프니벤큐를 마케팅했다. 4년간의 철저한 시장조사에서 나온 데이터에 기반해 경쟁 프레임을 새로 짰고, 제약업계의 관행을 버렸다. 약사 눈높이보다 일반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브랜드를 설계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회사가 이전까지 병·의원 상대 B2B 사업에 집중하느라 B2C 시장에서의 마케팅은 별로 해 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프니벤큐의 성공은 B2C 산업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중견 기업에 교훈을 준다. 상품기획과 마케팅을 잘하면 ‘레드오션’이라고 생각됐던 시장에서 ‘블루오션’을 창출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례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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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기업의 신성장동력 모색


제약시장은 크게 전문의약품(ETC)과 일반의약품(OTC) 시장으로 구분된다. 1958년 설립된 코오롱제약은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보다는 병·의원에서 사용하거나 의사들의 처방전을 받아야만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 시장에 주력해왔다. 이 회사의 일반의약품으로는 변비약 ‘비코그린’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히트상품이었다. 2016년도 매출은 816억 원, 영업이익은 41억 원이고 대부분은 내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등의 전문의약품에서 나오는 실적이었다. 즉, B2B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이었다.


그런데 2010년 무렵부터 전문의약품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론의 압박을 받은 정부가 의료보험에 적용되는 의약품 가격을 인하한 것이다. 또 ‘의약품 리베이트 쌍벌제’도 도입됐다. 병원과 의원을 상대로 영업 리베이트를 주었다가 적발될 경우 리베이트를 주는 사람(제약회사 영업직원)뿐 아니라 돈을 받은 사람(의료진)도 처벌하는 규정이었다. 이 규정 도입 이후 의사들이 영업사원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특허가 만료되는 약품들의 ‘제네릭(복제약)’ 수도 늘어났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전문의약품 시장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각 사의 영업이익률이 떨어졌다. 업계 전반적으로 위기의식이 퍼졌다.


전문의약품 분야에서 활동하던 제약사들은 제각기 새로운 매출원을 찾아 나섰다. 코오롱제약은 그동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일반의약품 시장으로의 확장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2년, OTC(일반의약품)팀이 신설됐다. 팀의 리더로는 태평양제약에서 관절염 치료제 ‘케토톱’을 담당했던 정갑용 부장이 영입됐다.


정 부장은 먼저 회사가 보유한 변비약 ‘비코그린’ 브랜드의 리뉴얼에 착수했다. 코오롱제약이 갖고 있던 가장 확실한, 아니 유일한 소비재 브랜드였다. 2012년부터 약 2년간 다양한 비코그린 관련 마케팅 활동을 벌이는 동시에 OTC 전문 영업 인력도 6명 확보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한때 연 8억 원까지 떨어졌던 매출이 30억 원대로 올라섰다.


비코그린의 부활은 고무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OTC 사업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변비약은 성장이 정체된 시장이었다. 게다가 건강기능식품 등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체제도 많았다. 비코그린이 타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포인트도 부족했다. 코오롱제약의 OTC 사업이 한 단계 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히트상품이 필요했다.


“뭔가 새로운 ‘빅 브랜드’ 하나를 만들어야 했다. 생존과 성장의 기반을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이 있었다.” 정 부장의 말이다. 비코그린 브랜드 리뉴얼 작업과 동시에 신제품 론칭 준비작업도 진행됐다. 소비자와 시장 조사가 우선이었다.

 

‘만능 약품’은 필요 없다. 타깃을 좁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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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은 브랜드의 라이프사이클이 길다. 한 번 자리를 잡은 브랜드는 오래 간다. 연구개발 활동을 통해 자체적으로 신약을 개발하지 않고 외부 라이선스를 사온다 해도 마찬가지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부분이라 안전성과 관련한 정부의 규제가 많고 영업채널 측면에서의 산업 진입장벽도 높기 때문에 신규 진입자가 단기간에 시장을 휘젓기는 어렵다. 또 소비자도 보수적이다. 누구나 자기 건강과 관련된 문제에는 신중하기 마련이다. 감기약 하나를 사더라도 이름을 많이 들어본 약이어야 안심이 된다. 최소한 제약회사의 이름이라도 유명해야 팔린다. 그만큼 브랜드가 중요하다. 코오롱제약 역시 수십 년을 끌고 갈 수 있는 ‘빅 브랜드’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 신중하게 시장 조사에 나섰다.


현실은 인정해야 했다. ‘비아그라’ 같은 블록버스터급 성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자체적인 신약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었고 게다가 연간 영업이익 40억 원 정도의 중견 제약사로서 제품 하나에 투자할 수 있는 마케팅 비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OTC 시장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처음부터 ‘빅 마켓’에 뛰어들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적당한 마케팅 투자만으로도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는 시장, 그러면서도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을 찾아야 했다. 또 사내 개발부서에서 제조가 가능하거나 라이선스 생산이 가능한지도 중요했다.


