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etter Choosing Experience

맞춤식 추천 으로 선택의 폭 좁혀주기

74호 (2011년 2월 Issue 1)

세계 최대 아이스크림 체인점인 배스킨라빈스는 1953년 처음 문을 열면서 ‘하루 한가지씩 매일 다른 맛’의 31가지 아이스크림을 내놓았다. 당시로선 신선한 발상이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31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은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상품이었다.
 
배스킨라빈스는 이 기발한 전략으로 경쟁사를 압도했다. 배스킨라빈스의 공동 창업자인 어빈 로빈스는 “우리가 고객에게 파는 건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재미”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 재미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눈과 입으로 맛보는 데 있었다. 배스킨라빈스는 지금도 다양성을 강조한다. 현재까지 개발한 아이스크림 종류만 해도 1000여 종이 넘고, 보통 연간 100여 종을 순서대로 바꿔가면서 매장에 내놓는다.
 
이처럼 오늘날 소비자의 선택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선택의 다양성이란 개념은 이제 예전만큼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1949년 미국의 평범한 식료품점에서 제공하는 물품의 종류는 3700여 가지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에는 무려 4만 5000종이 넘는다. 월마트에는 평균 10만 종의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 매장으로 발길을 돌리면 더 광대한 선택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는 2700만 종의 책이,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인 매치닷컴에는 1500만 명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식품업체 하인즈는 ‘57종류’로 오래도록 명성을 유지했다. 버거킹은 ‘원하시는 대로 해드립니다’라는 말로 고객에게 다가갔다. 최근 등장한 업체들은 한술 더 뜬다. 스타벅스는 이론 상 고객의 주문에 따라 총 8만 7000여 가지 음료를 만들 수 있다. 최근 출시된 ‘어떻게 원하시든 해드리는(However-You-Want-It)’ 프라푸치노 한 종류만도 고객의 취향대로 수천 가지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 콜드스톤 크레머리는 무려 1150만 가지 방식으로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 믹스를 제공한다. 배스킨라빈스의 31가지 맛에 깜짝 놀라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즉, 이제 선택의 다양성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지금보다 선택권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소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선택안이 많으면 무조건 좋기만 할까?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때로 선택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선택안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에도, 원하는 제품을 찾아서 구매하는 만족스러운 상황보다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구매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상황이 점점 자주 일어난다.
 
때문에 어떤 기업이 이미 다양한 선택안으로 가득찬 시장에다 더 많은 선택안을 내놓아봤자 절대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없다. 오히려 소비자들 편에 서서, 이들의 고통스러운 선택 과정을 긍정적이고 부담 없는 경험으로 바꿔준다면 경쟁자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 소비자들의 선택 과정을 돕는 시스템을 창조적으로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선택 시스템은 소비자를 부적절한 선택으로 유도하고 기만해서는 결코 안 된다.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 유익한 협력 방식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업이 ‘소비자 안내를 하겠다’고만 해도 그 저의를 의심하는 일이 다반사다. 때문에 선택의 문제만큼은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를 돕겠다는 기업의 진정성이 드러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음 4가지 방안, 즉 선택안의 가짓수를 줄이거나, 전문가 혹은 소비자별 맞춤식 추천으로 신뢰를 얻거나,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선택안을 범주화해 제공하거나, 복잡한 선택안을 제시할 때는 점진적 방안을 사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은 경쟁업체를 앞서 나갈 수 있다. 소비자를 선택의 늪에 빠지게 하기보다 그들에게 만족도가 높은 선택을 하게 함으로써 정상에 서는 기업은 흔치 않다. 때문에 이 부분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면 다른 기업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

객관식의 함정
199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주 멘로 파크에서 행해진 시나 아옌가의 구매자 선택 연구를 보자. 연구가 이뤄진 곳은 드래저스(Draeger’s)라는 전문 식료품점으로 이곳에서 판매하는 농산물, 포장 식품, 와인 종류는 어마어마했다. 개인적으로 드래저스로 장보러 가는 일을 즐기던 아옌가는 어느 날 자신이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빈손으로 집에 오는 일이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유는 수백 가지 종류 중 그녀의 마음에 드는 겨자 소스나 올리브 오일을 고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옌가는 혹시 다른 쇼핑객들도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지 않은지 궁금해했고, 곧 연구를 시작했다.
 
