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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Biz

소비자들 값싼 닭만 찾진 않아. 세분화된 품종으로 소비자 ‘취향저격’

문정훈 | 216호 (2017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대한민국은 치킨 공화국이다. ‘치맥’은 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세계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닭의 종류는 획일화돼 있다. 요리의 성격이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닭을 선택할 수 있는 프랑스와 비교하면 닭 소비량에 비해 우리는 닭에 대해 문외한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토종닭의 명맥이 끊긴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제라도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출 수 있는 프리미엄 품종 개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식용 닭, 즉 육계(肉鷄)가 2014년 기준 6억2000만 마리 사육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1인당 1년에 무려 닭을 12마리를 먹고, 닭 성체 기준으론 닭고기 14∼15㎏ 정도를 섭취하고 있다. ‘치킨’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간식이자 야식 메뉴고, ‘치맥’은 ‘K푸드’의 대명사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물론 여름의 시작도 삼계탕이다. 그런데 지난 여름에 먹은 삼계탕에 들어가 있는 닭은 무슨 닭일까? 사실 이 질문 자체가 생소하다. 닭은 닭일 뿐인데 품종이 있었나? 물론이다. 닭에도 엄연한 품종이 존재하고, 품종에 따라 육질의 특성도 다르고, 맛과 향도 다르다.

하지만 한국에서 닭은 일상재(commodity)다. 그 누구도 이 닭이 어떤 닭인지, 어떻게 길러진 닭인지 묻지 않는다. 품종에 대해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우리가 먹는 닭의 크기는 가면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닭에서 못 먹는 부위와 내장을 제거한 지육(枝肉)의 무게가 1㎏이면 이를 10호 닭이라고 한다. 900g이면 9호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시중에서 표준화돼 유통되는 닭들 중 가장 작은 닭은 800g, 즉 8호 닭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닭은 급속도로 작아졌고 이제는 가장 많이 먹는 닭의 사이즈는 600g, 6호 닭이다. 영계백숙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닭은 심지어는 600g도 안 된다.

이렇게 닭이 갈수록 작아지는 것은 연한 육질을 좋아하는 한국 소비자의 특성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실은 우리가 먹고 있는 닭은 닭이 아닌 중병아리다. 가장 맛있어야 할 닭날개는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아 소비자들이 먹으면서 닭날개를 찾기도 힘들 정도이니 제대로 된 닭날개의 맛을 즐기기도 어렵다. 국내에서 닭날개 부분육으로 판매되는 것은 대부분 국내산이 아닌 브라질에서 수입한 냉동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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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비자들은 오래 전부터 소고기에 대해선 꽤 까다로운 소비감성을 지니고 있었고, 소의 부위별로 미분해 그 맛의 차이를 즐겼다. 한우와 비한우를 구분하고, 암소고기에 대해서는 특별한 대우를 해주었다. 최근에는 돼지고기에도 이런 까다롭고 세련된 소비감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주 흑돼지가 뜨면서 소비자들은 일반 백색 돼지와 흑돼지가 맛이 다르며, 기꺼이 1인분에 5000원이나 더 지불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다. 하지만 닭고기는 여전히 일상재에 그치고 있다.

일상재화된 제품은 가격이 시장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소비자들이 품질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구분하지도 않으니 당연히 싼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상재 시장에서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판매가를 낮출 것인지, 어떻게 하면 비용을 줄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가장 극단적인 일상재의 예로는 스테이플러, 가위, 손톱깎이, 휘발유, 경유 등이 있고, 식품에선 대부분의 곡물이 일상재에 가깝다. 그리고 축산물에선 닭이 가장 일상재에 가깝다.

일상재에 가까운 축산물은 비용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차별화된 품질, 지속가능성 등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다. 더 나은 품종은 비용 대비 생산력이 좋은 품종이고, 더 나은 사육 방식은 낮은 비용의 생산을 보장하는 방식이며, 비용이 올라가는 동물복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 시장에서는 차별화된 품질보다도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 주는 치킨이 가장 혁신적인 제품으로 취급받는다. 우리나라의 닭이 갈수록 작아지는 것도 실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사료를 덜 먹이고 빨리 출하하기 위함이다.


닭의 나라 프랑스

닭이 일상재화되지 않은 나라는 어딜까? 질문을 바꾸어 보자. 닭에 대해 까다롭고 세련된 소비 감성을 갖고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이번 가을 프랑스 파리의 한 정육점에서 필자는 정육점 주인에게 ‘닭 한 마리를 달라’고 이야기했다. 정육점 주인이 처음 한 말은 가격공지가 아니라 색다른 질문이었다. “무슨 요리를 하시려는 데요?”