이때까지 코오롱제약은 전문의약품 분야 중에서도 피부과, 내과, 이비인후과 질환 관련 약품들에 강점이 있다고 평가받아왔다. 따라서 OTC 신제품을 고려할 때도 아무래도 이런 분야의 약물들에 먼저 눈길이 갔다. 약국을 상대로 영업을 할 때 ‘병원에서 사용성과 안전성이 검증된 약물’이라고 알릴 수 있으면 도움이 된다. 검토 끝에 탈모방지제, 수면제, 구내염/인두염 치료제 등 3개 아이템이 고려대상이 됐다.


시장의 크기와 성장 가능성으로 보면 역시 탈모방지제만 한 것이 없었다. 탈모는 전 국민의 고민거리다. 한국인들은 외모에 특히 민감하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차별화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다. 메이저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후발주자로서 차별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딱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두 번째, 수면제 시장도 아직 차별화가 어려워 보였다. 분명 ‘좋은 잠’에 대한 한국인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지만 이 시장에서 돋보이기 위해서는 약효가 확실하고 중독 및 내성과 같은 부작용은 적어야 한다. 그런 약물을 찾기는 어려웠다. 고만고만한 효능을 가진 제품을 가지고 광고효과만으로 경쟁하는 것은 코오롱제약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었다.


마지막, 구내염/인두염 치료제는 시장 상황으로 보나, 자사의 역량으로 보나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은 분야였다. 마침 코오롱제약은 소염진통제 성분인 ‘디클로페낙’으로 만드는 가글형 구강염증치료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이탈리아 업체 ‘파마카(Farmaka)’사의 특허인데 2010년에 이우석 대표이사가 해외 박람회에서 찾아내 이듬해 직접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놓은 상태였다. 이 제품은 기존 염증 치료제들과 약효는 비슷하지만 ‘가글 타입’이라는 분명한 차별화 포인트가 있었다. 승부를 걸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염진통제는 염증을 억제하고 통증을 줄여주는 약제를 일컫는다. 환부가 어디냐에 따라서 먹는 알약이나 캡슐 형태로 만들기도 하고, 연고로 만들어 바르거나 파스 형태로 몸에 붙이기도 한다. 성분과 제품명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인 작용 원리는 비슷하다.


코오롱제약이 사온 파마카사의 특허는 디클로페낙이라는 소염진통제 약물을 맛과 향이 좋은 물약처럼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CDS’ 공법이었다. 이 방법으로 만든 소염진통제는 쓴맛이 나지 않고 물처럼 유동성 높은 액체 형태이기 때문에 입안과 목구멍에서 가글해서 뱉거나 쉽게 행굴 수 있다.2   마치 소아과에서 어린이 감기에 처방하곤 하는 딸기향 물약과 같은 느낌이다.


이런 특장점을 고려했을 때 치료할 수 있는 영역은 3가지였다. 인두염(목구멍 염증), 치은염(잇몸 염증), 구내염(입안의 피부 염증)이다. 인두염이든, 치은염이든, 구내염이든 모두 소염진통제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코오롱제약은 이 약물을 세 가지 질병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만능 물약’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몸의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아플 때 그 특정 부위를 치료하거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약을 산다. 목이 아프면 인두염약을 사고, 이가 아프면 치은염약을 산다. 미리 약을 사뒀다가 목이 아프면 목에 바르고, 잇몸이 아프면 잇몸에 바르자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즉, 이 약이 세 가지 질병 처치에 모두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중 하나에만 초점을 두고 브랜드를 만들어야 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코오롱제약 OTC팀은 우선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봤다. 파마카사는 코오롱제약 외에 폴란드, 이탈리아 등 유럽 여러 국가에 이 약물을 라이선스로 판매 중이었는데 나라마다 제품형태와 마케팅 포인트가 다 달랐다. 치과 수술 처치용으로 판매하는 나라도 있었고, 병원용 전문의약품으로 쓰는 나라도 있었다. 유라병 형태로 판매하기도 하고, 사각 파우치에 담아 판매하기도 했다. 시장마다 전략도 달라져야 했기에 타국의 사례는 크게 참조가 되지 못했다.


정 부장과 팀원들은 차근차근 따져봤다. 외부 리서치 업체, 컨설팅 업체들과 함께 총 4번의 시장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가 진행되며 세 가지 질병 영역 중 치은염이 가장 먼저 고려대상에서 제외됐다. 치은염 치료제 시장은 인사돌, 이가탄 등 매년 광고에 100억 원 이상을 지출하는 빅 플레이어들이 자리 잡고 있다. 투자비 물량 경쟁으로는 이들과 경쟁하기 어려웠다. 또 인두염 시장에도 스트렙실이라는 제품이 광고비 지출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정보가 있어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구내염 시장은 끼어들 틈새가 보였다. 시장 규모가 작았고 동국제약의 오라메디와 한국다케다제약의 알보칠이라는 2개 제품이 도합 시장점유율 75∼80%를 차지하며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2강으로 군림해오기는 했지만3  위 2개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족 평가가 눈에 띄는 것이 특이했다.





