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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관점의 의사결정 혁신

한 환자 암 진단에 의사 7, 8명 참여

박용 | 41호 (2009년 9월 Issue 2)
서울아산병원은 2006년 7월 국내 최초로 1명의 암 환자 진료를 위해 여러 명의 전문의가 한자리에 모이는 통합진료를 시작했다. 이 병원은 전공의 벽을 깨고, 집단 의사결정 방식의 통합진료 시스템을 도입했다.
 
통합진료 시스템에서는 환자가 아니라 의사가 움직이기 때문에 환자의 치료 대기 시간이 2주 이내로 단축됐다. 한 자리에서 각 분야 전문의의 종합 소견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이 병원이 2008년 3∼6월 암 통합진료와 일반 외래 진료를 받은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통합진료 환자의 만족도는 97.6%로 일반 외래 진료보다 5.8%포인트 높았다.
 
도입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선진국에서는 통합진료가 보편화됐지만, 한국 의학계는 여전히 전공 간의 벽이 높았다. 단독 의사결정에 익숙한 의사들이 집단 의사결정 방식에 거부감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이 병원은 3년간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진료 프로세스를 바꾸고, 2009년 4월 한국형 통합진료 시스템을 도입한 암센터를 정식 개원했다. 

 
통합진료 시스템 도입의 산파 역할을 한 최은경 서울아산병원 폐암센터 소장(방사선종양학과)은 8월 말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집단 의사결정 방식의 통합진료 시스템은 질병 중심(disease oriented)의 치료에서 환자 중심(patient oriented) 치료로 전환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집단 의사결정 방식의 통합진료 시스템 도입 배경은?
“이전까지는 암 환자들이 어떤 치료를 어떤 순서로 받을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환자들의 치료 대기 시간도 길었다. 의사끼리의 의사소통도 환자가 치료를 받는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해지는 식이었다. 

전문의끼리 ‘케이스 콘퍼런스’를 통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지만, 환자를 직접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의견을 나눠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이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통합진료다. 같은 병을 같은 방법으로 치료해도 환자마다 효과가 다르다. 그만큼 의학에서 100%라는 건 없다. 여러 전문의가 한자리에 모여 환자를 관찰하면서 의견을 나누는 통합진료가 중요한 이유다.”
 


통합진료 시스템의 장점은 무엇인가?

 


협진(協診)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협진이 다른 의사에게 조언(consultation)을 구하는 식인 데 반해, 통합진료에서는 의사들이 함께 의사결정을 한다. 기존 협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같은 치료 방법에 대해 환자가 여러 의사로부터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점이다. A의사는 방사선 치료가 가장 좋다고 하는데, B의사가 갑자기 수술을 해야 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환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통합진료에서는 여러 의사들이 한목소리로 한 가지 방법을 추천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안심하고 따른다. 

처음에는 그 방법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여러 의사가 계속 한 방법을 권유하다 보니 환자가 더 안심하고 치료를 결정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암이 유방암이다. 과거에는 유방을 모두 들어냈다. 여성 입장에서는 후유증이 컸다. 외국에서는 종양만 제거하고 방사선 치료를 하기도 한다. 우리도 통합진료를 통해 이런 치료법을 빠르게 도입할 수 있었다.”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 반발은 없었나?
“의사들은 고집이 세다. 의사 1명의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일반인 10명의 생각을 바꾸는 게 더 쉬울 것이다. 그런 의사들을 대상으로 변화를 추진하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통합진료를 도입한다고 하니까 나를 ‘급진 좌경’이라고 비난하는 말까지 나왔다. 

부작용도 우려됐다. 의사들은 보통 자신만의 진료 공간, 즉 닫힌 공간에서 혼자 의사결정을 한다. 앞뒤가 꽉 막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통합진료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고집 센 의사들이 환자가 보는 앞에서 고집을 부리다가 합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많았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의외의 변화가 시작됐다. 의사들이 통합진료의 장점을 스스로 느끼기 시작하면서 의식이 변했다. 동료 의사들이 통합진료를 통해 심리적인 부담감을 많이 덜게 됐다고 얘기한다. 예전에는 혼자 진료실에서 끙끙대던 일을 다른 의사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해결한다는 말이다. 오진(誤診)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도 덜 수 있다. 

환자 진료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빡 놓친 부분을 깨닫기도 한다. 젊은 의사들의 자기계발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젊은 의사들이 경험이 풍부한 의사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선배들의 노하우와 지식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 실제로 젊은 의사들의 연구 성과가 크게 좋아졌다.”
 

제도 도입 초기 시행착오는?
“처음에 식도암, 위암, 대장암, 유방암, 폐암, 비뇨기암 등 6개의 암 통합진료팀이 구성됐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30분 넘게 합의를 보지 못해 환자와 보호자를 잠시 내보내고 토론을 하다가 결국 좀더 검사를 해보기로 하고 헤어진 적도 있었다. 팀원들이 결론을 내리지 못해 고위 간부가 개입한 적도 있었다. 요즘에는 통합진료 프로세스가 자리를 잡으면서 환자당 통합진료 시간이 5∼10분으로 단축됐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의견을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훈련이 됐기 때문이다. 

환자 앞에서 합의가 공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의사들이 한발씩 물러서 환자의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자주 만나다 보니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고 믿음도 생겼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팀이 내린 의사결정에 대해 리뷰를 하면서 집단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자리를 잡았다.”
 