아옌가와 동료인 마크 레퍼는 드래저스 매장 입구 근처에 잼 시식대를 설치했다. 이들은 24가지 잼을 진열했을 때와 6가지 잼을 진열했을 때, 어느 쪽이 더 많은 고객을 유인하고 어느 쪽이 더 매출 신장에 기여하는가를 파악하려 했다. 쇼핑객들이 시식대에서 잼을 맛본 후, 제품이 진열된 곳으로 움직이도록 동선을 구성했다.
 
24가지 잼이 있을 때, 제품 코너로 들어오는 쇼핑객은 시식 고객 중 60%였다. 6가지 잼이 있을 때 코너에 들어오는 쇼핑객은 시식 고객 중 40%였다. 소비자가 더 많은 선택안을 좋아할 거라는 일반적 예상과 동일했다. 그렇지만 제품 코너에서 실제 잼을 구입한 고객의 비율은 달랐다. 잼 코너에 들어선 쇼핑객들이 실제로 제품을 집어 드는 비율을 파악하자 상황은 사뭇 달라졌다. 24가지 잼이 있을 때, 제품 코너로 들어온 쇼핑객 중 실제 구매를 한 비율은 불과 3%였다. 반면, 6가지 잼이 있을 때는 실제 구매를 단행한 고객 비율이 무려 30%였다. 24가지 잼 시식이 더 많은 쇼핑객을 제품 코너로 유인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6가지 잼 시식을 거쳤던 쇼핑객의 구매율이 6배나 높았던 셈이다.
 
쇼핑객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은 연구자들은 시식 코너에 있는 적은 가짓수의 샘플이 선택 규모를 줄여줬다는 점을 알아냈다. 또 많은 제품 수가 고객들에게 혼란을 안겨주고 어떤 제품이 더 좋은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도 파악했다.
 
이 연구 결과는 이제껏 우리가 갖고 있던 소비자에 대한 이해와 다를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점을 좋아한다. 처음 느껴보는 맛의 잼을 발견했다거나, 다채로운 잼이 선반 가득 진열된 모습은 분명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선택안이 많다는 건 소비자에게 구매 과정에서 자신이 더 큰 통제력을 갖는다는 느낌을 준다. 선택안이 많을수록 자신에게 꼭 맞는 제품을 찾을 확률이 높아지기도 한다. 즉 소비자들은 선택안이 많을 때 상황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과 만족감이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비자가 간과하고 있는 점은 선택안을 다룰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다. 많은 심리학 연구 결과는 비교 대상이 7가지를 넘어가면 소비자가 제품별 특징을 비교한 후 각각의 차이점을 찾아내는 일이 몹시 어렵다는 점을 입증한다. 선택이라는 작업과 마주할 때, 사람들은 종종 과도한 압박에 쫓겨 통제력을 상실하고 좌절감에 빠진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아예 선택하는 권리 자체를 포기한다. 혹은 기존의 익숙한 방안을 고르거나, 만족하지 않을 게 뻔한 데도 타협하고 만다.
 
심지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중요한 결정에서도 ‘과다한 선택 압박’에 휘둘려 좌절에 빠진 대응으로 일관하는 사례도 있다. 2001년 시나 이옌가, 그녀의 동료 웨이 지앙, 구르 후버만은 미국 금융회사 뱅가드 그룹(Vanguard Group)의 스티브 우트쿠스 은퇴 연구 센터장의 의뢰로 뱅가드의 확정기여형(DC, Defined Contribution) 퇴직연금제도에 관한 연구를 실시했다. 이들은 대표적인 DC 형 연금인 미국 직장인연금 즉, 401(k)의 가입자 수가 전체 90만 명 직원 중 소수에 불과한 이유를 연구했다.
 
분석 결과, 연금 가입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401(k)의 자기 적립금을 운용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금융상품의 가짓 수가 늘어난 탓이 컸다. 연령, 소득 등 가입자별 각종 변수와 기업의 규모와 사용자 보조금과 같은 연금 차원 변수의 영향력을 차단한 결과, 연구자들은 평균 가입률의 감소는 선택안의 증가 때문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실제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이 제시하는 운용 상품이 2가지였을 때는 가입대상 근로자의 75%가 이 연금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 수가 59가지로 확대되자 참여율은 61%로 떨어졌다.
 
