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 창에 ‘통큰치킨’을 입력하면 경기 의정부 시의 한 치킨집 홈페이지 사이트가 나온다. 홈페이지 간판은 ‘통큰치킨’이다. 하지만 치킨 값은 프라이드 1만2000원, 양념 1만3000원. 지난해 연말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외신에까지 소개됐던 롯데마트의 5000원짜리 그 ‘통큰치킨’은 아니다. 이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누리꾼들의 하소연도 적지 않다.
“혼자 사는 자취생이라 통큰치킨이 저한테 준 행복감은 남달랐습니다. 아침마다 줄서서 통큰치킨을 6번 사먹었네요. 식사 한 끼 값으로 고단백 치킨을 먹었다는 행복감에 그날 하루도 웃으며 잠들었었는데. ㅠ_ㅠ 이젠 치킨 먹는 일이 연중행사가 될 듯하네요. (중략) 가서 보면 대부분이 저처럼 빈곤한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던데, 그분들한테 준 행복을 빼앗아간 그대는 누구인가요?”
시장에는 매일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줄을 서서 상품을 구매하고, 구매 뒤 행복감에 젖는 일은 매우 드물다. 애플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첨단 제품이나 루이비통처럼 고가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치킨이 이 같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만큼 싸고 질 좋은 상품에 대한 저소득층 소비자의 욕구가 강렬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욕구가 해소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통큰치킨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경영전략 전문가들은 최근 저소득층(BOP·Bottom of the Pyramid)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인도, 아프리카, 남미 등 신흥시장의 상류층 외에도 절대 다수의 저소득층을 눈여겨보고 있다.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세계 40억 명도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 여기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저소득층은 상품과 서비스 시장에서 소외되지 않고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이 개념은 이제 도시 빈민, 분쟁지역과 낙후지역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싸구려 제품을 팔라는 얘긴 아니다. BOP 전략은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 기능과 품질을 희생한 싸구려 제품으로는 BOP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그들의 생활 습관, 문화, 구매력에 기능을 최적화하고 가격을 낮춘 ‘착한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타깃 소비자와 고객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현지화한 맞춤형 처방을 내놓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 일어나야 한다. 새로운 혁신과 이에 맞서는 대응 전략도 모두 디자인 사고를 통해 나올 수 있다.
1990년 베트남에서는 5세 이하의 아이 중 65%가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정부가 지원에 나섰지만, 외부의 도움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었다. 제리 스터닌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내부에서 답을 찾았다. 스터닌 교수는 가난하지만 영양상태가 양호한 아이들, 즉 ‘긍정적 예외들(Positive Deviants)’을 찾아내 관찰했다. 이 아이들은 주변 논에 서식하는 작은 새우, 게, 달팽이나 고구마 줄기 등을 먹었다. 일반 베트남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먹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이들은 매일 조금씩 자주 먹었다. 위가 작아져 더 많은 음식을 더 잘 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터닌 교수는 이 ‘긍정적 예외들’의 요리법과 식생활을 보급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시행 첫해 이 프로그램에 등록한 저소득층 아이들의 80%가 영양실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역사회 내부에서 베트남과 같은 상황에서만 통할 수 있는 창의적 해법을 찾아낸 것이다. 이는 디자인 싱킹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논란이 된 ‘통큰치킨’은 어쩌면 할인점의 ‘미끼상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이 상품에 열광했다. 소비 양극화 시대에 가격과 품질을 동시에 추구하는 ‘착한 혁신’이 그만큼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외부압력에 떠밀려 서둘러 봉합된 ‘통큰치킨’ 논란의 결말이 아쉽다. 시장 어딘가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담고 있는 ‘긍정적인 예외’가 분명 있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