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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장수 브랜드들의 성공 전략

그들은 왜 불황에도 사랑받을까?

이민훈 | 35호 (2009년 6월 Issue 2)
호·불황에 상관없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해외 장수 브랜드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혼다와 에르메스는 최고의 품질을 고집하며,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는 소비자와 친숙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한다. 구찌, 도요타, 태그호이어는 쉼 없이 글로벌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적극성이 돋보인다.
 
세계적인 패셔니스타이자 막대한 구매력을 보유한 빅토리아 베컴이 몇 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 매우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남편 데이비드 베컴을 따라 스페인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기자가 빅토리아에게 “의사소통이 어렵고 지인도 없는 타국 생활을 하기가 정말 힘들지 않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스페인어를 잘 구사하진 못하지만 전혀 문제없어요. 구찌 매장이 어디 있는지만 알면 되지 않겠어요?” 그 후에도 빅토리아 베컴은 패션 프로그램에서 “구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이고,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 구찌 매장에서 치료를 받곤 한다”며 구찌에 대한 사랑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Recession Proof Brand’, 즉 고객들의 강력한 로열티를 기반으로 불황에도 끄떡없는 브랜드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불황에 예외는 없다’는 비관론이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일반 브랜드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에 상관없이 고공 행진할 것처럼 보였던 럭셔리 브랜드들까지 휘청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럭셔리 브랜드 샤넬은 심각한 매출 부진으로 경영에 압박을 받으면서 2008년 말 총 생산 인력의 10%인 200명을 해고했다. 프라다는 실적 회복을 위한 미봉책으로 2008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례적으로 예고에도 없던 할인 행사를 했다.
 
이처럼 많은 브랜드들이 고전하는 와중에도 변함없는 아성을 유지하는 브랜드들이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떤 요인에 힘입어 호·불황을 뛰어넘는 저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경기, 기술, 제도 등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강하게 장수하고 있는 해외 브랜드들의 특징을 살펴본다.  

최고의 품질을 고집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품질에 대한 남다른 신념이다. 언뜻 보기에는 집착이다 싶을 정도로 유별나다. 1946년 자동차 엔지니어 혼다 쇼이치로는 50만 엔의 자본으로 혼다의 출발점이 된 ‘혼다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혼다는 압축 성장을 이뤄내며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다. 혼다는 설립한 지 불과 10여 년 만에 미국과 유럽에 해외 지사를 열며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업체로 발돋움했고, 1963년 스포츠카와 경트럭을 생산하며 자동차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후 기술과 창조, 세계화를 지향하는 ‘혼다이즘(Hondaism)’을 주창하며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올해 2월 초에는 하이브리드카 ‘뉴 인사이트’를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이 차는 출시 후 한 달도 채 안 돼 일본 내 판매 계획을 당초 연간 6만 대에서 10만 대로 상향 수정할 정도로 선전하고 있다.
 
혼다가 내놓는 신제품마다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고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철저한 개발 원칙 때문이다. 혼다가 승부를 걸고 있는 ‘고품질 창조를 위한 5대 포인트’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첫 번째, 개발 콘셉트를 최우선에 둔다는 점이다. 혼다는 콘셉트로 자동차 완성도의 80%가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 과정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 투입한다. 두 번째, 콘셉트 도출 과정에서 변증법을 통해 모순 요소를 통합한다. 즉 팀원 간 아이디어 대립이 있을 때마다 편리한 타협을 피하고, 대립 가치를 고차원적으로 통합할 방법을 고심한다. 세 번째, ‘발상법’과 ‘가설 설정’을 통해 깊이 파고들어 진실에 근접한다. 즉 제품이 실제로 나왔을 때의 상황을 최대한 실제처럼 설정해보고 그에 맞춰 아이디어를 가다듬는다. 네 번째, 영업·제조·개발의 동시공학(concurrent engineering)을 추구한다.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 세 요소를 항상 동시에 고려한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 ‘상대가치’가 아닌 ‘절대가치’를 중시한다. 이는 경쟁자와 비교해 뛰어난 품질을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혼다만의 품질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철학이다.
 
