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인터뷰

OB맥주 팔자 두산 위기설… 그래도 우린 혁신을 택했다

19호 (2008년 10월 Issue 2)

도미니크 바턴 맥킨지 상하이 사무소 대표, 클레이턴 G. 더치 맥킨지 보스턴 사무소 대표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두산이 핵심 사업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과정은 물론 한국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기업 인수에 성공한 배경과 원동력을 해부한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은 두산은 이후 10년에 걸친 변화 과정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떠올랐다. 두산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극심한 부채위기에 직면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이는 소비재 업체에서 세계적인 건설·중장비 업체로 탈바꿈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
 
2007년 두산그룹의 건설·중장비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는 한국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글로벌업체 인수에 성공했다. 미국 잉거솔랜드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소형건설장비 업체인 밥캣과 2개 사업 부문을 49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화의 주역은 두산인프라코어의 박용만 회장이다. 그는 두산에 비즈니스 및 리더십 개발과 관련한 가장 진보적인 접근법을 도입했다.
 
박 회장의 조부가 1896년 서울의 단일 점포로 설립한 두산은 맥주 사업으로 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한 후 기타 음료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두산은 1990년대 말까지 소프트드링크·유제품·위스키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군에서 한국 내 선두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패키지·병마개·광고 분야에서도 활발한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박 회장을 포함한 두산의 최고경영진은 시장 구도 및 전망에 대한 조사를 거쳐 대대적인 변화를 감행하기로 과감하게 선택했다.
 
서울의 두산타워에서 맥킨지 상하이사무소의 도미니크 바턴 대표와 보스턴사무소의 클레이 더치 대표가 박 회장을 만났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이 겪은 위기와 변화 과정, 기간산업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포부를 밝혔다.

 
1990년대 후반에 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외환위기 이전부터 두산은 경영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는 진출 사업 분야에서 모두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맥주 시장 점유율은 무려 70%에 이르렀으며 소프트드링크 시장은 50%, 위스키 시장 점유율은 70%를 보였다. 그러던 중 한국 시장에 또 한 차례의 호황기가 찾아왔다. 1990년대 초 민간 소비가 늘기 시작했고,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설비 증강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차입이 급격히 늘어났다. 당시 대다수의 한국 기업들이 이 같은 상황을 겪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기업의 부채 비율이 300%를 넘어섰다.
 
그 후 업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업체들의 추격이 시작됐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 경영진이 영업이나 마케팅, 또는 경쟁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 설비 증강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매출이 줄어들자 수익은 기대치를 밑돌았고, 부채 상환에 충분한 현금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1996년까지 두산의 연간 마이너스 현금 흐름은 매출 3조 원 가운데 9400억 원(약 11억6000만 달러)에 달했다. 말 그대로 부도 상황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기 2년 전 우리는 이미 큰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상황이 더 악화되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했나.
우리는 기존의 사업 포트폴리오 가운데 핵심 사업인 OB맥주를 포함해 수익성이 높은 사업 부문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합리적이고 냉철한 의사결정보다 정서적 유대나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당시 그 누구도 우리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현금흐름 압박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의 유입이 필요했다. 이에 사업을 정리하고 매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까지, 특히 대기업 가운데 구조조정을 위해 사업을 축소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두산이 엄청난 경영난에 빠졌음이 틀림없다. 이제 두산은 끝났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에 이미 구조조정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자산을 매각하는 업체는 없었고 모두 매수에 혈안이 돼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보유자산을 제 값에 처분할 수 있었으며, 현금흐름도 3년 내에 정상화됐다. 1996년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마이너스 현금흐름은 1998년 말 플러스로 돌아섰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치는 외환위기에서 두산을 지키기에 충분했는가.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다행히 우리는 지옥의 입구를 이미 지나온 상태였다. 반면에 우리를 제외한 다른 기업들은 그때서야 그 문턱에 들어서고 있었다. 한편 우리는 개선된 재무건전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두산의 운영 부문이 충분히 견실하지 않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현금흐름의 정상화 외에 다른 조치가 없었더라면 3, 4년 이후 우리는 다시 동일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1998년까지 재무제표를 개선했으며, 1999년부터 실적 및 프로세스 혁신 프로그램을 포함한 대규모의 운영개선 과제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두산의 세전 영업이익(EBIT)은 1년 내에 4.5%에서 11.2%로 대폭 상승했다.
 
