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이해하는 애자일 조직

“요즘 고생 많다. 동기들과 이걸로 한잔해”

282호 (2019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애자일 조직이 화두다. 애자일 조직을 달성하기 위해선 조직원들의 부서 간 경계 없는 협업, 민첩한 시장 대응력, 과감한 시도 등이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조직을 갖추기 위해선 선행돼야 하는 전제 조건이 있다. 팀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간단해 보이고 하찮은 요소일 것 같지만 많은 심리학자는 이 상호 존중이라는 성격이 인간의 긍정적인 행동을 이끄는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상호 존중은 겸손하고 정직한 성격에서 나온다.


좋은 조직일수록 조직의 구성원들이 서로 상호 존중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애자일 조직에서 이 상호 존중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직급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팀원들이 모두 거침없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가장 좋은 결과물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팀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함께 수평적으로 일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많은 회사가 팀원과의 관계 설정, 에티켓, 의사소통 방법을 강조하고 교육한다.

과연 이러한 방법은 상호 존중하는 팀을 만드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까. 아마 대부분의 독자는 이 물음에 부정적으로 답할 것이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상호 존중하는 배려와 공감의 문화가 ‘왜’ 중요한지,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질문을 해보면 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대답을 못한다. 대답을 못한다는 것은 그저 하면 좋은 것이지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음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상호 존중이라는 요소가 빠지게 되면 애자일 조직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기 어렵다. 또한 상호 존중의 미덕이 떨어지는 사람은 애자일 조직이 아니더라도 조직 전체를 망치는 가장 위험한 인물임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강력한 방식으로 조직을 망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미세하지만 분명한 인과관계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제6의 성격: 정직-겸손성

캐나다 캘거리대 심리학자 이기범 교수의 연구를 잘 살펴보면 그 실마리가 보인다. 이기범 교수뿐만 아니라 필자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가 학계에서든, 기업에서든 많이 사용하는 성격검사들이 사람들의 행동을 잘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예를 들어, 도전적인 성격과 모험적인 행동이 기업가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보자. 통계적으로 본다면 도전적 성격과 모험적 행동 간 분명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하지만 변인들 간에 유의미한 상관이 존재하는 것과 그 상관성이 어느 정도의 현실에서 설명력을 가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일반적으로 상관지수의 제곱 값을 그 상관 변인의 설명력이라고 본다. 만약 개방적 성격과 진취적 행동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r)이 r=.3으로 관찰됐다면 다시금 그 값의 제곱인 r=.09, 즉 9% 정도가 개방적 성격이 진취적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니 나머지 91%는 다른 변인들이 포함돼야만 제대로 된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기범 교수에 의하면 그 다른 변인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정직-겸손성(honesty-humility)이다. 즉, 이 변인이 빠져 있기 때문에 설명할 수 있는 범위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존의 성격 검사에서 주로 다루는 변인들에 이 정직과 겸손이라고 하는 변인이 추가되면 행동의 예측력이 눈에 띄게 올라간다.

일단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5요인(Big-5) 성격검사를 알아보자. 행동과 판단 성향을 가장 잘 구분하는 성격 특징을 5개 요인(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우호성, 신경증적 경향성)으로 나눠 측정하는 검사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은 상상력과 호기심, 모험심과 관련이 있으며 다양성에 대한 욕구와 관련이 있다. 성실성(conscientiousness)은 말 그대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외향성(extraversion)은 다른 사람과의 친분 맺기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을 뜻한다. 우호성(agreeableness)은 타인에게 저항적이지 않고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신경증적 경향성(neuroticism)은 불쾌한 정서를 쉽게 느끼는 성향으로 예민함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5요인 성격 검사는 매우 다양한 연구에서 사용돼 왔으며 그 연구들의 상당수는 성격과 행동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된 것들이다. ‘어떤 성격의 사람들이 혁신적인 일을 잘하는가?’ 혹은 ‘조직에 도움이 되거나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어떤 성격 유형을 가지고 있는가?’ 등의 연구를 예로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런 연구들의 문제는 실제 조직에서 일어나는 조직원 개개인의 성격과 행등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에 이기범 교수는 주목을 했다. 무엇이 빠져 있을까? 바로 정직-겸손성이다. 그는 이를 제6의 주요 성격이라고 주장한다.