럭셔리 브랜드 중에서도 최강으로 알려진 에르메스는 어떤가? 2010년까지 전 세계 시장 지배력을 최강으로 만들겠다는 계획 아래 매장 확장에 전력하는 등 불황 중에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특히 럭셔리 소비의 중심이 미국, 유럽에서 일본, 중국 등 아시아로 이동하는 추세를 포착해 아시아 진출에 매진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2008년에 총 2억1000만 달러를 투자해 12개 매장을 새로 열고 13개 매장을 리노베이션 했다. 이런 판단이 적중해 실제로 2008년 매출 23억5000만 달러 가운데 아시아 매출은 9억8000만 달러로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에르메스가 이처럼 자신 있게 투자를 지속하며 승승장구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희귀 가죽과 실크를 중심으로 하는 우수한 소재와 아직도 수작업을 고집하는 전통 덕분이다. 에르메스의 최고경영자(CEO) 패트릭 토마는 “눈높이가 높고 예민한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그럴수록 에르메스의 차이를 이해하는 소비자층이 두터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다른 브랜드들처럼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H’자를 크게 새긴 핸드백을 더 싸게 파는 데만 집중한다면 5년 안에 에르메스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디자인 가방들은 상위 10%의 최고 품질 가죽만 사용해 오랫동안 담금질한 후 100% 수작업으로 소량 생산하고 있다. 수량이 한정돼 있어 고객들은 구입 차례를 기다리는 웨이팅 리스트에 반드시 이름을 올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제조 지역 선정에도 남다른 세심함이 돋보인다. 일반적으로 수많은 브랜드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 생산을 한다. 에르메스도 해외에서 생산하지만 그 이유는 원가 절감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시계는 스위스, 가죽 구두는 영국에서 생산하며, 중국에서는 그 어떤 제품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지역들을 생산지로 선택해 고품질에 대한 긴장감을 한시도 늦추지 않겠다는 의도다.
 
소비자와 친숙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한다
장수 브랜드들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오감을 자극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소비자의 감각을 자극하지 못했다면 처음부터 주목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장수 브랜드라면 초기에 소비자를 끌어당길 수 있는 감각적 요소를 반드시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오감의 요소가 지나치게 강렬하다면 어떨까?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해보면 이른바 ‘첫눈에 반한 사이’에 빗댈 수 있겠다. 대체로 상대방이 독특한 매력이나 희소한 가치를 지니고 있거나 만남의 경험이 매우 자극적일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에 대한 강한 열정을 느끼게 된다. 이 열정에는 상대방을 소유하거나 가까이 두고 싶다는 욕구가 따른다. 짧은 순간 형성된 열정은 강하게 고착화돼 몰입이나 집착, 나아가 중독의 상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언제 그랬냐는 듯 감정의 강도가 극도로 약해져 식어버릴 수도 있다. 즉 열정이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소비자들로부터 오랫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브랜드들은 소비자의 오감을 자극하되 과하지 않은 수준을 유지한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다. 제품에 들어가는 재료나 조리 방식 등만 냉정히 고려한다면 이들은 그저 몸에 안 좋은 식품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콜라나 햄버거를 정크푸드라고 비판하는 성인들도 이 제품들이 먹기에 편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자주 구매하곤 한다. 이성적으로는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자꾸 손이 가고, 떠올리면 즐거움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비자와의 친밀한 관계는 이들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펼쳐온 커뮤니케이션의 성과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파워는 공식적으로도 이미 입증됐다. 코카콜라는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세계 톱 브랜드에 수년째 당당히 1위에 오르며 견고한 브랜드 아성을 자랑하고 있다. 홈페이지만 봐도 코카콜라의 남다른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느낄 수 있다. 이색적인 코너 ‘Facts & Myths’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현대 기업에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주고 있는 인터넷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신문과 TV 등이 주도하던 메시지 발신 기능이 이제는 기업과 네티즌에게로 분산됐다. 기업은 이제 인터넷을 통해 자사의 고충과 IR 등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 대해 네티즌과 직접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완화하거나 소비자들의 이해를 구하기가 쉬워졌다. 반대로 평판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도 상존한다. 인터넷 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인 ‘성역 없는 감시·고발 기능’ 때문에 기업의 평판이 일순간에 훼손될 수도 있다. 기업의 경영 활동은 물론 임직원의 사소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네티즌의 의견이 걸러지지 않고 소통될 우려가 있다. 기업에 대한 단순한 루머가 인터넷 서명 운동, 불매 운동 등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생긴다.
 

