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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충전, 로마에서 배운다

하드파워 무기+소프트파워 사기 무적의 로마군단 만들었다

김경준 | 158호 (2014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HR, 인문학

로마인이 현대인에게 전하는 조직의 사기 진작을 위한 교훈

1. 조직의 근본가치를 정립해 자부심을 고취시켜라.

2. 물질적 토대를 다진 후 열정과 헌신을 요구하고 사기를 올려라.

3. 감성적 영역도 정신적 에너지의 중요한 원천이다.

 

 

 

조직 성공의 필요조건 ‘하드파워’와 충분조건소프트파워

조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두 가지 조건은 바로 물질적인 조건을 확보하는 것과 정신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다. 국가의 발전과 기업의 성장, 군대의 승리 등 모든 성과는 결국 먼저 물질적인 토대를 확보하고 조직원의 단결을 이끌어 사기를 높이는 리더십과 조직문화의 조합에 따라 결정된다. 전쟁을 앞둔 군대가 최소한의 무기와 병참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굴의 투지만으로 덤벼들면 패배와 헛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요행히 작은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전체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작은 전투에서 이겼다는 오만에 빠져 판단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또 충분한 무기와 병참을 확보해도 싸우겠다는 의지가 결여되면 백전백패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거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적 조건을 확보하고 동시에 조직원의 사기를 높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조직이 확보해야 하는 물적 조건을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으로하드 파워라고 지칭한다면 사기와 정신력은 충분조건인소프트파워라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점은 공통적이다.

 

이탈리아반도 중부의 조그만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가 정복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세계적인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든 배경(하드 파워)은 막강한 군사력이다. 로마군은 병참과 무기 등 물질적인 조건에서도 주변국보다 앞섰다. 게다가 자부심과 사기라는 소프트 파워에서도 오랜 기간 우위를 유지했고무적의 로마군단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무적의 로마군단은 다른 국가들을 정복할 때는 물론 제국으로 발전한 이후에도 넓은 국경을 지키고 공동체의 안정을 유지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팍스 로마나(BC 1세기 말 제정(帝政)을 수립한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부터 5현제(五賢帝)시대까지 약 200년간 계속된 평화)의 근간이 됐다.

 

로마가 역사상 수없이 명멸했던 정복민족으로 끝나지 않고 유럽·아프리카·아시아에 걸쳐 다인종·다민족·다종교·다문화로 이뤄진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었던 기본 동력은 개방성 때문이었다. 민주정치를 표방했던 그리스인에게 시민이란피를 나눈 자라는 혈연의 개념이었다. 반면 로마인이 생각하는 시민은뜻을 같이하는 자라는 가치의 개념이었다. 로마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피부색, 출신지역 등에 따라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고 후천적으로 사람들이 공동체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시민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폈다.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포용해 상호 공존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형성된 개방정책은 로마의 권역이 확대될수록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는 로마가 폐쇄적인 승리자의 집단에 머무르지 않고 개방적인 리더십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로마군은 자부심으로 무장된 시민군

고대 서방 세계는 자신의 안전을 돈을 지불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용병제도가 보편적이었던 시대였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군사력도 돈으로 사는 시대였다. 그러나 로마의 시민군 제도는 병사들이 공동체와 가족을 위해 싸운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존 용병제도와는 완전히 달랐다. 여기에서 로마의 전통인 개방적인 시민권 정책은 지속적으로 시민의 숫자를 늘려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병사를 계속 증가시켰다.

 

기원전 8세기 왕정 초기에 편성된 로마 최초의 정식군대는 3개의 부족을 근간으로 삼았다. 부족들은 각각 1000명의 보병과 100명의 기병을 제공했다. 로마군은 초기부터 입대할 수 있는 자격을 로마시민으로 제한했다. 초기부터 시민군의 형태였다. 무산자는 소집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이는 재산이라고는 자식밖에 없는 사람이 전쟁터로 나가면 남은 가족의 생계가 곤란해졌기 때문이다. 기원전 6세기 중엽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왕 시대에 실시된 군제 개혁은 재산에 따라 시민을 6계급으로 나눠 재산이 많은 사람이 많은 병역의무를 지고 이에 상응하는 권리를 가진다는 개념을 정립했다. 세르비우스의 개혁은 로마군 편성의 기본 개념을 씨족이라는 혈연집단에서 빼내 공동체가 부여하는 시민권에 기반을 두도록 했다. 타고난 부족은 변함이 없지만 재산은 개인의 노력과 운에 따라 얼마든지 늘거나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군단의 편성 과정을 보면 시민동원 체제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매년 민회에서 35개 행정구역에 소속된 로마시민권 소유자 중 17∼60세의 남자를 모두 소집해 일정 기준에 따라 군대를 편성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로마시민은 17∼45 28년 동안 현역 대상이었다. 평화가 계속돼도 최소한 3∼4번 정도 복무해야 했다. 전쟁 시기에는 소집 대상 병력 수가 늘어나 많으면 열 번 정도 복무했다. 시민들은 소집 대상이 되면 자신의 돈으로 무장해 생업을 중단하고 입대해야 하기 때문에 병역의무 자체가 커다란 부담이었다.

