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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예능이 들어오면…

이방실 | 119호 (2012년 12월 Issue 2)

 

드라마 업계에서 흔히홍자매로 불리는 홍정은·홍미란 작가. 실제 자매 사이인 이들은최고의 사랑’ ‘미남이시네요등 히트 드라마를 집필한 스타 작가다. 이들의 드라마 데뷔작은쾌걸 춘향(2005)’. 평범한 예능 프로그램 구성작가였던 홍자매를 오늘날 스타 드라마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쾌걸 춘향은 드라마 편성펑크로 급조된 작품이었다. 첫 회 대본을 보고 당시 방송국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드라마의 기본 공식이라고 여겨졌던 명확한 스토리 라인과 갈등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대본에는 시작부터 주인공들이 다짜고짜 휴대폰 때문에 싸움을 벌이는 식의 황당한 설정과 과장된 캐릭터가 존재했다. 예능 프로그램 대본 같은 극본에 다들 어이없어 했지만 갑작스런 공백을 메워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드라마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 드라마는대박이 났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고전인 춘향전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해석, 엽기 발랄한 현대판 춘향이 캐릭터를 탄생시킨 홍자매의 필력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올 하반기 큰 화제를 불러 모았던 케이블TV 드라마응답하라 1997’ 역시 쾌걸 춘향과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드라마를 제작한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등에서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 왔던 예능 프로그램 출신이다. 대개 1인 창작 시스템을 취하는 기존 드라마 제작 방식과 달리 응답하라 1997은 철저한 집단 창작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작품마다 예능 프로그램 회의하듯이 대본을 쓴다는 홍자매처럼 응답하라 1997의 제작진도 작가와 밤샘 회의를 거쳐 대본을 수정, 보완해갔다. 그 덕에 매회 시트콤 수준으로 잦은 웃음 코드와반전 엔딩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쾌걸 춘향과 응답하라 1997은 모두 전통적인 드라마 제작 과정에 예능 코드를 접목해 성공을 거뒀다. 특히 홍자매는 쾌걸 춘향 이후로도 예능 작가 시절의 경험을 십분 발휘해 그들만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출생의 비밀이나 신분의 차이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 기존 드라마의 성공 방정식을 보란 듯 깨뜨렸다. 대신 기상천외한 설정과 톡톡 튀는 에피소드, 풍자와 패러디를 예능에서 빌려 와 드라마에 녹여냈다. 다양한 시각을 접목해 새롭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양성이 창의성의 원천이 되는 건 비단 드라마 제작에서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다. 인사 조직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조직 내 다양성, 특히 성별과 직무 측면에서의 다양성은 팀 전체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가 지배적이다. , 팀 내 여성의 존재는 팀원들 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도와 다양한 아이디어의 생산을 촉진하며 연구개발(R&D), 생산, 영업, 재무 등 서로 다른 직무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한 팀을 이루면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의 공유를 통해 창의성이 증진된다고 한다. 쾌걸 춘향과 응답하라 1997이 예능 작가, 예능 PD 시절의 경험을 끌어와 통념을 뒤엎는 신선한 창작물을 만들어낸 것과 같은 이치다.

새로운 시각을 흡수하는 리더의 포용력과 개방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사실 두 두라마는 모두 제작 초반 주변의 냉소를 받았다. 쾌걸 춘향은이게 무슨 드라마냐는 비난을 받았고 급조된땜질용 드라마답게 출연 배우는 모두 신인이었다. 응답하라 1997도 마찬가지였다. 예능 프로그램만 제작해 온 PD와 작가가 만드는 드라마를 거들떠보는 스타 배우들은 없었다. 사후적으로는 성공적인 캐스팅으로 판명되긴 했지만 신원호 PD가 인기 스타 대신 신인 배우를 기용했던 속사정은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두 경우 모두 운 좋게 세상의 빛을 봤다. 그러나 현실에선 틀에 박힌 사고와 편견 때문에 조직 내에서 사장되는 아이디어들이 많다.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는 것만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리더가 있다면 큰 오산이다. 기존 틀을 깨는 아이디어, 통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열린 마음으로 흡수하려는 개방적 태도와 포용력이 없다면 다기능팀(multi-functional team)을 조직했다 해도 조직 내 창의성이 발현되기는 어렵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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