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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풀필먼트의 진화

물류 넘어서 마케팅-공급망 관리까지
풀필먼트, 새 비즈니스 영역 진화 중

엄지용 | 319호 (2021년 0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06년 아마존이 론칭한 풀필먼트는 지난 15년간 B2C 이커머스 물류의 최적화 관점에서 이해돼왔다. 하지만 오늘날 풀필먼트 시장 내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류가 아닌 영역에서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해 풀필먼트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B2B 도매몰 사업으로 유통에 진출하거나(위킵), 글로벌 풀필먼트로 확장하거나(큐익스프레스 등), 셀러를 인수해 물류, 공급망 관리, 마케팅 등을 통합 제공하는(스라시오) 등 풀필먼트는 물류의 영역을 넘어서 진화하고 있다.



2006년 아마존이 남긴 풀필먼트의 망령이 2021년의 한국을 돌고 있다. 1999년 마켓플레이스를 론칭한 아마존이 3자 판매자들을 대상으로 물류 인프라와 시스템을 제공한 FBA(Fulfillment By Amazon) 이야기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은 저서 『발명과 방황』(2021)에서 ‘풀필먼트’를 마켓플레이스를 성공으로 이끈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풀필먼트는 3자 판매자 유입으로 마켓플레이스의 구색은 늘어났지만 통제되지 않던 물류 서비스 품질을 아마존의 위상에 맞는 수준으로 맞췄다. 아마존은 풀필먼트를 통해 자체 물량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었던 물류를 ‘매출’에 기여하는 수단으로 전환했다.

2021년 한국에서도 풀필먼트가 활황이다. 네이버가 3월 초 ‘데이터 풀필먼트 시스템’을 구축해 네이버에 입점한 3자 판매자가 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물류 서비스를 하나의 시스템에서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기존에 그들이 운영하던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 고객을 위한 도심 풀필먼트센터로 탈바꿈한다고 밝혔다. 이름에서부터 ‘풀필먼트’를 강조해온 쿠팡의 물류센터 운영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2020년 로켓제휴를 론칭한 이후 쿠팡 자체 상품뿐만 아니라 3자 판매자의 물량도 처리하고 있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국내 3대 택배업체도 모두 풀필먼트 서비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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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필먼트(Fulfillment)는 사전적으로 ‘처리’ 또는 ‘이행’을 뜻한다. 무엇인가 충족시켜주는 느낌이지만 이 단어만 들어서는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감이 오진 않는다. 실제 한국에서 업체들이 사용하고 있는 ‘풀필먼트’라는 단어의 용례는 제각각 다르다. 예컨대, 쿠팡은 자사가 매입한 로켓배송 물량을 소비자까지 전달하기 위한 물류센터 운영 처리 프로세스에 ‘풀필먼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물류센터가 하나도 없는 네이버는 IT 시스템을 중심축으로, 자본을 투자한 제휴 물류 업체들의 서비스를 연결해 풀필먼트를 하겠다고 한다. 신세계, 롯데 등 오프라인 유통 사업자들은 기존에 보유한 오프라인 거점을 온라인 주문 처리를 위한 센터로 조성하는 것, 즉 ‘온라인 주문 처리 센터화’를 풀필먼트라고 설명한다.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택배업체들은 라스트마일 물류 네트워크와 결합해 풀필먼트를 고도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업체들이 이야기하는 풀필먼트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풀필먼트는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이커머스 물류’에서 쓰인다. 이커머스 물류이기 때문에 기존 매장이나 공장을 목적지로 설정한 B2B 기업 물류에 비해서 까다롭다. 기업 물류에서 물류의 역할은 팔레트(대형 화물 운반대)에 박스를 가득 올려서 11톤 간선 차량에 태운 뒤, 100여 개의 전국 대형마트 매장까지 출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물류는 한 고객이 주문한 다양한 상품을 합포장해서 작은 박스에 포장하고 택배 망을 연계해 수만 고객의 집으로 출고하는 프로세스로 바뀐다. 다뤄야 하는 재고 구색(Stock Keeping Units)도 기업 물류 대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기존 기업 물류 용도로 사용하던 창고 관리 시스템(Warehouse Management System)을 이커머스 물류에 적합하도록 업그레이드하거나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매일매일 여러 개의 온라인 판매 채널에서 들어오는 산발적인 고객 주문을 통합 수집하는 주문 관리 시스템(Order Management System)과 창고 관리 시스템의 연동도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풀필먼트는 자사 상품(1PL-직접 물류, 2PL-자회사 물류)이든, 타사 상품(3PL-3자 물류)이든 간에 물류창고 안에 미리 재고를 입고하고 고객 주문에 따라서 랙1 에 보관된 상품을 피킹, 포장해 배송 차량 출고까지의 프로세스 최적화를 목표로 한다는 측면에서 B2B 기업 물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것은 매일매일 수많은 고객의 주문을 처리해야 하는 이커머스 특성이 결합되면서 난이도가 올라갔고, 이에 따라 새로운 물류 시스템이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풀필먼트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올리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IT 시스템의 발전으로 진입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풀필먼트 시장의 경쟁이 과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풀필먼트 업체들은 점차 물류센터를 벗어난 영역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찾고 있다. ‘협의(狹義)에서 광의(廣義)로’ 풀필먼트가 포괄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경쟁 치열해진 ‘풀필먼트’ 시장

