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존 치 교수는 미국 소비자들의 욕구가 상품을 ‘소유’하는 것에서 ‘체험(experience)’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미국인들은 큰 저택의 거실과 빈방들에 채워 넣을 가구 및 전자제품, 덩치 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을 끝없이 소비해왔다. 그런데 점점 유지비가 적게 드는 아늑한 맨션을 선호하고, 해외여행이나 교육 및 건강 관련 소비를 즐기고, 친환경차에 관심을 쏟으며 수입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검소하게 소비하는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체험이라는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소비자들이 물건들을 ‘소유’함으로써 느끼는 감정은 체험이 아니란 말인가? 최신형 고급 자동차를 사서 가족들과 함께 야외로 드라이브하는 것은 신나는 체험이 아닌가? 50인치 액정표시장치(LCD) TV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30인치 브라운관 TV로 보는 것보다 분명 새롭고 즐거운 체험을 할 수 있다. 20평형대의 서민 아파트와 50평형대의 고급 아파트에서의 삶의 질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구매의 목적으로서 굳이 체험이라는 단어와 소유라는 단어를 다른 개념으로 구분 짓는 것은 혼란스럽다.
기존의 체험에서 새로운 체험으로
소유와 대칭되는 개념으로서 체험이라는 말은 ‘기존의 체험’에서 ‘새로운 체험’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며, 이를 다양한 현상으로 목격할 수 있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를 소유하면,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타인의 호감을 얻을 수도 있다.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던 자동차가 이제 환경 보호의 수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에 나오는 남이섬이 배용준의 팬인 중년 일본 여성들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된 것을 보라. 예전에는 드라마와 영화를 그저 감상하는 데 그쳤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예 그 주인공으로 나서고 싶어 하는 것이다. 또 요즘 여행의 고수들은 이름난 유적지보다는 현지인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도시를 찾아다닌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새로운 체험으로의 이동’ 현상의 원인은 뭘까?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이 생리적 욕구나 안전 욕구 등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소속의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 상위 욕구를 추구한다고 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부(富)와는 상관없이 자기 존중과 자아실현이라는 욕구를 이루는 데 힘겨워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하기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나 사회적 의무감 때문에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상위 욕구와 상충되며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복합 욕구 솔루션을 제공하라
결국 현대인들은 구조적으로 자기 존중과 자아실현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체험을 통해 이를 구하고자 하는 것 같다. 잠시 해방을 만끽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어느 정도 부가 축적된 사회에서는 단지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억제된 욕구들을 보상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체험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단순 반복 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점심식사 후 잔디밭에 앉아 즐기는 짧은 휴식과 같다. 인간 상위 욕구의 핵심 요소는 ‘해방’이다. 하기 싫은 일, 다니기 싫은 직장, 아침마다 벌어지는 출근 전쟁, 가난, 가정에 얽매이기, 규칙, 명령, 오염된 공기와 소음 등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해방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일하긴 싫어도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며, 가정에 얽매이는 게 부담이 돼도 가족이라는 소중한 울타리를 필요로 한다. 즉 자기 존중과 자아실현은 ‘구속된 상태에서의 해방’을 전제로 한다.
또한 상위 욕구와 하위 욕구는 모두 중요하다. 시장에서는 상위 욕구와 하위 욕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복합 욕구 솔루션’이 성공할 것이다. 효율성이나 비용 등의 개념은 하위 욕구를 만족시키지만, 예술적 가치, 도덕성, 재미, 친절 같은 요소들은 상위 욕구를 만족시킨다. 시간은 유한하므로 우리는 한꺼번에 해결하길 원한다. 직원에게 연봉뿐 아니라 여행, 예술, 교육, 오락, 봉사 등을 한꺼번에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면 최고의 인재를 뽑을 수 있지 않을까? 레스토랑에서 환상적인 맛은 물론 공연, 파티, 합리적 가격 등을 모두 제공한다면 손님들이 몰릴 것이다.
상위 욕구를 만족시키는 요소는 무형적, 사회적, 예술적, 관계적인 것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개인이나 기업 모두에게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구월산 블로거(본명 최동선)는 두산정보통신에서 11년간 IT 전략 및 지식경영 컨설팅과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경영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며, 블로그 ‘구월산의 미래경영’에 경영 환경과 창조 경영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