코카콜라는 이 같은 위험성을 간파하고 온라인 채널을 통해 상시적, 선제적으로 루머에 대응하고 나섰다. ‘Facts & Myths’ 코너는 코카콜라에 대한 잘못된 루머를 허심탄회하게 하나하나 정정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이나 제품 자체, 혹은 채용 관련 소식 등에 대한 잘못된 루머에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사건·사고가 터진 후 해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소한 루머 수준일 때부터 조기 대응한다는 취지다. 각 분야별로 흘러 다니는 루머와 사실 정보를 각각 작성해 나란히 게시함으로써 악성 루머가 확산되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그리고 루머에 대해 해당 지역별로 따로 게시하는 방식을 써서 게시판 자체가 루머 확산의 채널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코카콜라의 태도에 소비자들은 신뢰감을 느낄 것이다. 이처럼 장수하는 브랜드들은 안티 소비자에 대응하고 그들의 마음을 관리하는 데 남다른 면모를 보인다.
 
소비자의 오감을 최적으로 자극하는 또 다른 브랜드 맥도널드를 보자. 맥도널드는 1955년 설립 이후 ‘i’m lovin’ it’이라는 광고 문구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해왔다. 매장이 곳곳에 퍼져 있어 소비자들이 어디서나 찾을 수 있으며, 적극적인 대중매체 광고는 브랜드에 대한 친근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창업자의 이름을 딴 ‘맥도널드’라는 브랜드명이 친근감을 유발한다. 형제인 딕 맥도널드와 맥 맥도널드는 1937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주차장에 작은 레스토랑을 열었다. 믹서 판매업자인 레이 크록이 우연히 이 레스토랑을 방문하면서 1955년 지금의 모태가 된 맥도널드를 공동 경영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이미 브랜드 철학을 정립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맥도널드라는 이름의 선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탁월한 판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약 맥도널드가 아닌 우아하고 웅장해 보이는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정했다면 오늘날의 맥도널드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어떤 브랜드명이라도 맥도널드처럼 인심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쉽게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브랜드명은 특히 주요 소비자층인 어린이들의 애호도를 높이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맥도널드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맥도널드 로고는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의 M자로 구성돼 강렬하고 산뜻한 인상을 준다. 이 두 색깔은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흑백 다음으로 인지하는 대표적인 원색인 만큼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전달하기 쉽다. 또한 노란색과 빨간색의 선명한 조화는 소비자들이 맥도널드 로고를 쉽게 기억하도록 돕는다. 어떤 전문가들은 맥도널드를 대표하는 노란색의 M은 패스트푸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자칩을 연상시키고, 소비자의 인지도와 회상률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간단하되 강렬한 디자인이 있기 때문에 영어권이 아닌 곳에서도 쉽게 맥도널드 간판을 식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63년부터 광대 로널드 맥도널드를 마스코트로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은 소비자의 친숙함을 꾸준히 증대시키고 있다. 한 조사에서 로널드는 전 세계에서 산타클로스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로 뽑히기도 했다.
 