물류는 태생적으로 지원 사업이다. 물류 업체는 물량이 있는 계열 화주사, 혹은 3자 화주사의 요청을 받아서 물류를 대신 처리하고 돈을 번다. 그렇게 화주사에 받는 물류비에서 운영비를 제하고 남는 돈이 물류 업체의 이익이 된다.

물류 업체 입장에서 슬픈 것은 물류 서비스가 어느 정도 평준화가 되면 ‘서비스’로의 경쟁은 사실상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업체마다 다른 서비스 디테일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화주사의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화주사에 당장 보이는 물류 업체들의 경쟁력은 ‘단가’다. 물류 업체들은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이익을 보지 못하는 ‘저단가’까지 치고 내려가서 경쟁하곤 했다.

우량 화주의 물량 영업은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서 결국 원가를 절감하는 데 도움을 주고, 새로운 화주 유입을 위한 영업 레퍼런스가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물류 기업들은 물량을 쥔 화주사들에 끊임없이 휘둘릴 수밖에 없다. 저단가 경쟁을 견디지 못하는 물류 기업은 자연 도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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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필먼트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불과 5∼6년 전까지 이커머스 물류는 물류 기업에 돈이 안 되는 사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인해 이커머스 물류로 돈을 버는 업체들이 나타났다. 예컨대, 네이버가 투자한 물류 서비스 사업자, 위킵과 브랜디는 모두 물류 사업으로 흑자를 내고 있었다는 점이 투자 유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이베이코리아의 풀필먼트 서비스 ‘스마일배송’은 물류 운영을 통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점을 경쟁력으로 이야기한다. 풀필먼트가 돈이 되는 사업처럼 보이니 수많은 물류 업체가 이 영역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풀필먼트를 일반화한 촉매는 ‘물류 시스템’의 발전이다. 기존 창고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던 업체들도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에 주목하면서 자사 시스템에 관련 기능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이커머스 물류 소프트웨어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테크타카, 스페이스리버 같은 회사도 등장했다.

요컨대, 과거 이커머스 물류 운영을 뒷받침할 시스템이 없어서 쉽사리 진입하지 못했던 3PL 기업의 풀필먼트 시장 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네이버에 ‘풀필먼트’를 검색하면 광고 상품을 이용하는 물류 업체 수십 개가 노출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과거 B2B 기업 물류를 전문적으로 하던 3PL 업체였다. 하다못해 CJ대한통운, 판토스, 세방과 같은 대형 물류 기업들까지 최근 몇 년 사이 풀필먼트 사업을 론칭해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의 후발대로 기업 물류 중심으로 운영해왔던 더 많은 대형 물류 업체가 풀필먼트 시장 신규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들 기업에도 이커머스 물류는 불과 몇 년 사이 시작된 신규 사업이다.

업체들의 풀필먼트 시장 진입 가속화로 과거 3PL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풀필먼트 시장 또한 레드오션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이커머스 수요의 폭발적 증가로 업체들의 처리 능력(capacity)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낙관하기는 어렵다.

