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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LG그룹의 AI 전략

‘AI 별동 부대’가 떴다!
계열사 난제 잡고 연구 메카로 등극

배미정 | 314호 (2021년 0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LG그룹이 추진한 AI 전략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그룹 차원의 AI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수준 높은 AI 최신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동시에 계열사 수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담당한다.

2. 그룹과 계열사 간에 유기적인 리더십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AI 과제를 발굴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계열사의 문제를 AI로 해결한 성공 사례의 노하우를 전사적으로 공유했다.

3. AI 프로젝트의 성공은 문제 정의에 달려 있다고 판단하고, 현장과 AI 지식을 겸비한 AI 컨설턴트를 육성했다.

4. AI 인재에 최적화된 ‘애자일’한 연구 환경과 독자적인 인사, 보상 체계를 제공함으로써 AI 인재들을 동기부여했다.

5. 최고 리더십이 AI를 활용한 혁신을 지지하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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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LG그룹이 지난 2년간 추진한 AI (Artificial Intelligence) 전략이 꽃피기 시작한 원년이다. 2020년 6월 LG사이언스파크 AI추진단은 컴퓨터 비전 분야 최고 권위를 가진 국제학회인 CVPR(IEEE Conference on Computer Vision and Pattern Recognition)가 개최한 ‘연속 학습(Continual Learning)’ 기술 경연 대회에 캐나다 토론토대와 공동 연구팀으로 처음 참가해 종합 1위를 기록했다. 출제된 3가지 문제에서 모두 아마존, 도쿄대 등 총 79개 팀을 제치고 1등을 했다. 또 같은 해 7월에는 한국어 AI 기계독해(Machine Reading Comprehension, MRC)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AI추진단이 개발한 언어모델은 95.39점을 받아 사람이 같은 독해 문제를 풀었을 때 받은 점수 91.2점을 훌쩍 뛰어넘었다. LG그룹 차원에서 AI 기술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최신의 AI 기술도 기업의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으면, 더 나아가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LG는 연구 결과인 AI 기술을 학회나 경진대회에 제안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자체 개발한 원천 기술과 외부의 다양한 AI 기술을 결합해 LG그룹 내 계열사들의 다양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했다. 그 결과 LG화학의 신약 후보 물질 발굴,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제조 공정 혁신, 그리고 LG이노텍의 부품 분야 특허 문헌 분석에 AI를 적용하는 등 2020년 LG그룹의 다양한 난제를 AI 기술로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AI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또 그것을 실질적인 사업적 가치로 연결한 사례를 만드는 데 성공한 LG는 2020년 12월, 그룹 차원의 AI 전담 조직인 LG AI연구원(LG AI Research)을 공식 출범하기에 이른다. 그동안의 우수 성공 사례(Best Practice)를 바탕으로 전 계열사에 AI 활용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전자, 디스플레이, 화학, 유플러스, CNS 등 16개 계열사가 참여해 3년간 2000억여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AI연구원의 수장은 AI추진단을 이끌었던 배경훈 상무가 맡고, 세계 10대 AI 연구자로 선정되고 구글 브레인에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를 지낸 딥러닝 분야의 권위자,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가 최고 AI사이언티스트(CSAI)로 초빙됐다. 국내 대기업 그룹 산하에 40대 AI 전문가가 이끄는 AI 싱크탱크가 설립된 것은 LG AI연구원이 처음이다.

LG가 AI연구원이라는 독립 조직을 LG그룹 LG경영개발원 산하에 만들면서 파격적인 지원을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2018년 12월 LG사이언스파크 내에 결성된 AI추진단 조직이 지난
2년간 최신 딥러닝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또 이를 기업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쓴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많은 기업이 비즈니스 판도를 바꿀 미래 기술 중 하나로 AI를 꼽고, 별도 AI 조직을 만들어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정작 실제 기업 경영의 문제를 AI로 해결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 내 데이터는 많지만 제대로 정리가 돼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AI로 풀 수 있는 문제를 정의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최적의 알고리즘을 선택하는 노하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전 LG사이언스파크 산하 10여 명의 전문가 조직(Center of Excellence, COE)에서 시작한 AI추진단 조직은 계열사의 실제 문제를 해결해 실질적인 경영 성과를 창출했다. 그리고 우수 AI 인재 확보를 가속화하기 위해 LG경영개발원 산하의 전문 조직으로 독립하기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일하는 AI 인재는 2020년 말 현재 90명에서 2021년 말에는 120명 이상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처럼 AI연구원이 그룹의 AI 전략을 실행하는 데 성공하며 LG그룹의 ‘AI 정예 부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AI추진단을 이끌고 초대 AI연구원장이 된 배경훈 상무와 AI사업 개발을 담당하는 이화영 담당 등을 DBR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LG그룹의 AI 전략을 분석했다.