쉼 없이 글로벌 틈새시장을 개척한다
매일 수천 개의 제품이 쏟아져 나와 경쟁하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서 많은 기업들은 더 이상 충족되지 않은 니즈가 없다고 한탄한다. 반면 장수 브랜드들은 끊임없이 글로벌 틈새시장(niche)을 발굴해 시장을 넓히고 있다. 그만큼 시장을 선제적으로 연구하고 면밀히 관찰하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베컴이 열광한다는 구찌를 보자. 다른 장수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구찌 역시 불황을 아랑곳 않는 듯 축제 분위기다. 구찌는 2008년 브랜드 탄생 70주년을 맞이해 미국 뉴욕과 이탈리아 로마에 대형 매장을 열었다. 2008년 2월에 문을 연 뉴욕 매장은 4만6281㎡(1만4000평)로 세계 최대 규모다. 그해 7월에 개장한 로마 매장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 브랜드의 면모를 재확인시키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구찌 매출은 전년 대비 4.2% 상승한 29억 달러, 순이익은 전년 대비 4.7% 상승한 8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때 매출 악화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던 구찌가 재도약하며 불황에도 활개를 펼친 이유는, 1990년 유명 디자이너 톰 포드를 영입해 신세대 감각에 맞는 ‘고급+모던’ 이미지를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톰 포드는 할리우드 배우 등 젊은 트렌드 리더들을 ‘글로벌 틈새시장’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이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통성에 치우친 구찌 디자인에 모던 감각을 투영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를 위해 뉴욕의 거리와 나이트클럽을 다니며 신세대 감각을 연구한 결과, 구찌를 대표하는 섹시 가죽 샌들과 스파이크 힐 등이 탄생했다. 빅토리아 베컴과 같은 유명 패션 아이콘 스타들은 이에 열광했다. 구찌를 착용한 이들의 모습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의도적으로 제작한 광고보다 더 큰 광고 효과를 얻었다.
 