복리, 세금감면, 사용자 부담금 등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막대한 이점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연구 성과는 특히 눈 여겨 볼 만하다. 근로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 금융상품 중 아무거나 고른다 해도 일단 퇴직연금에는 가입하는 편이 가입하지 않는 편에 비해 훨씬 이익이다. 이 연구가 진행되던 시점을 기준으로 평균 급여를 받고 있는 두 명의 25세 근로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자신의 수입 5%를 주식 채권 혼합형에 총 연간 수익률9%로 넣어두는 방식으로 401(k)에 가입한 근로자와 그보다 1년 늦게 가입한 동료 근로자가 60세에 가서 받는 연금은 무려 1만 8540달러가 차이 난다. 이렇듯 연금 가입에 따른 혜택이 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근로자들이 적립금 운용 상품의 선택안이 너무 많은 탓에 결정을 미루거나, 아예 가입하지 않고 있었다.
 
아옌가와 에미르 카메니카는 별도의 연구를 통해 운용 수익률이 최악인 상품을 고른 근로자들이 평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운용상품 가짓수가 더 많았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숫자가 10가지 늘어날 때마다 주식형 펀드 불입률은 채권이나 머니마켓 펀드에 비해 3.28% 낮아졌다. 아예 주식형 펀드에 기여금을 할당하지 않으려는 성향도 나타났다. 이는 근로자들에게 불운한 선택이다. 현실적으로는 주식이야말로 장기적 관점에서 채권이나 머니마켓 투자를 능가하는 초과 수익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공격적 투자가 가능한 20대 근로자들은 연금 불입 금액의 8090%을 주식에 할당해야 장기적으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음에도, 운용상품 가짓수가 늘어나면서 주식을 기피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택은 장기적으로 이들의 재정 상태를 악화시킬 게 뻔하다.
 
과다한 선택안의 폐해는 초콜렛을 사는 일부터, 구직활동이나 의료 보험의 선택까지 다양한 사례에서 관찰된다. 때문에 이는 기업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이 기회를 적절히 활용하려면 소비자 선택을 둘러싼 모순적 상황을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사람들은 늘 선택안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기업은 쉬지 않고 제품과 서비스 선택폭을 늘려감으로써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기업의 이러한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득보다 실이라는 점이 문제다.

자신감, 신뢰, 재미
그렇다면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기업은 소비자가 원한다고 겉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원하는 걸 제공해야 한다.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소비자가 있을 때, 이들이 진짜 원하는 건 상품의 가짓수가 아니라 더 나은 선택 경험이다.
 
선택 과정에서 소비자는 스스로 원하는 바를 알고 있고 원하는 것을 선택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자신이 한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싶어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소비자는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어한다. 기업은 이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 배스킨라빈스의 어빈 로빈스가 말했듯 소비자가 원하는 건 ‘재미’다. 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게 바로 기업의 소명이다. 다음 4가지 방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선택의 가짓수를 줄여준다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는 말은 유명하다. 하지만 소비자의 선택에 관한 문제에서는 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경쟁업체에 진열공간을 넘겨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제품 수를 줄이는 일만은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계획적으로 제품 가짓수를 줄이면 비용은 줄이고 매출은 늘리면서 고객에게는 더 나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프록터 앤드 갬블(Procter & Gamble)은 비듬 방지 샴푸 종류 26가지 중 11가지의 잘 안 팔리는 제품을 없앴다. 놀랍게도 이후 매출이 10% 증가했다.
 
골든 캣 코퍼레이션(Golden Cat Corporation)의 사례도 유사하다. 이 업체는 소형 고양이 깔개 중 인기 없는 10가지를 없앴다. 매출은 12%가 늘고 유통 비용은 절반으로 줄었다. 순익은 놀랍게도 87%나 증가했다. 2001년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를 찾아 볼 수 있다. 한 온라인 식료품점은 전체 제품군의 94%에서 제품 수를 과감하게 줄였다. 그 결과, 42개 제품의 평균 매출이 11% 늘었다.
 