이러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두산은 왜 주력사업을 음료에서 중장비로 변경했는가.
재무제표와 운영 부문은 개선됐지만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엉망이었다. 알짜배기 핵심 사업들을 매각한 이후 우리에게 남은 사업이라곤 서로 연관성이 없는 데다 경쟁력 또한 미미한 내수용 사업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경쟁력 있는 대규모 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우리는 소비자 산업에서 더 이상 적임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우리 회사의 역사는 100년이 넘지만 기업 문화는 독점 공급업체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또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수요에 대응할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우리는 산업용 제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산업용 제품은 속성상 장기 전략과 장기적인 추진 및 장기 투자가 필요하며,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적합한 사업 유형이라고 판단했다.
 
두 번째, 기존 포트폴리오만으로는 유기적인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성장 플랫폼으로 활용할 인수 대상을 찾고 있었다. 우연히 바로 그 시점에 한국 정부가 공기업의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고, 그 중 전력발전 업체인 한국중공업이 민영화 대상으로 나왔다. 우리는 2001년 한국중공업을 전격 인수했으며, 두산중공업으로 사명을 바꿨다.
 
2005년에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대우종합기계가 매물로 나온 것이다. 대우종합기계의 성공적인 인수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두산인프라코어다. 이 두 건의 인수를 계기로 두산은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했다. 인프라 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수 있게 된 것이다.(표 참조)
 

 
어떻게 국내 기업 인수에서 글로벌 기업 인수로 눈을 돌렸나.
우리는 국내 기업들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며 높은 성장률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로써는 글로벌 무대에서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사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발판이 되어 줄 글로벌 기업의 인수가 필요했다. 이러한 판단 아래 인수 대상 기업을 물색하기 시작했으며, 밥캣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잉거솔랜드가 밥캣 매각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 했기에 우리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사실 우리 목적은 밥캣 인수 자체보다 글로벌 사업을 보유한 상당한 규모의 기업을 인수하는 데 있었다. 즉 수익성 있고 견실한 사업체로서 우리의 기존 포트폴리오를 탁월하게 보완할 수 있는 기업이 필요했다.
 
2007년 5월 잉거솔랜드의 밥캣 매각 계획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는 맨 위 서랍 속에 준비하고 있던 파일을 꺼내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신속하게 팀을 꾸리고 제안서를 작성했다. 우리는 사실 인수전에 뛰어들 준비가 돼 있었다. 우리는 이미 상당 부분 실사 작업을 진행한 상황이었다. 다만 밥캣의 인적 자원에 대한 부분만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동안 그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때부터 수없이 뉴욕을 오가며 밥캣의 관리자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고, 신뢰를 주고자 했다.
 
기업 회생 노력이 이러한 인수 접근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1990년대 중반과 비교할 때 인수합병(M&A)을 추진하기 시작한 시점의 두산은 이미 다른 기업으로 거듭나 있었다. 전혀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재무제표 관리 방안을 알게 됐고, 운영 개선이야말로 모든 사업의 핵심임을 깨달았다. 또한 위기를 통해 습득한 경영 노하우는 정부로부터 인수한 기업을 회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나아가 밥캣을 성공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또한 우리의 회생 노력이 글로벌 기업에 자산을 매각하면서 시작된 만큼 인수 기업들로부터 M&A를 통한 가치 창출에 대해 유용한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거의 3년을 다국적 기업들에 우리 자산의 적정 가치에 대해 설명하며 보냈다. 이 경험은 매우 값진 교훈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산 가치에 접근하는 것이 이제는 내면화된 것이다.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영입하고자 한 인재들이 당시에는 우리 회사 입사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신흥 경제국의 평범한 기업에 불과했다.
   
