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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5. Interview: 오정화 아모레퍼시픽 지속가능경영 Division장

“화장품 고객의 페인 포인트는 ‘빈 병 버릴 때’
공병 수거 온라인 시스템 등 편의성 높일 것”

김윤진 | 330호 (2021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아모레퍼시픽은 2009년부터 전사 차원에서 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한 밸류체인을 설계했다. 처음에는 플라스틱 화장품 공병의 수거, 분류, 선별 단계까지를 도맡아 하고 이후 단계는 재활용 업체가 처리하도록 맡겼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수거된 플라스틱을 어떻게 다시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고민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줄넘기나 화분 등으로 가공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재활용 플라스틱을 다시 화장품에 적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으로 확장됐다. 한 번 쓰고 버려지던 용기를 새 용기로 재탄생시켜 ‘병에서 병으로(bottle to bottle)’의 무한 순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추구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전신이자 시발점이 된 것은 1993년 ‘태평양 그린 운동’이다. 당시 ‘환경 무한책임주의’를 화두로 내건 아모레퍼시픽은 폐자원을 버리지 말고 회수하자는 ‘재사용(Reuse)’, 폐기물의 발생을 근원적으로 줄이자는 ‘감량화(Reduce)’, 폐유리병이나 폐합성수지 등을 분리수거한 후 재자원하자는 ‘재활용(Recycle)’ 등 3R를 구체적 실천 방향으로 삼고 그린 운동을 추진했다. 이렇게 약 30년 전 환경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그린 운동이 촉발된 계기는 1992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었다. 환경 이슈가 기업 생존에 잠재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높아지자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도 환경공학 전문가들을 서둘러 채용하고 그린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이 무렵인 1996년, 아모레퍼시픽의 수원공장 환경안전팀에 첫 환경 전문가로 입사한 오정화 지속가능경영 디비전(Division)장은 본사의 지속가능경영위원회(당시 환경보전위원회)와 소통하면서 일선 현장의 3R 실천을 책임지고 이끌어 왔다. 그리고 화장품 용기 및 포장재에 쓰이는 여러 소재 중에서도 플라스틱의 낭비로 인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경영진의 전폭적 지지하에 2000년대부터 아모레퍼시픽 제품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재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데 앞장서 왔다. 포장재의 리필이나 재사용 가능성을 점검하고(Reuse), 화장품 용기 재질을 단순화했으며(Reduce), 인기 브랜드인 ‘설화수’의 제품 용기에 사용하는 재활용 플라스틱(PCR) 비율을 50%까지 올리거나 ‘프리메라’ 브랜드에 생분해 플라스틱을 적용하는 등 친환경 소재의 비중을 높였다(Recycle). 최근에는 3R 전략을 확대하는 동시에 용기의 회수(Return)까지 추가해 4R 플라스틱 순환 모델을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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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아모레퍼시픽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기준으로 포장재에 활용되는 새 플라스틱을 연간 304.6t 절감하는 등 실질적 성과를 거두면서 공병 수거 캠페인이나 리필 스테이션 운영 등의 다양한 실험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오 상무를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만났다. 화장품 업계에서 ‘레스 플라스틱(Less Plastic)’ 활동의 선봉장으로 불리는 오 상무로부터 개별 소비재 기업이 낮은 경제성을 감수하면서까지 플라스틱 재활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고, 자원 순환을 촉진하는 일련의 활동이 본업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들어봤다.

화장품 용기에 쓰이는 여러 소재 중에서도 왜 플라스틱의 재활용을 강조하는가?

