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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드라마앤컴퍼니의 애자일 도입 사례

속도보다 방향이 애자일의 핵심
애자일 문화가 변화에 대한 적응력 키워

남윤선 | 259호 (2018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태생적으로 ‘애자일’한 스타트업. 하지만 스타트업 역시 규모가 커질수록 부침을 겪는다. 특히 초반 빠르게 증가하던 매출액의 성장세가 완만해지고 임직원 수가 늘면서 흔히 말하는 ‘데스 밸리’에 빠진다. 이때쯤 스타트업은 자기 회사에 맞는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이 시기 스타트업들은 특히 직원 관리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창업 초기 큰 원칙이나 제도 없이 성공 의지 하나로 움직이던 회사에 제대로 된 성과 관리 방식이나 보상 체계, 예산 편성 기준 등이 필요하게 된다. 일부는 이 과정에서 주춤하거나 아예 무너지기도 한다. 드라마앤컴퍼니 역시 성장 과정에서 이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드라마앤컴퍼니는 이런 과제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의 상당수는 애자일한 조직문화에서 나왔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김종수(연세대 창의기술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누적 가입 회원 250만 명. 출시된 지 5년 된 명함 관리 앱 ‘리멤버’가 거둔 성과다. 얼핏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 사용자를 모은 모바일 앱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멤버의 강점은 사용자의 수보다는 ‘질’이다. 리멤버 사용자의 대다수는 비즈니스 피플(Business People), 즉 직장인이다. 이 중 대표를 포함한 임원 이상급이 거의 절반이다.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만 100만 명 넘게 모았다는 얘기다. 고객사 찾기, 인재 유치 등 사업과 관련된 ‘연결’을 원하는 모두가 탐낼 수밖에 없는 회원들이다. 리멤버는 현재 명실상부 국내 최대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높은 사람’들은 까다롭다. 조금만 불편해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연령대도 상대적으로 높아 모바일 앱과 친숙하지 않다. 꼭 필요한 앱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 이들을 설득해서 서비스를 계속 쓰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든 스타트업이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겠지만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이하 드라마)가 겪어온 어려움이 유달리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리멤버는 살아남았고 성장하고 있다. 5년 차의 성장 곡선은 오히려 과거 어느 때보다 가파르다.


비결이 뭘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한 단어로 요약하면 ‘변신’이다. 창업한 지 이제 5년이지만 벌써 수차례 조직 구조와 일하는 방법을 바꿨다. 하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핵심 철학은 ‘애자일(agile)’이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빠르게 개척하기 위해 애자일 철학에 기반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변화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특히 조직 체계를 바꾸는 것은 간신히 안정화시켜놓은 업무 프로세스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영자가 꺼린다. 하지만 드라마는 변신을 조직문화로 체득했다.

당연히 시행착오도 많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드라마도 여느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완벽한 조직 구조와 일하는 방식’에 대한 정답을 찾진 못했다. 다만 그 답을 찾는 방정식은 어느 정도 만들어 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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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애자일 마인드’
최재호 대표는 컨설턴트 출신이다. 딜로이트컨설팅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6년 동안 일했다. 원래 목표가 컨설턴트는 아니었다. 대학 졸업 직후 동대문에서 옷을 떼다가 인터넷에서 파는 일을 가장 먼저 시작했을 정도로 사업에 관심이 있었다. 다만 사회생활 경험과 사업에 필요한 지식을 쌓고자 했고, 그렇게 6년의 시간을 보낸 뒤 2013년 창업을 결심했다.

그의 마음을 뛰게 한 건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구인구직은 물론 사업과 관련된 다양한 연결과 거래들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온라인 플랫폼. 2002년 창업해서 빠르게 크고 있던 링크트인이 모델이었다. 링크트인은 회원이 스스로 올린 이력서를 매개로 회원 간 연결이 이뤄진다. 이 모델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잘 먹히지 않았다. 이력서를 노출하는 것 자체가 이직을 원하는 것처럼 보여서다. 이직이 활발한 미국 등 서구 문화권과는 차이가 있다. 이력서 말고 다른 게 필요했다. 그게 명함이었다. 명함은 이력서보다 올릴 때 부담이 훨씬 덜하면서도 현재 직장 정보와 연락처 등 ‘알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정보만 있어도 사업적 ‘연결’을 만들어 내기 충분했다.