닭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하고자 하는 음식에 따라 그에 적합한 닭을 쓰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예컨대 국물 낼 때 쓰는 닭, 삼계탕 할 때 쓰는 닭, 프라이드 치킨 할 때 쓰는 닭, 양념 치킨 할 때 쓰는 닭, 찜닭 할 때 쓰는 닭을 각각 구분해서 그에 적합한 닭을 쓰는 식이다. 프랑스 소비자들은 어려서부터 암탉은 고기로 먹는 것은 선호되지 않고 치킨 스톡을 내는 데 썼다. 또 어떤 요리에는 특정 사이즈의 거세한 수탉만 써야 하는 등 매우 세분화된, 그래서 어려운 ‘상식’을 배워야 한다. 또한 프랑스어에는 닭을 지칭하는 다양한 종류의 단어가 있고, 그 의미도 조금씩 다르다. 더 나아가 각 단어에 따른 품질 관련 규정도 서로 다르다. 일단 ‘Le Poulet(풀레)’가 가장 일반적인 통칭으로서의 닭을 지칭하는 표현인데, 기본적으로 1.3㎏ 이하, 1.3∼1.7㎏, 1.7∼2.2㎏, 그 이상 등 네 가지 사이즈로 나눈다. 한국에선 1.3㎏짜리 닭을 찾는 게 쉽지는 않다. 한국에서 주로 먹는 작은 크기의 닭은 ‘Le Poussin(푸상)’이라고 지칭하며 800g 이하까지만 해당된다. 암탉은 ‘La Poule(풀)’이라고 하는데 주로 국물 내는 용으로만 쓰고 살코기는 먹지 않는다. 맛 좋은 수탉은 ‘Le Coq(코크’)라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어린 수탉은 ‘Le Coquelet(코클레)’로 불리며 이에 적합한 요리에 쓰인다. 또 요리를 위해 난소를 제거한 성계 암탉은 ‘La Poularde(풀라흐트)’이고 그 사이즈는 1.8∼2.3㎏이어야 한다. 또 크리스마스용 가족 요리에 쓰는 4㎏이 넘는 큰 수탉은 ‘Le Chapon(샤퐁)’이며 거세된 수탉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이 다음에는 품종이 나오고, 품종과 재배 지역의 지역성까지 고려한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된 토종닭이 무려 40여 종에 이른다. 예컨대 브레스(Bresse)라는 닭은 품종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지역의 명칭이기도 하다. 브레스 닭의 하얀 몸과 붉은 벼슬, 파란 다리는 프랑스 국기를 연상시킨다. 브레스 닭은 반드시 브레스 지방의 목초지에서 방목으로만 길러지고 그 지역에서 나는 곡물과 우유를 먹으면서 자란다. 법으로 규정돼 있는 브레스 닭 한 마리 당 생육 공간은 최소 10㎡ 이상이어야 한다.

한국에서 보통 1㎏짜리 생닭 한 마리는 산지에서 약 1000원대, 대형마트에서는 5000∼7000원 대인 데 반해 프랑스에서 브레스 닭은 1㎏에 2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고, 브레스 닭으로 만든 요리는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보통 10만 원서 출발하는 고급 식품이다. 뿐만 아니라 동물 복지 관점에서의 사육 방식에 따른 구분이 있고, 그중에서도 또 품질이 좋은 건 빨간 딱지(label rouge)가 붙어 있다.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해야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정말 복잡하고 까다롭다. 프랑스의 주부들은 닭을 요리할 때 과연 어디까지 구분하면서 먹는 걸까?


한국의 토종닭과 치킨 공화국의 미래

우리나라 토종닭은 일제강점기 유럽과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들어온 외래 품종으로 그 명맥이 거의 끊겼다. 1992년 뒤늦게 우리나라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우리의 재래 닭을 재현해내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조선시대 민화 속에 남아 있는 닭의 모습을 바탕으로 그 형질을 가지고 있는 닭들을 전국에서 찾아내 이들을 서로 교배시키며 5개 품종을 재현해내는 데 성공한다. 붉은 벼슬에 갈색 몸, 검은색 꼬리, 긴 다리의 닭이 이렇게 완성됐다. 그러나 이를 상용화하는 단계에 이른 2014년, 조류독감(AI)이 한반도를 강타하고 지나갔고, 20여 년간의 노력으로 재현해 놓은 대부분의 토종닭은 멸실하고 말았다. 실로 허망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당시 개발한 닭 중에서 일부가 산간 지역에 살아 남아 있어 서울대 농생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토종닭을 재현하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기름에 튀긴 껍질 맛으로 먹는다는 프라이드 치킨엔 몸집이 작으면서 살진 외래 육계가 더 맛있을 수 있다. 하지만 찜닭은 좀 더 사이즈가 커야 하고 육질도 달라야 한다. 삼계탕, 백숙에는 또 그에 합당한 품종의 닭을 써야 더 맛있지 않을까? 현재 토종닭으로 알려진 품종은 한협3호, 우리맛닭, 천금계 등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토종닭은 일반 육계보다 두 배 정도의 가격을 지불해야 구입할 수 있다. 사료 효율성이 떨어져서 빨리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육계 시장에서 토종닭의 시장점유율은 10% 정도에 그치고 있다. 가격도 비쌀뿐더러 소비자들에게 왜 토종닭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 프랑스의 소비자들처럼 자신의 입맛에 맞는, 또 요리하고자 하는 레서피에 적합한 닭을 골라서 소비하는 문화가 생기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제품에 대한 관여도가 높은 소비자는 기꺼이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한다.

이렇게 소비 감성이 세분화되고 까다로워지면 생산자도 단순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비자에게 더 나은, 또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다른 품종의 닭을, 다른 방식으로 기르기 시작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료값을 덜 들일까라는 질문은 두 번째로 중요한 질문이 되고, 어떤 품종의 닭을,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료로, 어떻게 길러야 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하게 된다. 소비자도 단지 싼 가격의 닭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취향의 닭을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경쟁의 룰이 달라지고, 소비자도, 생산자도 더 행복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된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Food Biz Lab 연구소장 moonj@snu.ac.kr
문정훈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 경영과학과를 거쳐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외 주요 식품기업과 연구소를 대상으로 컨설팅하고 있으며 주 연구 분야는 식품산업 기업전략, 식품 마케팅 및 소비자 행동, 물류 전략 등이다.
  • 문정훈 문정훈 | - (현)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
    - (현) Food Biz Lab 연구소장
    -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
    moonj@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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