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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고객, 안전한 관리...보험의 지혜

57호 (2010년 5월 Issue 2)

20082009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와 보험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AIG가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구제금융을 떠올릴 것이다. AIG는 투자은행들이 발행한 부채담보부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이라는 금융자산에 대해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으로 자산 가치가 하락할 때 일정 금액을 보상해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Credit Default Swap)라는 증권을 판매했다. CDS는 일종의 보험 상품으로 판매자는 보험료에 해당하는 CDS 프리미엄을 받고, 대가로 CDO가치 하락 시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계약이다.
 
AIG와 관련된 논의나 비판은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많은 비평가나 학자들이 의견을 개진해 온 사항이기에, 이 글에서 반복해서 살펴볼 의도는 없다. 대신 그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해 왔던 보험의 근본 기능과 역할에 대해 알아보고, 건전한 금융시장의 구도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한다.
 
전통적 보험 계약의 주요 특징
넓은 의미로 보험은 위험 혹은 불확실성에 직면한 개인이나 조직이 이를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통칭한다. 이 위험은 자연재해 같은 자연 현상으로부터 초래되는 자연적 위험과 다양한 거래나 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인위적 위험까지도 속한다. 보험 계약은 보험 계약자(보험 구매자)와 보험자 사이에 체결되는 약속이다. 보험계약자는 일정한 보험료의 지불을 약속하고, 보험자는 그 대가로 보험계약자에게 일어나는 손실을 보상해주는 게 계약의 골자다.
 
전통적 보험 계약의 주요 특징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하나의 보험자가 다수의 보험 계약자와 보험 계약을 한다. 이를 풀링(pooling)이라고 한다. 풀링을 통해 단위 당 평균 위험이 감소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보험자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풀링은 평균 위험을 통계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 때문에 전체의 위험이 줄지는 않는다. 즉, 보험자가 보험 계약자의 위험에 대해 신중하게 인수하고 관리할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사람들이 건강 보험에 가입하려 할 때 보험회사가 까다롭게 계약자의 건강 상태나 과거 병력 등을 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피보험 이익(insurable interest)을 강조한다. 피보험 이익이란, 보험 목적물에 손실이 발생했을 때, 보험 계약자가 직접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피보험 이익의 존재는 보험을 도박과 구분 짓는 결정적 차이다. 또 이는 사회적 규범에 반하거나 사회에 해가 되는 방식으로 보험을 운영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피보험 이익을 위배한 보험의 대표적 예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개발됐고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도 재정 확충을 위해 이용했던 톤틴(tontine) 연금이다. 이 연금은 다른 가입자가 빨리 사망해야 자신에게 돌아오는 연금의 액수가 커지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연금 가입자들이 다른 가입자가 빨리 죽기를 바라기 시작했고,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금융시장과 보험기능의 변화
전통적 형태의 보험 계약뿐 아니라 인류는 보험의 기능을 점점 다양하게 개발하고 이용해 왔다. 이를 확장된 보험시장이라 부른다. 대출과 증권으로 대표되는 협의의 금융시장은 대표적인 확장된 보험시장이다. 이 금융시장은 일반적으로 보험시장과 다르다고 여기지만, 금융시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보험 기능임은 부인할 수 없다. 대출이나 채권시장에서 이자율은 채권자의 시간에 대한 선호도와 채무자의 채무 이행 위험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이 역시 보험 계약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즉 원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높아서 더 많은 이자를 받을 때 이 때 추가 이자는 보험료에 해당한다. 채무자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채권자도 손실을 입는다. 이는 보험금을 채무자에게 지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나 무디스와 같은 신용평가기관은 채권의 부도 위험도를 평가하여 투자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들이다. 이들의 역할 역시 해당 금융상품의 위험을 평가하여 어느 정도의 보험료를 책정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보험금을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전통적인 보험계약 원리에 위배되는 보험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의 보험계약에서 불특정 다수의 보험자가 존재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하나의 보험자가 여러 계약자와 계약을 하는 보험계약 틀에서 벗어난 형태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에서 채권자는 채무자인 기업의 부도위험을 공동으로 담보한다. 주식투자자는 경영 위험을 공동으로 담보한다. 이는 어쩌면 바람직한 현상일 수도 있다. 다양한 금융 거래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보험 기능의 확대를 통해 효율적으로 전가함으로써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금융공학의 발전과 과도한 증권화에 따라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둘째, 피보험 이익의 무시다. CDS는 근본적으로 보험 상품이나 증권의 형태를 띠고 있어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다. 즉, CDS의 보유자는 피보험 이익이 없이도 보험 상품을 산 셈이다. 피보험 이익의 무시 역시 과도한 증권화의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증권은 시장에서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장된 보험시장의 추락과 금융위기
이 두 가지 변화는 금융위기의 발생과 증폭에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보험 계약에 종종 뒤따르는 골치 아픈 문제가 바로 정보 비대칭이다. 일반 상품과 다르게 보험 계약자는 보험료를 미리 지급하고, 미래에 손실이 발생하면 보험금을 받는 약속을 한다. 이 때 보험자는 보험 계약자의 위험 크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험 계약자는 손실을 방치하거나 오히려 증폭시키는 행동으로 손실 확률 및 크기를 키울 수 있다. 또 애초에 큰 위험을 작은 위험으로 속일 수도 있다. 전자가 바로 도덕적 해이, 후자가 역선택이다. 보험자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는 이 정보 비대칭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와 관련이 있다. 보험 계약자 역시 중대한 정보 문제에 봉착한다. 보험자가 보험료만 받고, 손실 발생 시에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을 지급불능의 가능성이다. 보험자는 법적으로 최선의 의무를 다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지급 불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쌍방의 정보 비대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쉽지 않으나, 사회는 다양한 통제 방안을 마련해 왔다. 예를 들어 보험자는 보험계약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줄 것을 요구한다. 보험 계약자는 정부의 규제 등을 통해 보험자의 보험금 지급에 확신을 갖고자 한다. 보험자는 재보험을 들거나 다양한 위험관리를 시행함으로써, 지급불능의 가능성을 줄인다. 이 정보 비대칭 문제를 사적 계약에서 풀기 어려울 때 공적 계약으로 풀고자 한 노력의 결과가 대부분의 사회 보험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금융시장에서의 보험 기능의 변화로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보험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사실이 정보 비대칭 문제를 더욱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불특정 다수의 보험자는 전통적인 보험자와는 달리 보험 계약자의 위험을 통제할 인센티브가 매우 작다. 이는 각 보험자가 감당해야 하는 보험금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기 때문에 개개인의 노력을 통해 위험을 모니터링하고 통제해도 그 통제의 혜택을 다른 보험자와 나눠가져야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른바, 경제학에서 일컫는 전형적인 무임승차(free riding)의 문제다.
 