가장 잘 알려진 제품은 오라메디였다. 오라메디는 끈적한 느낌의 연고다. 약이 순하지만 약효가 밋밋한 것 같다거나 입안의 이물감이 싫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편 알보칠은 면봉에 묻혀서 환부에 바르는 소독약 타입이다. 약효가 빠르지만 바르는 순간의 고통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에서는 1인 개인방송 운영자들이 알보칠을 바르면서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동영상들을 재미삼아 올리기도 한다. ‘일주일 동안 느낄 염증의 고통을 1분으로 압축해서 느끼게 해 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기존 경쟁제품들이 각각 뚜렷한 강점과 약점이 있기 때문에 신규 진입자에도 승산이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구내염 환자 중 약 35%만이 약을 쓰고 65%는 그냥 참는다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였다. 많은 사람들은 입안에 염증이 생겨도 굳이 약을 바르지 않고 그냥 참고 넘어간다. 약을 바르기가 불편한 부위인데다가 바로 낫지 않는 경우가 많고, 며칠만 참으면 염증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오롱제약이 가글액 형태의 구내염 치료제를 출시한다면 기존 연고형이나 소독액 형태 제품들에 불편함을 느끼고 약을 사지 않던 ‘비고객’들을 고객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웠다. 빛이 보였다.


정 부장은 “기존 제품에 로열티가 있는 사람들을 스위칭 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대신 잠재 수요자들이 많이 있었다. 입병의 불편함을 참지 말고 가글 1분만 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서 구매를 유발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1차 목표는 오라메디와 알보칠의 양강 구도를 깨고 3자의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삼국지(三國志)의 천하삼분지계처럼 우리는 삼구지(三口志)의 천하삼분지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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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브랜딩

경쟁할 시장과 약물을 선정했으니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포장해서 소비자에게 전달할 것인지, 즉 상품기획과 브랜딩, 마케팅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었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의 최종소비자는 환자이지만 특정 브랜드에 대한 선호 없이 약사가 권하는 제품을 사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경우 약을 사용하는 컨슈머(consumer)는 환자지만 제약사 입장에서의 고객, 즉 커스터머(customer)는 약사다. 그래서 제약사들은 약의 이름을 지을 때 약사들이 약의 효능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한다. 브랜드명에 약의 성분이나 신체 부위명을 집어넣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다. 예를 들어 ‘케토톱’의 성분은 케토프로펜이고 ‘우루사’는 우르소데옥시콜산으로 만든다. ‘오라메디’는 구강(oral) 의약품(medical)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약사들이 어떤 병에 쓰는 약인지 연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코오롱제약도 처음에는 이런 관행에 따라 ‘디클로랄’이라는 제품명을 고려하기도 했다. ‘디클로페낙’이라는 성분명과 ‘오랄(입)’이라는 인체 부위를 조합한 것이다. (그림 2)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 신제품은 소비자 눈높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브랜드가 돼야 한다고 봤다. 이 회사의 OTC 영업팀은 막 조직됐다. 전국 2만 개 약국의 약사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최종소비자인 환자들이 직접 이 브랜드를 찾게끔 해야 했다. 약사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기억하기 좋은 이름을 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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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 공모전도 벌였지만 여전히 마음에 드는 브랜드명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우석 대표는 OTC팀에게 “몸이 아프면 명의를 찾는 것처럼 마케팅도 전문가를 찾아가라”고 말했다. 정 부장은 소비재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필라멘트앤코(filament & co.)를 찾았다.


컨설팅 파트너와 함께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은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다. (사내 공모전에 참여했던 직원들에게는 감사의 의미로 문화상품권이 지급됐다.) 필라멘트앤코는 3개 질병 시장조사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브랜딩뿐 아니라 상품기획에 있어서도 혁신을 제안했다. 먼저 서울, 경기 지역 8개 약국 약사들을 인터뷰해 ‘가글은 약이 아니다’라는 부정적 인식이 나올 수 있음을 파악했다. ‘가그린’ 같은 구강청결제가 연상되기 때문에 약효에 대한 신뢰감이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직까지 구내염 치료제 시장에 가글액 형태의 제품이 진입하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이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회피가 아니라 정면 돌파였다. 가글이야말로 입안 염증을 치료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고 적극 홍보하기로 하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구강청결제들과 차별되는 소포장의 패키지를 사용하기로 했다. 대용량 용기를 쓰는 ‘가그린’ 때문에 생긴 ‘저렴한 가글액’의 이미지를 확 바꾸기 위해서였다. 소비자 지불의향 조사 결과에 따라 가격도 기존 구내염 치료제들보다 높게 잡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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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들과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소비자의 행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약 80%의 구내염 환자들은 발병 3일 이내로만 약을 사용한다. 3일이면 웬만한 입안 염증은 가라앉는다. 만일 3일 동안 약을 발랐는데도 나아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병원을 찾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바르는 약의 시장이 급속히 사라진다. 기존 경쟁제품인 오라메디나 알보칠의 경우 제품의 용량이 커서 환자들이 수주일 이상 사용할 수 있었는데 코오롱제약과 필라멘트앤코는 소비자의 치료 형태를 고려하면 용기 안에 그렇게 많은 양의 약물을 담을 필요가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1회용 스틱포장 9∼10개(매일 3회 X 3일)로 하나의 패키지를 구성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림 4)


