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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연구 동향

원가·고객·경쟁자 모두 고려해야 안정 이익 확보

현용진 | 44호 (2009년 11월 Issue 1)
가격책정이란?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어떤 기업도 가격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완전경쟁 상태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실제 시장에서는 독점력이 큰 기업과 작은 기업들이 공존한다. 각각의 기업은 자신이 갖고 있는 독점력 수준만큼 가격을 매길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 독점력이 큰 기업은 가격을 언제, 얼마나 조정해야 약한 기업들을 적절히 누르면서 최대이윤을 실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반면 힘이 약한 기업은 큰 기업의 움직임에 어떻게 맞춰가야 이윤이 극대화되는지를 생각한다.
 
 

 
가격책정(pricing)이란 한마디로 기업의 독점력 행사를 뜻한다. 기업은 힘이 큰 만큼 자신의 목적에 따라 가격을 움직일 수 있고, 이윤을 늘릴 수 있다. 때로는 힘이 약한 일단의 기업들이 하나로 뭉쳐 집단적으로 힘을 늘리고, 그에 맞춰 가격을 매기고 이윤 극대화를 실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가격책정과 관련한 기업의 시장행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미 얻은 독점적 지위를 향유하고자 하는 행태이고, 다른 하나는 독점적 지위를 얻으려 노력하는 행태다.
 
독점기의 관리적 가격책정
역사적으로 서구 경제에서 1950∼1960년대는 시장경쟁 체제로 가는 하나의 전환기였다. 이 전환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산업에서 소수의 기업들이 독과점적 위치를 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독과점기의 기업들은 관리적 가격책정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여기서 관리라 함은 ‘Output÷Input’을 극대화함을 뜻한다. 당시의 기업들은 독점력(input)을 이용해 이윤(output)을 높였다. 이것은 구매자가 자사로부터 떠날 수 없고, 자사보다 힘이 약한 경쟁자는 자사의 이익추구 활동을 막을 수 없다는 상황인식에서 비롯된다. 기업들은 가능하면 낮은 원가로 제품을 생산해 되도록 높은 가격에 팔아 이윤을 남겼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런 상식을 바탕으로 정교한 가격관리 이론들을 개발했다. 그 이론의 핵심은 <그림1>과 같이 판매량은 가격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가격이 떨어지면 판매량이 늘어난다(물론 뒤에 설명하는 바와 같이 가격이 올라갈수록 판매량이 느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가격과 판매량과의 관계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통상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경쟁자의 가격적 대응이고, 둘째는 구매자의 효용(utility)이다. 자사의 가격 변화가 자사 제품의 판매량을 변화시키는 정도는 경쟁자가 자사의 가격 변화에 대응해 가격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 구매자가 자사 제품을 매우 좋아하면 웬만큼 가격을 올려도 판매량은 떨어지지 않는다.
 
한편 제품 판매량 증가로 인해 생산량을 늘리면 제품 한 단위당 원가가 낮아진다. 제품 한 단위당 변동비용은 생산량 변화에 따라 달라지지 않지만, 고정비용은 생산량이 많아짐에 따라 작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윤은 가격을 높였는데 판매량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날 때 극대화된다. 이것의 실현가능성은 독점력이 클수록 커진다. 구매자가 떠날 수 없고, 경쟁자의 대응도 쉽게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적 구조에서의 가격책정
기업 경쟁의 목표는 독점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독점력만큼 초과이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독점력과 관련해 기업 간 경쟁은 크게 두 가지 흐름 속에서 추구된다. 첫째는 구매자를 설득해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경쟁자가 시장에 못 들어오게 막거나 시장에서 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경쟁 수단으로서의 가격책정도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기업은 구매자의 반응에 맞춰 그를 고객으로 만드는 가격책정을 하거나(시장 중심적 가격책정), 가격책정을 통해 경쟁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경쟁자 중심적 가격책정).
①시장 중심적 가격책정
1960년대 이후 본격적인 시장경쟁이 시작되면서 두 가지 중 시장 중심적 가격책정이 주목을 먼저 받기 시작했다. 가격에 대한 구매자의 반응을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가격책정을 해서 구매자를 설득하려는 노력은 1960년대부터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서구에서는 1960년대의 전환기를 거치면서 각 산업의 시장구조가 경쟁적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기업의 시장 진입과 기존 기업의 퇴출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1970∼1980년대 오일쇼크가 닥치면서 일본과 유럽 기업들이 미국에 상륙했으며, 규제 철폐에 따라 경쟁이 더욱 촉진됐다. 따라서 기업들은 당장의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기보다는 안정된 생존을 더 시급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시장 중심적 가격책정의 조류는 1970∼1980년대에 본격화했다. 시장 중심적 가격책정의 상당수는 구매자의 가격 인식(price consciousness)에 기초한다. 이와 관련한 초창기의 대표적 연구로는 1966년 학술지 <이코노미카(Economica)>에 게재된 가버와 그레인저(Gabor and Granger)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품질이 잘 증명되지 않는 경우 가격이 품질의 지표라는 것을 입증했고, 가격이 높을수록 수요가 높아지는 소위 역전된 수요함수(reverse demand curve)를 설파했다. 높은 가격을 통해 고품질 포지셔닝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수요까지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가격 인식과 관련된 또 다른 사례로 베버의 법칙(Weber’s Law)에 기초한 가격책정을 들 수 있다. 베버의 법칙에 따르면, 구매자들은 높은 가격대에서는 가격을 크게 인상해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기업은 그만큼 가격책정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구매자의 가격 인식을 이용한 수많은 가격책정의 방법들이 대두됐다. 대표적인 것이 준거가격(reference price)이나 유보가격(willing-ness to pay)에 기초한 가격책정이다. 1만원, 3만원, 5만원 등 가격대를 강조하는 가격단계 정책(price lining)이나 가격의 끝자리를 99 또는 98 식으로 100에서 모자라는 느낌을 주게 하는 가격책정 방법도 모두 구매자의 가격 인식에 기초한 가격책정이다. 이것들은 모두 구매자에게 자사 제품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어 심리적으로 구매행동을 부추기는 데 목표가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구매자의 효용에 근거한 가격책정도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제품이 구매자에게 주는 효용이 높을수록, 구매자는 가격을 민감하게 느끼지 않는다. 때문에 기업이 그만큼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효용에 근거해 가격을 차별화할 수 있으며, 이로서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보경제학적 관점에서 구매자의 정보 탐색 비용을 감안한 가격책정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고급 패션 시장에서는 제품을 선택하기 위해 많은 정보 탐색을 해야 하는데, 이때 명망 있는 고가 브랜드는 이러한 정보 탐색의 필요성을 줄여줌으로써 구매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②경쟁자 중심적 가격책정
경쟁자 중심적인 가격책정은 1980년대 소위 경쟁전략(competitive strategy)의 패러다임이 전파되면서 적극적으로 대두됐다. 여기서는 가격책정의 기준이 원가나 구매자의 반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가 내놓은 가격과 그 반응에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규제가 풀린 1980년대 미국 항공업계에서 무차별적으로 진행된 가격 전쟁을 들 수 있다. 최근 도요타자동차가 기존 경쟁자에 대항해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한국 시장에 진입하려는 것도 좋은 사례다. 이에 혼다와 닛산도 가격을 인하해 대응하기로 했다.
 