개개인의 보험자가 보험계약자의 위험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다면, 보험 계약자의 도덕적 해이나 역선택 문제는 더욱 커진다. 이에 따라 위험을 증가시키는 행동을 하거나, 위험의 크기를 속이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CDO는 주택담보대출채권 등의 채권을 풀링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증권이다. 기존 증권이 쪼개지고 합해지면서, 사람들은 위험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개인이 감당하는 위험은 작아졌으므로, 투자자들은 위험에 대한 신중한 모니터링 없이 기꺼이 보험자의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 위험의 모니터링이 얼마나 허술한지는 전통적인 보험 계약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투자자들이 상대방의 위험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투자자들은 최소 두 가지의 방법을 통해 손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다. 첫째, 제3자인 신용평가기관을 통한 위험의 평가다. 그러나 신용평가기관이 제대로 위험 평가를 하느냐는 문제에도 무임승차의 논리가 적용된다. 이들 기관이 정확한 위험 평가를 해주리라는 보장은 없었고, 불행히도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이는 신용평가기관이 피평가자에게 얻는 수입을 통해 운영된다는 구조적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둘째, 재보험 가입이다. CDS는 보험자인 투자자들이 제3자에게 다시 재보험을 드는 상품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재보험자가 보험 약속을 이행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전통적인 보험시장에서는 보험 약속이 이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감독당국이 맡았지만, 새로운 시장에서는 이에 걸맞은 감독 기능이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재보험회사 역할을 한 AIG는 보험금 지급 이행을 감당하지 못하고 공적 자금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 결과, 국민 세금을 통해서 막대한 보험금을 물어줄 수밖에 없었다.
 
피보험 이익의 무시 또한 금융위기의 확산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CDS 구매자는 CDS의 대상이 되는 자산을 직접 소유할 필요가 없다. 피보험 이익의 부재가 용인되는 상황은 톤틴 연금의 사례처럼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고, 도박을 부추긴다. 이는 투자자들의 도덕적 불감증을 유발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심각하게 증폭시킨다. 이것은 사람들이 도박과 도덕적 해이 자체를 정당한 이익 추구의 도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피보험 이익의 무시와 다수의 보험자는 서로 상승 작용도 한다. 피보험 이익의 무시로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심각해졌는데도 다수의 보험자가 존재하기에 그 위험에 대한 감시가 소홀해진다. 이 역시 다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골드만삭스를 기소한 일은 이 같은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골드만삭스가 판매한 CDO 설계에 관여한 폴슨 사는 CDO의 가치가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CDS를 구매했다. 그 후 예상대로 CDO의 가치가 떨어졌고, 폴슨은 CDS 판매자로부터 무려 10억 달러 가량의 이익을 챙겼다. SEC는 골드만삭스가 폴슨에 관한 주요 내용을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골드만삭스를 기소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폴슨이 피보험 이익없이 CDS를 구매할 수 있었다는 점이 깔려있다.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국가들의 움직임도 전통적인 보험시장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국 금융시장 기능의 마비는 결국 미국 정부로 하여금 다양한 방법으로 공적자금을 투여하고, 주요 금융기관을 국유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신(新)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정부 개입에 부정적인 시각을 피력하기도 하지만, 이는 보험시장에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사적 보험 계약의 실패는 공적 보험 계약인 사회 보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사적 보험 계약에서 정보 비대칭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면 당연히 공적 계약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 해법과
전통적 보험시장으로부터의 교훈
이상의 논의는 금융위기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주요 방향을 제공해 준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보험 기능의 무분별한 확대에서 비롯됐다. 보험 계약자의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문제, 보험자의 지급 불능 문제는 전통적인 보험시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의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보험 기능이 다양해진 ‘확장된 보험시장’에서는 이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가 보험자의 역할을 하게 됐고, 피보험 이익도 무시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는 금융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기와 SEC가 골드만삭스를 기소한 일은 확장된 보험시장의 폐해를 보여준다. 이제 금융위기는 어느 정도 진정됐다. 하지만 어느 범위의 위험까지 사적 보험 계약의 영역으로 둘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절한 해법이 마땅치 않다. 전통적 보험시장에서는 사적 보험과 공적 보험의 구분이 존재하고, 이 둘이 각각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확장된 보험시장에서도 사적 계약과 공적 계약의 역할 분담, 즉 사회의 위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분하느냐의 문제를 모두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전통적인 보험시장의 오래된 지혜를 새로운 환경에 적용해야 할 때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