정직-겸손성은 과연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거짓말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탐욕스럽고 잘난 척하는 사람도 자가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선적이지 않은 정직함(honesty)과 가식을 싫어하고 특권 의식을 멀리하는 겸손함(humility)의 두 h를 같이 묶어 이기범 교수는 H-요인(H-factor)이라고 부른다. 1 필자를 비롯한 다른 많은 심리학자가 놀라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실제 이 정직-겸손성이 다른 어떤 성격 요인보다도 한 사람의 행동을 잘 예측한다는 것이다. 특히 상호 존중과 관련된 연구 결과에서 높은 상관성을 보인다.

왜 그럴까. 관련 분야 연구자들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타인을 자기 입맛대로 조종하지 않고 가식적인 것을 싫어한다. 둘째, 공정하고 준법적이며 부와 사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청렴하다. 셋째, 자신이 특별히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하면 지극히 상식적으로 상호 존중하는 사람의 모습 아니겠는가? 그래서 정직-겸손성과 상호 존중은 같은 차원의 변인이다.



정직-겸손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상호 존중에 있어서 지극히 낮은 성향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 정직-겸손성이 낮은 사람의 특징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목적을 위해 사람을 사귀며 필요할 경우에는 아주 교활한 아첨도 당연히 마다하지 않는다. 둘째,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규정과 규칙의 위반을 마다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와 지위를 추구하는 경향이 극단적으로 강하다. 셋째, 자신에게 별다른 이득이 없다고 판단되면 아무리 소중한 관계라도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넷째, 특권 의식이나 권위 의식이 매우 강해 늘 타인의 위에 군림하려 한다. 이렇게 낮은 정직-겸손성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거나 배려하는 상호 존중 성향이 지극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 경우 다른 어떠한 훌륭한 성격 요인을 가지고 있더라도 좋은 구성원이 되거나 조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리가 만무하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다음에 소개할 최소한 4가지 유형의 악한 인간이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첫째, 정직-겸손성이 낮으면서 원만함은 높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원만한 성격을 이용해 부정직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가까워진다. 즉, 아부에 능하다. 아부는 아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리더의 눈을 멀게 해 조직의 중요한 다른 사람들을 평가절하하게 만드는 함정이 된다.

둘째, 정직-겸손성이 낮으면서 원만함도 낮은 사람들이다. 전형적으로 이기적인 ‘싸움닭’ 타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사사건건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 일을 처리한다. 이들은 대부분의 관계를 경쟁관계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일에 대한 성취감보다는 우월감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셋째, 정직-겸손성이 낮으면서 성실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 또한 결코 좋은 형태가 아니다. 이들에게 가장 많이 발견되는 특징이 바로 음모다. 정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성실하게 무언가를 진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밖에 모르는 음모에 가득 찬 야심가인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리 역시 만무하다.

넷째, 정직-겸손성이 낮으면서 성실함도 낮은 사람들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들은 그야말로 최악의 동료이자 상사이고 부하다. 나태하면서도 자신의 그런 모습을 인정하지도 않고 거짓으로 일관하니 말이다.

따라서 정직-겸손의 미덕이 조직 내에서 강조되지 못하고 배양되지 못하면 조직은 그 중간 징검다리로서 상호 존중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론이 당연히 가능해진다. 정직-겸손성을 갖춘 사람을 조직에서 평가절하거나 아예 조직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리더들의 정직-겸손성이 떨어지면 조직에는 회복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만연하게 된다.

국내에서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애리조나대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는 자신의 최근 저서 『초전설득』에서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펼친다. 크든 작든 간에 리더의 낮은 정직-겸손성, 즉 위선적 행동을 구성원들이 목격하게 되면 일반적인 대부분의 상황에서 무기력이 가중되며 특정한 일을 시작하려 할 때 동기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역설하고 있다. 2 정직-겸손성의 정반대 차원에 해당하는 거짓말의 기본적 기능과 영향력을 고민해 보면 그 답이 분명해진다. 3