이종(異種) 넘보는 풀필먼트: 위킵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류 업체들이 과열화된 시장을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 전선을 넓히면서 새로운 사업 동력을 찾고자 한다. 물류 아닌 영역에서 신규 비즈니스를 찾아서 풀필먼트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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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전선 확장의 한 축은 유통 영역에의 진출로 나타난다. 일례로 네이버의 1호 풀필먼트 투자기업인 위킵은 2020년 6월 B2B 도매몰 사업 ‘셀웨이’를 시작했다. 셀웨이 플랫폼에서는 판매자가 구매 가능한 상품 정보가 도매가와 함께 노출된다. 셀웨이에 들어온 3자 판매자들은 판매를 원하는 상품을 플랫폼에서 선택한 뒤 웃돈을 올려 소매 판매가를 결정하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연동해 판매할 수 있다. 종전에 위킵이 3자 판매자의 상품을 자사가 운영하는 물류센터에 보관해 대신 처리해주는 이커머스 물류 사업자였다면 셀웨이를 통해서 ‘소싱’이라는 물류센터의 백단까지 서비스를 확충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확장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온라인 판매자 입장에서 기존 ‘풀필먼트’ 서비스의 진입장벽은 비용이었다. 초기 하루 수십 개 주문이 들어오는 수준의 물량 처리는 판매자 혼자서도 가능했다. 이때는 풀필먼트 이용에 따른 보관 비용과 물류 처리 비용을 물류 업체에 지불하는 것 자체가 아깝다. 하지만 업체가 성장하면서 주문량이 하루 수백∼수천 개 단위로 늘어나면서 풀필먼트의 니즈가 커진다. 이때는 물리적으로 혼자서 물류를 처리할 수 없고, 다수 인원이 물류 운영에 개입됨에 따라 효율적 업무를 위한 시스템 또한 필요해진다. 혼자서는 벅차니 물류 아웃소싱, 풀필먼트 사용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문제는 물류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전에 많은 판매자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초기 판매자들의 고민은 물류가 아니라 ‘상품’이고 ‘마케팅’이다. 좋은 상품을, 좋은 가격에 떼 와야 된다. 그래야 판매까지 이어질 수 있고, 판매가 많아져야 물류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셀웨이는 이런 초기 판매자들의 상품에 대한 고민을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미 이용하고 있는 온라인 판매자들의 ‘시장 재고’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기존 위킵 풀필먼트를 이용하던 고객사들은 잘 팔지 못했지만 새로운 누군가는 잘 팔 수 있다. 위킵은 직접 그런 가능성을 검증해 보였다. 위킵은 2018년부터 시작한 판매 대행 서비스를 통해 300여 개 고객사의 재고를 7∼10%의 수수료를 받고 대신 팔아줬다. 생각보다 잘 팔렸다. 이런 상품들을 위킵뿐만 아니라 3자 판매자들도 팔 수 있도록 확장한 것이 셀웨이다.

셀웨이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위킵 물류센터에 재고로 보관돼 있다. 셀웨이에서 상품을 공급받는 판매자들은 기본적으로 위킵의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셈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실물 재고 처리 부담 없이 상품을 구해서 물류까지 연결해 해결할 수 있어서 좋고, 위킵은 유통 매출에 더불어 물류 영역까지 신규 화주사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이렇게 안 팔리던 상품을 누군가가 잘 판다면 좋은 그림이 나오겠지만 누군가가 가져가도 이 상품을 계속 팔지 못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군다나 도매몰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의 소매 판매자가 셀웨이에서 공급하는 같은 상품을 소싱해 똑같은 채널에서 판매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소매 판매자의 저단가 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

셀웨이 사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플랫폼의 양면시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공급자단에서는 ‘좋은 상품 구색’을 확보해야 하고, 고객이 되는 판매자들에게는 ‘적정 수익을 보장하는 프로세스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이 됐든 물류 기업 위킵에는 새로운 도전이다.