그룹 차원의 AI 조직 설립

2년 전만 해도 LG는 AI 분야에서 후발주자였다. 계열사별로 일부 AI 조직이 있었고, 음성 에이전트 1 중심의 AI 기술을 선보이긴 했지만 개별 사업에 한정된 제품과 서비스만 제공하다 보니 깊은 수준의 AI 연구는 어려웠다. 하지만 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진화했고, 특히 학계의 우수한 연구진이 너도나도 기업으로 이동하면서 기업 간 인재 경쟁도 치열해졌다. AI 분야 세계 4대 구루(Guru)로 꼽히는 학자들도 기업에 진출해 응용 연구에 한창이다. 구글이 AI의 대부인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토론토대 교수를, 페이스북은 얀 르쿤(Yann LeCun) 뉴욕대 교수를 영입했다. 앤드루 응(Andrew Ng) 스탠퍼드대 교수는 구글의 AI 연구조직 구글 브레인을 공동 설립하고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 업체 바이두의 CTO를 맡았다가 최근 스타트업 랜딩에이아이(Landing AI)를 설립했다. 요수아 벤지오(Yoshua Bengio) 몬트리올대 교수는 스타트업 엘리먼트에이아이(Element AI)를 세웠다. AI 연구의 패러다임이 학계의 리서치 중심에서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실질적인 ‘문제 해결’로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LG도 이런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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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LG그룹 내에 계열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룹 차원의 AI 조직을 만들기로 하고 그룹 내 AI 전문가들을 모았다. 그룹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역할을 하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도하는 LG사이언스파크 내에 AI추진단 조직을 세팅했다. 비전 인식, 음성과 언어지능 분야의 AI 전문가이자 LG유플러스에서 AI 플랫폼을 구축하며 AI 기반 사업 발굴을 주도했던 배경훈 당시 LG유플러스 상무가 추진단장을 맡았다. 당시를 돌아보며 배경훈 원장은 “가장 먼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했다”고 말했다. AI 기술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AI 사이언티스트의 역량에 따라 성과에 큰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AI 사이언티스트의 역량에 따라 AI로 10명의 일을 대신하는 기술을 만들 수도 있고, 1만 명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AI 인재의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기업이 당장 필요한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것은 ‘인재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어려운 일이 돼 버렸다. 더군다나 우수한 인재들이 해외 기업에 진출하길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기업의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 기업의 AI 인재들에 대한 보상 수준이 미국 대비 3분의 1에서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이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였다. LG도 이전보다 좋은 대우를 보장했지만 기존 시스템하에서 글로벌 수준으로 보상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배 원장은 LG만의 강점을 내세워 AI 인재들에게 최고의 연구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단순히 좋은 시설과 개발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산업 분야의 다양한 문제와 데이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기업, 특히 그룹 차원의 조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배 원장은 “LG의 다양한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와 데이터는 AI 사이언티스트 입장에서 보면 ‘노다지’나 다름없다. 구글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무기”라고 강조했다. 과거의 AI는 컴퓨터 비전, 음성 인식, 자연어 처리, 데이터 지능 같은 세부 분야로 나뉘어 있고, 분야별로 기술 발전이 이뤄져왔다. 하지만 딥러닝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전공 칸막이는 의미가 없어졌다. 누구든 해당 분야 전공 지식이 없어도 AI를 활용한 최고의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배 원장 본인도 컴퓨터 비전을 전공했지만 딥러닝 기술의 발전으로 음성 인식, 자연어 처리 기술도 쉽게 습득할 수 있었다. 특히, AI연구원에서는 여러 계열사의 다양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큰 장점이라고 느꼈다. AI를 활용한 비정형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짐에 따라 멀티 모달(Multi Modal) 기술2 중심으로 적용 가능한 응용 분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AI연구원에서는 화학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컴퓨터공학 전공 출신의 AI사이언티스트가 LG화학의 신약 후보 물질 발굴 혹은 배터리 수명 예측 모델을 만드는 데 참여해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배 원장은 “AI 인재들에게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데이터와 문제를 스스로 선택해 해결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우수한 인재들이 계속해서 LG에 입사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업 리소스에 최적화된 원천 기술 확보

