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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제리의 진화, 신소재의 마술

박윤정 | 22호 (2008년 12월 Issue 1)
패션은 진화한다. 특히 신소재 개발이나 새로운 기종의 봉제 시스템의 등장, 옷을 구성하는 부재의 진화로 혁신적인 패션 디자인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2008년 현재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신소재 개발로 혁신적인 디자인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분야는 바로 여성 속옷인 ‘란제리’ 분야다.
 
성인 여성이라면 익히 들어보았을 ‘메모리 몰드’ ‘형상 기억 와이어’ ‘레이저 컷 햄 팬티’ 등.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를 만들어내기 위한 디자이너들의 노력은 최첨단 신소재를 만나면서 현실화되고 있다. 속옷의 기능적인 속성뿐 아니라 미적 아름다움까지 강화해 준 신소재들을 살펴보자.
 
여성용 브래지어의 캡 부분 내면에 쓰이는 메모리 몰드는 메모리 폼으로 만들어져 있다.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비행사의 대기권 탈출을 목적으로 처음 개발한 메모리 폼은 밀도가 높고 탄력성이 적은 폴리우레탄 폼을 말한다. 메모리 폼은 원래 모습을 기억하고 원형으로 되돌아오는 첨단 신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신소재를 속옷에 적용하면서 여성들은 매끈한 가슴 라인을 갖게 됐다.

 
메모리 와이어는 여성용 브래지어 하단을 둘러싸고 있는 지지대 같은 것이다. 이는 ‘살아있는 생물체’라고도 하는 ‘형상 기억 합금’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이 신소재는 피부에 닿으면 처음 모양으로 돌아오는 기능이 있으며, 세탁 때마다 휘고 구부러져 망가지던 기존 합금 소재의 단점을 보완했다. 보통 합금보다 10배 이상 큰 신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래 착용하거나 세탁 때 와이어가 늘어나더라도 다시 35도 체온을 만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산업용이나 의료용으로 쓰이는 레이저도 여성의 속옷 제작 과정에 도입됐다. 레이저(laser)는 ‘유도방출 복사에 의한 빛의 증폭(light amplification by s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이라는 구절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이를 이용한 절단 기술은 패션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공 테크닉으로 자리 잡았다. 이 기술은 이제 여성의 팬티 제작에도 응용되고 있다. 바로 엉덩이를 감싸주는 아래 부분을 레이저 커팅 기술로 가공해 팬티 자국이 나지 않도록 한 ‘햄 팬티’를 개발한 것이다. 레깅스, 스키니 진 등 몸에 딱 붙는 하의가 많아지면서 이제 햄 팬티 착용은 패션 에티켓이 되고 있다.
 
이처럼 우주 과학이나 첨단 의료 기술에서 쓰이던 소재와 기술들이 란제리 제작 과정에 적용되면서 여성의 속옷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신소재 개발로 우리 몸과 가장 가깝고 친숙한 ‘란제리’를 진화시키고 있는 이들의 노력 앞에서 ‘에지(극단적으로 트렌디하고 시크하다는 뜻)’만 외치는 패션인들이 조금 더 겸손해지기를 바란다.
 
필자는 미국 뉴욕 파슨스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섬유산업기술연구소(DEFI)의 IFM 연수 과정을 수료했다. ㈜이신우의 디자이너를 거쳐 제일모직 ‘쟈니 로 주디체’와 ‘디 스튜디오’의 디자인실장을 지냈다. 현재 OTR의 대표이사이자 삼성디자인학교(SADI) 패션디자인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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