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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잃은 포지셔닝… 대안은 진정성

허지성 | 41호 (2009년 9월 Issue 2)
마케팅 구루인 세스 고딘은 저서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에서 지인의 부탁으로 처음 키엘 매장을 방문한 후 받은 강렬한 인상을 서술하고 있다. 전통과 외골수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키엘 매장 내 제품 라벨에는 해당 제품에 관한 정보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으며, 제품의 용기도 수제품의 모양을 하고 있어 세스 고딘은 키엘이 마치 소규모 가족 사업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진정으로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순수한 화장품’이라는 인상을 받은 그는 얼떨결에 부탁받은 물건 외에도 면도 크림과 아내를 위한 비누를 구매한 후 매장을 나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키엘은 일반적인 화장품 브랜드들과 달리 전통 매체를 통한 광고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비즈니스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이런 외골수 이미지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충성 고객을 만들어내고, 키엘은 경험자들이 자신 있게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최고 가치의 브랜드가 됐다. 하지만 상업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진정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 키엘이 화장품 명가 에스티로더의 소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포지셔닝(positioning)’이란 소비자 인식(per-ception) 속에 경쟁 제품들과 확실하게 구별되도록 제품을 위치시키는 각종 마케팅 및 프로모션 활동을 뜻하는데,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 타기팅(targeting)과 함께 마케팅 전략의 핵심 개념인 이른바 STP의 결정체다. 소비자들은 구매 의사결정의 순간, 기억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차별화된 브랜드 또는 제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상품과 광고 매체의 수가 늘어날수록 소비자들은 구매 의사결정의 순간에 제품들을 떠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확실한 위치를 선점해 선택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기업들은 경쟁자로부터 차별화된 특성을 찾아내 집중적으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전략적 포지셔닝’이다. 포지셔닝은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가 1960년대 처음 주창한 이래 마케팅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인 버즈워드(buzz word)가 됐으며, 브랜드 개념의 초석이 됐다.
 
포지셔닝의 한계
그런데 최근에 포지셔닝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우선 광고와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존도가 줄어들었다. 광고는 포지셔닝을 위한 기업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주된 통로인데, 광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포지셔닝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196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소비자들은 자신이 시청한 광고의 34% 정도를 기억했지만, 1990년에 오면서 그 비율은 8%로 감소했다. 심지어 2007년 AC닐슨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가 실제로 기억하고 있는 광고의 개수는 2.21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각종 브랜드 관련 지표들도 뚜렷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브랜드는 소비자들이 제품 및 서비스와 관련해 인식하고 있는 모든 정보와 기대를 종합한 상징 구조로, 포지셔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브랜드 충성도에 대한 각종 지표는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최근 수년간은 감소 추세가 더욱 가파르다. 지난 10년간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는 50% 하락했으며, 50여 개의 제품 카테고리 중 90%에서 브랜드 및 제품 차별화 정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는 25년 전에 비해 50% 증가했으며, 소비재 브랜드의 제품 매니저들 중 70%는 제품 가격 하락의 압력과 소비자들의 충성도 약화를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고 있다.
 
둘째, 역설적이게도 포지셔닝 자체가 지배적인 마케팅 도구가 되면서 점점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 필립 코틀러가 저서 <수평형 마케팅>에서 주장한 것처럼, 포지셔닝 전략을 사용하는 기업들의 거듭된 시장 세분화로 인해 성숙 시장은 초세분화된 틈새 시장으로 전환되고, 포지셔닝을 통해 창출되는 새로운 시장 규모는 미미해졌다. 또 소비자들의 마케팅에 대한 지식이 많아져 기업들이 주도하는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에 피로감을 느끼는 동시에 광고들의 상업적인 의도를 간파하게 됨으로써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일방적 메시지의 신뢰도와 효력이 크게 낮아졌다.
 
셋째, 인터넷과 정보기술(IT)의 발달은 소비자 행동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소비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제품 구매 전 가격과 성능, 장점과 단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구매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소비자들이 전통적인 매체보다 인터넷을 비롯한 쌍방향 매체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맥킨지에서 최근 발행한 <소비자 행동 조사 보고서(The Consumer Decision Journey)>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회사가 주도하는 마케팅이 고객들의 적극적 평가 시점에 미치는 영향도는 3분의 1에 불과하며, 인터넷상의 사용 후기나 지인들의 추천 등이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감 체험 브랜딩이 대안
그렇다면 포지셔닝의 대안은 무엇일까? 기업들은 어떤 방법으로 고객에게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의 인식 속에 제품을 자리잡도록 하기 위한 집중적 메시징’이라는 포지셔닝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상품 메시지의 영역을 인지(awareness), 인식(perception)의 영역에서 경험(experience) 및 감각(sense) 영역으로 확대하는 방안과 메시지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이다.
 
메시지의 영역을 감각적인 부분으로 확대하는 것과 관련, 마틴 린드스트롬은 저서 <오감 브랜딩>에서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에 대응해 HSP(Holistic Selling Proposition)를 제안했다. 이는 기존의 의식적, 시각적 측면에서의 포지셔닝에서 벗어나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을 종합적으로 이용한 ‘오감 체험’ 브랜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사의 제품 및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는 요소를 의식적인 기억뿐 아니라 감각과 연결되는 무의식 영역으로 확대하고, 각 감각의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해 일관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며, 이러한 오감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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