기업의 AI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재들에게 매력적인 연구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 우위의 차별점을 만들려면 최신의(State of The Art, SOTA)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등 깊이 있는 AI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 LG 자체 역량으로는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LG는 AI 원천 기술 연구의 메카인 캐나다 토론토와 2019년 5월 기업용 AI(Enterprise AI) 연구를 위한 MOU를 체결해 대학의 우수한 AI 역량을 LG에 이식하기로 한다. 배 원장은 “딥러닝 기술은 계속해서 진화,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남들과 차별화된 AI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 기업에서는 현재 사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필요한 AI를 우선 활용하는 수준이라 이런 깊이 있는 AI 연구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토론토대와의 공동 연구가 원천 기술 확보의 돌파구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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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 뛰어난 연구자들이 많은데 기업이 왜굳이 원천 기술을 직접 연구해야 할까? 현재 AI는 누구나 배우면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시대다. 구글의 AI 프레임워크인 텐서플로를 포함해 각종 오픈 소스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개된 소스만 갖고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기술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특히 딥러닝 기술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는데 학계의 최신 연구 결과를 실제 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최적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해외 대학의 우수한 연구진에게 거액의 예산을 들여 프로젝트를 맡겨도 기업의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LG가 차별화된 AI 경쟁력을 가지려면 진화하는 AI를 원천 기술 수준으로 확보할 뿐 아니라 LG의 환경에서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적화하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LG와 토론토대의 공동 연구는 기업이 외부에 과제를 맡기고 결과만 기다리는, 즉 ‘무늬만 산학 협업’이 아니었다. LG는 아예 처음부터 토론토대와 공동 연구팀을 만들고, 연구원 3명을 캐나다 토론토대로 파견 보내는 등 최신 AI 알고리즘을 LG의 사례와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화한 AI 모델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AI 연구 전담 조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토론토대 입장에서도 LG의 대규모 데이터와 응용 사례들을 활용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win-win)이었다. 이같이 1년여간 치열하게 공동 연구를 진행한 성과가 2020년 ‘연속 학습’ 기술 분야에서 나타났다.

기업에서 AI를 개발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동화 또는 반자동화를 통해 운영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 딥러닝은 새로운 변수, 즉 학습 시 없었던 새로운 데이터가 발생하는 경우에 처음부터 다시 학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수백 기가 분량의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데이터가 발생하더라도 기존에 학습된 모델의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는 연속 학습 기술이 절실했다. 토론토대와 연속 학습 기술을 공동 연구해온 LG는 컴퓨터 비전 최고 학회인 CVPR에서 처음으로 연속 학습 경연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 수준의 연구 결과를 테스트하는 차원에서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주어진 3문제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하면서 종합 1등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그동안 공동 연구를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 치열하게 토론하고 응용하면서 쌓은 경험이 뒷받침됐기에 이룰 수 있는 성과였다. 배 원장은 “토론토대의 기초연구 역량과 LG의 응용연구 역량이 만나 성과를 만든 좋은 사례”라며 “학계와 산업계가 시너지를 내기가 어려운데 이번 성과는 LG가 본격적으로 학계와 AI 생태계를 만드는 신호탄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를 계기로 LG와 토론토대와의 협업은 기존 제품용(Product) AI, 기업용(Enterprise) AI 영역을 뛰어넘어 소재(Material) 분야로까지 확장됐다. LG는 국내에서 서울대, KAIST와도 공동 연구 MOU를 체결해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LG가 중심이 된 산학협력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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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mini box I : 그룹 AI 역량 어떻게 끌어올렸나
“우수 사례 널리 알려라” AI HUB 시스템으로 공유

그룹 전반의 AI 역량을 빠르게 높이려면 우수 사례를 많이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AI연구원은 그룹 차원의 우수 사례 공유 체계인 AI HUB를 개발해 각 계열사가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LG AI연구원이 확보한 AI 원천 기술뿐 아니라 AI로 계열사별 문제를 해결한 지식과 노하우를 우수 사례로 공유한다. AI연구원이 2020년에 성공적으로 수행한 계열사 과제 4가지를 간단히 요약해 소개한다.

