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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제도와 기업 문화

직원 존중하니 제안 수천 건 쏟아져

박은연 | 29호 (2009년 3월 Issue 2)
제안 제도의 미스터리
페이스북 직원들이 신나게 밤을 새우는 이유는?
페이스북은 하버드대를 중퇴한 20대 청년 마크 주커버그가 설립한 미국의 신흥 기업이다. 우리나라의 싸이월드와 흡사하게 인터넷에서 지인들과 소식을 나누는 공간을 제공하는 소셜 네트워크 웹사이트다. 개설된 지 불과 5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하는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
 
페이스북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그들이 ‘헥카톤(Hackathon)’이라고 부르는, 철야로 진행되는 전사적 제안 프로그램이다. 페이스북이 초기에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주역인 ‘새 소식 전하기(News Feed)’나, 최근 급속한 세계화를 가능케 한 ‘사용자 직접 통역’ 프로그램을 비롯해 수많은 서비스들이 지금까지 10여 회에 걸친 헥카톤에서 나왔다고 한다.
 
헥카톤은 다른 조직들이 부러워할 만한 구성원 제안의 성공 사례이지만, 사실 전혀 제도화돼 있지 않다. 오히려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잔치에 가깝다. 이 행사가 어떻게 시작되냐 하면, 구성원 중 누구라도 마음이 내키면 “여러분, 우리 또 헥카톤 합시다” 하며 모두를 초대한다. 소식이 퍼지면 오후쯤 700여 명의 구성원 모두가 하나둘씩 큰 방에 모여든다. “헥카톤을 시작하자”고 외친 뒤, 피자를 주문하고 냉장고에 콜라와 레드불을 가득 채우면 준비는 끝난다.
 
제각각 평소에 해보고 싶었지만 주당 평균 70시간의 업무량에 엄두를 내지 못하던 멋진 아이디어들을 이때부터 자기 마음대로 골라 작업하기 시작한다. 대개는 누구의 정규 업무에도 포함되지 않은 작업들이다. 젊은 사장도 함께 어우러져 바닥에 주저앉아 밤새 와글와글 떠들어가며 시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프로그램을 만든다.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고, 누가 집에 가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지만 날이 새기 전에 먼저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도리어 무슨 사정이 있어 헥카톤을 놓치기라도 하면 몹시 아쉬워한다. 새벽이 되면 모두 몰려나가 아침을 먹고는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든다. 완성된 시범 프로그램 중 ‘엄청 멋진’ 것들은 프로젝트화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당장 다음 주에 페이스북 웹사이트에 올라 전 세계 회원들이 쓰게 될 수도 있다. 디지털 카메라로 서로 찍어준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나면 끝이다. 서류 처리할 것도 없다. 기업에서 제안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꿈같은 광경이다.
 
헥카톤의 성공은 상식적으로 보면 미스터리다. 그다지 제도라 할 만한 것도 없는데, 어찌 이리 제안 제도가 잘 운영된단 말인가? 평소에 일을 별로 안 하던 사람들도 아닌데, 이 프로그래머들은 왜 밤새껏 자진해 가욋일을 해가며 수많은 제안들을 내는 것일까? 성공한다고 해서 포상금이 두둑하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돈은 한 푼도 안 준다. 조직 전체에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지도 않는다. 헥카톤에 참가한 프로그래머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한다. “재미있어서.” “뿌듯해서.” 요점은 분위기와 성취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그들은 “잘 만들어보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무조건 하룻밤 안에 한 작품을 뚝딱 만들어내는 게 묘미”라고 덧붙인다.
 
제안 제도, 왜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나?
반면에 공들여 제안 제도를 만들어놓고도 그 성과는 유명무실한 기업들도 많다. 직원들이 페이스북의 구성원들보다 학력이 낮아서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종업원 제안만으로 1만8000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한 일본 미라이공업에서는 공장 노동자들도 수천 개씩 아이디어를 낸다. 미라이공업이 작은 기업이라서 뭔가 다른 걸까? 그것도 아니다. 3M 같은 거대 기업에서도 제안 제도는 활성화된다. 업종의 특성 때문일까? 제안 제도가 활성화된 기업들을 보면 섬유화학 기업인 고어, 자동차 제조업체인 도요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등 업종이 제각각이니 업종 탓을 할 수도 없다. 대체 뭐가 다른가? 쉽고 명확한 프로세스, 공정한 심사와 보상 제도가 갖춰졌는데도 안 된다면 이는 조직 문화가 다른 탓이다. 한마디로 ‘분위기’가 다른 것이다.
 
