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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기’의 몰락에서 얻는 교훈

일리안 미호프 | 21호 (2008년 11월 Issue 2)
경기 상승, 나날이 번영하는 경제, 주식 시장의 활황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경제 월간지 포브스는 이러한 시절이 ‘미국 산업의 황금기로 인식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때는 1929년 여름이었다. 그러나 곧 미국 경제는 몰락했다. 310%의 1인당 경제 성장률을 보이던 미국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1930년에 11%, 그 이듬해에 다시 9.5%, 1932년에는 15%가 추가로 하락했다.
 
광란의 1920년대가 사상 유례없는 경제 재앙으로 변하리라는 것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1920년대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월가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다우 지수는 1929년 9월 381.17포인트에서 1932년 7월 41.22포인트로 급락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1만4164(2007년 10월 9 현재)에서 정점을 친 다우 지수가 3년 만에 1666포인트로 급강하한 것과 같다.
 
주가가 90% 하락한 것과 더불어 미국 경제의 산출량은 19291933년의 대공황기에 3분의 1로 줄었다. 실업률은 3.2%에서 25.2%로 훌쩍 뛰었으며, 미국 내 2만4000여 은행은 세 곳 중 하나 꼴로 문을 닫았다. 부분적이지만 대공황의 규모를 보여 주는 단면이다.

인시아드에서 MBA 학생들에게 대공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강의를 마칠 때면 필자는 늘 “대공황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간략한 말로 낙관적인 의견을 피력한다. 대공황이 일련의 정책적 실책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주류 관점에서 필자는 이를 굳게 믿었다. 대공황을 통해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어떠한 정책이 필요한지를 이미 배웠다는 생각이었다.
 
불행하게도 필자는 이 낙관주의를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그 동안 배워온 것들이 틀려서도 아니고 대공황을 통해 커다란 교훈을 얻지 못해서도 아니다. 낙관주의가 퇴조하는 이유는 바로 정치 논쟁과 재임을 위한 공약이 70년도 더 묵은 교훈을 일거에 말살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공황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 무엇인가. 필자는 통화 정책과 금융 부문이 경제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류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상품, 더욱 효율적인 생산 방법을 고안해 냄으로써 매년 소득을 불려나가는 것이므로 바람직한 통화 정책이 반드시 경제 성장 속도를 가속화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잘못된 통화 정책은 경제 발전 가도를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이는 빈국이든 부국이든 모두에 해당하는 사실이다.
 
금융 시장과 은행 부문이 이렇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은행은 대출자와 차용자를 이어줌으로써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가 은행에 100달러를 예탁할 경우 은행의 수중에 남아 있는 금액은 불과 23달러이며 나머지 98달러는 차용자에게 전달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융자금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은행 부문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기업들은 융자를 받지 못하므로 생산을 감축하거나 노동자를 해고해야만 한다. 기업들이 생산을 줄이면 공급업체에 대한 이들의 수요도 줄어들게 되므로 공급업체 또한 산출량을 줄이고 노동자들을 내보낸다.
 
기업의 긴축으로 상품 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상품 판매량이 줄어들면 제조업체들은 기존의 융자금을 상환하기에 충분한 수입을 거둬들일 수가 없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파산하고, 불량 채권으로 인해 대차대조표가 악화된 은행들은 커다란 문제에 부닥친다. 이 시점에 이르면 은행들은 기업 파산으로 야기된 불확실성 때문에 융자금을 한층 더 줄이고자 할 것이다. 이후 생산자들이 생산을 감소하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불량 채권으로 일부 은행들이 도산하는 상황을 보면서 예금주들은 은행이 자신의 돈을 상환 능력이 없는 차용자에게 빌려줬을 것이라는 생각에 금융기관에 맡겨둔 예금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예금주들은 현금을 인출할 것이고, 이러한 예금 인출 사태에 당면한 은행들은 융자금을 더더욱 줄일 것이다. 금융 부문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경우 실물 경제는 치명적인 악순환에 빠질 수 있으며, 대공황 당시처럼 30% 이상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
 
오늘날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믿어왔다. 대공황의 교훈이 워낙 명확하고 생생해서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얻을 요량으로 감히 경제 안정을 담보할 정치인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최근 정치인들이 제기하는 많은 문제는 마땅히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이는 별개의 논쟁이고 별개의 법안에 따라 처리되어야 할 일이다. 최고경영자(CEO)들의 연봉에 거품이 있다? CEO들이 수감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 두 질문 모두에 대한 답이 “그렇다” 일지 모르지만 사리사욕에 빠진 CEO를 처단하는 일은 거시 경제를 살리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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