스틱형 포장 외에 더욱 고급스러워 보이는 PET 재질의 병 패키지도 제안됐다. 그러나 플라스틱 통에 음식물이 아닌 약물을 담아 제조하는 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환자들의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입안 염증을 많이 앓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이었고, 직장인이 핸드백에 휴대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병보다는 1회용 스틱형 포장이 나았다. 위생적이기도 했다.



브랜드 이름도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정해졌다. ‘디클로페낙’처럼 발음하기도 어렵고, 기억하기도 어려운 약물 성분 이름은 제외하고 일반 소비재 상품처럼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떠올리기 쉬운 이름으로 가자는 방향성을 갖고 수많은 후보를 검토했다. 최종적으로 아프니벤(아픈 입엔)이라는 이름이 선정됐고 여기에 ‘큐’를 붙여서 약효가 빠르다(quick)는 강조 효과를 더했다. 특히 아프니벤큐라는 이름은 향후 ‘아픈모겐큐’ 등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패키징 디자인에 있어서는 특히 강민정 과장(PM)의 역할이 컸다. 컨설팅 업체 필라맨트앤코가 만든 패키지 디자인 시안은 흰색 바탕에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모습이었다. 가글액의 저렴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서, 또 의약품으로서의 신뢰감을 높이기 위해 흰색을 사용했다. 사내 평가에서도 이 흰색 패키지가 좋은 점수를 받았고 거의 결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강 과장은 반대했다. “이 제품은 새롭게 출시된 혁명적인 아이템이어서 사람들이 딱 보고 어떤 제품인지 알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존 (흰색) 패키지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패키지만 봐도 이 제품이 입병약이고 가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패키지로 바꾸자고 했다.”





강 과장의 주도로 색상은 흰색에서 핫핑크로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입안으로 가글액을 흘려 넣는 그림도 추가됐다. “의약품 패키지는 흰색, 녹색, 청색 등 신뢰를 추구하는 색상을 많이 사용하지만 우리는 약물 자체의 색깔인 핫핑크를 메인 칼라로 사용했다. 약국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약품으로 만들고자 했다. 소비자가 이 약을 찾게 만드는 것이 우리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또 구내염 치료제는 주부들이 가정상비약으로 사러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핑크색이 선택된 이유 중 하나였다. 특징 있는 상징색이 정해지자 약사 상대의 마케팅도 쉬워졌다. 예를 들어, 제약 관련 박람회에서 부스를 설치할 때 핑크색으로 꾸미고 핑크색 볼펜을 기념품으로 주는 식이다.


발매를 몇 달 앞두고 거의 정해진 패키지 디자인을 완전히 뒤집는다는 것에 걱정도 있었다. 그래도 정 부장은 강 과장을 밀어줬다. “강 과장의 얘기를 들어보니 결국 또 우리가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었더라. 그 말이 일리가 있어서 수용했다. PM에게 확고한 소신과 열정이 있었고, 감각도 나보다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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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객을 고객으로


코오롱제약이 OTC팀을 만들었을 때부터 핑크색 아프니벤큐 제품이 준비될 때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라이선스를 가져온 시점부터 따지면 5년이다. 대부분은 시장조사와 기획에 들어간 시간이었다. 이제 승부를 걸 때가 됐다. 2016년 10월,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핑크색 패키지의 아프니벤큐 제품이 전국의 약국으로 출하됐다. 곧이어 광고 캠페인이 시작됐다.


광고는 에이전시 ‘아이디어달리’가 맡았다. 빅 모델을 써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자는 계획으로 인기 개그맨 신동엽 씨에게 모델을 맡겼다. ‘사무실 편’ ‘가정 편’ 두 가지 버전의 TV 광고가 만들어졌다. 1분 동안 간단히 가글을 해서 입병을 치료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물론 광고도 핑크 톤이었다.