아무리 제도를 공들여 잘 만들어놨어도 분위기가 썰렁하면 사람들이 제안을 안 하게 된다. ‘내가 왜?’라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면 제안 제도의 성공은 요원하다. 일단 구성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놔야 심사고 뭐고 할 것이 아닌가?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고, 공식화된 문서나 제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이 분위기가 바로 제안 제도를 실패로 몰아가는 주범이다. 이 분위기의 실체는 구성원의 말 한마디,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의 표정, 일하면서 느끼는 기분 같은 데서 나타난다. 참으로 애매모호한 단서들이다.
 
분위기를 잡기 위해 우선 직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제안 제도가 잘되지 않는 비교적 뚜렷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제도가 실행이 잘 안 될 때는 사람들이 각자 제안을 안 하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핑계라고 할 수도, 불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바로 조직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지름길이다. 구성원들과의 회식 자리나 티타임에서 “왜 제안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하는가? “아이디어가 없다” “업무가 너무 바쁘다” “제안해봐야 실행되지 않을 테니 소용없다” “제안이 실행돼도 나와 별 상관없이 회사만 득이다” 등의 이야기가 많이 들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냉소적인 문화이고, 구성원의 창의성이 막히는 분위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키지 않아도 열정적으로 알짜배기 제안들을 쏟아내는 조직의 분위기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자.


제안 제도, 왜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나?
“난 잘 몰라서…” VS. “우린 정말 똑똑해!”
제안 제도 활성화의 첫 단계는 직원들로 하여금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원들이 각자 하고 있던 일상적 업무에 관해서라면 이미 웬만한 아이디어는 다 짜내어 쓰고 난 뒤일 때가 많다는 게 문제다.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난 잘 모른다’ ‘아이디어가 없다’는 분위기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협력을 통해 이미 있는 아이디어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조합할 필요가 있다.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는 게 있다. 중세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 음악가, 미술가, 철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음으로써 이들 간의 교류에서 생긴 시너지가 르네상스라는 혁신의 시대를 만들어낸 데서 생겨난 용어다. 이러한 원리가 제안 제도에 적용되려면 ‘열린 문화’가 필요하다. 누구나 똑똑하고 할 말이 있다는 생각으로 분야 간의 장벽을 낮춰,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주 접촉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협력의 접점에서 이때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 반면 조직 안에 ‘자기 분야도 아닌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지 말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면, 열린 문화가 형성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바보 취급을 받을 걸 알면서 누가 입을 열겠는가? 자연히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비록 전문가가 아니어도 구성원들 모두가 ‘우린 정말 똑똑해!’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자유롭게 발언하는 문화가 조성된다. 이를 통해 아이디어를 더욱 개발하고 확장하게 되어 제안 제도의 취지가 살아난다.
 
최근 일부 조직들은 이러한 협력의 범위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내부에서 분야 간 장벽을 허물고 뒤섞음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경쟁관계의 조직들과도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개발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강조하고 있다. 돈 탭스코트와 앤서니 윌리엄스는 대중의 집단지성이 세상을 바꾸는 ‘위키노믹스(Wikinomics)’ 개념을 제시하면서 협력의 범위를 극단적으로 고객에까지 확장하고 있다.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를 수백만 명의 고객들과 협력해 개발하여 대대적으로 성공한 회사들을 보면 열린 분위기의 힘을 알 수 있다.
 