과제는 정해졌다. 사람들이 명함을 쉽고 정확하게 저장하게 하는 것. 당시에도 명함 정보를 저장해 주는 앱은 많았다. 대부분 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광학 문자 인식) 기술을 썼다. 하지만 이 기술로는 명함 정보를 정확하게 저장하지 못한다. 명함의 생김새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명함마다 글씨의 폰트와 크기가 다른데 OCR이 이걸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OCR보다 정확하게 명함 정보를 저장할 수 있을까. 상식적인 방법은 OCR을 고도화하는 것이었다. 이건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수기 입력’이다. 명함을 찍으면 사람이 입력해 주는 것. ‘개발자가 자고 있어도 알아서 돌아가야 하는’ IT 서비스의 통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최 대표는 이 방법에 꽂혔다. 다른 어떤 방법보다 정확히 정보를 입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빨리 실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문제였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용을 줄일 복안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전에 입력됐던 명함이 또 들어올 텐데, 이때는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기존 입력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중복 명함이 많아질수록 비용은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아무도 명함을 사람 손으로 쳐 넣는 서비스를 해본 적이 없었다. 명함 입력을 할 사람은 있을까. 돈은 얼마를 줘야 할까. 계약은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게 미궁이었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듯 시간은 많지 않았다. 자본금은 빠르게 말라갔다. 뭔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투자를 받기가 힘들었다. 작게라도 뭘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애자일’하게 일하게 됐다.

일단 실패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은 단위로 일을 끊어서 했다. 먼저, 수기 입력을 전제로 리멤버의 클로즈드 베타(Closed Beta) 서비스를 시작했다. 수기 입력 자체가 가능한지를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지만 ‘되긴 되겠다’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다음 오픈 베타(Open Beta)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했다. 이때부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핵심 미션(정확도, 속도, 비용, 보안)을 정하고 계획, 실행, 검증(Plan, Do, See) 단계를 최대한 빨리 돌렸다.

스타트업 창업이 일반 기업 창업과 다른 점은 세상에 없던 서비스나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은 선진국 모델을 모방한 것이다. 리멤버는 달랐다. ‘명함 관리 앱’이라는 결론은 비슷했지만 구현 방식이나 비전 모두 달랐다.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때 ‘애자일 정신’은 필수적이다. 소비자가 내 아이디어를 좋아하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머릿속의 상상과 현실은 거의 대부분 다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한다는 애자일 정신 덕에 리멤버는 창업 초반 ‘데스 밸리(Death Valley) 1 ’를 간신히 넘을 수 있었다.

작지만 알찼던 애자일 첫 시도,
‘8대2 스프린트’
10명 이하의 조직에서는 특별한 조직 운영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원팀, 원파이트(One team, One fight)’로 싸울 수밖에 없다. 이 단계에서 애자일은 방법론보다 일종의 ‘정신’이다. 하지만 10명이 넘어가고 기능별로 조직이 세분화되기 시작하면 좀 더 구체적인 운영 전략이 요구된다. 드라마도 2015년부터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 고민의 맥락은 크게 두 가지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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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원칙’을 설정하는 것이다. LG그룹의 ‘정도경영’이 한 예다. 이것이 모든 의사결정에서 최우선 원칙이 된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일이라도 ‘정도경영’에 어긋나면 하지 않는다. 창업 초기엔 드라마도 다른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그저 죽도록 일했다. 하지만 점차 결정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원칙 정립이 필요했다. 아울러 두 번째 고민은 그 원칙에 맞게 효율적으로 일하는 구조를 짜는 것이었다. 드라마앤컴퍼니는 2015년 이 두 가지 과제를 같이 추진했다.

