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불안과 경기 침체로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더욱 절실히 필요해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소비재 시장에서 수준 높은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많은 대기업들은 내수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활발하게 마케팅 활동을 벌여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개인 소비자가 아닌 ‘조직 구매자(organizational buyer)’를 고객으로 하는 B2B 시장에서는 아직 마케팅이라는 개념조차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기업도 많다. 체계적인 전략적 틀을 갖추지 못하고 전통적인 영업의 개념에만 머물러 있는 기업들이 상당수다. 요즘처럼 기업의 성장이 절실해진 상황에서 B2B 시장 및 고객의 특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기업이 당면한 핵심 과제다.
B2B 마케팅은 ‘Business-to-Business marketing’ ‘business marketing’ ‘B-to-B marketing’ ‘industrial marketing’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B2B 마케팅이 전통적인 일반 소비자 마케팅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조직 구매자를 고객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B2B 마케팅에서는 제조업체, 유통업체, 정부기관이라는 세 종류의 고객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전기 부품을 가전회사에 판매하는 부품제조업체, 가전제품을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전자회사, 병원에 의약품을 판매하는 제약회사, 정부를 상대로 수주 영업을 하는 건설회사 등이 모두 B2B 마케팅의 주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B2B 마케팅은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사례가 가장 많다. 따라서 B2B 마케팅은 과거에 부품이나 기계, 원자재, 설비 등을 판매하는 산업재 마케팅(Industrial Marketing)으로 불렸다. 이런 다양한 산업재들이 오늘날 B2B 마케팅의 대표적 거래 품목이라 할 수 있다. B2B 시장에서 거래되는 제품은 장비나 기계, 부품, 중간재, 원료 등 기업의 생산 활동을 위해 필요한 산업재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소비재로 분류되는 제품들도 중간 과정에서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판매가 이루어질 때는 B2B 마케팅 품목이 되기도 한다. 효과적인 B2B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비재 시장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B2B 시장 및 고객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B2B 시장과 B2B 고객의 특성
사실 전통적인 소비자 마케팅이나 B2B 마케팅의 핵심 개념은 모두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고객과 경쟁자 등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 믹스(product, price, place, promotion·4Ps)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나, 고객 만족을 추구하고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점 등은 모두 같다. 하지만 B2B 마케팅은 고객의 성격은 물론이고 시장과 제품의 특징이 다르며, 따라서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B2B 시장의 특성을 살펴보자.
파생 수요 산업재에 대한 수요는 최종 소비재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엔진, ABS브레이크, 차체, 계기판 등 수많은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소비자가 원하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료 공급업자로부터 시작되는 복잡한 ‘공급망(supply chain)’을 형성해야 한다. 각 중간재들의 수요는 최종 소비자들의 자동차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즉 최종 소비자들의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면 ABS 같은 부품제조업체도 결국 주문이 감소해 고통을 받게 된다. 따라서 B2B 마케팅 담당자는 최종 소비자, 혹은 유통업자의 제품 수요를 촉진함으로써 자사의 B2B 제품 수요를 확대할 수 있다. 결국 B2B 제품에 대한 수요는 소비재 시장에서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파생 수요(derived demand)라 할 수 있다.
복잡한 구매 과정 소비재 시장에서 구매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개인이다. 따라서 의사결정 과정이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B2B 시장에서는 구매 결정 과정이 훨씬 복잡하며, 많은 부서가 관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업마다 구매 부서가 따로 있지만 생산, 개발 등 많은 부서가 함께 참여해 길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많다. 이런 특성 때문에 B2B 마케팅 연구자들은 ‘구매 센터(buying center)’라는 독특한 개념을 발전시켜 나갔다. 일반적으로 구매 조직의 특성이나 구매하는 제품의 전략적 중요성, 구매 비용, 구매 후 받아야 할 서비스(A/S) 등에 따라 구매 과정의 복잡성이 결정된다.
B2B 고객과 구매 센터 인쇄회로기판(PC B)을 생산 판매하는 국내 모 기업의 고객 수는 10개사 미만이다. 이처럼 소비재 마케팅 담당자와 달리 산업재 또는 B2B 마케팅 담당자는 일반적으로 소수의 고객만 상대한다. 또 B2B 시장에서는 구매 결정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많은 부서가 이에 관여한다. 예를 들어 산업 장비를 구매할 때에는 구매, 엔지니어링, 재무, 생산 부문 등 주요 관련 부서가 참여하고, 보통 최고경영자(CEO)의 승인도 필요하다. 이렇게 조직 구매자의 구매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흔히 ‘구매 센터’라고 부른다. 구매 센터는 역할에 따라 사용자(users), 영향력 행사자(influencers), 의사결정자(decider), 구매자(buyers), 정보 통제자(gate keepers) 등 5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마케팅 담당자 입장에서 볼 때, 효과적인 B2B 영업과 마케팅 전략을 위해서는 고객사의 구매 과정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역할과 구매 센터의 분석이 필수적이다. 특히 의사결정자보다는 오히려 제품 사양이나 기술적 요구 조건을 결정하는 영향력 행사자에 대한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