국경을 넘어서는 풀필먼트:
큐익스프레스, 신상마켓, 브랜디

풀필먼트의 변화는 이종을 포괄하는 방식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로컬을 넘어 국경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다. 종전 풀필먼트가 한국 고객의 주문을 받아서 고객의 자택까지 배송과 역물류(반품 및 CS)를 처리해줬다면 크로스보더 이커머스(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영역의 풀필먼트는 글로벌 고객의 주문을 받아서 고객의 자택까지 배송과 역물류를 처리한다.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의 풀필먼트 처리를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글로벌 물류’를 위한 네트워크를 새롭게 붙여야 한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풀필먼트’로 한 달에만 수십만 건 이상의 물량을 처리하는 업체들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 풀필먼트 운영사 중에서도 신성장 동력으로 글로벌 이커머스 물류 역량을 확충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와 관련된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중 가장 크다고 평가받는 곳은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다. 하루 약 5만∼7만 건의 한국발 아웃바운드 글로벌 전자상거래 물동량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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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위킵 사례를 통해 풀필먼트가 유통 및 판매자의 상품 소싱 지원 영역까지 치고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큐익스프레스는 지난해 10월 위킵의 셀웨이와 유사한 비즈니스의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른바 글로벌 재고 공유 서비스 ‘스톡셰어’다.

큐익스프레스의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글로벌 셀러는 스톡셰어를 통해 물류센터에 보관된 상품 재고의 판매 권한을 시스템상에서 ‘공유’로 설정해 다른 3자 판매자가 판매하도록 할 수 있다. 이렇게 공유된 재고를 큐익스프레스의 풀필먼트를 이용하는 다른 판매자가 합의된 공급가에 원하는 수량만큼 가져다 큐익스프레스와 주문 수집이 연동된 글로벌 마켓플레이스에 올려서 판매하는 개념이다.

위킵의 셀웨이와 마찬가지로 재고를 공유하는 판매자는 스톡셰어를 통해 잘 팔리지 않던 ‘재고 상품’을 처리할 수 있다. 재고를 공유받는 판매자는 재고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아 상품 카테고리를 확장할 수 있다. 스톡셰어를 이용하는 데 별다른 비용이 들지는 않지만 큐익스프레스의 풀필먼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스톡셰어의 물동량도 큐익스프레스의 풀필먼트가 처리하기 때문에 큐익스프레스 또한 고정 물류 이용 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 이익이다.

위킵의 셀웨이와 차이점이 있다면 스톡셰어가 연결해주는 판로는 로컬이 아닌 ‘글로벌’이라는 점이다. 큐익스프레스는 전 세계 11개국(한국, 싱가포르, 일본, 중국, 홍콩, 미국(LA, 뉴저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독일, 인도)에 19개의 물류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기업이다. 시범 서비스 단계에서는 싱가포르와 한국 물류센터에 재고를 보유한 판매자만 스톡셰어를 이용할 수 있지만 큐익스프레스는 이를 추후 다른 국가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즉, 인도네시아에서 안 팔리던 어떤 상품 재고를 말레이시아 판매에 주력하는 다른 판매자가 공급받아서 판매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국경을 넘어 재고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네이버의 풀필먼트 역시 다음 과제로 ‘글로벌’을 바라본다. 네이버는 올해 3월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자회사 야후재팬의 합작법인 설립을 완료하면서 상반기 중 일본에 ‘일본판 스마트스토어(가칭)’를 오픈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네이버의 그다음 계획은 야후재팬이 가지고 있는 일본 온라인 유통 채널(야후쇼핑, 조조타운, 일본 스마트스토어 등)을 통해서 한국의 경쟁력 있는 동대문 패션 상품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물론 네이버가 물류 운영 역량이 있는 기업은 아니다.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에 맞는 물류를 위해서 운영 파트너를 제휴를 통해 연결한다. 지난해 네이버가 투자한 동대문 패션 기반 온라인 플랫폼 ‘신상마켓’과 ‘브랜디’가 일본향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물류를 수행한다. 네이버는 한국과 일본의 이커머스 흐름을 매끄럽게 만드는 시스템 구축에 집중한다.

물론 신상마켓과 브랜디는 동대문 도매상가 사입부터 소매상 물류센터 혹은 소비자까지의 국내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던 사업자였다.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에 수반되는 글로벌 물류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영역이다. 이 때문에 신상마켓과 브랜디는 지난해부터 일본향 크로스보더 이커머스를 위한 상품 판매와 물류를 테스트하고 관련 역량을 키워왔다.

