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중독

권력은 CEO를 똑똑하게 하지만…적절한 견제 없으면 중독이 된다

142호 (2013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문경(건국대 경제학과 4) 씨가 참여했습니다.

 

프레드 굿윈(Fred Goodwin)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영국 RBS(Royal Bank of Scotland) CEO로 일했다. 그는 2007년 네덜란드 은행인 ABN암로 인수를 성사시키는 등 회사의 자산을 네 배나 불렸다. RBS는 자산 기준 세계 최대, 주가총액 기준 세계 5위의 대기업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굿윈은 사무실에 들어와 무언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는 담당자를 불러 호통을 치며다시 한번 이런 일이 일어나면 단호하게 조치하겠다고 위협한다. 대체 어떤 일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과자였다. 그날 아침 중역실 테이블에 놓인 모닝커피 옆 그릇에 들어 있는 과자 중에 싸구려 과자가 섞여 있었다. 자기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과자같이 사소한 것도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가 대체 무슨 논리를 갖고 화를 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일화는 굿윈이 당시 얼마나 권력에 중독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된다.

 

과자 사건이 있었을 때 이미 RBS 240억 파운드라는 사상 최대의 손실을 보고 있었다. 굿윈이 지휘했던 ABN암로 인수가 금융위기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2008 10, RBS는 무려 500억 달러 가까운 손실을 보고 파산위기에까지 몰렸다가 공적자금으로 국유화되기에 이른다. 굿윈은 회사에서 쫓겨났고 언론에 의해 금융위기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임기 초에는 칭송받는 CEO였던 굿윈이 어쩌다가 나락으로 추락해버렸을까. 더블린대에서 신경심리학을 연구하는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 교수는 저서 <승자의 뇌(The Winner Effect)>에서 권력 중독이 바로 그 이유라 말한다.

 

권력(權力)은 다른 사람을 통제 혹은 조종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런데 권력은 종종 다른 사람만 조종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가진 당사자마저 바꿔놓는다. 평범하고 소심했던 사람이 권력이 있는 자리에 오르면 오만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남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던 사려 깊은 정치가나 사업가도 권좌에 오래 앉아 있으면 독선적이고 안하무인으로 변할 수 있다.

 

권력의 영향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사례로 로버트슨 교수는 미국의 에너지 기업엔론 CEO였던 제프 스킬링을 든다. 그는 미국 기업 역사상 사상 최대의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24년 형을 받았다. CEO 재직 중 그는 오만한 성격으로 악명 높았다. 매년 임직원을 평가해 하위 10%는 모두 해고했다. 주차장에 줄 서 있는 직원들을 지나쳐 지나가면서 가운뎃손가락을 보이며 놀리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킬링의 학창시절 친구들은 그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억한다.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고 특별히 문제가 있지도 않았으며 평범하고 괜찮았던 친구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진을 보면 그는 학창시절에는 온화하고 소극적인 인상이다. CEO 재직 시절의 자신만만한 모습과는 무척 다르다.

 

권력은 사람을 눈멀게 하는 독약인가? 아니다. 권력에 의한 성격 변화는 사실 리더에게 도움이 되고 또 반드시 필요하다고 로버트슨 교수는 말한다. 사람은 승리를 경험하거나 권력을 갖게 되면 뇌 구조의 변화로 인해 좀 더 대담해지고 리스크에 대한 거부감 역시 줄어든다. 승리가 승리를 부른다는 말이 있듯이 권력을 가진 사람은 같은 문제에 대면하더라도 권력이 없는 사람보다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데도 스스럼이 없어진다. 심지어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증거도 있다. 로버트슨 교수는 권력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권력과 리더십이 없었다면 지금 어쩌면 나는 독일 제국의 파시스트 시민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마틴 루터 킹은 백만 명의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낼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은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권력은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또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권력이 사람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권력 중독의 특징은 무언지 알아야 한다.

 

화상전화를 통해 로버트슨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글래스고대를 졸업하고 런던대에서 임상심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신경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일랜드왕립아카데미 회원으로 250여 편의 과학 논문을 <네이처> <브레인> 등의 저널에 발표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권력의 정의는 무엇인가.