처음 기획된 광고문구는 ‘오래 바르지 말고, 아프게 지지지 말고’였다. 하지만 의약품 광고 사전 심의에서 반려됐다. 오라메디와 알보칠이라는 경쟁제품명이 떠오르기도 하고 비방하는 느낌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바뀐 문구는 좀 더 중립적인 표현이었다. ‘바를 필요 없이, 지질 필요 없이.’ 초기 광고는 TV에 집중됐다. 예산의 약 90%가 TV에 배정됐고 나머지는 온라인이었다. 일반 소비재 산업에서는 모바일 등 온라인 광고 예산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의약품의 경우는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준다는 측면에서 TV 광고의 영향력이 크다는 게 정 부장의 설명이다.


잘 만들어진 브랜드와 패키지, 그리고 코믹하면서도 제품의 특장점을 잘 설명해주는 광고에 힘입어 매출은 빠르게 상승했다. 출시하자마자 구내염 치료제 시장 3위에 올라 ‘천하삼분지계’ 목표는 일찌감치 달성했다. 해가 바뀌어 2017년 1분기에는 알보칠을 제쳤다. 2분기에는 오라메디마저 제치면서 뜻밖의 1위에 등극했다.


물론 흑자는 아직 이르다. 투자 비용이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이익은 현재 추세대로라면 2018년에 나오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누적 흑자는 2020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매출 기준으로 봤을 때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음이 명확하다. 2017년 25억 원 달성을 목표로 세웠지만 현재는 50억 원으로 높인 상태다. 전체 시장 규모가 100억 원대 초반이었고 20년 넘게 활동한 기존 1위 브랜드의 매출이 40억 원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샴페인을 터뜨리기에 부족하지 않은 성과다.


무엇보다도 경쟁사들의 매출을 뺏어오기보다는 ‘비고객’을 고객으로 전환했다는 점이 긍정적이었다. 코오롱제약이 추구했던 대로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아프니벤큐 출시 이후 구내염 치료제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졌다. 그동안 입안 염증을 참고 살았던 사람들이 가글액이라는 편리한 형태에 끌렸다는 증거다. 제약업계 베테랑인 정 부장은 이 점에 특히 안도한다. “제약업계는 독식이라는 개념 없이 같이 커야 한다. 우리 제품의 강점을 살려 나가다 보면 치료제를 쓰지 않던 사람들도 시장 안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시장이 커질 것이다.”


초기의 성공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다. 미래를 위한 계획도 착착 세워놓고 있다. 2017년 말에는 신동엽 씨가 등장하는 2차 TV 캠페인이 시작된다. 이를 통해 2019년까지 아프니벤큐가 구내염의 대표적 치료제라는 입지를 굳힐 예정이다. 또 2019년 이후에는 아프니벤큐와 같은 약물을 사용하는 ‘아픈목’ ‘아픈이’ 시리즈가 나올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동시에 개발부서와 함께 또 다른 OTC 신제품도 꾸준히 탐색 중에 있다.


2011년부터 아프니벤큐 출시를 위해 보낸 오랜 준비 기간을 회상하며 정 부장은 CEO의 강력한 의지가 버팀목이었다고 말한다. “시작할 때는 이 제품이 안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시장 사이즈도 작고, 가글액 형태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 되는 이유가 90이더라도, 되는 이유가 10이라도 있으면 그 되는 이유에서 기회를 찾아보고 집중해서 끝까지 진행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소비자 조사를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챌린지가 들어올 때는 CEO의 한마디가 힘이 됐다. ‘내가 볼 때는 이런 제품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다. 해봐!’라는 것이었다. 기존 제품과는 다르게 소비자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본질적인 목표에도 CEO가 동의했다.”

 
성공 요인 분석


코오롱제약의 OTC 마케팅팀은 내부적으로 4년이라는 오랜 기간 약품을 준비했다. 외부적으로는 전문성 있는 필라멘트앤코와의 공동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혁신이 더딘 의약품 업계에서 오랜 준비와 속도감 있는 협업 덕분에 출시 후 1년 만에 매출 1위를 차지한 신제품을 내놓았다. 샴푸나 세제, 화장품 또는 식음료와 달리 의약품은 상품 기획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게 알려졌기에 본 사례의 흥미로운 점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분석해본다.


1. 마케터의 시장 선택도, 소비자의 제품 선택도 3개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선택 대안을 (Choice architecture)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한창 논의 중이다. 사람들은 선택 대안이 몇 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주어지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선택한다. 선택의 강도도 변한다. 특히 몇 개의 대안이 제공되는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데 그중에서 많이 알려진 연구 결과는 ‘선택의 역설’과 ‘단일 대안 회피성향’이다.


