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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체적 관점의 조직 진단법

기업은 살아 있다: 유기적 진단을 잊지 말라

정지영 | 53호 (2010년 3월 Issue 2)

“지금 우리 조직이 사업하는 데 적합한가? 별 문제가 없나?” 언제나 경영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들이다. 특히 연말 연초에는 임원 인사나 조직 개편과 맞물려 이 고민의 깊이가 더해간다. 때문에 어떤 회사들은 정기적으로 조직 진단을 실시하고 그에 따른 후속 작업들을 추진한다. 설사 정기적인 조직 진단을 실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직 진단이라는 작업을 해보지 않은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회사들이 하고 있는 조직 진단 작업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회사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일부를 제외하면 원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회사들이 훨씬 많다. 그 이유는 다음 3가지다.
 
조직 진단 후에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
첫째, 조직 내부의 정치적,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공식적인 조직 구조 및 업무 프로세스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조직 진단을 실시한다. 실제 직원들의 업무 수행 방식이나 내부 구성원들의 역량 수준에 대한 철저한 진단 없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조직 계층, 보고 체계, 업무 분장 방식 등에서만 문제를 찾으려 한다는 뜻이다. 결국 이런 조직 진단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해결책의 한계 또한 명확하다. 겉으로는 매우 논리적이며 선진적인 해결책으로 보일지 모르나 실제 이 해결책을 실행하다 보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거나 아예 실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도 나타난다. 최근 많은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화를 추진하면서 외국 회사를 인수하거나, 현지 인력들과 함께 해외 조직을 만든다. 이럴 때 첫 번째 문제점이 종종 나타난다.
 
최근 중국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한 회사의 예를 보자. 진출 초기, 이 기업은 특히 중국 현지 인력들로 구성된 조직의 업무가 잘 진행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조직 진단 결과, 명시적인 업무 분장의 불명확성이 주된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회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단위 조직별 업무 분장서를 작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진행의 효율성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기존 업무 분장서나 신규 업무 분장서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중국 직원에게 효과적인 업무 수행 메커니즘에 대해 철저히 이해시키지 못한 게 주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을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메커니즘이 명시적인 업무 분장서에 나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매일 일어나는 업무에 대한 상세한 지시, 철저한 규칙에 의한 세밀한 관리가 더 필요하다. 즉 공식적이고 명시적인 업무 분장서보다 관리자의 리더십 유형에 초점을 맞춘 조직 진단이 이뤄지고, 이에 따른 해결책을 도출했어야 했다. 

둘째, 지나치게 사람 중심으로 조직 문제를 파악한다. 특히 한국 기업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 조직은 부사장급 인력이 7명인데 사업부 조직은 3개밖에 되지 않아 윗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는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머지 4명의 부사장이 맡을 수 있는 부서나 업무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진단과 해결책을 내놓는 식이다. 위인설관(爲人設官·특정인을 위해 필요도 없는 벼슬자리를 새로 마련함)의 대표적인 예다. 사람을 중심으로 조직의 문제점을 진단하거나 조직을 구성하는 방식은 해당 조직의 핵심 사업 전략과는 무관한 조직을 구성하거나, 불필요한 업무 프로세스 및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발생시키는 문제를 야기한다.
 
셋째, 지나치게 시대 조류를 의식한 조직 진단법을 쓴다. 즉, 우리 조직에 내재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아니라 해당 시점에 가장 유행하는 경영 방식이나 방법론 등에 근거해 문제 아닌 문제를 만들어내는 상황이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프로세스 혁신이나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이 경영 화두로 떠올랐던 적이 있다. 이러한 개념의 도입으로 많은 회사들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 내부의 역량 수준, 정보 시스템의 완성도, 투자 여력을 고려하지도 않고 위 개념에만 근거해 조직 문제를 진단하고 프로세스를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실제로 무턱대고 위 개념만 도입한 상당 수 조직들이 매우 오랫동안 성과 향상은 거두지도 못한 채 업무 혼란만 늘어나 큰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 굴지의 한 금융업체는 몇 년 전 프로세스 혁신 개념을 도입해 전반적인 업무 개선 작업을 수행했다. 인사 분야에서도 업무 개선 및 전사적 자원 관리(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대면 접촉 등 사람의 비중이 큰 인사 업무의 특성이나 관행을 일률적인 ERP 시스템으로만 처리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 회사는 엄청난 투자를 해서 구축한 ERP의 인사관리(HR) 모듈을 제거하고, 자체 시스템을 개발하는 경험을 겪었다. 당시 ERP 시스템의 준비도 미진했고 인사 혁신 프로세스를 운영할 만한 내부 인적 역량이 뒷받침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사 조직의 진정한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 시대 조류에 부응해 조직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려는 태도에 있다. 결국 의도와 달리 오히려 투자 손실만 입고 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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