일단 원칙 정립 얘기부터 해보자. 원칙이란 결국 ‘추구하는 가치’다. 최 대표와 당시 임직원들은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고객, 집념, 시도, 성장, 소통. 그렇게 6개월 가까운 고민 끝에 완성된 것이 ‘드라마 웨이’다.

이 중 시도, 성장, 소통은 사실 애자일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한다. 오래 고민하고 크게 실행하는 것보다 빠르게, 작게 실행해야 한다. 다만 무조건 빠른 게 능사는 아니다. 경영진과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목표를 고민하는 게 첫 단계다. 그렇게 해야 결국 속도도 빨라진다는 게 애자일 정신이다. 최 대표는 “애자일을 크게 염두에 두진 않았지만 스타트업으로 일하다 보니 이 같은 원칙이 정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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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계는 이 원칙을 가장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방법론이다. 처음엔 ‘성장’과 ‘소통’을 위해 단순한 스크럼(Scrum) 기반의 애자일 방법론을 썼다. 함께 목표를 정하고, 함께 뛰고, 회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면서 좀 더 고도화된 방법론이 필요했다.

당시 맞닥뜨린 문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일단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조직원들이 지쳐갔다. 작은 스타트업이다 보니 뭔가 보상을 줄 것도 마땅치 않았다. 아울러 점점 서비스 개선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새로운 시도도 해봐야 했고, 그간 앞만 보고 달리면서 챙기지 못한 부분도 챙겨야 했다. 기술 역량 개발, 코드 리팩토링(코드를 단순하게 재구성하는 것) 등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방법이 ‘8대2 스프린트’다. 최 대표가 컨설팅 회사에서 일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착안한 방법론이다. 10주 단위로 목표를 짠다. 이를 페이즈(Phase)라고 부른다. 페이즈를 다시 네 개의 세부 과제로 나누고 이를 각각 2주씩 실행한다. 8주가 이렇게 지나간다. 마지막 2주는 ‘페이즈 브레이크’라 부른다. 이 단계에서 위에 언급한 역량 개발, 리팩토링 등을 한다. 더불어 약간의 숨돌릴 시간도 갖는다. 스프린트가 끝날 때마다 회고를 하고, 페이즈가 끝나면 회고 겸 회식을 한다.

당시의 주된 미션은 명함 관리 서비스 개선이었다. 목표의 규모가 작고 단순하고 분명했다.
2주씩 목표를 정해 빨리 달리기(스프린트) 좋은 때였다. 스프린트별로 성과가 분명히 나오니 조직원들의 동기부여 문제도 해결됐다.

페이즈 브레이크는 실험적인 시도였다. 매일이 사느냐, 죽느냐의 고비인 스타트업이 2주씩 ‘휴지기’를 갖는 건 모험이었다. 1년을 돌아보면 업무 속도가 결과적으로 느려지진 않았다. 개발 역량을 쌓고 코드를 재정비하는 건 장기적으로 꼭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미뤘다가는 나중에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절반의 성공으로 끝난
가상 조직(Virtual Organization) 실험
그렇게 1년 넘게 ‘8대2 스프린트’를 유지했다. 성과로 보나, 조직원의 동기부여로 보나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일할 순 없었다. 회사가 커가면서 해야 할 일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목표는 서비스 품질 개선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명함 등록에만 매달릴 순 없었다. 굵직한 새로운 서비스도 도입해야 했다. 인원도 늘었다. 전 직원이 함께 뛰기에는 규모가 커졌다.

그래서 새롭게 서비스 단위의 조직을 구성했다. 이 조직을 기존 기능별 조직과 동시에 운영했다. 쉽게 말해 개발팀, 기획팀 등 ‘기능 조직’은 그대로 두고 ‘메신저 프로젝트팀’ ‘인맥라운지 프로젝트팀’ 등 서비스별 조직을 동시에 운영했다는 얘기다. 요즘 유행하는 매트릭스 조직의 형태다. 드라마는 이 같은 조직을 가상 조직(Virtual Organization, VO)이라고 불렀다. VO별로는 Product Owner(PO)를 임명해 해당 서비스 개발을 관리하게 했다.

