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밍과 슬로건 커뮤니케이션 전략
마케팅과 브랜딩은 어떻게 다른가
솔직하게 말하자. 제아무리 미사여구를 붙여 꾸며도 마케팅은 궁극적으로 ‘잘 파는 것’이다. 과격한 표현이지만 어떤 짓을 하더라도 많이 팔 수 있다면 마케팅은 성공한 것이다. 경쟁사의 마케팅 활동을 불법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마케팅이라고까지 하니 말이다. 거기까진 가지 않더라도 보통의 마케팅이란 전통적 의미의 마케팅 구성요소인 4P 믹스를 잘 이용해 많이만 팔면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마케팅의 결과는 숫자로 측정되기 마련이다. 판매량, 매출액, 수익률 등. 극단적으로 말해서 소비자들이 그 브랜드에 대해 무엇을 떠올리게 되든 많이만 팔면 되는 것이 마케팅이다. 그렇다면 브랜딩은 마케팅과 비교해 어떻게 다를까? 브랜딩은 ‘설혹 지금 당장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우리 브랜드 하면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강력하게 떠오르는 무엇인가가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강력하게 떠오르는 연상 때문에 억지로 팔지 않아도 스스로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 브랜딩이 된다. 마케팅은 목표고객의 특정한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다양한 도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소비자가 심정적으로 동의하든 말든 구매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브랜딩은 소비자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우리 브랜드를 인식하게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의미한다. 우리 브랜드가 주는 의미를 받아들이고 선택할 때 망설이지 않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간단하다. 마케팅은 ‘파는 것’, 브랜딩은 ‘남기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현실적으로는 마케팅 활동이 지극히 제한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상정하고 담배를 예로 들어 마케팅과 브랜딩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자. 젊은 층, 특히 학생들에게 시장기회가 있다고 판단돼 ABC라는 신제품을 내기로 했다고 하자. 제품을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풍미를 내도록 하고, 이름도 젊은이들이 좋아하게 감각적으로 짓고, 패키지 디자인도 젊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써서 만든다. 가격도 2000원 정도로 싸게 한다. 촉진 믹스 중 광고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모델을 기용해 만들고 판촉도 학교 주변에서 시연회를 마구 개최하는 식으로 집행한다. 유통도 (물론 바람직한 사례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이렇게 하지는 않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주변 편의점에 집중한다. 이렇게 하면 정말 많이 팔릴 것이다.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분명 성공한 사례다. 이렇게 마케팅하면 단기적으로는 많이 팔리겠지만 ABC란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가 떠올리는 것은 고작해야 ‘젊은 애들이 피는 싼 담배’ 정도가 될 것이다. 브랜딩은 다르게 접근한다. 먼저 ABC 하면 소비자들이 무얼 떠올리게 하는 것이 공감을 많이 얻고 또 기업에도 도움이 될지를 명확히 결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젊은 층이 ‘남자다움’이란 가치에 많이 공감할 것이라고 판단될 경우 ABC 하면 ‘남자다움’이 떠오를 수 있도록 여러 요소를 정리한다. 제품도 남성적인 향기와 마초적인 느낌이 나는 디자인을 채택한다. 가격도 ‘남자답게’ 3000원 정도로 한다. 광고는 남자다운 남자를 상징하는 모델을 써서 진행하고 유통도 거기에 맞춰서 한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처음에는 잘 안 팔릴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히 이런 노력을 지속하면 ABC란 브랜드를 볼 때 고객들은 ‘남자다움’이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남자다움’이란 가치에 공감하는 소비자라면 집 앞에서 쉽게 ABC를 살 수 없을 때 10분 걸어서라도 ABC를 사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브랜딩이다.
브랜딩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다
원래 브랜딩은 마케팅 4P 중 하나인 제품전략에서 ‘제품에 무슨 이름을 붙일까’ 하는 네이밍과 ‘어떤 디자인을 적용할까’ 하는 디자인 작업을 일컫던 말이다. ‘Brand Loyalty’를 상표충성도로 번역하던 시절에는 브랜딩이 네이밍과 디자인 작업이란 기능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요즘에는 상표충성도란 말 대신에 대부분 ‘브랜드 충성도’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브랜드가 ‘상표’와 등치되는 개념을 넘어서는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됐다는 말이 된다. 이 맥락에서 브랜딩은 ‘우리 브랜드의 가치나 의미가 소비자에게 잘 전달되고 왜곡 없이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의미하게 됐다. 브랜딩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일컫는 또 다른 표현의 하나가 된 것이다. IMC(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s)의 개념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브랜딩은 기업의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결정짓는 상위개념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말에는 이제 모두가 공감한다. 하지만 브랜드 전략을 새로 수립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많아졌어도 여전히 브랜드를 상표명이나 식별부호 정도로 인식하고 멋진 이름에 세련된 디자인이 브랜딩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브랜딩은 우리 브랜드 하면 이런 것을 떠올리도록 하겠다는 명확한 목표 인식을 정립하고 소비자들이 그런 목표 인식을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하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보통 성공한 브랜드는 제품력 80에 커뮤니케이션 역량 20 정도가 작용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이 0이 되면 어떻게 될까? 커뮤니케이션이 0이 돼도 제품력 80은 그대로 남아 그만한 가치를 지니게 될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80 정도의 가치가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이는 전형적인 ‘합리성의 오류’다. 커뮤니케이션이 0이면 제품력이 99라도 브랜드 가치는 0이 될 수 있다. 고객들은 브랜드를 평가할 때 품질(Quality)이 아니라 ‘인식된 품질(Perceived quality)’을 놓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제품은 ‘마케팅’해야 하지만 브랜드는 ‘커뮤니케이션’해야 하고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훌륭한 제품이라도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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