아모레퍼시픽이 화장품 용기 재활용에 관심을 가질 초기에는 플라스틱보다는 유리 등 다양한 소재를 어떻게 하면 버리지 않을지에 초점을 뒀다. 2009년 한 글로벌 화장품 기업의 유리 공병 수거와 재자원화 사례를 접한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 생산 공장부터 물류, 판매 매장을 활용해 자원을 순환시키는 닫힌 고리(closed loop) 1 를 완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 무렵은 아모레퍼시픽이 2007년 UN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2 에 가입하고 2008년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처음 여는 등 ESG가 화두로 등장하던 시점이었다. 어떻게 하면 용기와 포장재를 덜 쓰고, 다시 쓰고, 재활용할 것이냐가 안건으로 올라왔고 공병 수거와 선별, 가공, 처리 등 자원 순환 전 과정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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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소재에 본격적으로 집중하게 된 것은 2018년 쓰레기 대란이 불거지면서다. 2018년 중국이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금지하면서 국내에 폐플라스틱이 폭증하고 재활용 업체들이 쓰레기 수거를 포기하는 등 대혼란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국내 폐기물 처리 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하는 여론이 높아졌고 그해 환경부도 플라스틱 폐기물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기업들이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거나 재활용이 안 되는 샴푸 용기를 퇴출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아모레퍼시픽도 2017년 하반기 지속가능경영위원회에서 경영진이 플라스틱,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을 회사가 집중해야 할 ESG 이슈로 선정했던 터라 레스 플라스틱을 요구하는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자는 방침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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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응이 실제 고객들의 반응과 여론의 변화를 의식한 것인가?

고객들의 반응을 보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쓰레기 대란 등을 겪으면서 소비자들은 플라스틱을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기후변화 같은 환경 문제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데 반해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은 일상에서 접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피부로 와 닿는다. 아모레퍼시픽은 고객들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가 다 쓴 화장품 용기를 버리는 단계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이를 고객 관점에서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3년부터 이니스프리 등 화장품 브랜드별로 공병 수거 캠페인과 이벤트를 실시하다 2009년에 들어서 전사 차원의 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한 밸류체인을 설계했다. 고객들이 매장에 플라스틱 공병을 반납하면 병당 300∼500원씩을 포인트로 지급하고, 수거된 공병을 물류센터로 보내 소재에 따라 분류한 뒤 재활용 가능한 것들만 선별해 재활용 업체에 넘기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플라스틱 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프로그램을 2011년 아리따움과 에뛰드 등 다른 브랜드로도 확대하며 공병 수거를 위한 오프라인 접점을 늘려나갔다.

플라스틱 순환을 위해서는 공병 수거 후 이 공병을 제품 용기로 재활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2010년 초반, 아모레퍼시픽은 플라스틱의 수거, 분류, 선별 단계까지를 도맡아 하고 이후 단계는 재활용 업체가 처리하도록 맡겼다. 재활용 업체에 넘기는 것까지만 우리 몫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수거된 플라스틱 공병이 어떻게 다시 쓰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2013∼2015년에는 회수한 재활용 플라스틱을 단순히 소각하는 게 아니라 가치를 높이는 ‘업사이클링(upcycling)’ 3 을 시도했다. 빈 용기를 모아 줄넘기를 만든다든지, 크리스마스트리나 화분 등으로 가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순환 체계를 구축하려면 ‘병에서 병으로(bottle to bottle)’, 즉 다 쓴 용기를 물리•화학적으로 변형해 용기로 다시 쓰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재활용이 쉬운 소재의 제품부터 적용해보기로 했다. 예를 들어, 이니스프리에서 나오는 왁스 제품인 ‘포레스트 포 맨(Forest for men)’이 대표적인 리사이클링 사례다. 이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산 아모레 뷰티파크에서 수거한 공병을 평택 재생공장으로 전달, 분류 후 파쇄까지 해야 한다. 이렇게 파쇄된 공병은 탈수, 재생, 압출의 과정을 거쳐 플라스틱 펠릿(pellet)4 으로 가공되고, 이를 녹여 일부 용기에 적용한 것이 ‘포레스트 포 맨’이다. 하지만 물리적 재활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용기는 여러 색상의 공병을 부수고 섞기 때문에 완제품의 색상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는 아쉬움은 있다.

이렇게 ‘병에서 병으로(bottle to bottle)’ 되돌리는 작업이 어려운가?

아모레퍼시픽은 플라스틱을 종류나 색상별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전문 중소중견기업들을 발굴할 필요가 있었다. 2011년부터 ‘그린 사이클(Green cycle)’을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정하고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외부의 전문 업체들을 물색했지만 쉽지 않았다.