프록터앤갬블(P&G)은 이탈리아 작은 빵집의 기술을 자사 제품에 접목해 감자칩 ‘프링글스’를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소비재 기업이 동네 빵집에서 배울 점이 뭐가 있냐고 생각했다면 프링글스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한때 도태 직전까지 갔던 일본의 화투 회사 닌텐도는 지방 대학 출신 직원이 사장의 차를 운전하다가 “전자계산기처럼 액정화면이 달린 작은 게임기를 만들면 어떨까요?”라고 한마디 던진 아이디어를 계기로, 전 세계 게임기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회사로 되살아났다. 섬유화학업계의 강자인 고어는 직원들의 제안을 토대로 해마다 ‘고어텍스’를 비롯한 수많은 신상품을 출시해왔다. 이 회사의 창립자인 빌 고어는 ‘카풀(car pool) 효과’를 노렸다. 즉 그는 회의 중이 아니어도, 출근 차량과 같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를 들을 것을 강조했다. 고어의 신입사원들은 첫 6개월은 일하지 말고 팀과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쓰도록 돼 있다. 배경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서로를 ‘똑똑한 아이디어맨’으로 보고 귀 기울여 듣는 문화인 것이다. 페이스북의 프로그래머 중 한 사람이 “헥카톤에 가면 방 하나 가득 똑똑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있어 충전된 분위기가 좋다”고 한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제안해봤자 소용없는 걸…” VS. “말하라, 그러면 통하리라”
지속적으로 제안이 들어와야 제안 제도가 활성화될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 포상도 했는데, 점차 시들해지면서 제안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조직이 많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구성원들이 ‘회사가 내 아이디어에 별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문제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존 업무 방식의 개선안이 그동안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사람들과 충돌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실행돼서 득이 될 제안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거나 “전에 비슷한 시도를 해봤는데 안 됐어”라는 반응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이렇게 되면 ‘제안해봤자 관심도, 소용도 없다’는 실망스러운 분위기가 금방 퍼져 나간다. 직원이 낸 제안이 채택되었는지 여부를 제대로 통보하지 않거나, 채택된 제안에 대해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별 관심이 없다’는 실망을 안겨준다.
 
과정과 보상에 문제가 없더라도 ‘제안해봤자 소용없다’는 분위기가 나타나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갖고 있지 않다. 아이디어를 냈으니 포상금과 휴가를 준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을 존중한다는 뜻은 아니다. 당신의 경험을 한번 돌이켜보라. 선물이나 돈을 받고도 보상이나 인정을 받은 느낌이 들기는커녕 도리어 싸구려 물건 취급을 받은 느낌이 든 적은 없었는가? 반면 돈은 한 푼도 못 받아도, 감사의 말 한마디 덕분에 ‘나를 정말 존중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고객에게 서비스하듯 직원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퍼져 있는 조직에서는 제안들이 지속적으로 나와 제안 제도가 활성화되는 사례가 많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허브 켈러허 사장은 직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연료비가 상승해 위기이니,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내서 여러분이 회사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말 한마디로 ‘말하면 통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했을 뿐 아니라, 직원들이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제안하게끔 만들었다. 이 회사는 구성원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문화로도 유명하다. 최근 일본 굴지의 마쓰시다전기산업을 제치고 매출 1위를 차지해 화제가 된 미라이공업은 존중의 문화를 토대로 제안 제도를 생활화한 대표적 사례다. 괴짜로 알려진 이 회사의 창업자 야마다 아키오 씨의 “직원은 말이 아니야. 당근만 주면 돼” “승진, 시키면 아무나 잘해”와 같은 말들로 대표되듯, 미라이공업은 철저히 구성원을 존중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미라이공업에서는 사원들이 회사 시스템 개선에서 신제품 개발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1년에 1만여 건에 이르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있다.
 