고객에 대한 제품 설명이나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품 교육이 힘들어지는 순간도 제품 가짓수를 줄여야 하는 시점이다. 매출이 저조한데 그 원인이 불분명하다면, 일단 포커스 그룹이나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유용한 정보를 간추려 볼 수 있다. 포커스 그룹의 잠재 고객들은 제품의 가장 주요한 특징을 포착한 후, 그 특징이 왜 실제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지, 이어지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사람들의 반응이 모호하거나 관심이 없어 보이면 해당 기업의 제품 군에는 별 차이점이 없다는 뜻이다. 즉 제품 수를 줄여야 할 시점이다.
 
추천을 통해 제품을 선택하는 고객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선택 가짓수를 줄이는 작업은 제품군 안의 다양성이 비교적 적을 때 효과가 특히 좋다. 그렇지만 도서, 음반, 비디오, 다수의 가정용품처럼 차별점이 확연히 드러날 때는 제품 군의 축소만으로는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실제 그렇게 하는 일도 쉽지 않다. 도서, 음반시장은 고객별 취향이 상당히 다르고, 소수 세분시장의 구매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 가짓수를 다양하게 유지하는 동시에, 고객의 쇼핑 과정을 잘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고객이 선택이라는 망망대해를 잘 빠져 나올 수 있다. 복잡다단한 선택의 가짓수에 짓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걸 골라 나오고 싶은 소비자를 돕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이미 그러한 자신감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 즉 전문가의 조언에 기대는 방안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가는 연구와 실전을 통해 입수된 정보를 단순화, 범주화, 순위화할 수 있다. 이로부터 일정한 패턴을 인지해내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일견 무질서하게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일련의 질서를 읽어내는 안목이 있다. 8수 앞을 내다보는 체스 선수는 종종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의 숫자만큼 많은 ‘경우의 수’와 직면한다. 아무리 우수한 체스 선수라 해도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낼 수는 없다. 베테랑과 신참내기의 차이는 ‘경우의 수’ 중 필요 없는 수를 빨리 추려내고 가장 좋은 수에만 집중하는 능력이다. 신참내기 선수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주는 압박에 종종 눌린다. 하지만 노련한 선수는 이 부담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렇듯 선택 안의 가짓수가 많은 고선택 상황(high-choice condition)에서 이상적인 소비자는 가장 전문가적인 소비자다. 여기서 전문가란 반드시 특정 제품에 대해 깊은 지식이 있다는 점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전문가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잼이나 적립식 펀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의 지식은 특정 분야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전문가가 자신의 장기를 발휘할 수 없는 상황도 많다. 즉 미숙한 소비자도 전문가처럼 선택 조합의 순위를 정하고 구조화하는 방안을 습득하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업의 역할은 전문가의 평가와 추천 정보를 이들 소비자가 손쉽게 입수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일이다. 그래야 제품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소비자도 즉각 필요한 지식을 갖춰 자신감 있게 구매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즉 기업은 소비자가 제품 선택 과정에 소요되는 정보처리 과정의 대부분을 생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고객층을 늘려가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은 인지적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돼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추천하거나 신뢰할 만한 출처에서 나왔다면 비전문적인 의견도 유용할 수 있다. 구매자 평을 공개하는 아마존, 일부 제품의 추천 평을 게재하고 있는 식품체인 홀푸드(Whole Foods)나 페어웨이(Fairway)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다.
 
고객 기호가 다양하거나, 추천 및 평점이 별로 없을 때는 소비자가 공표한 선호도에 근거해 쇼핑 목록을 제안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마련할 수도 있다. 전자 대리인(electronic agents)이라고 불리는 이 자동화 시스템은 고객의 기존 구매 패턴이나 설문 조사 응답 내용을 분석해서 적절한 제안 목록을 내놓는다. 만일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선호 요인 등의 정보를 제공하면, 전자 대리인은 맞춤식 전문가가 돼 이들을 위한 구매 활동에 나선다. 물론 전자 대리인에 높은 신뢰를 가지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자 대리인 시스템의 성과가 나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고객 신뢰도 높아진다.
 
좋은 예가 바로 ‘청취자가 좋아하는 음악만을 송출하겠다’는 명제를 지닌 인터넷 라디오 서비스인 판도라(Pandora)다. 듣고 싶은 음악을 직접 선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판도라를 월 평균 12시간 이상 청취하는 사람은 무려 5000만 명이 넘는다. 판도라는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해서 인간의 전문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방식으로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일단 전문 훈련을 받은 분석가가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곡 전체의 음악 특성을 분석한다. 판도라에서는 이를 ‘음악을 위한 게놈 프로젝트(Music Genome Project)’라 부른다.
 