공병 수거 이후 가공 단계에까지 관여하게 된 것은 2018년 하반기, 미국의 재활용 전문 컨설팅사(테라사이클)와 파트너십을 맺은 뒤부터다. 국내외를 전방위적으로 물색하다 마침 한국 사업을 검토하고 있었던 이곳과 손을 잡았다. 이 컨설팅사가 전문 업체들을 연결해준다든지 직접 기술적 지원을 하면서 우리도 플라스틱 전체 순환 프로세스에까지 신경을 쓸 수 있게 됐고, 파트너십 저변을 넓혀가면서 재활용도 조금씩 수월해졌다. 최근에는 중소 규모 기업들뿐 아니라 GS칼텍스나 TK케미칼처럼 실제 소재를 만드는 화학 회사들과 협업하며 제품 포장재마다 재활용 플라스틱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최근 플라스틱 용기의 겉면만 종이로 감싼 이니스프리의 ‘그린티 씨드세럼’의 스페셜 에디션을 둘러싸고 플라스틱을 종이인 양 속였다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 5 논란이 일었다. 왜 이런 논란이 발생했는지?

그린티 씨드세럼은 안쪽 용기(내용기)에는 플라스틱 함량을 줄인 경량 플라스틱, 바깥 용기(외용기)에는 종이 포장재를 적용한 친환경 제품이다. 기존 그린티 씨드세럼과 비교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약 51.8%, 즉 절반 이상 낮췄고 사용이 끝난 제품 용기를 종이와 플라스틱으로 쉽게 분리 배출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런 내용을 제품 포장재나 홈페이지를 통해 처음부터 상세히 설명했으니 무언가를 숨길 의도는 없었다.

다만 이 사건을 겪으면서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소통하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페이퍼 보틀’이라는 네이밍에 대해 고객의 기대 수준이 상당히 높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요즘 소비자들은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한층 높아진 상태다. 이런 기대 수준의 간극으로 인해 진심 어린 노력까지 폄하되는 일을 방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친환경 감수성을 높이는 사내 교육을 열고 직접 고객의 소리를 듣는 기회도 늘리는 등 계속해서 소통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지자체 플라스틱 분리수거 시스템이 있는데 개별 기업이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활동이 실질적으로 환경에 도움이 되는가?

고객 개개인의 분리수거 인식이 자리를 잡고 지방자치단체의 시스템도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화장품 기업의 노력이 더해지면 어떤 효과를 낳을지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화장품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자원 순환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다. 글로벌 표준에 따라 시스템의 환경적 가치를 평가하는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를 통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 분석해보기로 하고 환경 전문 기관(스마트 에코)에 의뢰했다. 결론은 회사가 화장품 용기를 자체적으로 수거하고 처리할 때 지자체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지자체 시스템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폐기물 비중과 관련이 높다. 집에서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보면 음료 포장재나 배달 음식 용기가 대부분이다. 화장품 용기는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2020년 환경부 연구 용역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전체 포장재 중 화장품 용기 비중은 약 3.6%에 불과하다. 이렇게 비중이 적다 보니 화장품 용기가 지자체 시스템을 통해 수거되면 선별, 분류 과정에서 재활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그냥 버려지게 된다. 이런 시스템의 구멍(loophole)을 확인한 후 우리의 노력에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매장에서 공병을 수거한다고 하면 고객들이 적극 동참을 하나?

공병 수거량을 보면 연간 약 200∼300t 정도인데 공병을 가져오는 고객 수가 2018∼2019년까지 점진적으로 올라가다가 2020년 코로나를 계기로 오프라인 매장으로의 유입이 줄면서 소폭 감소했다. 올해 7월부터는 이니스프리가 CJ택배와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고객이 10개 이상 공병을 모으면 수거해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아리따움,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등 오프라인 매장들이 수거 거점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온라인 수거 시스템을 운영하며 e프리퀀시(공병 프리퀀시)를 지급하는 식으로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렇듯 녹록지 않은 환경이지만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고객의 인식 수준은 확실히 개선되고 있다. 매장에 공병을 들고 와서 보상 포인트를 적립하는 고객은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서인지 평균 객단가나 재구매율까지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올해 이니스프리 공병을 활용한 고객 경험 공간을 재개장했는데 2017년 소격동에 공병 공간을 처음 조성했을 때보다 훨씬 반향이 컸다. 이런 변화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화장품협회와 함께 ‘화장품 2030 플라스틱 이니셔티브’의 하나로 용기의 공동 수거 캠페인도 시행하고 있다.

