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갈등
“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뭐야, 박 대리?”
“우리가 개발 납기를 어겼다고 중국 H사에서 지체 보상금을 요구한답니다.”
“납기를 못 지켰다고? 분명 생산관리에서 납기를 맞출 수 있다고 했었잖아!”
“물론 시제품은 만들었는데요. 품질보증팀에서 품질에 문제가 있어 양산을 할 수 없다고 얘기를 했답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이야기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했어?”
“….”
상품기획팀 박 대리가 직속 상사인 최 팀장에게 긴급 보고를 하다 질책을 받았다. 박 대리는 잠시 머리를 싸매고 있다 품질보증팀 이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과장님, 중국 H사 신제품 양산이 연기됐다고 들었습니다. 사흘 전에 받은 양산 승인이 왜 갑자기 취소됐는지 알 수가 없네요.”
“박 대리, 그걸 몰라서 지금 묻습니까? 박 대리가 우리한테 H사에서 보낸 품질 변경 요건서를 줬었잖아요. 우린 그걸 이틀 전에 받았단 말이요. 양산 이틀 전에 품질 변경을 통보하다니 그게 말이 되요?”
“아니, 과장님! 그 요건서는 중국에서 사흘 전에 보낸 겁니다. 그래서 늦었지 않습니까?
“그럼 계약은 무엇으로 하는 거야? 그냥 물량만 받아오면 되느냐고?”
“과장님! 계약은 영업에서 했지 우리가 했습니까? 품질 변경 요청서도 영업에서 받은 겁니다. 영업에서는 ‘내용이 지난번 품질 요건서와 다르지 않다. 다만 단서 조항이 있는데 그것은 제품의 하자가 있을 경우에만 해당한다’고 했단 말입니다.”
“박 대리,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거야? 중국 업체들의 관행을 아직도 모른단 말이야? 그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면 어떡해! 계약서의 내용이 바뀌는 경우에는 개발 일정을 연기하는 내용으로 계약을 하거나,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일찍 사전 조치를 해야지 않소?”
“과장님, 제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영업에서는 기다리라고 하고, 제품은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지난번 같이 일단 개발에 들어갔고, 시제품까지 만들었지 않습니까?”
“그래, 시제품 만들 때 한 번 더 요청을 했어야지. 무턱대고 제품 출하한 뒤에 그게 반송돼서 돌아오면 책임질 겁니까?”
“지금의 품질이 제품이 반송될 정도로 심각하진 않잖습니까? 그리고 양산 연기를 결정하실 때, 왜 우리 팀과 협의를 안 하십니까? 직접 고객과 협의하고 양산 일정까지 바꾸면 우리는 뭐가 됩니까?”
두 사람은 한참을 더 옥신각신했다. 결국 대화는 문제가 생긴 구체적인 이유와 대처 방안은 다루지도 못한 채 책임 공방으로 끝났다. 상품기획팀 최 팀장은 이 상황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왜 이런 문제가 계속 반복될까? 품질보증팀은 이런 문제를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고객과 협의해도 되는 걸까? 물론 품질 요건서에서 지적한 것과 다른 제품이 양산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제품에 납기가 있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최 팀장은 며칠을 고민하다 필자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상품기획팀과 개발팀, 품질보증팀 사이에 상호 보이지 않는 갈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팀 간 갈등을 해결할 방안이 없는지를 물었다. (위 사례는 실제 최 팀장의 이야기를 일부 각색해서 재구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