이 시스템은 청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알려 주면, 시스템은 비슷한 특성을 지닌 음악을 검색해 들려 준다. 청취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선별된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에, 판도라 시스템은 선곡이 청취자의 취향에 얼마나 잘 맞는지를 다시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판도라 시스템은 청취자의 음악 취향을 더 잘 알게 된다. 이 과정이 거듭되면 청취자는 더 이상 자신이 선호에 대해 일일이 판도라 측에 알려줄 필요가 없다. 그저 소파에 편히 기대 판도라가 틀어주는 음악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선택 숫자를 범주화한다 미숙한 고객을 돕는 방법은 또 있다. 전문가의 판단을 따라 할 수 있도록 고객을 훈련시키면 된다. 전문가가 봤을 때,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독창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제품들은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특징을 모아 독창적으로 조합해낸 제품들이다. 따라서 미숙한 소비자가 100가지 제품을 눈앞에 늘어놓고 망설인다면, 전문가적 소비자는 상호 연관된 78가지의 중요한 성질을 파악해내고, 그 중 가장 중요한 한두 가지를 대번에 찾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미숙한 소비자에게 전문가들이 보는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일이 효과적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범주화다. 2009년 와인 전문지 <와인 엔투지에스트(Wine Enthusiast)> 선정 최고의 와인 판매점으로 꼽힌 베스트셀러스(Best Cellars)는 고객에게 와인전문가의 컨설팅을 제공함으로써 와인 선별의 고통을 단숨에 날려줬다. 와인 쇼핑에 나선 고객은 일단 베스트셀러스측 와인전문가의 도움으로 적절한 가격대의 우수한 와인 100종을 선별한다. 물론 와인 100종 역시 고객에게는 적지 않은 숫자다. 때문에 베스트셀러스는 이를 다시 ‘거품형’ ‘주스형’ ‘달콤형’ 등의 8가지 범주로 묶는다. 고객 입장에서는 이제 8가지 범주를 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유형을 선택한 뒤에 개별 와인의 라벨을 꼼꼼하게 읽고서 최종적으로 선택하면 된다.
 
베스트셀러스와 다른 유형의 범주화 기준을 가진 와인 전문가도 이와 같은 선별 과정 자체는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을 정도다. 소매점에서도 와인을 유형별로 묶어서 소비자에게 제시하면 와인 구매 경험이 많지 않은 소비자들도 전문가의 시각에서 와인 쇼핑에 나설 수 있다. 베스트셀러스의 창업자 조슈아 웨손은 “이런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누구라도 단순한 걸 좋아한다. 우리는 와인 쇼핑이 와인을 마시는 일만큼이나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재미있는 점은 베스트셀러스의 이 전략은 배스킨라빈스가 전성기 시절 보여준 신선한 발상과 꼭 같다는 사실이다. 베스트셀러스나 배스킨라빈스 모두 고객에게 선택의 즐거움을 제공함으로써 성공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선택의 폭을 늘렸지만, 현재는 줄였다는 점이다.
 
선택 과정의 단순화를 위해서는 제품 유형의 총수는 20가지를 초과해서는 안 되며 개별 유형은 10개 이하의 제품으로 묶여 있어야 한다. 이 범위 안에서는 소비자들은 선택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즐긴다. 빠뜨린 것을 놓치지 않는 예리함도 보인다. 아옌가, 카시에 모글리너, 타마르 루드닉 등 연구자들은 웨그먼스(Wegmans) 슈퍼마켓의 잡지 진열대를 연구하면서 진열된 잡지의 수(지점에 따라 331종에서 664종)와 구매자 만족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 바 있다.
중요한 점은 이들 개별 잡지를 묶어주고 있는 범주(category)의 총수였다. 즉 ‘건강&피트니스’와 ‘가정&정원’ 코너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는 뜻이다. 보유 잡지의 가짓수가 실제로는 더 적더라도 범주의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소비자의 눈에는 더 많은 잡지를 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착시 효과를 활용하고 있는 웨그먼스 슈퍼마켓을 찾은 소비자들은 이곳에서의 잡지 구매에 대해 전반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어떤 소비자들은 스스로 원하는 제품을 분류할 능력이 한참 부족할 수도 있다. 이때는 기업이나 소매점에서 설정한 범주가 좋은 가이드라인이 된다. 소비자들 스스로 엄청난 선택 가짓수에 질려버릴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분류화는 전문가들이 제품을 구분하는 차별점에 주로 주목하기에, 분류화 작업 자체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구매 과정을 통해 소비자는 해당 제품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자신의 취향을 발전시켜 나간다.
 