고객이 들고 온 용기에 내용물만 채워주는 ‘리필 스테이션’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성과가 있었나?

리필 스테이션을 아모레스토어 광교점과 이마트 자양점 두 곳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고객과 이해관계자들의 관심도나 인지도는 기대 이상이다. 사실 SNS를 통한 바이럴 효과도 있었고 식약처나 환경부, NGO(비영리단체), 언론 매체들도 많이 찾아왔으며 게시물의 조회 수 등 관심이 상당했다. 쓰레기 배출량 절감을 위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문화에 동참하는 소비자, 특히 ‘코덕(코스메틱 덕후)’들의 성지로 부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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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작년 10월 말에 오픈했는데 11∼12월부터 방역 지침이 강화되면서 체험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줄어든 측면은 있다. 이마트 자양점 스테이션에는 헤어 및 보디 제품의 내용물을 채우기 전 제품의 향을 맡거나 씻어볼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는데 마스크를 쓴 상황에서는 이 모든 경험이 제한적이었다. 또 접근성이라는 중요한 요소도 확인됐다. 내용물을 리필하려면 공병을 직접 들고 이동해야 하는데 장바구니도 갖고 다니기 귀찮아하는 소비자들이 먼 곳까지 용기를 들고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리라 기대할 수 없었다. 경기도 광교에 거주하는 한 소비자가 이마트 자양점까지 오가면서 다섯 차례까지 리필하는 경우도 봤는데 그 정도로 적극적인 고객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리필할 수 있는 곳과 주거지와의 접근성을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리필 스테이션의 성공은 소비자와의 물리적 거리를 얼마나 좁히는지, 즉 접근성에 달려 있다고 본다.

계속해서 리필 전용 매장을 늘리고 리필 제품을 확대해 나갈 계획인지?

리필 제품을 출시하고 시범 운영 중인 리필 매장을 유지, 확장할지 여부는 현재 고민 중이다. 최근 글로벌 소비자 패널 전문 리서치 업체 칸타(Kantar)에서 발행한 지속가능성 서베이 리포트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지속가능한 소비를 확산시키는 최대 걸림돌로 ‘편의성’이 꼽혔다. ‘지속가능한 소비의 방해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데 리필 문화 정착의 가장 큰 장애물 역시 편의성인 것 같다. 이 실험을 통해 소비자들에 편의성과 접근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환경친화적 소비를 유도하기는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 궁극적으로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주체는 소비자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자들이 리필 제품 소비에 동참하도록 어떻게 편의성을 부여할 것인지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다만 프랑스에서는 슈퍼마켓에 리필 스테이션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나오고 있는 등 해외 동향을 보면 장기적으로는 이 방향이 맞는 것이 확실하다. 현재 우리나라 식약처나 환경부 등 관계 당국도 리필 매장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이런 방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제는 고객의 참여로 연결할 수 있는 ‘설득’ 과정만이 남았다.

플라스틱 순환경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10년 이상 이끌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플라스틱 순환경제를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UN에서 발표한 17개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 중 마지막이 바로 ‘파트너십’이다. 실제로 최근 리사이클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활용 플라스틱 선별 및 가공 업체, 컨설팅사, 석유화학 회사 등과 협력 관계를 맺었는데 모두 기존의 아모레퍼시픽의 밸류체인에는 없던 회사들이다. 종이를 만드는 한솔제지, 시멘트를 만드는 삼표, 포스코 등 업사이클링을 위해 손을 맞잡은 회사들과도 과거에는 접점이 없었다. 오직 플라스틱 순환 고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만난 업체들이다.