집단 의사결정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따로 있나?
“리더를 정하지는 않는다. 케이스마다 의견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 우리 폐암 팀에서는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논의를 이끌어간다. 사진을 함께 보면서 다른 의사들이 놓치는 부분도 많이 잡아준다. 치료법에 대해 아무래도 중립적이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것 같다. 

호흡기내과 선생님도 그런 역할을 많이 맡는다. 이분은 수술 후 환자의 생활까지 생각한다. 요즘은 암을 고치고 나서도 오래 산다. 만성질환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암을 고치는 치료법도 중요하지만, 치료 이후 환자의 삶까지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각 팀을 운영하는 방침은 무엇인가?
“폐암센터는 현재 두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 팀은 통합진료를 시작한 이후 3년간 같은 멤버로 운영된다. 한 팀으로 움직이다 보니 신뢰도 생기고 서로를 더 잘 파악하게 된 것 같다. 다른 팀은 비교적 젊다. 연령대가 달라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도 차이가 있다. 젊은 팀은 수술에 대해 더 공격적이다. 

각 팀마다 장·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환자를 빨리 낫게 하기 위해 이것저것 약을 쓰게 되면 간 기능이 떨어져 열이 나는 ‘드러그 피버(drug fever)’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럴 때는 환자를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의 방법일 때도 있다. 앞으로는 연령대가 다른 두 팀의 구성원을 섞는 방안도 실험할 필요가 있다.”
 

팀 간의 경쟁도 있나?
“물론이다. 병원도 경쟁의 무대다. 환자를 죄인처럼 다루던 시대는 끝났다. 환자 수, 환자의 만족도, 신뢰도, 성과 등에 대한 평가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팀끼리 경쟁할 수밖에 없다. 병원은 잘하는 팀이 더 잘하도록 지원하고, 못하는 팀은 성과를 개선하도록 돕는다. 

경쟁을 통해 발전하기도 한다. 1년에 두 번 정도 워크숍을 열고 전체 암센터 의사들이 통합진료 사례를 발표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다른 팀의 장단점을 보고 배운다.”
 

전문가들의 집단 의사결정 체제인 통합진료 과정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의사 상호간의 신뢰가 무너지면 팀을 이끌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문제가 되는 구성원이 팀에 있을 때도 매우 힘들다. 아무리 노력해도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실제로 팀원끼리 서로를 존중하지 않아 고위 간부가 직접 나서 팀원을 교체하고 팀을 바꾼 일도 있다. 중요한 점은 얼마나 빨리 그런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느냐다. 

현재 11개 팀이 있는데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자신의 능력이 다른 의사들에게 낱낱이 공개되기 마련이다. 남들 앞에서 틀린 말을 할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는 통합진료 확장에 걸림돌이 된다. 집단 의사결정 방식의 통합진료 시스템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한 공감대가 없을 때도 팀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빨리 결론을 내리기 위해 고집 센 의사들을 강압적으로 대하면 역효과가 날 때도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사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통합진료 시스템이 다른 병원과 차별화된 경쟁력인가?
“우리 병원의 역사는 20년 정도로 경쟁 병원보다 짧다. 상대적으로 젊은 병원이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의 도입과 혁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조직일수록 조직 문화가 정체돼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통합진료를 위한 경영진의 투자 의지도 중요하다. 기존 진료 방식에서 환자가 진단을 위해 4명의 의사에게 찾아갔다면 각각의 의사에게 진료비를 지불해야 했다. 통합진료 시스템으론 4명의 의사를 한꺼번에 만나더라도 한 번의 진료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진료비 부담이 줄어든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병원 수입의 감소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병원은 통합진료를 차별화된 경쟁 우위로 판단하고 투자하고 있다.”
 

조직 전체의 성과를 위해 협업을 강요하다 보면, 개인의 목표와 충돌이 생겨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고 협업 비용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통합진료의 협업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들이 통합진료에 참여하면 각 의사마다 각각 환자를 직접 진료한 것처럼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통합진료의 성과 목표와 개인의 성과 목표가 충돌하지 않도록 조정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병원에 손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통합진료를 통해 환자의 진료 만족도를 높이고 병원의 차별화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집단 의사결정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한 요건은 무엇인가?
“집단 의사결정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는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팀이 운영될 수 없다. 집단 의사결정의 주체인 의사와 환자 외에 이를 지원해주는 코디네이터의 역할도 중요하다. 

코디네이터는 의사가 환자를 만나기 전에 통합진료가 환자에게 적절한지, 어떤 팀의 치료가 환자에게 더욱 효과적인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통합진료 전날 코디네이터가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차트, 사진 등을 보내주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돕기 때문이다. 

코디네이터 간호사에 따라 의사의 진료 활동이 크게 달라지는 셈이다. 따라서 통합진료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문성을 갖춘 코디네이터를 양성해야만 한다. 우리 병원에서도 통합진료를 시작하면서 코디네이터를 미국에 연수 보냈다. 바람직한 토론 문화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미국 의사들은 격렬한 토론이 끝나고 나면 훌훌 털어버린다. 우리는 토론에도 소극적인 데다 토론이 끝나고 나면 뒤끝이 남는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박종호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대학생 인턴연구원(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이 참여했습니다.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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