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극화 시대, 다양한 인재를 써라

72호 (2011년 1월 Issue 1)


한국 기업 임원들을 만나보면 가장 자주 하는 이야기의 주제가 세계화(globalization)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를 자사의 제품을 다른 시장에 판매하는 ‘수출’, 혹은 자사의 공장을 중국이나 유럽 등으로 이전하는 ‘생산지 다각화’의 의미로만 해석했다. 하지만 이는 세계화의 극히 초기 단계에 해당할 뿐이다. 이제 세계화는 해외 시장을 자본, 자원, 혁신 인재의 보고 및 원천으로 활용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에는 다양한 글로벌 인력을 활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액센츄어는 최근 유럽 24개 국의 통신, 제약, 에너지, 유통, 금융 등 8개 산업의 매출액 상위 358개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임원진의 구성 요소’를 조사했다. 그 결과, 임원진의 세대, 성별, 국적, 교육 배경이 다양한 기업일수록 그 기업의 주식가치, 이익률, 성장률이 모두 높았다. 이는 온통 까만 머리와 비슷한 교육 배경을 지닌 한국의 임원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액센츄어는 또 세계 963 개 기업을 수익성, 성장성, 미래가치, 지속성, 주주 총수익률 등 5개 가치를 고려해 기업의 고성과 정도도 측정했다. 그 결과, 상위 12%의 고성과 기업은 하위 11% 저성과 기업과 달리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고성과 기업은 여성 인력, 유명하지 않은 비주류 학교 출신 비중이 높았다. 둘째, 해외로부터 인력 채용이 활발하고 심지어 비즈니스를 처음 진출하는 신규 시장에서도 새로운 인력을 과감히 기용하고 있었다. 셋째, 인재를 발굴하는 방법 또한 공채 등 기존 방식 대신 직원과 업무상 네트워크 등을 활용했다. 이 모두가 보유 인재의 다양성에서 오는 혁신 효과다.
 
임원진의 구성을 다양화하는 일이 기업 성과와 직접적인 상관이 있느냐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언어와 문화 차이, 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중요한 비즈니스 의사결정에서 오해와 혼란이 일어날 소지가 많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다양성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편견일 뿐이다. 다양성은 기본적으로 풍부한 아이디어와 변화를 의미한다. 다양한 성향, 경험,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국적의 젊은 세대와 여성 인재들로부터 얻은 새로운 아이디어는 경영 혁신을 자극한다. 기존 베테랑 임원진과 잘 조화되기만 한다면 큰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연 매출이 2조 원에 이르는 스위스의 제약기업 악텔리온(Actelion)을 보자. 악텔리온은 25개 국가에 법인을 둔 다국적 기업으로 총 2400여 명의 직원 중 절반이 세계 50개 국에서 온 여성들이다. 혁신적인 신약 개발에 주력하는 제약업계에서도 필수적으로 생각하는 가치가 바로 ‘다양성’인 셈이다.
 
최근에는 한국 대기업들도 글로벌 인재 영입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외국인 임원들을 종종 영입하고 해외 대학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채용 설명회도 자주 개최한다. 조기 영어 교육과 유학으로 젊은 인재들의 영어 능력이 높아져 영어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한 한국 여성들은 이제 관리자급에서 임원급으로 성장했다. 즉 겉으로만 보면 한국 기업도 분명 인재의 다양성과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보긴 어렵다.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인재의 배치에 있다. 즉 다양한 개성과 국적을 지닌 해외 인재를 뽑았다고 해서 그 인재를 해당국가에서만 쓴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외국의 인재를 단순히 해당 시장이나 한국 본사에 유치하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인재 풀을 발굴하고, 그들을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세계 각지에 배치해야 한다. 즉, 국적이 다른 여러 인재들을 능력과 소질에 따라 세계 각국 지사에 적절히 배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세계화다. 이들에게 다양한 커리어 개발과 동기부여의 기회가 주어져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한국 기업의 핵심에서 변화를 이끌 때 한국 기업은 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극화 세계(multi-polar world)에서 주도권을 쥐려면 지금부터라도 인재 선발 및 배치 시스템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 진 엑센츄어코리아 사장 jin.lee@accenture.com
 
이 진 사장은 미국 아메리칸 국제경영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IBM을 거쳐 액센츄어코리아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기업 전략, 변화 관리, 아웃소싱 분야의 전문가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