 
그 외에 어디에서 교훈을 얻었는가.
일부 일본 기업들이 해외 진출 시 겪은 시행착오와 실패담들을 타산지석으로 삼기도 했다. 일본 기업들은 일본
인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일련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프로세스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해외 기업 인수 시 이러한 가치체계를 피인수 기업의 운영에 직접 적용하기보다 소위 ‘점령군’의 관리자들을 주재원으로 파견함으로써 피인수 기업의 모든 기능에 기업의 가치 체계를 이식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피인수 기업의 일원이자 실제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현지 인력 대신 본사 소속의 주재원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했고, 이로 인해 현지 인력은 책임에서 소외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밥캣 인수 시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방안에 대해 분명한 시사점을 갖게 됐다. 글로벌 비즈니스와 모기업의 성공적 통합을 위해서는 점령군 관리자를 파견하기보다 잘 구축된 프로세스를 통해 양 기업이 공유할 수 있는 경영철학 및 가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재 통합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접근법을 취했는가.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한 이후 우리는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3, 4년 후 직원 7080%의 근속 연수가 5년 미만이라고 할 때 기업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새롭게 입사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회사의 철학과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를 위한 조직 구축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첫 단계로 두산에서 우리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거나 나의 선친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300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오며 지난 100년 동안 두산을 지탱해 온 힘을 준 경영 철학이 무엇인지 도출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도덕성과 인화다.
 
한국 직장에서 인화는 동료와 리더 및 부하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의미하며, 두산은 인화의 업무 환경 조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정한 원칙을 적용하면서 협동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긍정적인 직장 문화 구축이 핵심이다. 또한 이러한 과제를 추진하면서 진정한 글로벌 강자로 떠오르기 위한 밑거름이 될 철학을 구체화하는 작업도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직원의 일상생활에 회사의 철학과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중점 영역 세 가지를 도출했다. 인력 자원 전략 수립 평가와 통제이다. 다른 아시아 기업들이 주재원을 파견해 피인수 기업에 그들의 가치를 주입시키고자 한 반면에 우리는 경영 프로세스를 통해 이를 달성하고자 했다. 이것이 현격히 다른 두 가지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법에 대한 저항은 없었는가.
인사 체계를 개편하면서 나는 두산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며 인재야말로 그 중심이므로 직원들의 능력 향상에 많은 투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제네럴일렉트릭(GE)과 같은 글로벌 기업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선진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한국의 특수성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인력 관리 방식이 한국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이 이용하는 것과는 다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나는 그게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산의 상당 부분을 인터브루, 코카콜라 등의 외국 기업에 매각했다. 우리 직원들은 그곳으로 가서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새로운 인사 프로세스에 적응하며 매우 훌륭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문화는 국가, 인종, 언어, 역사 등을 대변한다. 그러나 ‘기업’의 문화인 ‘기업 문화’는 성공적인 글로벌 기업들 간에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평가와 통제, 전략 수립, HR 등 성공한 기업들의 주요 프로세스는 모두 성과중심 문화, 능력주의, 투명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국적 및 문화와 상관없이 성공한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기업 문화를 우리도 구축하고자 했다.
 
밥캣 인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밥캣 인수를 준비할 때 분위기는 어땠는가.
글로벌화의 필요성에 대해 사내에서 오랫동안 논쟁을 하고 있던 터여서 모두들 상당한 관심을 갖고 접근했다. 다만 글로벌화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와 확신은 있었지만 추진 방안에 대해서는 분명한 확신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당시 우리가 겪은 유일한 글로벌 경험은 수출이 전부였다. 동시에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많았다. 글로벌 기업의 경영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밥캣 역시 두산이 도대체 어떤 기업인지 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인수전에 뛰어든 다른 기업들은 모두 건설 산업에서 인지도가 높은 업체였다. 반면에 밥캣의 관리자들은 두산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고,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인을 만나본 일조차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내게 한 첫 질문은 밥캣 브랜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나는 밥캣 인수를 위해 큰 비용을 치르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며, 브랜드는 명백히 중요한 요인이라고 대답했다. 즉 브랜드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인데 굳이 브랜드를 없앨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브랜드의 운명에 대한 결정은 고객에게 달린 사항이지 내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밥캣과의 통합 작업은 국내 기업 인수 때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인가.
두산중공업 인수 시 전체 직원 수는 7000명이었다. 반면에 우리가 운영 부문에 파견한 직원은 낮은 직급의 젊은 인재들을 포함해 12명에 불과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밥캣 인수에서도 역시 동일한 방식을 택했다.
 
점령군 관리자를 많이 파견할 필요가 없다. 그래봐야 현지 인력을 신뢰하지 않거나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드러낼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프로세스를 통해 이러한 가치들을 이식하고자 한다.
 
