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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뇌영상으로 풀어본 ‘브랜드 납치’

정재승 | 18호 (2008년 10월 Issue 1)
기업이 매출액을 높이려면 여러 전략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자사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은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수십 만 개의 브랜드가 시장에 쏟아지고, 경쟁사가 출시하는 새로운 브랜드만도 매년 수십 개에 이르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머릿속에 ‘좋은 이미지’의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브랜드를 제대로 각인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실험이 하나 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은 회색 장난꾸러기 토끼 ‘벅스 버니’가 출연하는 디즈니랜드 광고를 제작해 피험자들에게 보여 준 뒤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본 적이 있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 중 대부분은 디즈니랜드에서 버니를 보거나 만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으며, 미키마우스와 같이 있는 것을 보았다거나 악수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답변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벅스 버니는 워너브러더스사가 만든 캐릭터이기 때문에 디즈니랜드에서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제작된 광고 한 편이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한 것이다. 물론 이 실험 속 광고는 처음부터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제작된 것이지만, 굳이 속이려 하지 않아도 우리의 뇌가 매일 수백 편 쏟아지는 광고 속에서 제대로 된 브랜드 기억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소비자들, 유사상품 비교해 구매
최근 들어 심리학자들은 의미 있는 숫자 나열이 긍정적인 브랜드 각인효과를 가져다준다는 연구 결과를 내 놓았다. 이에 발 맞춰 숫자를 집어넣어 브랜드 광고를 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에서 출시한 청소년 음료 ‘187168’은 ‘키 크는 음료수’를 표방해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키인 187㎝(남자), 168㎝(여자)에서 착안한 제품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숙취음료 ‘여명808’은 제품 개발 과정에서 808번의 실험 끝에 만든 일화를 제품명에 이용함으로써 브랜드 각인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마케팅 컨설턴트인 알렉스 위퍼퍼스는 지난해 ‘브랜드납치(Brand Hijack)’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다. 기업들은 스스로 고객들이 원하는 브랜드를 출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시장에는 유사 상표가 많다. 고객들이 여러 브랜드를 비교하고 경험한 뒤 최종 구매 결정을 하는데 위퍼퍼스는 이를 ‘브랜드 납치’로 표현했다. 기업이 제품 판매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의 판단으로 상품을 ‘채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SK텔레콤의 활동이 브랜드 납치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다. SK텔레콤은 당시 공식 월드컵 후원 업체가 아니면서도 공격적인 ‘앰부시(매복) 마케팅’을 통해 투자 대비 효용을 극대화했다. SK는 전면에 브랜드를 내세우기보다 철저히 고객이 열광하는 ‘붉은 악마’ 문화에 순응해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 대표팀 응원단을 후원하면서 회사가 사용한 금액은 50억 원에 불과했지만, ‘비 더 레즈(Be the Reds)’ 티셔츠와 응원 구호를 통한 홍보 효과는 당시 KTF 같은 공식 후원사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됐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콜라 시장의 절반 이상을 코카콜라에 내준 펩시콜라는 ‘펩시 챌린지’라고 불리는 길거리 시음대회를 통해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코카콜라 한 잔과 펩시콜라 한 잔을 마시게 한 뒤 ‘어느 콜라가 더 맛있는지’ 물어보는 대회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음대회에서 펩시콜라를 선택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광고는 상대적으로 코카콜라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펩시콜라의 매출액을 크게 늘리는 계기가 됐고, “사람들은 왜 시음대회에서 펩시콜라를 더 많이 골랐던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콜라시장 1등을 코카콜라가 차지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와 같은 수많은 의문을 남기기도 했다.
 
펩시콜라, 뇌활동으로 찍어보니…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신경생리학자인 미국 텍사스 베일러대 의대 리드 몬태규 교수와 새뮤얼 매클루어 교수 연구팀은 ‘펩시 챌린지’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 안에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fMRI 장치 안에 피험자를 들여보낸 뒤 빨대로 콜라를 넣어 주고 펩시콜라를 마실 때와 코카콜라를 마실 때 뇌 활동을 촬영한 것이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흥미롭게도 피험자들의 뇌에선 펩시콜라를 마셨을 때 ‘쾌락의 중추’라 불리는 선조체(striatum) 영역이 훨씬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 콜라 맛만 놓고 보면 펩시콜라가 코카콜라보다 훨씬 더 맛있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얘기다. 실제로 코카콜라에 비해 펩시콜라가 좀 더 달고 톡 쏘는 맛이 덜해 입에서 더 맛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이들의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콜라를 빨대에 넣어줄 때 피험자들에게 ‘어떤 콜라를 넣어주는지’ 브랜드를 일러주고 똑같은 실험을 했다. 그러자 결과는 더욱 흥미로웠다. 사람들의 뇌는 브랜드를 모르고 마실 때 펩시콜라에 더 격렬하게 반응했지만, 코카콜라를 넣어준다고 일러줄 때에는 펩시콜라를 넣어준다고 할 때보다 전전두엽의 반응이 훨씬 더 컸다. 뇌의 정서나 기억 및 학습을 담당하는 부위도 활발하게 반응했다. 이렇게 전전두엽에서 인지된 브랜드는 제품의 만족도를 크게 높이는 것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펩시콜라는 혀에서 달고 맛있지만 사람들은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를 마시고 있기 때문에 코카콜라에 대한 매출이 훨씬 더 높은 것이다. 결국 소비자들은 맛보다 브랜드 이미지를 떠올려 특정 브랜드의 콜라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처럼 특정 브랜드만 좋아할까. 신경과학자들은 뇌의 ‘전두엽 아래쪽’을 주목한다. 예를 들어 이곳을 다친 환자는 아무리 조건이 불리해져도 특정 제품에 대한 자신의 선호도를 바꾸지 않는다. 야구 경기에서 특정 야구팀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그 팀에 돈을 거는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이 부위에 영향을 주는 광고를 제작할 수 있다면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는 크게 올라갈 것이다.
 
2005년 경제 전문지 포천이 뉴로마케팅을 10대 기술 트렌드로 선정하기도 했듯이 이제 미국 대기업들은 뉴로마케팅적 접근을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신경경제학이 인간 행동을 모니터링하는데 그치지 않고 소비행동을 조작할 수 있다는 비판도 한편에선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광고 감시 소비자 모임은 의회와 심리학회에 뉴로마케팅 업체를 제재하라고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의 뇌를 제대로 이해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뉴로마케팅이 잘 활용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라 할 수 있다.
 
편집자주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연재합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 보기 바랍니다.

필자는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를 거쳐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도전, 무한지식> 등이 있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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