운영 기간도 기존보다 길어졌다. 2주 단위로 끊어서 개발하기에는 서비스의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8대2 스프린트’는 자연스레 사라졌다.

이름과 운영 방법은 약간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애자일하게 진행됐다. ‘8대2 스프린트’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 문제는 개발 인력의 부족이었다. 제대로 된 서비스별 조직이 돌아가려면 그 안에 PO 외에도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등이 고루 포진해 있어야 한다. 당시 드라마에는 개발자가 태부족이었다. 어떤 스타트업이라도 충분한 수의 개발자를 갖고 사업하기는 어렵다. 특히 지난 수년간은 스타트업 업계에서 ‘개발자 공급 부족’이 심각했다.

당시 드라마의 개발자는 여덟 명뿐이었다. 영역별로 한 명뿐이었다. 대부분의 개발자가 모든 VO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개발자 한 명이 몇 가지 과제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워낙 바쁘다 보니 문제 해결 방법을 함께 논의하기 어려웠다. 기획자는 개발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완벽한 기획을 만들어 개발자에게 주려고 했다.

아울러 프로젝트 단위가 커졌다. 그중 대표적인 게 ‘팀 명함첩 유료화’였다. 팀 명함첩은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명함을 모아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다. 리멤버는 이 서비스를 유료화하고자 했다.

문제는 돈을 받는 서비스도 ‘애자일’한 실험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무료 서비스인 경우에는 작게 실험하고 실패해도 감당이 된다. 돈을 받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작은 실험을 했다가 실패하면 소비자가 영원히 등을 돌리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오래 개발하고 크게 배포하는 ‘빅뱅 릴리즈(Big Bang Release)’ 방법을 선택했다.

개발자는 여러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기획자는 조금 더 기획을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프로젝트의 수행 기간은 길어지고 규모는 커졌다. 자연스레 ‘워터폴’ 방식의 개발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고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 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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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유의미한 성과에도 2017년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해였다. 의도한 바가 아님에도 일을 하다 보니 사실상 워터폴 체계가 되고 개발팀에 업무가 과도하게 부여되면서 직원들이 지쳐갔다. 성과가 좋았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전까지 가팔랐던 회원 증가 추세도 2017년엔 주춤했다. 당시 공들여 개발한 메신저, 선물하기 등의 기능도 기대만큼 소비자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팀 명합첩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유료화를 시작했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이 같은 기대 이하의 결과는 일하는 방법론 때문이었을까. 혹은 아이템 선정 자체를 잘못한 것일까. 최 대표를 비롯한 당시 멤버들은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다른 결정을 내렸을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임세준 개발그룹 리더는 “커뮤니케이션을 좀 더 효과적으로, 자주 했으면 나았겠다고 회고는 해보지만 당시에는 너무 급박하게 일이 돌아가서 그럴 생각도 못했다”고 전했다. 당시 잘못된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스타트업이 겪는 불가피한 성장통이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그 와중에 회사의 운명을 바꾼 대형 호재가 생겼다. 네이버와 라인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이를 기회로 당초 계획보다 빨리 일본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리멤버 앱을 일본 상황에 맞게 번역하고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쓰던 앱을 번역만 잘하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본의 환경은 한국과 완전히 달랐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늘어나면서 개발 기간이 길어졌다. 오랜 기간 이어진 워터폴 방식의 업무 스타일과 과중한 업무량 때문에 개발조직은 점점 지쳐갔다. 경영진 입장에서 일본 앱 개발은 마감이 정해져 있던 일인지라 개발자들에게 그저 ‘헌신’을 당부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보텀업(bottom up)’으로 이뤄진
TF 체제로의 전환
안 그래도 개발자가 부족한데 이들이 과도한 업무 로드에 불만을 토로한다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큰 위기다. 자칫 이들이 조직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진출을 시도하면서 드라마앤컴퍼니의 상황이 딱 그랬다. 하지만 다행히 이 회사에는 그간 ‘신뢰’가 쌓여 있었다.