 

따라서 무산자를 비롯해 이런저런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은 시민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로마사회에서 존경을 받거나 공직을 수행하려면 군복무 경력이 필수적이었다. 병역은 시민의 명예로운 의무이자 당당한 투표권을 의미했다. 이러한 형태의 시민군 편성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병사의 자부심이었다. 시민으로 이뤄진 군대는 자신들의 공동체와 가족을 지킨다는 점에서 사기를 유지하는 게 용이했다. 이는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에게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점이다.

 

 

 

로마의 시민병 제도와는 달리 기원전 문명국들은 군주가 자의적으로 병력을 소집해 전투를 벌이거나 필요할 때 돈을 주고 용병을 모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야만족은 미개하고 가난했기 때문에 동원 체제나 용병제도의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시민병 제도는 로마 총동원 체제의 핵심이었다. 특히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법이 성립돼 평민도 집정관에 취임할 수 있게 된 이후 총사령관 이하 군단장, 장교 등의 진출에 아무런 신분 제한이 없어졌다. 군사적인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군무를 맡게 됐다. 모든 시민에게 군대 경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또 시민군이었지만 엄격한 군율로 유명했다. 로마군의 신조가훈련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훈련이다일 정도였다. 훈련 중에는 동료에게 상처를 입혀도 문책을 당하지 않았으나 평시에 동료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은 엄중히 처벌됐다. 군인이 임무를 게을리해서 군대를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 사형에 처했고, 도둑질을 하거나 집합시간에 지각하는 일이 반복돼도 엄벌에 처했다. 가장 무거운 벌은 총사령관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내려지는 ‘10분의 1 처형이었다. 추첨을 통해 10명 중 한 명꼴로 선택된 희생자들은 동료들의 죄를 대신해 채찍질을 당한 뒤 참수형에 처해졌다. 로마군은 전쟁에서 졌다고 해서 처벌하지는 않았지만 규정에 따르지 않는 행동은 철저히 엄벌했다.

 

로마군은 병참을 중시하고 치밀하게 계획하면서 전투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맨 마지막으로 정신력과 사기라는 요소를 극대화했기 때문에 개별 전투는 패배해도 장기적인 전쟁에서 지는 법은 없었다.

 

허풍 떠는 것을 경멸하고 승리의 전제조건을 확보

로마인은 준비를 하지 않고 허풍을 떠는 것을 무엇보다 경멸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지만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고 전쟁을 치르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여겼다. 정복국가 로마의 성공을 뒷받침한 로마군단이무적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로마군 특유의 방식에 기인한 것이다. 전투의 승패는 불과 며칠 만에 판명됐지만 전투를 준비하는 방식에서 로마군은 다른 민족들을 압도할 만큼 뛰어났다. 로마군은 병력의 규모, 무기, 군량, 도로나 교량 같은 확실한 요소를 먼저 확보한 다음 정신력이나 사기 같은 불확실한 요소를 극대화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았다.

 

이런 배경에서 로마인은 병참의 개념을 넓은 관점에서 접근했다. 현대 병참은 전쟁터 후방에서 전방으로 군수품의 보급과 수송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로마군은 병참의 개념을전장에서 필요한 인간의 모든 기술이라고 파악했다. 즉 로마군의 병참은 병사들의 훈련, 군수물자의 보급,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의 가설 등은 물론이고 군사행동 예상지역 주변의 주민을 로마군 편으로 끌어들이는 민정활동까지 포함한 넓은 개념이었다.