우리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레스 플라스틱’ 계획을 공표하면 관련 기술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나 정부, 공공기관에서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재생 플라스틱을 원료로 블랙야크 티셔츠 등을 만들던 TK케미칼도 환경부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준 덕에 화장품 용기를 공동 개발하게 된 경우다. 이처럼 협업을 통해 아모레퍼시픽은 플라스틱 사용량을 최소화할 수 있고 협력사들은 기존 제품의 제거, 대체 과정에서 시장을 넓힐 수 있어 윈윈(win-win)이 가능했다. 아울러 용기 수거를 위해 화장품협회와도 전례 없는 규모로 협업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로레알, P&G, 유니레버 등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지속가능 경영 실천 사례를 공유하거나 협력하는 사례가 많은데 국내에서도 이런 모델이 정착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플라스틱 환경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는 데 경영진을 비롯한 모든 구성원이 공감하고 있는지,앞으로도 이런 노력이 이어질지 궁금하다.

아모레퍼시픽이 1993년 환경 무한책임주의 정신을 말한 뒤 지난 30년간 그 누구도 3R로 대표되는 회사의 그린 운동에 제동을 걸거나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었다. 더욱이 2019년 6월5일 ‘세계 환경의 날’에 열린 회사의 지속가능경영위원회에서 모든 경영진이 ‘플라스틱 선언문’에 서명도 했다. 2018년 하반기 플라스틱 문제를 중요한 ESG 화두로 선언한 뒤, 바로 이듬해 ‘제품 포장재에 플라스틱 사용량을 절감하고 100% 재활용, 재사용 또는 퇴비화가 가능하게 한다’는 선언문에 전원 서명한 것이다. 이후 방향성에 대한 경영진의 컨센서스가 생겼다.

2019년부터는 90년대 운영했던 ‘태평양 어린이 여름 환경캠프’를 계승해 자원 순환을 주제로 한 캠프도 다시 진행하고 있다. 앞서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소비자라고 언급했는데 어린이들이 10년 뒤 지금의 MZ세대처럼 주력 고객층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점에서 미리 환경과 관련된 경험의 폭을 넓혀주고 그린 슈머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나아가 오픈 이노베이션 관점에서 플라스틱 칫솔을 대신할 대나무 칫솔을 만드는 스타트업(닥터노아)에 전략적 투자를 하는 등 대체 소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플라스틱 환경 문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으며 전사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실현을 위한 노력을 앞으로도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래도 지속가능 활동이 처음부터 전사적인 공감대를 얻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내부 설득을 위해 어떤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나.

사내 플라스틱 정책을 이니스프리, 프리메라 등 친환경 콘셉트 브랜드에 우선 적용한 뒤 성공 사례를 만들어 다른 브랜드로 전파하는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과거에는 특정 상품군에 재생 플라스틱 용기를 적용해보는 정도로 소규모로 실험을 했다면 최근에는 브랜드별 대표 상품부터 먼저 변화를 준다는 점이 다르다. 친환경이라는 콘셉트 자체로만 홍보하기보다는 상품성이 뒷받침돼야 주력 상품으로 키울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원래도 좋은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제품들이 ‘친환경이라 더 좋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에 ‘제품의 경쟁력으로 승부를 본다’는 게 우리의 목표다. 친환경을 바탕으로 지속해서 노력해온 경험이 쌓이기도 했고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노력하다 보면 진정성이 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 경영과 관련한 아모레퍼시픽의 향후 비전을 소개한다면.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2030 지속가능 경영 5대 약속을 선언했다. ‘2030 어 모어 뷰티풀 프로미스(2030 A MORE Beautiful Promise)’로 이름 지었으며 사람과 세상 모두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전 구성원이 노력과 실천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이자 2030년까지 추진해 나갈 이해관계자와의 약속이다.6 앞으로 이번 약속에 대해 더 많은 이해관계자가 쉽게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책임 있는 기업 시민으로서 고객과 사회, 자연과의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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