1. 배터리 잔존 수명 예측을 위한 AI 기술 활용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수명을 예측하는 데 AI를 활용하고 있다. 배터리 충방전 이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으로 이 배터리가 얼마큼 더 잔존 수명을 갖고 있는지를 AI로 예측하는 것이다. 모든 배터리의 잔존 수명을 AI 기술을 활용해 정밀하게 측정해 재활용하는 데 활용한다면 미래 전지 재활용 사업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지 생산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크게 줄여 환경 개선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예컨대, LG가 생산하는 배터리를 모두 재활용할 수 있다면 배터리 원재료인 리튬, 망간, 코발트, 니켈 등의 채굴을 최소화함으로써 연간 약 2500만 톤의 이산화탄소 발생(약 10년간 3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을 줄일 수 있다.

2. 신약 후보 물질 발굴에 AI 도입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는 과정은 병을 일으키는 ‘타깃’을 찾고, 타깃에서 유효한 물질인 ‘히트’를 창출하고, 그로부터 가장 유효한 ‘리드’ 물질을 도출하는 타깃(target)-히트(hit)-리드(lead) 발굴의 과정을 거친다. 전통적으로 연구원이 논문을 뒤져서 타깃을 찾고, 직관적으로 분자구조를 디자인하고, 실험을 통해 리드 물질을 확인하기까지는 보통 약 3.5년이 소요됐다. LG AI연구원은 LG화학 생명과학본부와 협의해 AI를 활용해 항암, 면역 관련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이 긴 과정을 혁신하기로 했다. LG가 보유한 분자 구조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성 모델(Generative Model)을 통해 AI가 새로운 신약 후보 물질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빠른 속도로 최적의 후보 물질을 찾아냈다. 그 결과 약 8개월 만에 후보 물질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으며 실험을 통해 검증한 결과, 실제로 타깃 단백질을 제어하는 능력을 가진 화합물을 찾았다. 이는 다른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데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확장 효과가 기대된다.

3. 고객의 페인포인트를 사전 예측

LG유플러스에는 수천 명의 전문 상담사가 유플러스 전체 인터넷과 IPTV 고객 수백만 명을 대상으로 단순 문의를 포함해 매일 약 수십만 건 이상의 전화 응대를 하고 있다. 인터넷이나 IPTV를 사용하는 유플러스 홈 고객 중 절반 이상이 1년에 1회 이상 전화 문의를 한다. 특히 코로나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인터넷과 IPTV의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고객 문의도 증가했다. 작은 실수도 고객의 불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LG유플러스는 IPTV의 불량을 선제적으로 예측해서 케어하는 프로액티브 케어(proactive care) 서비스에 AI 기술 도입을 준비 중이다. AI연구원은 인터넷을 위한 무선 액세스 포인트(Wireless Access Point), IPTV 셋톱박스, 네트워크 장비들의 상태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신 AI 기술을 활용해 고객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고객이 전화로 문의하기 전에 미리 감지하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정상적인 고객의 상태만 학습한 AI가 비정상적인 상황을 감지함으로써 불편함을 호소할 고객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감지하는 부분의 AI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할 뿐 아니라 AI가 비정상적인 상황을 좀 더 정밀하게 자동으로 클러스터링함으로써 유형별로 고객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케어하는 부분에 도전하고 있다. 예컨대, 인터넷망을 증설하거나, 셋톱박스를 교체하거나 하는 식의 고객 불편을 미리 알고 조치할 수 있다. 이런 서비스가 시현되면 상담사들의 업무 과중이 줄어 고객에게 보다 더 정성스럽게 응대가 가능해질 뿐 아니라 고객 또한 불편 없는 최고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 특허 문헌 분석 시간을 대폭 절감

기업이 혁신 기술을 내놓는 데 발목을 잡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특허이다. LG 계열사의 엔지니어들은 매년 새로운 부품 또는 상품을 개발하기 전에 경쟁사가 출원한 기존 특허를 분석하는 업무에 상당한 시간을 들이고 있다. AI연구원은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LG이노텍과 함께 기계독해(MRC) AI 기술을 부품 분야 특허 문헌 분석에 적용했다.