개발자들이 지쳤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 임세준 리더는 “어떻게 하면 다시 신나게 일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2018년 1월부터 일하는 방식에 대한 회고를 줄기차게 했다.

TF(Task Force) 체제는 이 회고 과정에서 제안됐다. 이제껏 주로 최 대표가 애자일 도입을 주도했지만 이번에는 개발 조직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직원들이 단순히 불만을 제기하는 차원을 넘어 대안을 스스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 대표도 이를 수용했다.

TF 체제는 VO 때와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조직 단위를 좀 더 크게 가져갔다. 기존 기능별 조직(기획팀, 개발팀 등)을 그대로 둔 채 전사를 크게 두 개의 TF로 나눴다. 기존 명함 관리를 사업을 확대 발전시키는 TF와 신사업을 진행하는 TF다. 그 안에는 예전 VO와 같은 목적별 소조직들이 또 있다.

왜 이렇게 했을까. 여전히 개발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애자일하게 일하기 위한 방법이다. 각 TF에는 최소 5명 이상의 개발자가 투입된다. 이들은 다른 TF 업무에는 관여하지 않고 정해진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 목표 설정 단계에서부터 기획자와 개발자가 함께 논의하니 더 나은 문제 해결 방안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애자일한 업무 구조가 가능하다. CEO는 ‘기존 사업 확장’ ‘신사업 개발’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각 TF의 과제를 정하고, TF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함께 논의하는 구조다.

개발 조직의 만족도는 눈에 띄게 개선됐다. 초기부터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개발자와 기획자 간 이해도가 높아졌다. 커뮤니케이션 시간은 늘어났지만 과제를 해결하는 속도가 이를 상쇄해준다는 평가다. 개발 속도가 빨라졌다는 건 단순히 코딩하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게 아니라 두 번 일하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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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점
대기업에 비해 스타트업은 태생적으로 애자일한 문화를 갖게 된다. 인력, 자금력 등 모든 부분에서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애자일한 업무 방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역시 규모가 커질수록 부침을 겪는다. 특히 초반 빠르게 증가하던 매출액 성장세가 완만해지고 임직원 수가 빠르게 늘면서 흔히 말하는 ‘데스 밸리’에 빠진다. 이때쯤 스타트업은 자기 회사에 맞는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또 자연스럽게 직원들 사이에도 계층이 생기고 파벌이 생긴다.

이 시기 스타트업들은 특히 직원 관리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창업 초기 큰 원칙이나 제도 없이 성공 의지 하나로 움직이던 회사에 제대로 된 성과 관리 방식이나 보상 체계, 예산 편성 기준 등이 필요하게 된다. 일부는 이 과정에서 주춤하거나 아예 무너지기도 한다.

드라마앤컴퍼니 역시 성장 과정에서 이런 과정을 겪었다. 사실 지금도 이 과정을 겪고 있다. 특히 애자일하게 일하는 조직 구성원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보상할지는 여전히 고민거리다. 하지만 지난 5년간 드라마앤컴퍼니는 성장 과정에서 쉽지 않은 과제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의 상당수는 애자일한 조직문화를 통해 나왔다.

필자는 대기업과 언론사, 벤처기업을 거쳐 스타트업인 드라마앤컴퍼니에 합류했다. 해온 일도 해외영업, 신사업 개발, 기자, 앱 기획자 등으로 다양하다. 다양한 조직 문화 속에서 일해본 셈이다.

드라마앤컴퍼니의 가장 큰 차별점은 회고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한다는 점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회의를 길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일하는 방식을 만들고 또 회고할 때 조직원들이 상당히 많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일하는 방식은 윗사람들이 정한다는 개념이 일반적이었던 다른 조직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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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회사의 규모마다, 하는 서비스마다 각각 다르다. 각자에게 맞는 최적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떻게 방법을 찾느냐다. 리더가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조직원들은 쉽게 불만을 토로한다. 그리고 쉽게 리더십을 탓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리더와 조직원 사이에 신뢰가 깨진다.