‘선택의 역설’ 연구에서는 대안이 너무 많으면 사람들이 선택을 거부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잼을 두고 진행된 연구가 있다. (Schwartz 2003) 한 쇼핑센터에서 어떤 날은 6종류의 잼을 진열하고 다른 날은 24종류의 잼을 진열했다. 24종류의 잼이 진열된 날 더 많은 사람이 몰렸지만 실제 판매량은 6종류의 잼이 진열된 날보다 적었다. 즉,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너무 많아지면 선택하는 것을 거부한다.


반면에 ‘단일 대안 회피성향’ 연구에서는 대안이 하나만 주어지면 사람들이 선택을 거부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Mochon 2013) 성능과 가격이 비슷한 소니사의 DVD 플레이어와 필립스사의 DVD 플레이어를 준비해놓고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소니 제품만, 다른 그룹에는 필립스 제품만 보여줬다. 각각 9%, 10%의 응답자만이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 번째 그룹에는 두 제품을 함께 보여줬더니 32%가 소니 제품을, 34%가 필립스 제품을 사겠다고 말했다. 대안이 하나만 주어질 때보다 대안이 2개가 주어질 때, 각 대안을 선택하는 사람의 수가 각각 3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즉, 사람들은 비교할 수 있는 대안이 너무 없으면 선택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몇 개의 대안이 소비를 늘리는 데 가장 효과적일까? 물론 정답은 없지만 3개의 대안이 주어졌을 때 사람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고, 특히 중간에 해당하는 타협(Compromise) 대안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Simonson 1989)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3개가 되면 2개의 대안은 각각 서로의 강한 강점이 강한 약점이 되고 나머지 1개의 대안이 중간 정도의 강점과 약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370명의 북미 학부생을 대상으로 아파트, 계산기, 배터리, 구강청결제, TV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서 발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선택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2개의 극단 대안보다 실패 가능성이 낮고 설명하기 쉬운 중간의 타협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본 사례에서는 코오롱제약 마케터도 새로운 약품에 맞는 시장을 선택해야 했고 소비자도 구내염이라는 병을 치료할 약품을 선택해야 했다. 흥미롭게도 마케터와 환자 모두 3개의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을 맞이했고 연구 결과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마케터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규모가 크지만 강한 경쟁자가 있는 시장(치은염)과 규모가 작지만 경쟁자가 적은 시장(인두염) 사이에 존재하는 규모와 경쟁 강도가 모두 중간인 시장을(구내염) 선택했다. 마케터가 신규 시장을 개척할 때 일반적으로 어떠한 시장을 선택하는지, 또는 어떠한 시장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관한 심리학적 접근은 알려진 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의 시장 크기와 미래의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손익분기점이나 투자수익률을 추정하는 경제학적 접근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시장 크기가 변할 수 있고 시장점유율이 예상치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선호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 사후적으로 볼 때 코오롱제약 마케터의 결정은 무척 성공적이었지만 똑같은 제품으로 또 다른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충분히 좋은 결론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구내염 환자들의 관점에서 보자. 환자들은 참을 만한 불편함이 오래가는 약품(오라메디), 참기 어려운 아픔이 단기간 존재하는 약품(알보칠) 사이에 존재하는 불편함의 기간과 강도가 모두 중간 정도인 약품(아프니벤큐)을 선택했다. 물론 모든 환자들이 3개 약품을 충분이 고려하고 그중에서 타협 대안인 아프니벤큐를 선택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시장에서 많이 알려진 2개의 기존 약품이 이물감과 사용 시 통증이라는 불편함이 강했기 때문에 환자 본인이나 약국에서 제3의 대안을 찾아봤을 가능성이 높다.

마케터의 시장 선택과 환자의 약품 선택에서는 각각 고려해야 할 추가 요인이 다양하게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얘기해 사람들은 3개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선택 구조를 여러 상황에서 즐긴다. 이사회를 상대로 디자이너가 새로운 상품의 콘셉트를 제안할 때에도 3개의 대안을 보고하는 경우가 많고 식당 주인이 고객을 상대로 세트 메뉴를 개발할 때에도 3개의 메뉴를 내는 경우가 많다. 아프니벤큐의 등장 이후 자사 제품뿐 아니라 구내염 치료제 시장 전체 판매액이 확대된 점도 이렇게 이해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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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비자가 혁신 제품을 받아들이려면 생각의 전환과 행동의 전환이 모두 필요하다.