거짓말은 그 목적상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나눠진다. 첫째, 자신에게 묻는 책임을 즉각적으로 피하고 싶을 때다. 둘째, 무언가 힘들게 해야 하는 것을 피하고 쉽게 얻고 싶을 때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유다. 그런데 이 두 이유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간’을 줄이고 싶다는 인간의 근본적 욕망이다. 나에게 오는 책임을 피하지 않고 감내하든, 무언가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기 위해서든, 인간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거짓말은 그 긴 시간을 매우 짧게 단축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자녀 양육과 관련된 심리학 연구들을 살펴보면 부모의 거짓말을 자주 목격한 자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 있다. 정상적인 시간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참을성이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일정한 길이의 시간이 필요한 일을 만나면 무기력해 지거나 열심히 하려고 하는 동기의 수준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150년 남짓한 심리학 역사에서 일관되게 관찰되는 거짓말의 악영향이다.

그리고 이는 어른들이 모여 있는 조직사회에서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리더의 거짓말은 조직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정직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면 서로 존중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다. 이 경우 조직의 구성원들은 시간에 대한 관점이 근시안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단기적 이익이나 성과에 집착해 조직을 더욱 크게 망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된다. 앞의 연구 결과를 상기시켜 보자. 가정에서의 연구 결과가 조직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거짓말을 일삼는 모습을 다수의 구성원이 목격하고 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조직 내에서 정직함과 겸손, 그에 따르는 상호 존중감이 떨어지면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조직의 문화가 크게 손상된다. 누군가가 거짓말로 이득을 보고 있고 그 장면을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차후에 하는가를 돌아보면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정치, 교육, 경영 어떤 분야든 조직이면 예외가 없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조직과 그 리더는 항상 정직함을 강조하고 스스로도 정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조직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서 정직함을 거래나 희생의 대상으로 삼는 어리석은 잘못을 굉장히 심각하게 경계해야 한다. 게다가 정직한 사람들과 부정직한 사람들은 서로 끼리끼리 모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조직은 금세 멍들고 결국에는 좌초하고 만다. 다시 말해, 좋은 사람을 떠나게 하고 나쁜 사람만 남게 되는 것이다. 4


관계를 존중하는 문화가 생길 때 조직은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이제까지 필자는 정직-겸손성이 애자일 조직을 만드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정직과 겸손성은 너무도 당연한 요소라 와 닿지 않는다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정직과 겸손을 바탕으로 하는 상호 존중 문화는 특히 한국에서 애자일 조직을 만들 때 꼭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즉, 한국 조직만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애자일 조직을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현지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관계다. 개인에 대한 상호 존중은 물론 개인들이 개별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회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관계라는 말은 그 어떤 문화권에서보다 한국에서 중요하다. 그래서 일각에선 한국 문화를 아예 관계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의 관계주의가 집단주의와는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주의는 자아가 집단에 종속적이다. 그리고 일본은 가장 대표적인 집단주의 문화로 분류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가치를 위해 자기는 물론이고 자기와 가까운 관계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중요한 미덕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관계주의인 한국인들의 자아는 훨씬 더 미묘하고 복잡하다. 나를 둘러싼 관계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가 결국 나의 자아다. 그래서 나는 누구의 부모이자 자식이고 선배이며 후배다. 그리고 이 관계의 종류와 수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래서 국가나 기업과 같이 특정할 수 있는 집단으로 설명할 수 있는 측면들이 참으로 많다.

물론 양쪽 모두에게 장단점은 존재한다. 일본과 같은 집단주의의 단점은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단순한 조직 논리에 모든 구성원이 일순간에 함몰돼 잘못된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집단 전체가 이견 없이 향해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반면 한국과 같은 관계주의 문화에서는 다양한 관계에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는 과정에서 충돌과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들 사이의 관계주의적 사고방식은 세대 차이를 거의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이비붐세대, X세대, 밀레니얼세대, 더 나아가 ‘1990년대생’ 등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관계주의적 사고방식은 세대에 걸쳐 거의 같은 강도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그 관계가 더 젊은 세대일수록 이전에는 없었던 네트워크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옮겨가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국인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자기소개서를 쓴다. 자기소개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계를 소개하기 때문이다. “저는…”으로 해 놓고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 사이에서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나서…” 전형적인 한국인의 자기소개서는 늘 이렇게 시작한다. 이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여러 가지 관계적 위치나 역할에 대한 서술이 계속된다. 외국인들의 자기소개서는 자기의 이야기를 바로 꺼내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외국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한국 사람들의 이러한 전형적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면서 “이 사람은 어디까지 읽어야 자기소개를 하는 걸까?”라면서 의아해하기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종종 회자되곤 한다.