MRC는 AI가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적으로 학습해 스스로 문제를 분석하고 질문에 최적화된 답안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이는 금융이나 법률 문서처럼 꼼꼼히 읽기는 분량이 너무 방대하거나 전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문서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 아주 효과적이다. LG AI연구원은 2020년 한국어 MRC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MRC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 MRC 기술을 LG이노텍에 적용해 AI가 엔지니어를 대신해 훨씬 짧은 시간 내에 특허 문서를 읽고, 특허가 적용되는 대상 제품을 분류하고, 특허의 목적을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절약된 엔지니어들의 시간은 고객에게 더욱 가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특허뿐만 아니라 다른 문헌 분석에도 MRC 기술이 확대된다면 매년 어마어마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DX 리더십 기반으로
계열사와 원팀(One-Team) 협업

AI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 고도화된 딥러닝 알고리즘, 고성능 컴퓨팅 자원 등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AI연구원이 인재를 확보하고 AI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알고리즘과 컴퓨팅 자원은 내부에서 철저히 준비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와 ‘데이터’는 AI연구원 밖에, 즉 계열사에 있었다. 연구 과제 아이템을 발굴하고 해결하려면 계열사와의 소통이 필수적이었다. 계열사에서 문제와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원천 기술도 사장될 운명이다. 다행히도 LG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DX)을 완수하는 목적으로 LG사이언스파크가 계열사와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었다. LG는 2018년 4월 글로벌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세우면서 전사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완수하기 위한 조직으로 LG사이언스파크 내에 DX센터를 세우고, 계열사마다 DX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DX 전담 조직을 통해 회사별로 전사 차원의 중요한 DX 과제를 발굴 및 추진하고, 계열사에서 해결하기 힘든 난제의 경우 AI연구원에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 AI연구원 또한 국내외 AI 기술의 발전 동향과 적용 사례를 바탕으로 각 계열사의 DX 담당 조직에 과제를 먼저 제안해 문제를 발굴할 수 있다. 이처럼 AI연구원은 그룹 DX 조직의 프로세스를 활용해 계열사와 쌍방향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체계에도 불구하고 초반에는 AI 과제를 발굴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AI 추진단 시절, 업무협의체 등을 돌아다니며 AI 기술을 시연하고 홍보에 나섰지만 계열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계열사별로 AI 조직이 이미 있는데다 AI 기술로 과연 계열사도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컸다. 그동안 AI로 중대한 문제를 해결한 성공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AI연구원은 ‘Advancing AI for a better life’란 비전을 바탕으로, 계열사가 확보하기 어려운 최신 AI 기술(Advancing AI)로 난제를 해결해 그룹 전체에 고객가치를 높일 수 있음(for a better life)을 설득해 나갔다.

DX 조직의 협의체를 통해 AI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은 계열사의 리더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LG화학 생명과학본부장인 손지웅 사장은 제약산업에서 의약품을 개발할 때 개발 기간과 비용을 효율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AI의 적용이 확대되고 있는데, LG가 항암, 면역 관련 후보 물질을 발굴할 때도 AI 기술을 활용해 개발을 효율화할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의 연구소 사장급 임원은 배터리 용량과 수명을 예측하고자 배터리를 완전 충전 및 방전하는 데 너무나 많은 전기가 낭비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문제를 AI로 해결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기계독해(Machine Reading Comprehension, MRC) 기술의 시연회를 본 LG이노텍은 사내 엔지니어들이 부품 분야 특허 문헌을 분석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겠다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LG유플러스도 AI로 네트워크의 이상을 감지해 고객의 불편을 예측해 해결하는 프로액티브 케어(Proactive Care) 과제를 제시했다. (DBR minibox ‘“우수 사례 널리 알려라” AI HUB 시스템으로 공유’ 참고.)

이처럼 리더들이 직접 나서서 AI로 방향을 설정하니 계열사의 실무 부서와 구성원들이 AI추진단을 보는 시각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계열사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AI추진단에 맡기면 된다는 인식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배 원장은 “계열사 리더들이 더 큰 사업적 가치를 가지는 과제를 톱다운(Top-down)식으로 제시함으로써 AI연구원과 계열사 간의 유연한 협업이 활발해졌다”고 설명했다.