밥캣 인수 때 우리는 두산의 신념을 설명한 입문서 패키지를 만들어 회사 배지와 함께 모든 직원에게 배포했다. 한 직원은 한국을 소개하는 훌륭한 영문 책자를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두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도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반대했다. 밥캣 직원들이 우리에게서 굳이 한국에 대해 배워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의 경영 방안과 우리의 경쟁력에 대해서라면 적극 이를 알릴 필요가 있다. 그들이 우리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한국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내용들이다.
 
우리는 단지 설립지가 한국인 글로벌 기업이 되고자 한다. 네슬레가 좋은 사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지어 기업인조차 네슬레를 스위스의 맛이나 색과 연결하지 않는다. 네슬레는 단순히 스위스에서 설립된 다국적 기업일 뿐이다. 나는 두산 역시 그러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우리의 포부이며, 한국 국적을 지나치게 부각시키지 않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밥캣 인수 후 예기치 못한 상황 가운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무엇인가.
예기치 못한 긍정적 요소는 운영이 매우 견실하다는 점이었다. 수익성이 좋고 직원들의 업무 헌신도 매우 훌륭하다. 조직 내 관료주의나 사내 정치가 만연하지 않다는 점 역시 매우 긍정적인 요인이다. 또한 밥캣 브랜드는 매우 강력하며, 일부 기술은 매우 탁월하다. 이 모든 점이 당초 예상보다 모두 훌륭한 부분이다.
 
예기치 못한 부정적 요인으로는 일부 프로세스가 두산만큼 선진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전략 수립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수전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밥캣은 독립적인 사업 부문이지만 설치장비 및 부속물 등 기타 2개 사업 부문은 잉거솔랜드 운영의 일부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들을 분리해 독립적 사업 체제로 재편해야 했으며, 백오피스 기능 또한 전무했다.
 
그러나 다행히 업무 중복으로 인한 운영 구조조정과 같은 고통스러운 프로세스는 거치지 않아도 됐다. 두 사업이 모두 상호 완벽하게 보완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북미 지역과 소형장비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는 반면에 우리는 중국 지역과 중장비 분야에서 경쟁력이 높다. 우리는 훌륭한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에 그들은 훌륭한 제품 개발 기술을 갖고 있다. 또한 우리는 수압 등의 핵심 부품에 대한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이미 이를 확보하고 있었다.
 
밥캣 인수의 성공을 어떠한 방식으로 측정할 것인가.
물론 우리는 계량이 가능한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2012년까지 밥캣 매출을 120억 달러로 올리고, 두 자릿수 EBIT을 달성함으로써 세계 3대 건설장비 제조업체로 도약할 것이다. 이는 정량적 목표이다.
 
조직적 차원에서는 밥캣에 대해 동일하게 주력하는 것은 물론 북미 시장을 넘어서서 제품 개발과 운영, 영업에 대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 기업임을 굳이 부각하지 않고자 하는 의도와도 부합한다.
 
밥캣 브랜드는 북미 시장에서 매우 뛰어난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전 세계 시장의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는 한 차원 더 글로벌화한 오퍼레이션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건설장비의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창출함으로써 제품 라인을 최적으로 구성하고, 전 세계에 동일한 프로세스 및 효율성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명백히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510년 후 우리는 글로벌 인프라 지원 산업의 점유율을 더 높이고자 한다. 인프라 지원 산업의 글로벌 시장은 연간 8조 7000억 달러 규모의 어마어마한 크기다. 우리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2015년까지 두산인프라코어는 매출 1000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며, 매출의 90% 및 오퍼레이션의 90%는 해외에서 창출될 것이다.
 
매출 1000억 달러라는 목표를 설정한 4년 전에 나는 50세였다. 본사 지하의 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후 우리는 무엇을 달성할 것인가. 1000억 달러를 달성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당시 함께한 모든 사람이 웃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수치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밥캣과 다른 2개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우리는 올해 매출 220억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지금의 성장률보다는 느리지만 11, 12%대의 유기적인 성장을 통해 2015년까지 매출 650억 달러를 달성할 것이다. 나머지 350억 달러는 비유기적 성장에서 창출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로 남는다. 해답의 많은 부분은 나와 두산의 최고경영진에 달려 있다. 나는 우리가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4호 The Centennial Strategy 2020년 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