 

건국 초기부터로마군대는 병참으로 이긴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서기 1세기 제정시대의 로마군 명장 코르불로는로마군대는 곡괭이로 싸운다는 명언마저 남겼다. 공병대가 따로 존재하지 않은 시대에 로마군은 군단병 전원이 토목기사이자 인부이기도 했다. 로마군은 작전에 필요한 교량·도로 등의 건설을 모두 군대가 자체적으로 수행했다. 도로와 교량을 정비해두면 전쟁에서 졌을 때 적의 추격도 쉬워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아군의 진격이 용이해진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게 로마군의 사고방식이었다. 이러한 로마군의 건축기술은 제대군인을 통해 로마사회로 전파돼 건축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사실 전쟁이란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해도 패배할 확률은 항상 존재한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데다 행운이 적군을 돕고 불운이 아군을 덮칠 수도 있다. 로마군이라고 패배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무적의 로마군단이라는 평판을 얻은 것은 패배해도 당장 만회하고 같은 방식으로 반복해서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병참을 중시하고 치밀하게 계획하면서 전투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맨 마지막으로 정신력과 사기라는 요소를 극대화했기 때문에 개별 전투는 패배해도 장기적인 전쟁에서 지는 법은 없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마치고 나서 신에게 행운을 기원했던 것이다. 로마인의 병참 중시 전통은 앞뒤 재지 않고 감정적으로 흥분해 무모한 전쟁을 벌이지 않도록 했고 전쟁을 해야 할 때도 국가이익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준비 과정을 거쳐 수행하도록 만들었다. 병참이란 전쟁을 위한 자원의 투입이기 때문에 승리 가능성과 승리에서 오는 국가적 이익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은 죽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확실했던 로마군에게 일시적인 패배는 있어도 옥쇄(玉碎·공명이나 충절을 위해 깨끗하게 죽음)는 없었다.

 

 

초자연적 힘에 대한 믿음을 실용적 관점에서 철저히 활용

인간은 매사 개인으로 혼자 대처할 때는 소심하다. 하지만 무리를 이루면 대담해진다. 그래서 합리적인 개인도 무리에 속하면 군중심리에 휩싸이게 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이해득실을 냉정히 따져 행동하는 사람도 한 번 군중심리에 휩싸이면 실체도 없는 구호에 현혹돼 극단적 행동도 불사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역량 있는 지도자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러한 군중심리를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비평가나 학자들은 군중심리를 비난하고 문제를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지도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목표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군중심리에 대처하는 자세가 이들과는 달라야 한다.

 

군중심리와 집단의식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신의 가호, 민족정신, 정의, 민주 등 추상적인 가치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역사에 족적을 남긴 영웅이나 악당은 모두 이런 것을 잘 활용하는 점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로마인이 살았던 고대세계는 초자연적 존재인 신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했다. 민족마다 고유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고 신탁의 계시나 점술가의 예언이 인간 생활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현실적인 로마인은 당시 예외적으로 종교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를 확립했고 번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종교나 미신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인간이 가진 초자연적 힘에 대한 믿음을 실용적 관점에서 철저히 활용했다. 로마인은 인간은 현실적 논리와 초월적 믿음이 결합할 때 집단으로 강한 결속력과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이해했다.

 

로마인은 집정관의 임명, 대규모 공사의 시작, 군대의 출정 등 중요한 조치를 취할 때 점()을 활용했다. 특히 전장으로 향할 때 병사들에게 점을 통해 신이 로마에게 승리를 약속했노라고 납득시키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풀라리라고 불린 점술가들이 가장 많이 활용한 것은 새점(鳥占)이었다. 출정을 앞둔 로마군 지휘관은 풀라리를 시켜 새점을 치는 것이 상례였다. 닭이 모이를 쪼아 먹는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닭이 모이를 잘 쪼아 먹으면 길조로 해석해 전투에 들어가고 잘 먹지 않으면 전투를 삼갔지만 풀라리들은 로마군의 운명을 닭의 기분에만 맡기지는 않았다. 새점을 치기 며칠 전부터 닭을 굶겨 먹이를 잘 쪼아 먹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출정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의 로마 병사들은 닭이 모이를 잘 쪼아 먹었다는 길조를 듣고 기분 좋게 원정길을 떠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닭을 굶겼다고 해도 항상 먹이를 잘 먹지는 않았다.

 

기원전 249년 제1차 포에니전쟁 때다. 지휘관이 출정을 앞두고 새점을 치는 것은 상례적인 행사였기에 집정관 클라우디우스 풀케르는 풀라리들에게 점을 치게 했다. 그런데 닭이 도무지 모이를 쪼아 먹지 않았다. 성질 급하기로 소문난 풀케르는 약이 올랐다. 그는 닭을 붙잡아그렇다면 물이나 마셔라!”라며 바다에 던졌다. 로마 병사들은 사령관의 돌발적 행동에 놀랐고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을 가진 채 전투에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사령관이 새점을 업신여긴 뒤 벌어진 전투에서 로마군은 패배했다. 패전 이후 풀케르는 수도 로마로 소환된 뒤 재판에 회부돼 거액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풀케르는 패배 때문이 아니라 지도자에게 용납되지 않는 얕은 생각과 성급한 태도 때문에 비난을 받고 처벌까지 받은 것이다.

