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It)’은 패션계에서 매 계절 가장 주목받는 아이템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대명사다. 1990년대 생겨난 ‘잇’의 개념은 어떤 물건을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물건을 갖지 못하면 시대에 뒤처지는 듯한 불안감을 소비자에게 안겨준다. ‘머스트 해브 아이템’보다 훨씬 강력한 느낌을 주는 단어다.
최근에는 ‘잇 슈즈’ ‘잇 스타일’ ‘잇 걸’ 등 다양한 단어와 함께 쓰이고 있지만, ‘잇’이 최초로 붙은 아이템은 핸드백이었다. 1990년대 루이비통이나 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새로운 디자인의 핸드백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을 무렵, 자본가들은 핸드백의 위력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몸매가 모델만큼 좋지 않으면 소화할 수 없는 옷과 달리, 핸드백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다. 게다가 핸드백엔 사이즈도 없어 사놓고 들지 못하는 상황도 안 생긴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의류처럼 재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더할 나위 없는 아이템이었다.
눈치 빠른 명품 브랜드들은 핸드백이야말로 엄청난 부를 안겨줄 금광임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대규모 자본을 들여 매 시즌 새로운 핸드백을 쏟아내고, 유명 인사에게 핸드백을 들게 함으로써 사람들 눈에 더 자주 띄도록 만들었다. 자사의 핸드백만 있으면 매 계절 새로운 옷을 사지 않고도 얼마든지 변신할 수 있다는 기사를 싣도록 패션 잡지들을 부추기기도 했다. 최대 광고주인 명품 브랜드들은 얼마든지 패션 잡지를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탄생한 제품이 바로 ‘잇 백(It bag)’이다. 펜디의 바게트백, 디오르의 가우초백, 클로에의 패딩턴백, 발렌시아가의 모터사이클백(모터백), 이브생로랑의 뮤즈백, 샤넬의 2.55백 등 수많은 잇 백들은 엄청난 대히트를 쳤다. 특히 사라 제시카 파커가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들고 나와 더욱 유명해진 펜디의 바게트백은 국내에서도 불티나게 팔렸다.
패셔너블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여자들은 의무적으로 계절마다 잇 백을 사들였다. 200만∼300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루이비통, 디오르, 펜디 같은 명품 브랜드에서 어떤 백을 내놓을 건가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예약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한시라도 빨리 신제품을 보유하려 애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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