도요타도 마찬가지다. 도요타는 최근 불황으로 실적에 타격을 입었으나 일본 기업인들로부터 여전히 최고의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1만95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도요타가 6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변함없이 인정받는 비결은 도요타가 최고만을 추구하는 글로벌 소비자를 만족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끊임없이 도약을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일시적인 실적 하락으로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한 명성의 성(城)을 쌓아온 덕이다.
도요타가 렉서스를 내놓을 당시를 회상해보자. 렉서스 개발을 시작한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도요타의 이미지는 ‘재미없음’ ‘평균주의’가 대세였다. 경제적이고 잔고장이 없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전반적인 이미지는 평균 이하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심지어 ‘Toyota=Toy Auto(장난감 자동차)’라고 빈정거렸다. 포천지(誌)까지도 “전 세계 중산층을 겨냥한 자동차를 생산해온 도요타가 렉서스를 출시한다는 것은, 맥도널드가 최고급 쇠고기 요리 비프 웰링턴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비웃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 도요타는 우선 고급차 진출에 대한 소비자들의 냉담한 시선을 직시했다. 이어 미국 소비자들을 세심하게 관찰해 나갔다. 그 결과 1980년대 급부상한 양대 소비 주도 계층 중 렉서스의 유력한 타깃 집단을 선정할 수 있었다. 바로 숨겨진 부유층으로 일컬어지는 ‘스텔스 웰스(stealth wealth)족’이다. 당시 과시형 소비를 즐기던 여피(yuppie)족과 대비되는 스텔스 웰스족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었다. 이들은 레이더에 보이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엄연히 부유층임에도 부자임을 과시하지 않는 계층이다. 이들의 특성을 조사하자, 가격 민감도가 매우 낮으면서도 불필요한 낭비를 경계하고 절제된 소비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즉 자신의 고급차를 주위에 과시하기보다는 차의 신뢰성과 유지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이후 도요타는 품질은 뛰어나면서도 합리적 가격대의 자동차를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처럼 새로운 틈새시장을 발굴한 다음 도요타의 행보가 돋보인다. 도요타는 이제 이들 부유층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고객 입장에 서기’를 훈련시켰다. 도요타는 디자이너들에게 진정한 최고급을 이해시키려고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고품격 체험 이벤트를 기획했다. 6만 달러 이상의 차량들을 렌트한 후, 체험 행사에 초대받은 디자이너가 직접 운전해 행사 장소인 최고급 휴양지로 모이도록 했다. 또한 엄격한 절차에 따라 목표 고객을 선발하고 집중 연구를 실시했다. 우선 자동차 이벤트에서 수집된 고객 정보와 경쟁사의 고객 정보를 합쳐 목표 고객 정보를 뽑아냈다. 여기서 도요타의 모델 간 혼선을 막기 위해 렉서스 출시 이전에 도요타 최고급 모델을 구입한 고객 정보는 제외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최종 목표 고객 정보에 근거해 그들이 좋아하는 식으로 파티를 열고 초청장을 보냈다. 그리고 제품에 대한 구매를 전혀 권유하지 않는 파티에서 고객의 행동을 깊이 관찰했다. 행사마다 초청 고객을 2500명으로 제한하고 바코드 배지를 착용하게 하여 최신 스캐닝 시스템으로 이들의 행동을 면밀히 분석했다. 이러한 과정이 모두 새로운 틈새시장을 정확히 이해하겠다는 의지에서 이뤄졌다. 결국 도요타는 렉서스의 탄생을 통해 고급 트렌드를 읽고 선도하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스포티한 고급 시계로 유명한 태그호이어를 보자. 올해 3월 말 태그호이어는 세계 보석 시계 박람회인 바젤 월드에서 최신 럭셔리 휴대전화 ‘메리디스트’를 공개했다. 평균 가격 5400달러, 다이아몬드 장식 모델은 8500달러, 즉 우리 돈으로
1000만 원을 호가하는 휴대전화다. 여간해서는 흠집이 잘 생기지 않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사파이어 크리스털 등을 소재로 썼다. 뒷면에는 송아지가죽과 악어가죽을 대는 등 일반적으로 휴대전화에 사용하지 않는 소재를 대거 도입했다. 이 제품은 ‘기능+디자인’ 중심의 기존 휴대전화 시장에 ‘럭셔리’까지 더해 막강한 잠재 틈새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일반 휴대전화에 만족하지 못했던 할리우드 부자들은 주얼리 디자이너가 제작한 다이아몬드 재킷 등을 입힌 맞춤형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이처럼 럭셔리 휴대전화에 대한 잠재 수요를 이미 확인했기에, 태그호이어는 공격적인 행보를 취할 수 있었다. 최고의 품질과 명성을 발판으로 기존 시장에서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는 데 만족할 수도 있지만, 시장을 개척해 생존을 넘어선 도약을 추진하는 게 장수 브랜드들의 공통점이다.
 
한때 히트한 브랜드들은 지속적인 노력 없이는 언제든지 도태될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건전한 위기감을 발판으로 최고 품질과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글로벌 틈새시장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할 때 장수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다. 과거의 성공 경험과 브랜드에 대한 자만이 자칫 장수가 아닌 ‘단명’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함께할 수 있는 엄선된 고객 집단을 육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브랜드에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의연하게 해당 브랜드를 믿고 선택해줄 로열 고객층이 탄탄하게 존재한다면, 브랜드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기사회생할 수 있다. 또한 경기, 기술·산업, 제도·정책 등의 환경이 급변해도 비교적 안정적인 매출을 달성할 수 있다. 소비자를 애정 있는 파트너, 지원자로 간주하고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듯, 이런 브랜드는 소비자의 요구와 불만을 먼저 파악하고 적극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를 끊임없이 사랑하려는 노력만이 장수 브랜드를 만드는 최고의 전략이다.
 
필자는 서강대 경영대학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삼성SDI에서 상품 기획 및 마케팅을 담당했다.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브랜드·기업 이미지·유통 전략을 연구하고,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있다.
  • 이민훈 | - (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브랜드, 기업이미지, 유통전략 연구
    - 삼성SDI 상품기획 및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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