 

로마인은 전투를 꼭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새점의 결과와 상관없이 전투했다. 단 지휘관의 의도에 따라 점의 결과를 교묘히 바꿔 병사의 사기를 높이는 방법을 썼다.

 

기원전 3세기 로마군이 이탈리아 중부의 산악 민족 삼니움족과의 전쟁 막바지 당시 지휘관은 집정관 루키아누스 파피리우스였다. 전투 개시 전 점을 칠 때 닭이 모이를 쪼아 먹지 않았지만 풀라리의 우두머리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점괘가 좋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진형을 갖추고 난 후 다른 풀라리가 사실은 닭이 모이를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자 병사들은 동요했다. 파피리우스는점괘가 좋기 때문에 전투를 시작할 것이다. 만약 우두머리 풀라리가 거짓말을 했다면 그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풀라리들을 선두에 배치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진격 도중 로마 병사가 던진 창에 맞아 우두머리 풀라리가 죽었다. 이에 파피리우스는거짓말쟁이의 죽음으로 점괘를 둘러싼 모든 죄과를 씻어버렸다라고 말하면서 승리를 확신한다고 반응했다. 이처럼 전략과 점괘를 적절히 부합시킨 그는 병사들의 사기를 조절해 결국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사실 전투에 앞서 새점을 치는 관행은 병사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게 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은 없었다. 출정을 앞둔 병사의 심리는 전쟁의 승패와 자신의 생명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사소한 것에도 쉽게 반응한다. 병사의 사기란 바로 변화무쌍한 인간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이라고 해서 종군 점술가인 풀라리들이 새점을 치기 전 닭을 굶긴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래도 새점의 결과가 큰 위안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고대의 다른 민족들도 전투에 앞서 점을 쳐 병사의 사기를 높이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활용했다. 다만 로마인의 새점은 닭을 굶기는 것으로 결과를 조작할 수도 있었을뿐더러 병사들에게 맹세 등의 방법으로 심리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사기를 높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다른 민족들의 방법과는 달랐다. 로마인은 특정한 종교나 미신을 믿는 것은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출정을 앞두고 종교적인 의식을 거창하게 벌이지는 않았다.

 

로마인들은 새점 같은 미신조차 조직의 사기를 높이는 도구로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다.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어떤 부분이 조직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은 오늘날 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로마인의 교훈

1. 조직의 근본가치를 정립해 자부심을 고취시켜라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행동에 가치를 두게 되면 일반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수준의 강력한 에너지를 종종 발산한다. 노숙자를 돌보기 위해 인생을 바치거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순교자의 길을 걷고, 조국을 위해 전쟁에서 목숨을 바치는 일들이 바로 그런 사례다. 사람이 모인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등 정신적 조건을 확보해야만 강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위기를 맞은 조직은 더욱 그렇다. 조직이 리더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려면 정신무장이 핵심이다. 정신무장은 조직의 핵심 가치를 상황에 맞게 재확인하고 재해석해 정신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서양의 고대세계에서 전쟁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당시 군인은 전문직이었고 돈을 받고 대신 전쟁을 수행하는 용병이 보편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와 로마는 시민이 곧 군인이 되는 시민군 체제였기에 강한 군대를 보유할 수 있었다. 용병들이 돈을 위해 싸울 때 시민군은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싸웠다. 이런 점에서 전쟁에 임하는 자세부터 달랐다.

 

국가는 외적의 침입을 받으면 국민들에게 단결해 싸우라고 호소한다. 국가는 민족과 가족이라는 구체적 대상부터 자유와 인권이라는 추상적 가치까지 모든 것을 동원해 이를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하고 제공한다. 기업조직도 마찬가지다. 특히 위기를 맞아 조직 전체가 한 방향으로 행동해야 하는 시점에서는 무엇보다 내부 구성원들이 현실을 인식하고 가치관을 공유해야 한다. 위기에서 생존을 위해 구성원들이 행동해야 하는 이유를 모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조직의 리더그룹이 조직원의 행동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조직에너지를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국토는 피로 늘어나고, 국부는 땀으로 축적된다는 격언이 있다. 건국 후 700여 년이 흐른 기원전 1세기 당시 로마가 지금의 영국·에스파냐·리비아·이집트·팔레스타인·시리아·그리스·독일·프랑스에 걸친 넓은 권역으로 제국을 확장한 과정은 그 자체가 성공적인 M&A 스토리다. 이 같은 로마의 권역 확대는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시민군이 기반이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돈이 아니라 피로 자신을 지키는 이 제도는 로마 군사력의 근간인 동시에 제국으로 발전하는 실질적 힘이었다.