 

권력이란 다른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고, 두려워하는 것들에 대해 통제력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권력에 대해 각기 다른 수요를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는 지배욕이 될 수도 있다.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은 권력이란 사회적 유대관계의 핵심이라고 한 바 있다. 마치 물리학에서 에너지의 핵심이 원자인 것처럼 말이다. 권력은 조직뿐 아니라 인간관계 모든 측면에서 존재한다.

 

권력 중독은 뇌의 화학적 작용을 통해 리더를 좀 더 똑똑하게, 그리고 좀 더 문제에 집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부분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다. ‘권력 중독은 거의 항상 부정적이다. 그러나권력(power)’ 그 자체는 사람들을 더 똑똑하게, 더 용감하게 만든다. 권력은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같은 역할을 한다. 마치 약물처럼 너무 많이, 너무 오래 먹으면 중독되지만 그 자체로는 사람들의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로버트슨 교수에 따르면 승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 작용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사람이 승리와 권력을 경험하게 되면 테스토스테론이 강하게 분출된다. 이는 사람을 더 공격적으로 만들고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임계점도 높여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승리는 테스토스테론을 받아들이는 남성호르몬수용체(androgen receptor) 역시 증가시킨다. 이는 같은 양의 테스토스테론이 방출되더라도 더 강한 반응을 보이게 만든다. 동일한 연료를 투입해도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터보 엔진이 된다. 승자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승리의 순간이 지나면 금방 수그러들지만 남성호르몬수용체의 능력은 그대로 남는다. 다음 번 다시 테스토스테론을 방출해야 할 상황이 오면 같은 양에도 훨씬 빠르고 강력하게 반응하게 된다.

 

RBS CEO였던 프레드 굿윈은 권력에 중독된 것인가?

 

우선 중독을 정의하자. 중독이란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을 요구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그 중독물질 자체를 더 많이 얻는 데 집착하게 된다. 내성이 생긴다고도 볼 수 있고, 행동의 범위가 좁아진다고도 볼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은 금단현상이다. 어떤 물질에 중독이 되면 그게 없이는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아진다. 잘 알려진 예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총리직을 그만두게 된 후에 이런 권력 금단증상의 징후를 드러낸 바가 있다.

 

RBS의 프레드 굿윈의 경우 이런 관점에서 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가 세계 최대의 은행 CEO로서 가졌던 엄청난 권력이 그의 행동과 판단력을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자각능력이 크게 감소했다.

 

이는 뇌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인 효과다. 권력은 목표와 보상을 떠올리는 데 쓰는 좌뇌 전두엽을 활성화시키고 시각적인 요소와 위협 및 잠재 위험요소를 판단하는 우뇌 전두엽을 둔화시킨다. 우뇌 전두엽은 또한 자가 진단과 자각증력에 관여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약해진다는 게 권력의 위험성 중 하나다. 사람이 권력 중독의 영향을 받아 자각능력이 떨어지면 그들 자신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알코올이 뇌에 미치는 영향과 비슷한 것 같다.

 

알코올도 자각능력을 둔화시킨다. 하지만 권력에 의해 우뇌 전두엽에서 일어나는 특정 효과가 알코올의 작용과 흡사하다는 연구는 아직 없다. 알코올은 권력과는 달리 문제 해결능력마저도 감소시킨다. 사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그들이 충분한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박탈감에서 술을 마신다는 분석도 있다. 음주는 사람들이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박탈감을 채워주는 대체물이다.

 

로버트슨 교수는 권력이 자각능력을 저하시키는 예로 금융위기 당시 미국 자동차 업계 CEO들이 보인 행태를 꼽는다. 이들은 정부의 구제금융을 구걸하기 위해 디트로이트에서 워싱턴 DC까지 가는 데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회사 소유의 제트기를 이용해 언론의 큰 비난을 받았다. 세금을 부어 자신들을 구제해 줄 미국 시민들이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볼지 예상하지 못하고 문제의식도 전혀 없었던 것이다.

 

권력이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또 권력이 자각능력마저 떨어뜨린다면, 어떻게 해야 권력의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하면서 나도 모르게 중독되지 않을 수 있을까?