신상마켓과 브랜디는 물류와 동시에 ‘상품 소싱’ 역량을 보유한 업체이기도 하다. 예컨대, 신상마켓은 동대문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해주는 B2B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한 업체다. 브랜디는 동대문 도매상과 인플루언서 소매상을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이커머스 플랫폼을 성장시켰다. 이들이 큐레이션한 경쟁력 있는 동대문 패션 상품들이 네이버의 기술과 제휴업체의 물류를 통해 일본 소비자들에게 소개될 전망이다.

풀필먼트의 글로벌 확산은 비단 큐익스프레스와 네이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신사, 카페24, 코리아센터 등 한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이커머스 플랫폼이 글로벌까지 연결되는 물류망을 최적화하고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 같은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들도 전장을 로컬이 아닌 글로벌까지 확장해 관련한 물류 서비스를 최적화하기 위해 노력한 지 오래다. 일례로 알리바바그룹의 C2C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는 2020년 한국 직구 소비자를 위한 전담 물류센터를 중국 웨이하이에 오픈했다. 아마존 또한 2020년 11번가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한국에 자사 상품을 공급하고자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아마존이 일본 등 한국 근교에 구축한 ‘풀필먼트센터’가 활용돼 속도전을 만들 것이라는 예측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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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필먼트, 광의(廣義)로 진화해야

과거 이커머스의 빠른 성장이 풀필먼트 서비스의 확산을 이끌었다. 3PL 업체들은 B2B 기업 물류에서 B2C 이커머스 물류로 관련 역량을 전환했다. 이를 1세대 풀필먼트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 시기의 풀필먼트는 물류센터 안에 상품을 입고하고 출고하기까지의 중간 프로세스를 다뤘다. 협의의 풀필먼트다.

요즘의 풀필먼트가 다루는 영역은 물류센터를 벗어나고 있다. 또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심지어 물류 아닌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다. 예컨대, MCN(Multi Channel Network) 플랫폼을 중심으로 소속 인플루언서를 통해 온라인 판매자에게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업체들이 물류까지 아우르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콘텐츠를 통해 매출을 만들어주고, 여기 수반되는 물류까지 함께 처리해주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글로벌 콘텐츠, 글로벌 물류와 결합해서 함께 제공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2020년 7월 창업 2년 만에 기업가치를 10억 달러로 평가받은 글로벌 업체 스라시오(THRASIO)가 한 예다. 스라시오는 경쟁력 있는 마켓플레이스 입점 판매자를 인수해 물류 및 공급망 관리, 마케팅 콘텐츠 제작 등을 통합 대행한다. 일종의 이커머스판 MCN이다.

풀필먼트 서비스의 시초라고 여겨지는 아마존에서 풀필먼트는 ‘이커머스 물류’라는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아마존에서 풀필먼트는 ‘만족스러운 고객 주문 처리’를 뜻한다. 고객의 주문을 받아서 만족스럽게 처리해주기까지는 어떤 일련의 과정이 있을 수 있다. 작게는 빠른 배송, 편안한 반품이 될 수도 있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글로벌을 아우르는 방대한 상품 소싱을 지원하는 것도, 인플루언서 라이브 영상 콘텐츠를 통해서 상품을 현장감 있게 전달하는 방법을 지원하는 것도 ‘고객 만족’과 연결된다. FBA라는 이름만 안 붙어 있지 이미 모두가 아마존이 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요컨대, 풀필먼트는 물류를 넘어서 진화한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확장한 개념에 ‘풀필먼트’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다른 이름을 쓰기도 한다. 크게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B2B든, B2C든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치사슬의 흐름을 최적화하는 시도’라고 풀필먼트를 해석한다면 이 또한 풀필먼트다. 협의를 넘어선 광의의 풀필먼트다. 오랫동안 물량을 가진 화주사에 휘둘렸던 물류 업체들이 매출을 무기로 화주사를 거꾸로 흔들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엄지용 바이라인네트워크 기자 drake@byline.network
필자는 인하대에서 물류학을 전공했다. 물류 전문 매체 CLO에서 콘텐츠팀장을 맡았다. 현재는 IT 전문 매체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물류, 리테일 영역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관심사는 이커머스 물류와 플랫폼이다. LG전자, 삼성물산,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통합물류협회 등 기업 및 기관 요청을 받아 풀필먼트 주제로 강연했다. 우정사업본부, SK이노베이션, EY한영, 한국노동연구원 등의 요청을 받아서 이커머스 및 물류 관련 자문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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