심지어 기본적인 판단에 있어서도 관계주의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림 1]을 보라. 위에 원숭이, 그 아래쪽에는 판다와 바나나가 있다. 밑에 있는 둘 중의 하나를 위에 있는 원숭이와 묶어야 한다. 다시 말해, 첫 번째 방법은 판다와 원숭이를, 두 번째는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는 식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수많은 세대를 대상으로 두 가지를 묶어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후자의 방법을 선택한다. 즉,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겠다. 다른 대부분의 국가나 문화에서는 좀처럼 이렇게 묶지 않고 판다와 원숭이를 묶는다. 5 왜냐하면 판다와 원숭이는 동물이고 바나나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렇게 묶는 것일까? 원숭이와 바나나 사이에는 일종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그 관련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 게다가 이렇게 묶는 현상은 세대 간의 차이도 없다. 이 연구 결과를 접한 외국인들이 놀라워하거나 어이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인은 관계를 참으로 좋아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러한 관계 지향적인 한국인들이 자신과 다른 세대에 해당하는 누군가가 자신과 소통을 하려고 할 때 자기 자신보다는 자신의 관계를 존중해 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녀들이 부모와의 세대 차이를 언제 가장 크게 느낄까? 물론 자신과 대화가 잘 되지 않을 때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세대 차를 느끼는 경우는 자신의 관계를 인정해 주지 않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심지어 훼방 놓고 방해할 때다. 그리고 바로 여기가 수많은 자녀와 부모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불화가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신의 친구와 통화를 하는 자녀의 전화기를 갑자기 부모가 낚아채 “우리 아이 만나지 말라”라든가 “앞으로 내 아이랑 놀지 말라”는 호통을 쳤다고 한번 가정을 해보자. 자녀는 극심한 모멸감과 동시에 부모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관계를 모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한국인들은 이때 가장 큰 모멸감을 느낀다.

윗세대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사들과 논의를 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홀로 사는 노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가장 큰 단절감이 자신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인 자신을 자주 찾아뵙지 않는 경우보다도 더 큰 단절감을 느낀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예를 들어, 홀로 사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그런 할머니랑 왜 가깝게 지내세요?”라든가 어머니에게 “그런 할아버지와는 만나지 마세요”라는 말을 할 경우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섭섭함보다 훨씬 더 큰 모멸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더 많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 비난 못지않게 자신의 관계가 폄하될 때 불편함과 모욕감을 느끼는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인의 자아는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 외국에서는 훨씬 덜한 현상이다.


결론

그러니 한국에서 애자일 조직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선 정직과 겸손, 그리고 각기 다른 세대의 관계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기범 교수도 정직과 겸손은 다른 어떤 성격 요인들보다도 대인관계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6 7

정직한 부모가 아이의 친구관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고 거짓 없는 상사나 부하직원이 상대방의 세대가 가지는 장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우리 한국인들은 존중받고 있음을 인식하고 상대방도 존중하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선배가 자신의 동년배적 관계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고 격려하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면 후배는 ‘아, 이 선배가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어떤 기업의 직원 한 분께 들은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다. 그 젊은 직원은 자기가 좋아하고 따르는 상사 한 분을 가리켜 이렇게 평했다. “그분이 얼마 전에 슬쩍 저를 부르시더니 그동안 닥친 업무들을 처리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면서 제 입사 동기들과 오랜만에 한잔하라고 시간도 배려해 주시고 약간의 격려금을 주시더군요. 그분이 저를 많이 이해해 주시고 배려해 주시는 걸 다시 한번 깊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관계적 존중을 하는 선배를 따르고 싶지 않은 후배가 어디 있겠는가. 관계주의의 상호 존중은 사람과 직접 소통에만 그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계와 소통하고 그 관계를 진정성 있게 존중하는 것이다.


필자소개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kyungilkim@ajou.ac.kr
필자는 고려대에서 심리학 학사 및 석사를 취득하고 미국 University of Texas Austin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지심리학자다. 인간의 판단, 추론, 의사결정 및 창의성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했으며 현재 동기와 인간 행동, 메타인지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