물론 계열사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예컨대, 스마트 팩토리에서 불량품을 걸러내는 비전 검사 솔루션을 구축할 때는 불량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려워 애를 먹었다. 양품 데이터와 불량 데이터가 적절히 있어야 정확도가 높은 AI 모델을 만들 수 있는데 계열사에서 확보한 불량 데이터의 양과 질에 한계가 있었다. AI를 활용해 적은 데이터로도 학습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또 AI의 확률 모델을 이해하지 못한 일각에서는 챗봇의 답변이 100%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출시를 꺼리기도 했다. AI는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으며 고객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진화하기 때문에 지금의 정확도도 충분하다고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처럼 협업은 연구원과 계열사가 하나의 팀(one team)이 돼 현장의 니즈와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서로 높이면서 눈높이와 기대치를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과정이었다.

이 같은 협업은 각 계열사에 데이터 관리와 정의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LG는 그룹 차원의 데이터 거버넌스 조직을 LG사이언스파크 내 신설하고 계열사의 데이터 수집 표준 체계를 정립하는 등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를 추진하고 있다. 과거에는 AI 하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풀고자 하는 현장의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그에 맞는 데이터를 준비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그룹 차원에서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AI 컨설턴트의 육성

AI연구원은 계열사와 협업하는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기업 현장과 AI 지식을 모두 겸비한 인재, 즉 AI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계열사 간 시너지를 창출하는 역할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일반적으로 계열사의 AI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계열사의 현장 전문가와 AI연구원의 AI 사이언티스트가 만나서 현장의 문제를 AI 문제로 정의하는 초기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양쪽의 관점이 너무나 달랐다.현장 전문가는 데이터를 갖고 있고 AI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정작 데이터를 분석할 줄도, AI로 해결할 수 있도록 문제를 정의할 줄도 몰랐다. 다른 한편으로, AI 사이언티스트는 현장 지식을 몰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더군다나 AI 사이언티스트는 백지상태에서부터 현장의 문제를 이해하고 AI 문제로 정의하는 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이렇게 서로 관심사와 이해 수준이 다른 현장 전문가와 AI 사이언티스트 양쪽의 가교 역할을 할 전문 인력의 필요성이 커졌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바로 AI 컨설턴트 조직이다. AI 컨설턴트는 현장에 나가서 AI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가 없는 경우에는 빅데이터 담당과 함께 데이터 분류와 라벨링 등 데이터 준비에 필요한 작업들을 일일이 코칭하는 역할을 한다.