기업인들에게 조언해 달라.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좋은 지배구조(good governance). CEO 본인을 위해서라도 CEO에게 강하게 요구하고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가 필요하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금융위기 이전에 은행과 금융기관들의 이사회는 경영진을 충분히 견제하지 못했다. 이사회 본인들조차도 탐욕에 빠져 있었다. 바람직한 지배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이사회가안 된다’ ‘없다’ ‘하지마라는 말을 많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 역시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권력 감사(power audit)’. 기업들은 대부분 회계 감사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기업은 권력 감사도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CEO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임원들은 물론이고 중간관리자나 심지어 경비원들도 권력에 중독되거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경비원들에게는 타인을 건물 안으로 들여놓거나 막을 수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조건은권력 인지(power awareness)’. 예를 들어보자. 30년 전에는 성차별,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이 선진국에서조차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차차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행동까지 바꿔놓았다. 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조직 안에서 권력이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직 내부의 인식이 높아지면 그때는 앞서 말한 권력 감사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랫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로버트슨 교수는 이 말을 마치고 권력 감사를 할 수 있는 질문의 예를 나열했다. 이는 <1>에 정리돼 있다.

 

로버트슨 교수는 또 권력 중독을 막기 위해 조직 내 여성의 역할 증대를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자극을 받고 동기부여를 하지만 남성과는 다른 형태의 권력도 추구한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맥클레랜드가 ‘P권력(personal power)’ ‘S권력(social power)’이라고 구분한 것이다.

 

P권력이나 S권력 모두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욕구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P권력은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권력이고 S권력은 어떤 제도나 집단, 혹은 사회를 위한 목적에 초점을 맞춘 권력욕이다. P권력이 지배적인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선악의 대결, 혹은내가 이기고 네가 지는제로섬 게임으로 파악하는 반면 S권력이 지배적인 사람들은 단지 이기는 것뿐 아니라 그것이 내가 속한 집단에 폭넓은 편익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더 신경을 쓴다. 예를 들어 정치인과 경찰관은 일반적으로 P권력욕이 강하다. 교사와 간호사 역시 권력욕이 강한 집단이지만 이들은 주로 S권력욕이 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여성과 남성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S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여성들로 하여금 마약 중독과 같은 권력의 성질에 더욱 잘 대응하게 만들어준다.

 

P권력은 기본적인 생물학적 요인이다. 사람이 집단생활을 하게 되면서 계층이 생겨났는데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이 계단을 올라가 권력을 잡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반면 S권력은 좀 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인이다. 반드시 여성에게만 드러나는 특징은 아니지만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 연관이 있어 보인다.

 

P권력과 S권력이 어떻게 두뇌 안에서 작용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테스토스테론이나 코티졸 같은 호르몬의 작용과 연관이 있다는 것과 P권력이 높은 사람이 테스토스테론 분비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것 정도가 알려져 있다.

 

 

누가 S권력을 더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안 돼’ ‘하지마’ ‘아니야같은 단어들의 활용 빈도를 측정할 수 있다. 이는 심리적 통제의 증거다. 이런 말을 많이 쓴다는 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S권력욕이 높다는 뜻이다. P권력은 자아가 윤리적, 도덕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이다. P권력이 나르시시즘이라면 S권력은 이 나르시시즘을 억제하는 힘이다.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힘 있는 사람에게 지배받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성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있다. 코르티졸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호르몬이다. 코르티졸 수치가 높다는 건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권력욕이 많은 사람들은 승부에서 이기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가고, 승부에서 지면 코르티졸 수치가 높게 올라간다. 승리에서 희열과 자신감을 얻는 만큼 패배에서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면 권력욕이 적은 사람들은 승부에서 지더라도 코르티졸 방출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런데 권력욕이 적은 사람들은 승부에서 이겼을 때도 테스토스테론이 아니라 코르티졸 수치가 올라간다. 이런 사람들은 이기는 데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처럼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마다도 수용 기준이 다르다. 예를 들어 러시아 사회는 강력한 리더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 영국 같은 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생물학적 프로세스 역시 심리나 사회문화적 요소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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