혁신 제품(Really New Product·RNP) 5 은 시장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소비자가 혁신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신기술이 적용되면서 혁신 제품의 효력이 분명하지 않다는 생각의 문제와 혁신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소비자가 행동을 바꾸는 것을 꺼린다는 행동의 문제다. (Urban, Weinberg, and Hauser 1996) 예전에는 전자의 문제, 즉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소비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간주된다. (Hoeffler 2003)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최근 론칭된 카카오뱅크에 아직 가입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 이유는 (1) 이 서비스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거나 (2) 안다고 하더라도 휴대폰으로 금융 거래를 하는 행동을 싫어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의 경우 카카오뱅크 본인 인증의 간편함이나 낮은 송금 수수료 등 기존 금융 서비스에 대비되는 특징을 명확하게 알려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등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2)의 경우는 휴대폰으로 24시간 금융 거래를 수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도록 사용하기 쉬운 앱을 실제로 만들어서 배포해야 한다. 즉, 앞부분 작업이 소비자의 생각을 바꾸는 전통적인 마케팅 작업이라면 뒷부분 작업은 소비자의 행동을 바꾸는 디자인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코오롱제약 마케터가 고민을 확신으로 바꾼 지점이 언급한 두 가지와 일치한다. 마케터는 처음에는 성공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오랜 기간 작업하면서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 주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여기서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과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더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새로운 경쟁 우위(Competitive Advantage)를 제안하는 포지셔닝이다. 기존 구내염 약품은 서로의 강점과 약점이 분명했기에 장기간의 불편함과 순간적인 아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불편하지 않고 아프지 않은 가글 형태로 만들어진 아프니벤큐는 두 가지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대신 “가글이 약효가 있을까”라는 새로운 문제를 얻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입병엔 가글이 치료제입니다”를 통해 혁신 제품의 효력이 불분명하다는 생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앞선 연구 결과처럼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생각의 전환만으로는 구매하지 않는다. 그래서 광고와 패키지 디자인이 동원돼 사용행동과 구매행동의 전환을 유도했다. 광고는 가글이라는 다소 낯선 행동을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뜯고 붓고 1분 동안 가글가글”이라고 사용법을 설명하면서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패키지 디자인도 병에 담거나 사각형 파우치 대신 스틱형 파우치로 포장하면서 가글이라는 행동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약효가 극대화되는 3일 동안 하루 3번의 가글을 유도하기 위해서 9개를 포장했다.


3. 소비자를 이해하는 대신 가르쳐야 할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마케터는 소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시장의 크기를 파악하기 위해서 수개월 동안 시장 조사를 수행하고, 시장 내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실시하고, 개별 소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터뷰나 관찰 조사를 실시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북미 지역에서 퀼트(조그마한 카펫)로 이런 실험을 했다. (West, Brown, and Hoch (1996)) 약 160명의 북미 학부생들이 실험에 참가했고, 실험 참가자들은 70개의 천연색 컬러 퀼트를 컴퓨터 스크린에서 무작위 순서로 보면서 각 퀼트를 얼마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11점 척도로 응답했다. 이 중 절반의 참가자는 블록 개수, 색깔 수, 배열, 블록 배치 등 퀼트의 속성 정보가 함께 제공됐고, 다른 절반의 참가자는 가격, 제작 연도, 이름 등 퀼트의 역사 정보가 제공됐다. 두 그룹의 선호도를 회귀분석 모형으로 분석할 결과, 역사 정보에 비해서 속성 정보가 제공되면 선호도 일관성이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속성 정보가 주어지지 않으면 내가 어떤 퀼트를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선호를 결정하지만 속성 정보가 주어지면 “내가 이 퀼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것이구나”라는 걸 스스로 깨달아가면서 점차 자신이 무엇을 왜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것이다.


본 사례에서도 소비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었으며 이에 따라 마케터가 자의적으로 결정을 내리며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우가 많았다. 먼저 소비자 조사를 4회 수행할 만큼 구매자를 붙잡고 왜 이 제품을 쓰는지 질문을 던져가며 열심히 조사해야 했다. 소비자는 스스로 기존 구내염 약품이 불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새로 나올 약품이 휴대하기 편하면 좋겠다는 사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또한 약국에 가서 직접 약품을 찾을 것이라고 언급하지도 않았으며, 신뢰감을 주는 파란색이나 하얀색 대신에 좀 더 눈에 띄는 분홍색 약품을 찾겠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주도한 마케터나 컨설팅업체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소비자의 의견을 기다리는 대신 소비자에게 무엇이 좋고 중요한지 가르쳐주기로 결정했다. 즉, 이에 따라 기존 약품은 불충분하고, 새로운 약품은 휴대하기 편리하며, 찾기 편하도록 분홍색 패키징을 하게 됐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게 좋아”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연구에서 사용된 퀼트처럼 속성이 분명하지 않고 속성의 개수와 속성별 레벨의 차이가 많은 와인, 미술, 음악, 디자인 등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러한 영역에서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는 스스로 무언가를 왜 좋아하는지 학습하는 선호 형성(preference formation)의 과정을 거친다. 취향이 이미 개발된(developed taste) 전문가가 제안하는 무언가가 왜 좋은지 모르다가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좋은 예로 허먼 밀러의 에어론 체어가 있다. 1992년 허먼 밀러가 고용한 빌 스텀프(Bill Stumpf)와 돈 채드윅(Don Chadwick)은 고탄성 카본 프레임을 사용해 인체 공학적으로 완벽한, 혁신적인 의자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얼마나 예쁜지 조사한 결과, 10점 만점에 6점에도 도달하지 못할 만큼 못생겼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선사시대의 거대한 곤충 뼈’처럼 생겼다는 혹평을 들었다. 기업의 구매 담당자나 인체공학 전문가들은 의자가 못생겼다고 싫어했지만 건축가와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이 의자가 어떤 면에서 기존 의자와 다른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허먼 밀러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의자의 모양을 바꾸는 대신 디자이너의 본능을 믿고 그대로 출시했다. 에어론(Aeron)이라는 이름의 이 의자는 1990년대 후반 허먼 밀러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의자로 선정됐다. 이후 약 700만 개가 판매됐고 지금도 17초에 한 대씩 생산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흥미롭게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된 이후에 추가로 진행된 설문에서는 일반인들도 10점 만점에 8점을 줄 만큼 예쁘게 보인다고 응답했다.