AI연구원은 2020년 9월 이화영 AI사업개발담당 아래 8명으로 구성된 AI 컨설턴트 조직을 만들었다. AI 컨설턴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AI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발굴 및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현장의 지식뿐 아니라 최신 AI 기술까지 겸비해야 한다. 기존에 했던 통계 방식의 데이터 분석 방법과 머신러닝 방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현장의 문제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최신 딥러닝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으면 풀고자 하는 문제의 범위가 더 다양해지고, 기존에 풀 수 없던 문제도 새롭게 정의해 해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AI를 아는 만큼 문제가 보이는’ 셈이다. 배 원장은 AI 컨설턴트가 마치 ‘도장 깨기’를 하듯이 문제를 발굴하는 데 도전한다고 비유했다. 각 계열사의 데이터 애널리스트들이 풀지 못한 문제도 최신 AI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적용해 문제를 발굴하고 정의한다. 더 나아가 해당 AI 문제를 해결했을 때 사업적 혹은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창출되는지를 정의하는 작업도 AI 컨설턴트의 몫이다. 예컨대, 신약 후보 물질 개발에 AI를 적용했을 때 구체적인 사업 가치와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 후광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AI 컨설턴트가 평가한다. 이런 작업이 가능하려면 현장에 대한 지식도 겸비해야 한다. 이화영 AI사업개발담당은 “문제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래프 한 축에 사업적 효과, 다른 축에 사회적 후광 효과를 둔다면 양쪽 모두가 큰, 즉 그래프의 우상단에 위치한 과제에 우선적으로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AI 컨설턴트의 조직 규모 자체는 작은 편이다. 이에 대해 배 원장은 “무조건 규모를 늘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0명보다는 1만 명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한 명의 우수한 AI 사이언티스트를 키워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배 원장은 “최신의 AI 지식과 고차원의 문제를 발굴하고 정의해낼 수 있는 정예부대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다. 이를 통해 하나의 AI 문제 해결로 10개 이상의 유사한 AI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10X 체계’도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인재 풀을 넓히는 데 외부로부터 우수한 인재를 수혈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AI연구원은 그룹 내 각 계열사에서 일하는 수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데이터 애널리스트들이 AI 기반 문제 해결 역량을 확보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미션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AI연구원은 계열사의 현장 전문가가 연구원의 멘토와 함께 실제 현장의 문제를 AI로 해결하는 ‘AI고급문제해결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독특한 점은 멘토가 일대일로 코칭을 하는 ‘도제식’으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현장 전문가가 AI로 해결하고 싶은 현장의 문제와 데이터를 들고 오면, 연구원의 멘토가 붙어서 AI를 활용한 문제 해결을 돕는다. 배 원장은 “직접 AI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 줄 아는 AI 인재를 키우려면 도제식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은 2020년에만 78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는데 이 말은 그룹 내 70개가 넘는 현장의 문제가 AI로 해결됐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더군다나 계열사로 돌아간 수료생은 다시 누군가의 멘토가 될 수 있다. 배 원장은 “이렇게 AI 역량의 선순환을 확대할 뿐 아니라 석•박사 수준의 AI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해 3년 안에 AI를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AI 전문가를 그룹 내 1000명 키워내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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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AI연구원의 출범,
AI 인재에 최적화된 연구 환경 지원

LG의 AI추진단 조직이 지난 2년간 우수한 인재와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계열사와 협업을 통해 AI 과제를 수행한 노력은 2020년 12월 LG경영개발원 산하에 AI연구원이란 독립적인 조직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국내에서 그룹 차원의 AI 조직을 별도로 만든 것은 LG가 처음이다. AI연구원은 그룹 차원의 종합 AI연구소로 계열사의 AI 조직과 유기적인 협업 체계를 만들고, 상호 보완하면서 그룹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완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실적으로 계열사는 당장 해결해야 하는 사업 문제가 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문제를 풀기 위한 미래 AI 기술과 역량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AI연구원 또한 계열사의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다. 이에 AI연구원은 기존 계열사 AI 조직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그룹 전체의 사업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그룹 산하의 AI연구원이 우선적으로 풀고자 하는 과제는 크게 ‘난제’와 ‘공통 과제’로 나뉜다. 난제는 사업적 가치가 큰, 예컨대 100억 원 이상의 비용 절감이 기대되지만 기존 기술로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다. 공통 과제는 그룹 계열사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문제, 즉 적용한 기술을 유사한 문제로 10배 이상 확대할 수 있는 과제를 말한다. 배 원장은 “연구원은 단지 주어진 문제와 데이터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계열사에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문제 발굴 및 정의 단계에서부터 AI로 풀 수 있는지를 계열사와 하나의 팀이 돼 분석하고 적합한 최신의 AI 알고리즘을 선택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원 내부 조직도 개별 랩이 AI 원천 기술과 계열사의 문제를 함께 연구하도록 구성했다. LG AI연구원은 크게 4개 랩으로 구성된다. 펀더멘탈 리서치 랩(Fundamental Research Lab)은 토론토대 등과의 협업을 통한 AI 원천 기술 확보와 소재 관련 AI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비전 랩(Vision Lab)은 스마트팩토리 비전 검사와 디지털 휴먼 연구를, 랭귀지 랩(Language Lab)은 MRC, TA(Text Analytics) 기반의 챗봇과 고객 및 문헌 분석 연구를 추진한다. 데이터 인텔리전스 랩(Data Intelligence Lab)은 최적화, 강화학습, 예측 모델을 기반으로 배터리 수명과 용량 예측, 에너지저장시스템(ESS, Energy Storage System) 장애 예측, 수요 및 가격 예측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각 랩은 최신 AI 기술을 사전에 확보하고, AI 컨설턴트들과 함께 풀고자 하는 문제를 정확히 정의한 후 데이터 준비 과정을 거쳐, 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AI 알고리즘을 선택한다.

