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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망각에서 되살아난 브뤼헤

김민주 | 41호 (2009년 9월 Issue 2)
서유럽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행지다. 한국인들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주로 찾는다. 하지만 벨기에를 들르는 한국 관광객은 많지 않다.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은 알아도, 서쪽의 중세풍 도시 브뤼헤(Brugge, 브루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유럽에서는 다르다. 브뤼헤에는 ‘서유럽의 문화 수도’ ‘도시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 ‘북쪽의 베네치아’ ‘벨기에의 보석’ ‘유럽에서 중세가 가장 잘 드러나는 낭만 도시’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유럽의 문화 관광 도시로 우뚝 선 이곳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브뤼헤의 역사는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다. 브뤼헤는 13∼15세기 잘나가던 도시였다. ‘유럽 남부 지중해에는 베네치아가 있고, 유럽 북부 대서양에는 브뤼헤가 있다’는 말까지 있었다. 브뤼헤는 지중해, 스칸디나비아, 영국에서 오는 뱃길의 길목에 위치했다. 배후에는 양모와 직조 공업이 발달한 플랑드르 지역이 있었다. 브뤼헤는 모직물을 수출하고 곡물과 와인을 수입하는 교역 도시로 번성했다. 브뤼헤의 항구에는 뤼베크를 비롯한 한자동맹 도시들과 제노바, 베네치아 같은 지중해 도시에서 온 선박들로 연일 넘쳐났다.
 


달도 차면 기울듯 부지불식간에 위기가 엄습했다. 15세기 후반 도시의 정치 상황이 불안해졌다. 바닷물이 들어오던 즈웨인 만이 퇴적물에 의해 막히게 되자 선박들도 뜸해졌다. 대신 경쟁 항구 도시인 안트베르펜(앤트워프)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부활을 위한 몸부림이 몇 차례 있었지만 일시적이었다. 브뤼헤는 몰락의 길을 걸으며 긴 잠에 빠져들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브뤼헤가 20세기 들어 꿈틀대기 시작했다. 도시로 이어지는 물길이 새로 나면서부터다. 16세기 화가이자 엔지니어인 란셀롯 브론델(1496∼1561)의 수로 건설 계획이 1877년 지역 기록보관소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경쟁 도시 안트베르펜의 거센 반대를 뚫고 1905년 마침내 브뤼헤와 바닷가의 제브뤼헤 간에 인공 운하가 건립됐다. 수로가 열리면서 브뤼헤에서는 레이스, 금속, 양조, 인쇄 산업이 일어났다. 당연히 인구도 늘어났다.
 
브뤼헤는 당시 관광지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892년 조르주 로덴바흐(1855∼1898)가 쓴 소설 <죽음의 도시 브뤼주(Bruges la Morte)>(‘브뤼주’는 브뤼헤의 프랑스식 이름)가 계기가 됐다. 지역 경제를 일으키는 문학의 힘이 브뤼헤에서도 입증된 것이다. 이 책에서 브뤼헤는 중세의 유산을 간직한 신비로운 도시로 묘사됐다. 400여 년간 역사의 뒷골목에 묻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지 않았던 게 오히려 장점이 됐다. 지금은 매년 3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 도시를 찾는다.
 
브뤼헤는 물의 도시답게 보트나 유람선을 타고 둘러보기 좋다. 수로의 본줄기는 도심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다. 원형 수로에서 나온 물줄기는 도심을 가로질러 남북을 잇는다. 관광객들은 보트를 타고 운하 곳곳을 돌며 중세의 정취에 빠져들 수 있다. 우리나라 시티투어 버스와 비슷하다. 보트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도 있다. 수로를 따라 각종 기념물, 박물관, 중세를 간직한 역사적 도시 경관도 펼쳐진다. 브뤼헤를 찾은 관광객은 베긴회 수도원, 바실리카 성혈 예배당, 성 살바토르 성당, 부르그 광장의 시청사, 광장의 종탑 같은 유서 깊은 건물 앞에 발길을 멈추고 중세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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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주mjkim8966@hanmail.net

    - (현)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이마스 대표 운영자
    - 한국은행, SK그룹 근무
    - 건국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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