물론 제품이 다양하고 복잡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소비자를 교육하는 것이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언제 소비자의 선호를 존중해야 하고, 언제 소비자를 가르쳐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마케팅의 학문적 연구가 진행된 바가 없는 것으로 알지만 직관적으로 생각해볼 수는 있다. “무엇이 필요하다”처럼 니즈를 가르치려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무엇이 좋다”처럼 전문가의 까다로운 입맛을 가르치면 성공하는 사례가 있다. 시장에서 실패한 세그웨이나 3D TV의 경우 굳이 필요하지 않은 니즈를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다수의 초기 애플 제품의 경우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형태, 색깔, 촉감, 소리를 통해서 더 나은 경험이 제공된다’는 점은 가르치는 것이 가능했다. 실제로 애플은 소비자 조사 결과의 가중치를 낮추고 CEO와 CDO를 포함한 디자인 전문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제품을 출시했다. 물론 시장 성공과 실패에는 다양한 원인이 한꺼번에 작동하지만 소비자에게 수준 높은 선호(취향)를 가르치는 것도 하나의 접근법일 것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송해인(연세대 글로벌인재학부 국제통상전공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주재우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designmarketinglab@gmail.com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필자는 서울대에서 인문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를, 캐나다 University of Toronto의 Rotman School of Management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동적 의사결정 심리학을 바탕으로 디자인 마케팅, 신제품 개발, 소비자 행동에 관해 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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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 용어: OTC와 ETC

(1) OTC(over-the-counter drug): 약국에서 일반인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말한다.
일동제약 아로나민(2016년 매출 약 600억 원), 동국제약 인사돌(약 440억 원), 한국존슨앤존슨 타이레놀(약 280억 원) 등이 대표적인 대형 OTC 제품이다.i) 주로 약국을 대상으로 영업한다.

 

(2) ETC(ethical drug): 병원에서 사용하거나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을 말한다. 항생제, 항암제, 마취제, 링거액 등도 포함된다. 병·의원이 주 고객이다. 
ETC 시장은 1977년 정부의 의료보험제도 도입과 특히 2000년 의약 분업을 계기로 급속하게 확대됐다. 현재 전체 의약품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OTC와 ETC 의약품 외에도 비타민, 유산균 같은 건강기능식품도 국내 제약사의 주요 매출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i) 출처: 메디파나 뉴스



생각해볼 문제

1.선두를 뺏긴 오라메디와 알보칠이 선택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은 무엇일까. 선두 탈환에 의미를 두는 것이 필요할까. 

2. 아프니벤큐를 위한 최적의 광고 매체 조합과 광고비 지출 비율은 무엇일까. TV 광고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일까.

3. 현재 아프니벤큐 브랜드의 가치를 재무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할까. 

4. ‘아픈모게큐’ 등 비슷한 이름의 타 질환 치료제를 연이어 출시하는 전략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참고문헌

1. Schwarz, Barry (2004), Paradox of Choice: Why More is Less, New York: Harper Perennial.

2. Mochon, Daniel (2013), “Single-Option Avers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40 (3), 555-566.

3. Urban, Glen L., Bruce D. Weinberg, and John R. Hauser (1996), “Premarket Forecasting of Really-New Products,” Journal of Marketing, 60 (1), 47-60.

4. Hoeffler, Steve (2003), “Measuring Preferences for Really New Products,”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40 (4), 406-420.

5. West, Patricia M., Christina L. Brown, and Stephen J. Hoch (1996), “Consumption Vocabulary and Preference Format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23 (September), 120-135.

  • 주재우 주재우 |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에서 인문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를 받았고 토론토대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제품 개발과 신제품 수용을 위해 디자인싱킹과 행동경제학을 연구하며 디자인마케팅랩을 운영하고 있다.
    designmarketingl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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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진서 조진서 | 동아일보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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