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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결정 최신 동향

엄청 비싸거나 공짜거나… Extreme Pricing

나준호 | 44호 (2009년 11월 Issue 1)
전통적으로 기업들은 일정한 가격 범위 내에서 경쟁을 벌여왔다. 시장에서 용인되는 가격 범위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예전에는 볼 수 없던 극단적인 가격 전략(아주 비싸거나, 아예 공짜거나, 아니면 정해진 가격이 없는)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300만 원짜리 핸드백이나 500만 원짜리 자전거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공짜 휴대전화나 무가지가 넘쳐난다.
 
이처럼 가격 정책이 극단화되는 배경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시장 양극화에 대한 대응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시장 내 경쟁 격화에 따른 고육지책일 수도 있고, 고객관계관리(CRM) 기술 발전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복잡해진 시장 환경 속에서 제품 포트폴리오 전체의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전략적 의도에 있을 것이다. 최근 활용되고 있는 극단적인 가격 정책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최고 가격을 지향하라(Race to the Top)
전통적으로 마케팅 담당자들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대를 조사하고, 이 가격대의 상층부에 자사 제품을 포지셔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시장의 암묵적인 가격 구조에 순응해왔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장 가격의 상한을 공격적으로 돌파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명품 가격 정책과 플래그십 가격 정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명품 가격 정책(prestige pricing):자사 브랜드를 탁월한 품질이나 사회적 지위의 표상으로 만들기 위해 최고급 제품의 가격을 크게 올려버리는 전략이다. 최근에는 명품 패션 소품이나 고급 오디오 등을 넘어 아파트와 자전거, 화장품, 문구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이탈리아 콜나고(Colnago)의 ‘페라리 6주년 모델’ 자전거는 국내에서 1700만 원에 팔리고, 파버 카스텔(Faber Castell)의 그라폰 만년필의 한정판 가격은 무려300만 원(보통 제품은 50만 원대)을 넘어간다.
 
명품 가격 정책은 시장 상황과 기업의 역량이 잘 부합해야 성공할 수 있다. 패션 소품처럼 신분 표출적 소비가 일어나는 시장의 기업이라면,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 같이 모방 불가능한 브랜드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일반 재화 시장에서도 감성 품질이 중요하고 가격이 품질의 신호(signaling) 역할을 하는 분야에서는 명품 가격 정책이 가능하다. 단 해당 제품이나 브랜드가 앞서 언급한 콜나고나 파버 카스텔처럼 품질과 스타일, 감성 가치, 스토리 텔링 측면에서 독특한 강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플래그십 가격 정책(flagship pricing):넓은 제품 라인업을 갖춘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고가격 정책이다. 여기서 플래그십 제품이란 기업이 브랜드력 제고를 위해 만든 최고급 ‘대표선수’ 제품을 말한다.
 
플래그십 제품의 가격을 매우 높게 설정하면, 해당 제품 자체는 판매 부진으로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플래그십 전략을 시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전략적 이득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무엇보다 자사의 전반적인 브랜드 포지셔닝을 상향 조정할 수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시판한 ‘에쿠스 프레스티지’ 승용차의 가격은 무려 1억520만 원이다. 현대차는 그 동안 수입차에 비해 낮게 인식됐던 자사의 브랜드 지위를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에서 신형 에쿠스 가격을 설정했다.
 
둘째, 플래그십 제품에 높은 가격을 매기면 중저가 제품의 가격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다. 올해 국내에서는 LG 옴니아와 삼성 아르마니폰 등이 나오면서 100만 원대 휴대전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은 40∼50만 원대 휴대전화를 상대적으로 싸게 느끼게 됐고, 60∼70만 원대 제품에도 눈길을 보내게 됐다. 대표 제품 하나의 가격을 높게 잡으면, 향후 중저가 신제품의 가격 범위가 훨씬 넓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최저 가격, 심지어 공짜로도 (Race to the Bottom)
반대로 시장 수요를 촉진시키기 위해 판매 가격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경우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다. 기업은 이 전략을 실행하기 전에 가격 인하로 단위 마진이 줄어들어도 수요가 크게 증가해 총 마진이 늘어날 수 있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공짜경제 가격 정책(freeconomics pricing):공짜경제란 제품의 가격을 크게 낮추거나 아예 소비자에게 공짜로 줘서 사용자 기반을 크게 늘리고, 보완재나 후원자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동통신사가 공짜 휴대전화를 제공하는 이유는 모바일 인터넷 등 서비스에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짜 영화표는 팝콘과 음료수, 영화관 내 광고, 식당, 게임장 임대료 등 추가 수익을 바라보고 뿌려진다. 실제로 CJ CGV 극장의 2008년 비(非) 상영 수익은 전체 매출의 34%(1227억 원)나 됐다.
TV나 라디오 방송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짜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광고 후원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최근 선진 기업들은 공짜경제의 후원자로 광고주 이외에 마일리지 발행 기업이나 정부, 지자체, 국제기구 등도 활용하는 추세다. 웅진코웨이의 ‘페이프리’ 사업(카드 또는 휴대전화 사용금액에 따라 정수기 대여료를 돌려줌)에는 외환카드와 SK텔레콤, LIG 생명 등이 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다. 오스람은 인도에서 빈곤층 200만 가구의 백열 전구를 최신 절전형 전구로 교체해주고 있다. 이 회사는 이 사업에 따른 손실을 UNFCCC(UN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서 발급한 탄소배출권으로 벌충한다.
 