일하는 방식을 정립하는 과정에 조직원들이 참여하면 이런 문제는 줄어든다. 현재 문제점을 느낀다고 해도 자신이 의견을 제시하고 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참고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발전적 진화가 일어난다. 아울러 또 하나의 좋은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직자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드라마앤컴퍼니에서는 창업 후 5년간 퇴사자가 12명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일을 더 잘하는 방법’이 아닌 ‘일을 더 쉽게 하는 방법’을 찾게 될 가능성도 있다. 조직원들도 사람이다 보니 좀 더 편한 쪽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는 건 CEO와 리더십의 책무다. 아울러 ‘애자일’과 민주주의를 헷갈려서도 안 된다. 애자일은 가능한 조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면서 일을 더 잘, 빨리 되게 하는 방법이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법은 아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할 것인가’의 구분도 필요하다. 전자의 의사결정권은 CEO를 비롯한 리더십이 좀 더 가져가는 게 맞다. 서비스의 미래 비전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리더급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떻게’의 방법은 실무진에게 과감히 위임할 필요도 있다.

필자가 거쳐온 조직들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큰 기업에서 애자일 방법론을 적용하면 어떨지 생각해 봤다. 중요한 것은 리더십 레벨의 애자일에 대한 공감대다. 대기업은 간부 이상 리더십 레벨만 몇백 명 이상 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이 애자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CEO가 아무리 깃발 들고 외쳐 봐야 그저 회의만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다수의 대기업이 ‘스타트업 문화 도입’ 선포식까지 하고 용두사미로 끝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리더십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해도 조직 자체가 느슨한 분위기면 애자일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불만을 토로하는 창구만 늘어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격적으로 일하는 조직문화는 애자일의 필수조건이다.

왜 애자일이어야 할까. “애자일도 수많은 조직 운영 이론 중 하나일 뿐 아닌가”라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물론 애자일은 제조업보다는 IT 서비스 기업에 더 잘 맞긴 한다. 대형 제조업은 작은 시도와 실패라는 게 불가능해서다. 하지만 대형 제조업이라도 애자일 정신은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여기서 애자일 정신이란 “리더십뿐 아닌 조직원 모두가 목표와 목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 뒤 함께 문제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 정도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왜 애자일의 중요성이 강조될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무관치 않다. 머신러닝,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의 신기술이 산업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상이 오고 있다. 과거에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해도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고, 그만큼 사업의 변수도 많아졌다. 아무리 전문가거나 천재적 경영자라도 혼자 문제 해결책을 찾기 힘든 세상이다. 경영자,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야 최적의 솔루션을 낼 수 있다.

이 같은 정신을 기본으로 각 조직에 알맞은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제조업 기반 대기업이 작은 시도, 실패를 반복하는 애자일 스타일 경영을 억지로 도입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기존 조직문화를 계속 유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필자가 경험한 대기업과 언론사 등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 분야별 전문가의 의견이 경영진에게 전달되거나 회사 전략에 반영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다. 유능한 인재들이 입을 다물게 되고 조직을 떠나는 경우가 잦다.

스타트업이라고, 조직이 작다고 해서 변신이 쉬운 건 아니다. 오히려 스타트업이야말로 창업가 1인의 비전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대기업보다 더 독단적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에 애자일 문화가 빠르게 정착하는 건, 세상에 없던 아이템으로 고객에게 빠르게 인정받지 못하면 죽는다는 절박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조직의 크기와는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에 가까웠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생멸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고통스럽더라도 계속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조직이 클수록 변화에 따른 후유증도 크지만 한 걸음 앞서 변하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필자소개 남윤선 드라마앤컴퍼니 콘텐츠플랫폼센터장 ysnam@dramancompany.com
필자는 한국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LG상사에서 4년여간 근무한 뒤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이직해 산업부, IT부 등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2017년엔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머신러닝 기반 뉴스큐레이션 앱 ‘큐'를 만들었다. 지금은 리멤버를 서비스하는 드라마앤컴퍼니의 콘텐츠플랫폼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콘텐츠와 IT의 융합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차이나 콤플렉스(공저)』 『반도체 전쟁(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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