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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30평 채소가게가 50억 원 매출?

이민훈 | 21호 (2008년 11월 Issue 2)
불황 장기화, 최후의 승자는
불황의 끝을 누구도 단언할 수 없지만 세계 경제의 불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생존을 위해 대기업과 겨뤄야 하는 소형 유통업체는 더욱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이들에겐 지금의 불황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느껴질 것이다.
 
한때 ‘대형화’가 불황을 이길 생존 전략의 하나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국내 유통 서비스 시장의 완전 개방, 유통업체의 매장 면적 및 점포 수 제한이 모두 사라지면서 국내 유통업체들은 2000년대 들어 대형화, 복합화를 기치로 너도나도 몸집 불리기에 치중했다.
 
2003년 당시 130억 원이던 유통업체 평균 거래액이 2006년 360억 원으로 3년간 무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유통업체의 대형화가 얼마나 빠르게 이뤄졌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소형 점포와 유통업체들은 하나 둘 문을 닫고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유통업계의 대형화 현상은 이웃인 일본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불황으로 인한 소비 위축과 업계 대형화의 틈새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소형 업체들이 있다. 이들이 수많은 백화점, 할인점과의 경쟁에서 생존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아메요코 시장의 명물 시무라 상점
일본 ‘아메요코(アメ橫)시장’은 도쿄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명소다. 재래시장 특유의 인심과 정취에서 인기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 국내 관광객들은 이곳을 ‘일본의 남대문 시장’이라 부를 정도다. 그런데 인심 훈훈한 재래시장으로만 보이는 이곳에서 연간 1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면서 명물이 된 가게가 있다. 바로 ‘시무라(志村) 상점’이다.
 
시무라 상점의 판매 품목은 오로지 초콜릿 한 가지다. 가게 앞에는 매일같이 초콜릿을 사러 온 수십 명의 손님과 구경꾼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관광객도 일본어 속에서 쉴 새 없이 들리는 “사비스, 사비스”라는 말에 발길을 멈추고 줄을 서게 된다고 한다. 도대체 시무라 상점의 초콜릿이 얼마나 특별하기에 이런 진풍경이 펼쳐지는 것일까.
 
고정 가격과 ‘덤’의 매력
사실 시무라 상점에서 파는 초콜릿은 특별할 것도 없는, 한국 슈퍼마켓과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초콜릿이다. 그러나 판매 방법이 무척 기발하다. 바로 가격을 1000엔으로 딱 고정시켜 놓고 봉지에 초콜릿을 마구 넣어주는 것이다.
 
초콜릿을 담아주는 현장은 언제나 시끄럽고 요란스럽다. 종업원들은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이것저것 초콜릿을 집어 호들갑스럽게 봉지를 채우고, 손님들은 덤을 얻으며 즐거워한다. 한 봉지에 어떤 초콜릿이 얼마나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손님들은 물가 높기로 유명한 도쿄에서 느껴보기 어려운 후한 인심을 경험할 수 있다.
 
이 같은 덤 전략의 이점은 무엇일까. 우선 가격을 1000엔으로 고정해 놓음으로써 손님과 흥정하느라 힘 뺄 일이 없다. 일일이 개당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을 셈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도 대폭 절약할 수 있다. 거스름돈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이 초콜릿 한 봉지와 손님이 내미는 1000엔짜리 한 장만 교환하면 거래가 끝난다.
 
게다가 붐비는 손님들로 자칫 초라해질 수 있는 재래시장 분위기를 푸근하고 활력 넘치게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까지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초콜릿을 대량 구매할 필요가 없는 소비자까지도 마법에 걸린 듯 지갑을 열게 된다. 현재 시무라 상점은 하루 1000명이 넘는 고객이 다녀가는 명물이 되어 도쿄 여행 가이드북에도 올라 있을 정도다.
 
매출 50억 원 올리는 채소가게
안신야(安信屋) 역시 도쿄에 있는 조그만 과일채소 가게다. 매장 규모는 30여 평에 불과하지만 하루 2000여 명의 고객이 드나든다. 이곳의 연간 매출은 5억 엔으로 우리 돈 50억 원이 훨씬 넘으니 웬만한 중소기업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어떤 환상적인 조건이 이 작은 가게를 이토록 번창하게 만든 것일까. 하지만 안신야의 입점 위치를 보면 이러한 궁금증이 걱정으로 바뀔 정도다. 바로 5m 도로 건너편에 일본 최대 할인점인 ‘저스코(JUSCO)’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입지 조건에서 안신야가 살아남은 비법은 무엇일까. 

안신야의 가격 전략, 시시각각 최저가를 유지하라
안신야식 경영의 첫 번째 비결은 남다른 가격 정책이다. 상품의 20%는 원가 이하, 20%는 원가, 40%는 25%의 마진, 나머지 20%는 40%의 마진을 붙여 각각 판매하는 것이다. 일부 상품만을 원가 이하로 팔아 전체 상품이 저렴하게 보이도록 하는 전략을 활용한 것이다.
 
비록 마진율은 낮아졌지만 손님 수가 2배로 늘었으니 매출과 이익은 상승한 것이다. 이 가격 정책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소매 유통업체의 장점을 살린 것이다. 대형 업체일수록 본사가 일괄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가격 조정이 유연하지 못한 반면에 안신야는 시시각각 최저 가격을 유지하며 손님을 끌어 모으고 있다.
 
떨이 전략, 선도 유지가 비법
두 번째 비결은 소위 말하는 떨이 판매, 즉 타임 서비스 판매다. 일반적으로 농수산물의 떨이 판매는 상품의 가치가 떨어진 오후 늦은 시각에 이루어지며, 상품의 선도가 떨어져서 팔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마지막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안신야에서는 이 떨이 판매가 오전에 이뤄진다.
 
일본 도매 시장의 경매 시간은 보통 오전 7시, 경매 후 제품이 소매점에 도착하는 시간은 일러도 오전 11시다. 반면에 안신야는 직접 산지 상인과 중도매인들을 통해 상급 상품들을 경매시간이 되기도 전에 가게로 가져와서 오전 9시면 판매를 개시한다.
 
오후 1, 2 대형 업체들은 상품을 진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같은 시간 안신야의 당일 상품은 이미 90% 팔려 나간다. 따라서 같은 시간에 할인된 가격으로 팔아도 상품 회전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이윤을 낼 수 있다. 새벽 일찍 가져와 당일 오후면 팔려 나가는 안신야의 야채는 선도가 보장되기 때문에 손님들 사이에 더욱 인기다. 저렴한 가격과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신선한 야채라는 탄탄한 기본기가 안신야 경영의 핵심이다.
 
기본기로 승부하라
고정 가격과 덤으로 가격 흥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며 고객에게 ‘풍성함’을 주는 시무라 상점, 철저히 계산된 품목별 할인과 조기 떨이 판매로 고객에게 늘 ‘신선함’을 주는 안신야. 두 상점 모두 작은 소매상이지만 이들이 거둔 성공을 보면 대기업의 복잡한 마케팅 전략이 무색해질 정도다. 불황기일수록 투자는 힘겹고 고객의 지갑은 도통 열리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지극히 당연한 기본 전략과 그 실천이 어려운 이유를 찬찬히 탐구하는 것으로 해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 이민훈 | - (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브랜드, 기업이미지, 유통전략 연구
    - 삼성SDI 상품기획 및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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