복잡성을 견뎌낼 수 있게 소비자를 단련시킨다 어떤 결정은 소비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기존 구매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유용할 때가 있다.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할 때 특히 그렇다. 이에 관해 아옌가, 조너선 레바브, 마크 히트만, 안드레아스 허만 등의 연구자들이 대형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와 공동으로 펼친 연구 작업을 보자. 이 자동차 제조업체는 신차 디자인을 고객에게 맡겼다. 고객에게 엔진에서 백미러까지 다양한 선택안을 주고 고르게 했다. 연구자들은 총 8번의 선택 과정을 고객 집단별로 순서를 바꿔서 제시했다.
 
한 집단은 우선 실내와 실외 색상을 선택해야 했다. 이들은 각각 56가지와 26가지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했다. 여기에 각각 4가지로 한정된 실내 장식과 기어변속 방식까지 추가로 골라야 했다. 연구진은 다른 집단에는 동일한 선택안을 다만 순서만 바꿔서 제시했다. 즉 선택 가짓수가 적은 디자인 요소를 먼저 제시하고 다음에 가짓수가 제일 많은 종류를 선택하게 했다.
 
두 집단 모두에 총 8개 범주 144개의 선택 가짓수가 제시된 셈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고선택 상황에서 저선택 상황으로 진행한 고객 집단이 훨씬 더 힘들어 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모든 가짓수를 꼼꼼하게 분석하며 선택에 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친 나머지 포기하고 기본 사양을 선택해버렸다. 그 결과 저선택 상황에서 고선택 상황으로 진행한 사람들보다 선택한 차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낮았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점은 ‘얕은 물에서 서서히 깊은 물로 옮겨 갈 때는, 소비자가 그 과정에서 선택하는 안목도 키우고 배짱도 두둑해지기 때문에 선택 숫자가 늘어나도 부담이 덜하다’는 사실이다. 더 적은 가짓수에서 시작하는 일은 운동 시작 전에 몸을 푸는 일과 같다. 소비자 스스로 자신의 취향을 자각하고, 선택의 부담도 덜면서 더 나은 구매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선택 경험이 반복되면서 선택의 기술이 향상되면, 훨씬 복잡한 선택 상황에서도 소비자들은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한다.
 
공개 초대장
많은 기업은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원한다. 소비자의 참여는 온라인 네트워크나 소셜 미디어 같은 신기술을 통해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구매 경험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다. 이때 기업이 추구하는 마케팅의 목표가 소비자가 그들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을 제공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바로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상생 관계를 소비자에게 제시하고 이들을 그 관계 안으로 초대하는 데 둬야 한다.
 
기업은 고객에게 구매 경험을 제시할 때 자신들이 고객의 시각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고객이 복잡하고 낯선 선택의 환경 속에서도 복잡성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을 통제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다는 점을 기업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기업은 단기적으로는 갈 길을 몰라 당황하고 있는 고객을 도와 이들이 너무나 방대한 선택의 소용돌이를 잘 헤쳐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들의 최종 목적지가 해당 기업과의 관계 맺기로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나 아옌가(Sheena Iyengar)는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과 교수로 대통령이 수여하는 젊은 연구자상(Early Career Award)을 수상했다. 이 글은 그녀의 저서 <선택의 기술(The Art of Choosing)>(Twelve, 2010)에서 가져왔다. 카니카 애그러월(Kanika Agrawal)은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조교로 컬럼비아 대에서 작문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았다.
 
편집자주 이 글은 컨설팅회사 부즈 앤드 컴퍼니가 발행하는 경영전문 계간지 strategy+business 2010년 겨울호에 실린 시나 아옌가, 카니카 애그러월의 글 ‘A Better Choosing Experience’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www.strategy+business.com
동아비즈니스리뷰 337호 ESG 2.0 and beyond 2022년 0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