번들링 가격 정책(bundled pricing):여러 제품을 한데 묶어 개별 제품 가격의 합보다 싸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전략의 목표는 개별적으로는 손해지만 전체적으로는 이익을 보는 것이다.
 
번들링 가격 정책은 원래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의 재고 소진을 위해 이용됐다. 실제로 장난감 유통 업체 토이저러스는 지난해 말 미국에서 B2G1(Buy 2 and Get 1, 2개를 사면 1개를 공짜로 제공) 행사를 통해 비디오 게임 재고를 성공적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략 상품의 매출을 늘리거나, 적극적인 시장 개척을 위해 번들링을 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요즘 통신 업체들이 공을 들이는 결합 상품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인터넷 전화와 초고속 인터넷, 휴대전화, IPTV 등을 패키지로 가입하는 고객에게 요금을 감면해준다. 여러 가입자를 묶으면 한 명분은 공짜가 되는 가족 할인 상품도 많다. 이는 갈수록 경쟁이 거세지는 방송통신 융합 환경에서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하고 락인(lock-in)하기 위한 전략적 가격 정책이다.
 
공식 가격을 제거하라 (Race to No Fixed Price)
적정 판매자 가격을 제시하고 시장 내 가격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마케터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판매자 가격을 제시하지 않고 가격 결정권을 아예 소비자에게 이양하거나, 상황에 맞춰 가격을 실시간으로 조정해가는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내고 싶은 만큼만 내세요(PWYW·Pay-What-You-Want Pricing):가장 이상적인 가격 차별화 방식은 소비자별로 지불 의사에 맞추어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의 가격 결정을 통해 이런 가격 차별화를 실현하는 방식들이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록그룹 ‘라디오헤드’는 2007년 말 신규 음반 ‘In Rainbow’에 PWYW 방식을 적용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들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디지털 음원을 팔면서 팬들이 가격을 1페니(20원)부터 스스로 결정해 결재하게 했다. 놀랍게도 2007년 연말까지 디지털 음반을 내려받은 사람은 120만 명, 이들이 지불한 금액은 총 960만 달러(115억 원)에 이르렀다.
 
싱가포르의 IBIS 호텔도 올해 PWYW 방식을 도입했다. 호텔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부정기적으로 경매 이벤트를 개최해 공실을 처리했다.
 
PWYW 방식은 특히 고정비가 크지만 한계생산비용이 매우 적거나, 가동률이 중요한 산업에서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동태적 가격 전략(dynamic pricing):원유나 반도체의 가격은 시장의 수급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결정되고 지속적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을 일반 재화 시장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 다행히도 인터넷과 CRM 기술의 발달은 이런 ‘동태적 가격 전략’을 가능하게 해준다. 구글 애드센스는 웹사이트 배너 광고의 클릭 수와 실제 구매율을 꾸준히 모니터링해서 광고 게시자에게 지급하는 광고 단가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킨다. 이른바 스마트 프라이싱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일반화될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기술은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수요가 갑자기 치솟으면 전력 가격을 높이고, 수요가 줄면 전력 가격을 낮추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동태적 가격 결정 전략은 상품의 품질이 균일하고 수요와 공급이 다대다(多對多) 대응 구조를 가질 때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점점 다양한 산업에서 효과적인 가격 결정을 위해 이 전략을 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LG경제연구원에서 미래 연구 및 신사업 분석 업무를 진행하면서 미래 예측과 기업 경영의 접점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국제재무분석사(CFA) 자격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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