 

2. 물질적 토대를 다진 후 열정과 헌신을 요구하고 사기를 올려라

사람은 빵 없이는 살 수 없다. 하지만 빵만으로도 살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물질적 조건과 정신적 요소가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사람이 가진 강력한 에너지는 대개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서 나온다. 비슷한 신체조건을 가진 운동선수들도 정신력 차이에서 성적이 판가름이 난다.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나약한 사람은 쉽게 주저앉지만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 어려움에서 헤쳐 나온다. 조직의 에너지는 물질적 조건과 정신적 역량의 결합이다. 물질적 여건이 충분해도 정신무장이 부족하면 에너지는 반감된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의 승부는 물질조건보다 정신력이 좌우한다. 공동체의 리더가 조직을 움직일 때 물질적 이익이 필요조건이라면 정신적 가치는 충분조건이다. 조직이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은 커진다.

 

로마군이 병참으로 이겼다는 평판은 그만큼 전쟁 준비에 엄격했다는 의미다. 무적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철저한 사전 준비를 거쳐 전투에 임한 로마군이 보급과 지구전에 약했던 다른 민족보다 승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기·식량과 같은 물질적 여건을 마련한 뒤 정신력을 높였기에 병사들의 사기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병참을 중시한 로마군의 전통을 생각해보면 2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도 성공의 원칙은 동일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업 내 조직원들의 정신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물적 토대 없이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

 

글로벌 경제가 전개되고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업 환경의 변화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변화와 혁신이라는 말은 일상어가 됐다. 혁신이란 같은 일을 낮은 비용으로 하거나 같은 비용으로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조직을 저비용·고효율의 구조로 바꿔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면서 우왕좌왕 하고 구호만 외치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이런 사례는 문제의 핵심을 놔두고좋은 직장 만들기’ ‘고객 사랑하기 운동같은 종류의 실체 없는 정신운동이나 궐기대회만 반복하는 유형이다. 혁신을 물적 토대를 마련하고 개선하면서 조직원의 정신력을 확장시키는 과정으로 접근하지 않고 미사여구로 치장된 일회성 이벤트로 접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전쟁에서 정신력을 맹신하는 것이 막연한 행운을 믿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기업의 경영자가 정신운동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스스로의 자질 부족을 고백하는 의식에 불과하다.

 

경영자의 역량이란 조직이 가진 유무형의 자원을 조합해 에너지를 목표 방향으로 발산시키는 능력이다. 역량이 있는 경영자라면 조용하고 꾸준하게 물적 토대를 다져나가는 바탕 위에서 조직원에게 열정과 헌신을 요구하고 사기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 로마군의 병참 중시 전통은 웅변하고 있다.

 

3. 감성적 영역도 정신적 에너지의 중요한 원천이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것에 의지하려는 성향을 가진다. 특히 상황이 어렵거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배경에서 로마인들은 새점 같은 미신조차 조직의 사기를 높이는 도구로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다.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어떤 부분이 조직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은 오늘날 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사람을 다루는 기업의 경영자라면 때로는 집단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측면에서 종교활동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또 조직에 존재하는 신념 체계의 다양성을 인정해서 이를 공동체의 에너지로 이끌어내는 실용적인 관점이 요구된다.

 

종교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사람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기업이다. 신도들이 빠져나가면 어떤 자산도 남지 않는 게 바로 종교다. 때문에 종교지도자는 신도들에게 끊임없이 신념을 전파하고 열정을 고취시킨다. 그리고 신도들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감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재를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화할 줄 아는 사람이 능력 있는 경영자로 인정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측면에서 위대한 종교지도자는 위대한 경영자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현실을 뛰어넘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훌륭한 후계자들을 남겨 몇 천 년 뒤에도 종교가 유지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종교는 꿈을 나누고 신념을 새롭게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예배나 법회 등을 연다. 기업에서는 사보 또는 사내 방송, 사내 모임이나 워크숍 등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 종교단체에서는 신도들의 열정이 시들해지거나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면 부흥회 혹은 특별법회 등의 이벤트를 열어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다. 기업이 때때로 비전 선포식, 한마음 전진대회 같은 행사를 통해 정신적 결속력을 다지고 공유된 가치를 재확인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 kyekim@deloitte.com

김경준 대표는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쌍용투자증권, 쌍용경제연구원 등을 거쳐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통찰로 경영하라>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위기를 지배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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