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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이후, 국가자본주의가 온다

이언 브레머 | 38호 (2009년 8월 Issue 1)
글로벌 투자 전문가인 앙투안 반 아그마엘이 급부상하는 신흥 개발도상국들을 ‘이머징 마켓(신흥 시장)’이라 부르기 시작한 지 거의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이머징 마켓(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BRICS 국가 포함)은 정치가 경제 및 금융시장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미성숙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인식돼왔다. 세계화(globalization)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으로 부각됨에 따라 ‘이들 국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일 뿐’이라는 믿음이 커졌다. 선진국들은 이런 신흥 경제 대국들도 언젠가 정치적 요인이 아닌 경제적 논리가 시장을 지배하는 성숙한 단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현 금융위기는 이런 가정을 무너뜨렸다. 이제 경제 정책의 수립 과정은 선진국들에서조차 정치적 대결의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곳이 다름 아닌 워싱턴 정가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구제금융, 금융규제 제도 개혁, 7870억 달러에 달하는 경기 부양책에 대한 논쟁은 이제 정치 관련 블로그의 단골 메뉴다. 이런 변화로 정치인과 기업인 모두 좀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기회와 위협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제 선진국의 정치인, 관료들은 신흥 경제 대국의 대두뿐만 아니라 금융위기로 인한 자국의 사회적 동요 가능성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시장에 대한 정치적 개입은 지난 수십 년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의 부상
냉전의 종식은 정부가 경제를 미시적으로 관리해 보다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계획경제의 신념을 무너뜨렸다. 일본과 미국, 서유럽 경제의 역동성은 민간 자본과 투자, 민간 기업에 기반한 자유주의 경제 모델의 우위를 증명하는 결정적이고 완전한 증거로 해석됐다. 선진국들은 공기업과 공적 연금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엑슨 모빌, 마이크로소프트(MS), 도요타, 월마트 등의 대기업들은 앞다퉈 해외 시장으로 확장했다. 세계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전 세계적 금융위기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이런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사실 금융위기 이전부터 공적 자금과 공적 투자, 공기업에 기반한 경제 발전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 증대를 꾀하는 신흥 경제 대국(이런 나라들은 대부분 권위주의 정부가 지배)의 움직임은 이미 표면화되고 있었다. 국가가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며 세계 시장 및 국제 정치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시대가 온 것이다.
 
국가자본주의란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시장을 조종하는 경제 체제를 뜻한다. 정부가 국가자본주의를 채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부의 창출에 가장 효율적인 체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목적 달성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국가자본주의 아래서 정부 관료들은 막대한 자금을 관리한다. 그들은 이런 자금을 활용해 자국의 기업을 보호하고,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국가자본주의는 세계화를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와 정보, 인력, 자금, 재화, 서비스의 국제적 흐름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국가자본주의 확산의 주요 동인


선진국 및 개도국 모두에서 확대되고 있는 정부의 시장 개입에도, 많은 경영자 및 투자자들은 여전히 세계화 추세가 좀더 우세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미 금융위기 발발 이전부터 커지고 있었다.
 
좋은 예가 에너지 산업이다. 국제 석유 산업에서 보유 매장량 기준으로 규모가 가장 큰 13개 회사는 모두 정부가 관리하는 국영 기업이다. 사우디의 아람코와 러시아의 가스프롬, 중국 석유천연가스공사(CNPC), 이란 국영석유공사(NIOC),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공사(PDVSA), 브라질 페트로브라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는 그 어떤 민간 석유회사들보다 규모가 크다. 민간 석유회사 중 가장 규모가 큰 엑슨 모빌은 세계 14위에 머무르고 있다.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석유 및 가스 생산량을 모두 합쳐도 전 세계 총 생산량의 10%에 불과하며, 이들의 보유 매장량은 전 세계의 3% 수준이다. 물론 다국적 기업들은 심해 유전 탐사처럼 앞선 기술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여전히 경쟁 우위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쟁 우위마저도 국영 기업들이 선진 경영 기법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기술을 습득함에 따라 점차 약화되고 있다.
 
이는 비단 에너지 산업만의 일이 아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다양한 산업에서 국영 기업을 앞세우는 전략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른 신흥 국가들 역시 이들의 선례를 따라 전력, 통신, 금속, 광물, 항공 등의 산업에서 단지 시장을 규제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점차 해당 산업 부문의 통제와 장악에 직접 나서고 있다. 이런 국영 기업의 확대는 국부 펀드의 등장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외화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국부 펀드를 확대해 투자 수익은 물론 정치적 영향력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민간 펀드의 조성이 더욱 어려워짐에 따라 국가자본주의의 자금원으로서 국부 펀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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