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egy

제록스 프린터를 살린 기술혁신팀의 전략적 사고

312호 (2021년 01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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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d on “Converting inventions into innovations in larger firms: How inventors at Xerox nevigated the innovation process to commercialize their ideas” by Natalya Vinokurova and Rahul Kappr in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2020). 41. pp. 2372-2399.

무엇을, 왜 연구했나?

아무리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발명품들이라 할지라도 내부의 판단과 절차를 거쳐 상용화되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다. 이 벽을 넘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원천기술이나 혁신 제품도 무수히 많다. 경영학계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그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주류 제품이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 불확실한 수요 예측, 추가 투자의 부담, 부정적인 안팎의 평가, 역량 부족 등이 그것이다. 학계는 주로 현실 안주, 변화에 대한 거부감, 경직된 전략적 사고, 판단 착오, 기업가정신 부재 등 기존 경영진의 타성적 사고와 실천 의지 부재에서 그 원인을 설명해 왔다. 최근 미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이런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측면에서 원인을 조명했다. 기존 경영진의 한계도 원인일 수 있으나 기업 내 ‘혁신가’나 ‘발명가’ 또한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혁신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상용화하는 것 역시 혁신가나 발명가의 몫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혁신 제품의 상용화 여부는 결국 상용화할 만한 제품인지 판단하는 평가 기준과 이에 따른 추가 자원의 투입 여부에 달려 있다. 연구진은 거대 기업의 혁신가나 발명가들이 혁신과 발명 못지않게 상용화 평가 기준 선정과 이에 따른 추가 자원의 투입 과정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혁신 제품에 우호적일 부서나 사업부를 파악해 적극 설명하고 혁신 제품이 상용화에 적합하다는 평가 기준을 주도적으로 제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세기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70년대 제록스사(社)의 오피스워크스테이션, 레이저 프린터, PC를 주목했다. 앞의 두 혁신 제품은 상용화에 크게 성공했으나 PC는 실패해 그 과실은 경쟁 업체나 후발주자로 넘어갔다. 연구진은 이 세 가지 혁신 제품이 서로 다른 운명을 맞게 된 원인으로 상용화 평가 기준 선정과 자원 배분의 과정에 혁신가들의 어떤 역할을 했는지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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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발견했나?

914 복사기를 시장에 최초로 선보이며 큰 성장을 했던 제록스사(社)는 70년대 정체기를 맞이하며 새로운 제품 혁신에 돌입했고 그 결과 오피스워크스테이션, 레이저프린터, PC 등 세 가지 혁신 제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판단 기준에 따른 검증, 논의 등 쉽지 않은 내부 심사를 거쳐야 비로소 상용화를 위한 추가 자원 확보가 가능했다. 오피스워크스테이션은 큰 문제 없이 안팎의 호평이 이어졌으나 레이저프린터와 PC는 평가가 크게 엇갈렸다. 특히 엄격한 잣대로 적용됐던 예상 매출, 예상 마진율, R&D 투자 규모, 경쟁사인 IBM과의 경쟁 가능성에서 레이저프린터와 PC는 모두 적합지 않거나 미흡한 것으로 판단돼 상용화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두 제품을 발명해 낸 혁신팀은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레이저프린터 혁신팀은 일괄적으로 적용된 평가 기준이 신제품의 특성에 맞게 수정돼야 함을 적극 관련 부서나 연구소를 설득하며 평가 기준의 수정과 상용화의 필요성을 관철하기 위해 입체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PC 혁신팀은 평가 결과에 수동적으로 대응했다. 결국 레이저프린터는 추가 자원을 지원받아 훗날 제록스사(社)의 핵심 제품으로 성장했으나 PC는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는가?

914 복사기의 뒤를 이어 워크스테이션과 레이저프린터는 70년대 제록스사(社)를 지금의 애플에 버금가는 혁신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표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레이저프린터의 성장은 자칫 묻혀버릴 뻔했던 혁신 아이템을 주력 상품으로 키우기 위해 경영진을 설득하고 상용화를 위한 새로운 평가 기준을 제시한 제록스 기술혁신팀의 공로가 아닐 수 없다. 혁신 기술은 불확실성이 매우 커 조직의 저항이 따를 수 있고 상용화될 때까지 투자를 무한정 지속하는 것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혁신 기술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해도 이를 경영진의 무능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결국 기술 개발에만 머무르지 않고 상용화도 주도할 수 있는 혁신팀의 시장 마인드와 전략적 사고가 있어야 혁신 기술도 상품화될 수 있다.


류주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 jhryoo@hanyang.ac.kr
필자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에서 석사(국제경영학), 런던정경대에서 박사(경영전략)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United M&A, 삼성전자, 외교통상부에서 해외 M&A 및 투자 유치, 해외직접투자실무 및 IR, 정책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국내외 학술저널 등에 기술벤처, 해외 진출 전략, 전략적 제휴, PMI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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