경쟁자 중심적 가격책정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돼왔다. 첫째, 가격책정의 근본적인 방향을 당장의 이익극대화가 아니라 시장점유율의 극대화에 두는 것이다. 이는 손해를 보더라도 가격을 낮춰 시장점유율을 극대화하고, 생산효율성을 높여 제품 원가를 떨어뜨리거나 독점력을 확보해 궁극적으로 초과이윤을 늘리려는 전략이다.
 
둘째, 시장선도적 위치를 확보하고 나머지 기업들의 시장행태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 전략의 목표는 가격 변화의 선도나 가격 전쟁 방지를 통한 안정적 이윤 창출이다. 아주 오래전 IBM은 메인 프레임 컴퓨터 시장에서 좋은 신제품을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곤 했다. 당연히 나머지 경쟁자들은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IBM은 시장을 선도하는 지위를 얻은 후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올려 자사의 이윤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이에 따라 살아남은 나머지 경쟁자들은 더 이상 타격을 받지 않아도 됐다.
 
오늘날의 조류
경제학자들이 정교한 모형으로 제시했듯이 원가와 구매자, 경쟁자 중 어느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는 가격책정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결국 3가지 모두를 균형 있게 고려해 가격책정을 하는 기업만이 원하는 수준의 독점력과 그에 상응한 적정이윤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에는 원가, 구매자, 경쟁자 모두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가격책정이 강조되고 있다.
 
<그림2>는 돌런과 사이먼(Dolan and Simon)이 1997년 발간한 에 나오는 내용으로, 종합적인 가격책정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그림2>에서 ‘지각된 고객 가치(perceived customer value)’는 마케팅 전략을 집행한 결과, 곧 구매자가 얻는 효용을 뜻한다. 그런데 이 효용은 경쟁자의 마케팅 전략 집행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영향을 받아 결정된 구매자 효용은 원가와 함께 가격책정에 영향을 준다.
 
 

한편 가격도 원가에 영향을 준다. 가격에 따라 수요가 변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3자의 종합 분석을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정교한 모형에 기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따라서 기업은 오랜 경험을 통해 그 3자의 종합 분석을 간편하지만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경험적 방법(rule of thumb)을 개발해야만 한다.
 
가격책정이란 자사의 원가 구조와 시장 구매자의 가격 인식 및 제품 효용, 경쟁자의 움직임을 반영한 종합 예술이다. 사실 가격책정의 흐름을 시대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시장구조에 따라 살펴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많든 적든 독점력이 있는 기업에게만 가격책정의 자유가 가능하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기업이 자사의 독점력에 기반해 최대의 이윤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거나, 독점력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가격책정을 할 것인지는 기업이 처한 시장의 경쟁구조와 이에 대응하는 경영전략에 달려 있다. 결국 기업은 가격책정이 전술이기 이전에 전략임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 사회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 전공으로 경영학 석사, 미국 위스콘신대(매디슨)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숙명여대와 아주대를 거쳐 2002년부터 KAIST 테크노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마케팅 관련 공정거래, 정보처리 이론을 응용한 촉진효과, 브랜드 자산 분석, 조직문화 이론을 응용한 유통경로상의 지배구조 분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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