24시간 안에 즉각적으로 제안 접수 통보를 하고, 72시간 안에 심사하는 규정 및 공정한 보상 같은 것들도 ‘말하면 통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물론 제안만 하면 다 실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제안이 매우 중요하며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하면 된다. 이런 분위기라면 평생 하나뿐일지도 모를 소중한 아이디어라도 이 조직에 주고 싶어진다. 페이스북의 인사총괄 담당자가 “구성원 모두 탁월한 기술자들이다. 인사총괄 담당자로서 할 일은 모두 자기 힘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방해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내 일도 아닌데, 바빠서…” VS. “이게 일이라니? 신나게 노는 중인데!”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안 제도를 만들고 아이디어를 구한다고 해도, 구성원들은 이미 하고 있는 일들로 바쁘기 때문에 여전히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실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덤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몇몇 열성적인 제안자들만 반복해 참여한다 해도 제안 제도의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폴라로이드사(社)의 사례는 ‘내 일이 아닌데…’ 하는 분위기와 수동적으로 주어진 업무만을 수행하는 문화가 조직에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요즘도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볼 수는 있지만, 정작 이 회사는 망해버렸다.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볼 수 있다는 게 폴라로이드 사진기의 주된 무기였는데, 새롭게 디지털 사진 기술이 나왔던 것이다. 이 회사는 새 기술이 개발되는 것을 알고 있었고, 디지털 시장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무도 디지털 사진기를 개발할 만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주요 임원들도 중도에 이직하면서 주인의식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한 채 ‘해야 하니까 마지못해 일하는’ 문화가 만연했다. 결국 이 회사는 2001년 파산했다.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업무에 ‘몰입’하고 있다면 제안 제도를 활성화하기에 적격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나 깨나 자기가 좋아서 온갖 아이디어를 낼 테니 말이다. 조직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가 몰입의 경지에 올라 있다면, 제안 제도 100% 참가율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다만 사람들의 개성과 취향이 제각각 다른데, 모두가 몰입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란 무엇일까? 바로 ‘재미와 보람이 있는’ 분위기다. 달리 말하면, 노는 것처럼 일하는 문화가 있는 조직이라면 여기저기서 알짜배기 제안이 저절로 샘솟을 것이다.
 
매년 가장 혁신적인 기업 목록에 단골로 등장하는 3M, 구글, 고어에는 한 가지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10%, 15%, 20%로 비율은 각각 다르지만, 업무 시간 중에 구성원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할당해두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의 헥카톤도 이 점에서는 동일해 직원들이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컨설팅 회사 갭인터내셔널에서도 이런 예를 볼 수 있다. 이 회사는 2006년 포춘 선정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비롯한 각계 지도자들 100여 명을 모아 1주일간 리더십 세미나를 열었다. 보통 이런 자리는 진지하고 엄숙하지만, 여기서는 뜻밖에도 매일 아침 부사장을 포함한 컨설턴트들이 무대에 올라가 그날의 주제에 맞는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직접 공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결과는 대히트였다. 이 ‘깜짝 아이디어’는 갓 입사한 햇병아리 신입사원이 노래를 매우 좋아해 “노래하면서 진행하면 재미있지 않을까”라고 제안한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동료들과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일을 하는데 재미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단순한 원리를 조직에서 대범하게 행동으로 옮겨야 재미있는 분위기와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런 조직들은 아이디어를 강요하거나 정규 평가에 포함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몰입은 외부에서 오는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내재적 성취감을 통해 달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위성사진으로 세계 어느 곳이라도 볼 수 있는 인터넷 지도 ‘구글 어스(Google earth)’는 구글의 자랑거리다.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구글 안에서도 유명인이 된 직원은 “회사 식당에서 ‘구글 어스를 만든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야!’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큰 보상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제안 제도가 제대로 실행되는 조직에서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이야기하게 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한편으로 다른 많은 조직들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뒷받침되지 않아 제안 제도에 투자한 노력을 아깝게 낭비하고 있다. 공들여 만든 제안 제도를 취지대로 잘 실행하고 싶다면, 비결은 뜻밖에도 간단하다. 직원들이 “우리처럼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우리가 말하면 통하는 ‘엄청 멋진’ 일들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재미있나”라고 즐거워하도록 해라. 또 기업 입장에서는 조직의 모든 구성원을 이런 사람들이라 여기고 대하라. 열정적 분위기가 퍼지면 조직의 문화가 바뀔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사회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컨설팅 회사 갭인터내셔널을 거쳐 현재 LG경제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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