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타페이, 인디언 마을이 예술 성지로

40호 (2009년 9월 Issue 1)

현대자동차가 내놓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브랜드 ‘싼타페’는 미국 뉴멕시코 주의 샌타페이(Santa Fe)에서 이름을 따왔다. 한국야쿠르트가 1990년대 초 내놓은 캔 커피 브랜드도 ‘산타페’다.
 
기업들이 이 도시의 브랜드에 주목한 이유는 이곳이 가진 ‘휴식’ ‘레저’의 이미지 때문이다. 샌타페이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고, 여유와 낭만을 누리는 젊은이들의 ‘자유’를 상징한다.
 
샌타페이는 어도비(진흙 건조 벽돌) 건축물, 예술가, 갤러리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원래 인디언의 땅이었다. 1609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와 서구식 마을을 세우면서 인디언과 스페인 문화가 어우러진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현재 7만5000명 주민의 절반 이상이 히스패닉계이며, 3분의 1이 스페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샌타페이는 1990년대 초중반 미 동부의 예술가들이 집단 이주하면서 ‘예술인의 도시’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히스패닉계가 주류를 차지하는 샌타페이의 이국적인 풍경과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원시적인 풍경은 주류 사회의 백인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으며,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최근 샌타페이로 이주하는 백인들의 대부분이 이 도시가 주는 문화적 분위기를 누리려는 상류층이며, 노후의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려는 50∼70대다.
 
시인, 화가, 소설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은 새로운 샌타페이만의 문화를 창조했다. 이는 수천 년을 이어온 인디언 푸에블로족의 문화에 스페인, 멕시코, 앵글로색슨 문화가 더해진 것이었다.


 
샌타페이의 정체성 보여주는 어도비 건축
샌타페이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푸에블로족의 문화유산인 어도비 건축물이다. 어도비 벽돌을 쌓아 올리고 회반죽을 바른, 모서리가 둥글둥글한 이 건축 양식은 낮에는 뜨거운 열을 차단하고, 밤에는 낮에 모인 열을 활용하게 해준다. 뜨거운 사막의 낮과 싸늘한 밤을 견딜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다.
 
시 당국은 이 건축물이 샌타페이의 가치를 높인다고 판단하고, 1950년 이후 모든 건물을 이 양식으로 짓도록 규제하고 있다. 기존 건축물을 새로 지을 때도 어도비 양식을 따라야 한다. 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3층 이상의 건물도 지을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도 적지 않다. 로레토 성당은 기적의 계단(Miraculous Staircase)으로 유명하며, 샌 미구엘 성당은 현재 미사가 거행되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당의 옆에는 1646년에 지어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 있는데, 지금은 갤러리와 매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술가들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샌타페이에는 250여 개의 갤러리가 있다. 7만여 명의 주민 가운데 50%가 예술가다. 샌타페이는 뉴욕, 로스앤젤레스(LA)와 더불어 미국 3대 미술 시장 중 하나인데, 샌타페이 미술 시장의 연간 거래 규모는 약 2억 달러에 이른다. 출판사만 해도 20곳이 넘는다.
 
유명 박물관도 도시의 경쟁력이다. 남서부 예술작품을 모아둔 뉴멕시코 아트박물관, 인디언의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미국 인디언 아트박물관, 샌타페이를 대표하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를 기리는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과거 총독 관저로도 쓰였던 샌타페이 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다양한 축제와 공연은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 도시에는 철마다 ‘피에스타’ ‘인디언 축제’ ‘윈터 페스티벌’ 등이 열린다. 이 밖에 로데오 세계 챔피언을 가리는 샌타페이 로데오 축제, 샌타페이 오페라 축제,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료로 공연하는 ‘셰익스피어 인 샌타페이’ 등 공연 행사가 줄을 잇는다.


문화관광 산업으로 연 10억 달러 수익 창출
창조적 계층인 예술가들과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도시 인프라는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연간 160만 명의 관광객이 이 작은 도시를 찾는다. 도시의 주 수입도 문화관광 산업에서 나온다. 예술, 문화, 역사 체험 등의 문화관광 산업이 창출하는 수익만 10억 달러로 도시 경제의 40%를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주나 시 정부가 관광 산업 육성을 위해 요란한 정책과 전략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샌타페이가 가진 고유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건축 양식에 제한을 두거나, 시 홈페이지를 통해 전시나 축제 소식을 전하는 게 시 정부의 역할이다. 고유한 문화와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관광객 유치 전략인 셈이다.
 
정부나 시 당국 대신 관광 산업 육성을 위해 ‘크리에이티브 샌타페이(Creative Santa Fe)’ 등의 비영리 조직이 뛰고 있다. 이 조직은 전시 관람 패키지 티켓을 판매하거나 마케팅을 지원한다. 샌타페이의 예술, 문화, 온라인 아트마켓 등을 알리는 포털 사이트도 운영한다. 샌타페이 지역 예술가 등의 활동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인 ‘인디언 예술을 위한 남서부협회(SWAIA)’도 활동하고 있다.
 
샌타페이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도시다. 주민들은 물질적인 측면은 물론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린다. 인종 차별도 적고 개방적인 데다 예술을 사랑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 미국에서도 차원이 다른 도시다. 우리나라에 예술인 마을은 있지만 예술인 도시는 없다. 샌타페이 같은 멋진 도시가 한국에도 만들어질 때가 됐다.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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