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브랜드의 일생을 사람의 일생에 비유한다. 브랜드가 탄생하고 성장하며, 쇠퇴하고 사멸하는 것이 사람의 인생과 비슷하기 때문에 생겨난 비유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브랜드도 성장하면서 내부적·외부적으로 많은 변화를 맞게 된다. 브랜드의 생명력을 지속시키려면 이때마다 브랜드를 변화시켜 새로운 상황과 지위에 걸맞은 브랜드로 바꿔야 한다. 즉, 리브랜딩(Rebranding)은 브랜드 관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리브랜딩은 브랜드 리뉴얼(Renewal), 리포지셔닝(Repositioning) 등을 통해 새롭고 차별화된 브랜드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활동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리브랜딩을 하는 게 바람직한가? 기존 브랜드의 사례들을 통해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제품 브랜드와 기업 브랜드의 리브랜딩
제품 브랜드와 기업 브랜드의 리브랜딩은 나눠 생각해봐야 한다. 리브랜딩 활동을 제품 브랜드와 기업 브랜드로 나누는 이유는, 이 두 브랜드 간에는 성장 과정 시 맞게 되는 환경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제품 브랜드는 하나의 제품이나 제품군을 담당하는 브랜드로서 대부분의 고객이 제품 구매자들이다. 제품 브랜드의 특성은 대부분 제품의 성능이나 품질에 좌우되며 브랜드 정체성도 이를 기반으로 개발·개선된다. 제품 브랜드의 리브랜딩 역시 이러한 고객의 니즈나 제품의 성능 변화 등으로 야기되는 사례가 많다. 반면 기업 브랜드는 기업이나 기업군 전체를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하위에 많은 제품 브랜드나 패밀리 브랜드를 포괄한다. 이러한 기업 브랜드는 특성상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 층이 다양하다. 구매 고객뿐 아니라 일반 대중, 정부, 비정부기구, 투자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맞물려 있다. 따라서 리브랜딩을 포함한 브랜드 전략을 수립 할 때는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 브랜드의 리브랜딩은 언제 행해지는가?
기업 브랜드의 리브랜딩은 기업 내부의 전략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 하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행해진다. 기업 간 인수합병(M&A)이나 제휴 등을 통해 사업 전략이나 구조, 포트폴리오가 변경됐을 때 이를 반영하기 위해 리브랜딩을 고려할 수도 있다.
기업 브랜드의 리브랜딩 시점을 찾기 위해서는 기업의 성장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이 성장하면서 거치는 다섯 가지 단계와 네 가지 위기 상황을 미리 알고 있는 게 유용하다. 래리 그레이너는 197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논문에서 “조직은 성장하면서 창의성, 관리, 권한 위임, 협의, 상호 협력에 의한 성장 단계 등 5단계를 거치게 되며 각각의 단계 사이에 리더십, 자치(Autonomy), 통제, 관료화의 위기 등 네 가지 위기를 맞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리더십의 위기는 창업자가 커진 조직을 혼자 힘만으로는 지휘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을 말한다. 이때 기업은 전문경영 체제를 도입해 위기를 해결하고 다음 단계인 관리에 의한 성장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렇게 각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면서 기업 지배구조나 문화에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위기 상황이 기업브랜드 리브랜딩의 기회가 될 수 있다.(그림1)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국내 그룹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던 그룹 이미지 개선 작업은 창의성에 의한 성장 단계에서 관리에 의한 성장 단계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중앙집권적 통제기구 설치 시 발생한 리브랜딩의 대표적인 예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당시 국내 주요 그룹들은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들을 계열사로 편입해 그룹으로서의 위용을 갖추려고 했다. 럭키화학과 금성사가 합쳐 이루어진 럭키금성 그룹, 한국 이동통신과 유공을 인수한 선경 그룹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후 럭키금성그룹은 LG그룹으로, 선경그룹은 SK그룹으로 기업명을 교체하고 새로운 로고와 심벌을 개발해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리브랜딩 작업을 통해 이들 그룹은 소속 자회사들의 일체감을 제고하고 그룹의 규모를 강조하는 등의 효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발전단계 이론에 비춰볼 때 이들 기업이 관리에 의한 성장 단계에서 자율성을 요구하는 권한위임의 단계로 진화하게 되면 또 다른 리브랜딩 기회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LG그룹에서 GS그룹이 분리 독립해 새로운 브랜드를 탄생시킨 것이나, 최근 삼성그룹이 계열사 임직원들의 명함 색상을 업종별 특성을 살려 다르게 한 시도(예: 전자 계열사는 옅은 파란색, 중화학 계열사는 은색 등) 역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리브랜딩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부정적 이미지 개선을 위해 브랜드를 교체한 사례로는 필립모리스를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담배 생산 업체로서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잇단 소송에 휘말리자 부정적인 여론에 대응하고 기업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기업 명칭을 알트리아로 변경했다.
기업 리브랜딩이 언제나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는 것만은 아니다. 시장 상황과 사업 전략을 반영하기 위해 비교적 소규모의 변경을 거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IBM과 GE를 들 수 있다. 이들 기업은 둘 다 미국 기업의 역사를 증명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원래는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과 General Electric이라는 기업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 제품 및 사업 구조가 변하자 머리글자만 딴 명칭으로 변경한 후 사업 환경 및 목표 고객의 니즈에 따라 서체, 컬러 등 시각적 측면에서 전달 메시지를 바꿔 왔다.(그림2) 특히 GE는 최근 ‘애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생태계를 뜻하는 ‘ecology’와 상상력을 뜻하는 ‘imagination’의 합성어)으로 대표되는 환경 경영 및 창의성 위주의 경영을 강조하면서 원래 검은색이었던 모노그램의 주 색상을 청색으로 변경했다. 사업 비전 및 전략 변화에 따라 적절한 변화를 추구함으로써 브랜드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한편 주력 사업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게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리브랜딩 사례라 할 수 있다.
좀 더 역동적이고 거대한 외부 변화에 따라 리브랜딩을 한 사례도 많다. 이들은 대부분 M&A 등을 통해 기업의 사업 구조와 사업 방향이 변경되거나 강력한 외부 영향에 의해 기업이 분할 또는 없어지는 등의 변화가 생겼을 때 이뤄진다.
대표적인 예로 AT&T를 들 수 있다. AT&T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큰 공기업 중의 하나였으나 당국의 독점규제 조치로 회사가 분할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이 조치에 따라 ‘엄마 벨(Ma Bell)’로 불리던 AT&T와 ‘아기 벨(Baby Bell)’로 통하던 7개 지역 전화 회사가 탄생했다. 당시 7개 지역 전화 회사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은 SBC를 비롯해 버라이즌, 벨사우스, 퀘스트 등 4개 회사다. 이후 AT&T는 2005년 AT&T의 7개 지역회사 중 하나인 SBC커뮤니케이션스에 인수됐다. SBC는 비록 인수기업이긴 했지만 새 회사의 브랜드명으로 인지도가 높은 피인수기업의 브랜드 AT&T를 이용하기로 했다. 새롭게 태어난 AT&T는 2006년 벨사우스, 싱귤러, 엘로우스페이지스닷컴을 인수한 후 현재 미국 유무선, DSL(디지털가입자회선) 인터넷 분야에서 미국 내 1위 사업자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