AI연구원이 독립적인 조직이 된 것은 그룹 내 다른 조직과 별도로 독자적인 인사 시스템과 평가, 보상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됐다는 데 의의가 크다. 다시 말해, AI 인재의 역량에 걸맞은 파격적인 지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AI연구원은 기존 연차 기준의 연봉 시스템에서 탈피해 AI 역량으로 평가하는 체계를 별도로 만들었다. 특허, 논문 등 기본 AI 역량에다가 AI를 활용하고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 등을 종합해 AI 역량에 따라 보상하는 별도 체계를 만들어 AI 인재들의 지속적인 연구와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를 높이고 있다.

AI 과제의 성격을 감안해 일하는 원칙도 ‘애자일(agile)’로 통일했다. 여기서 애자일은 연구원들을 여기저기 프로젝트에 동시다발적으로 투입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배 원장은 애자일 방식의 핵심을 ‘실패를 용인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AI연구원의 개별 프로젝트는 아무리 길어져도 가급적 6개월을 넘기지 않도록 설계한다. 계열사의 요구사항에 따라 기간이 연장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과제의 성공 여부는 3개월 안에, 즉 콘셉트 검증(POC, Proof of Concept) 단계에서 결정된다. 실패가 두려워지면 빠르게 새로운 문제에 도전하는 것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배 원장은 직원들에게 “3개월 안에, 가능한 빨리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경험을 교훈 삼아서 새로운 문제에 다시 도전하라”고 주문한다. 그는 “실패를 하더라도 고민을 통한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확보된 경험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최적의 연구를 애자일하게 선택할 수 있으면 이는 곧 최고의 성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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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재를 위한 최상의 연구 환경은 세계적인 석학인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가 LG를 택한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이 교수는 세계 4대 석학인 앤드루 응 교수의 제자로 구글의 AI 연구조직인 ‘구글 브레인’에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를 지냈다. 머신러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2013년 전기전자공학회(IEEE)에서 세계 10대 AI 연구자로 선정될 정도로 최고 수준의 논문을 내놓는 연구자다. LG는 그를 업계 처음으로 신설된 ‘C레벨의 AI 사이언티스트’ CSAI이자 AI연구원의 창립 멤버(founder)로 추대하면서 그에게 자유롭게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홍락 CSAI는 AI연구원이 LG그룹 내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AI로 해결함으로써 세상에 실질적으로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배경훈 AI연구원장(45) 또한 이홍락 CSAI(44)와 더불어 70년대생으로 AI 기술 연구뿐 아니라 응용 경험도 많은 AI 전문가다. 두 사람의 70년대생 최고 AI 전문가가 이끄는 AI연구원의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이유다.

배 원장은 앞으로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학습하는 비지도학습(unsupervised learning)이 보편화되면서 ‘사람에 의한 AI’가 아니라 ‘AI에 의한 AI’가 지배하는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AI는 초기에 사람의 개입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래서 실제 완성 수준의 AI 솔루션들은 사람 대비 압도적인 성능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업 비즈니스의 어떤 부분에, 어느 정도 수준으로 AI를 적용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기업가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혁명에 가까운 AI에 대한 의식 개선이 이뤄지고, 현재 범용적인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 방식을 뛰어넘어 준지도학습(semi-supervised learning) 또는 비지도학습(unsupervised learning)이 보편화된다면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완전히 변할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LG AI연구원은 새로운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우수 사례를 계속 만들어 전파할 방침이다.

LG는 지난 2년간의 여정 동안 계열사를 대상으로 AI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계열사들이 스스로 수많은 과제를 발굴해 요청할 정도로 AI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 기술임을 모두가 인식하게 됐다. AI 하면 그저 신기술 정도로만 여기는 수준에서 탈피해 그룹 차원에서 우수 사례를 만들고, 그룹사 전체가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다른 그룹과의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룹의 사이언스파크와 AI 연구원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리더들의 AI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킴으로써 계열사와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또 AI연구원장이란 임원 자리에도 실질적으로 AI 문제를 풀 수 있는 전문가에게 역할을 맡김으로써 AI 연구에 힘을 실었다. 배 원장은 “어떤 문제든 재밌게 도전하는, 놀이터와 같은 AI 연구의 장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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