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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관행 파괴한 현대무용가 안은미

작품 형식, 가치관, 전통, 관객과의 소통. 모든 것을 깨고 현대무용의 전설이 되다

임수빈,이미영 | 236호 (2017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안은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파격적인 무용가로 꼽힌다. 그는 작품의 형식은 물론 작품 세계, 그리고 예술가와 관객이 맺는 관계까지 기존 관행을 모두 파괴하고 새로움을 시도했다. 그의 예술 활동은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고 기존에 없었던 시장을 창출해 내는 일종의 ‘창업가 정신’과 맞닿아 있다. 새로운 장르의 현대무용을 끊임없이 시도했으며 글로벌 무대에서 동양인 여성 안무가로서 새로운 입지를 구축했다. 또 예술가의 근엄함과 신비주의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뷰 등을 통해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며 현대무용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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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와 조롱 사이에서

검은 테이프를 그물처럼 몸에 칭칭 감은 십수 명의 댄서들이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춤을 췄다. 마치 근육이 마비된 양 어색하게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배경음악은 현대무용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른바 ‘뽕짝’이었다. 기괴했다.

현대무용의 진지함과 무용수의 아름다운 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자부하는 관객들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객석에서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이내 자리를 떴다. 눈살을 찌푸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는 자리에서 뜨지 못했다.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감탄을 비명처럼 내뱉는 관객들도 있었다. ‘극과 극’. 그렇게 그날 공연의 평가는 엇갈렸다. 1992년 30세 신인 무용가 안은미가 ‘아리랄 알라리오’를 발표하던 그날 서울 호암아트홀의 장면이다.

그날 이후 한국 무용계는 논란에 휩싸였다. 말 그대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보수적인 한국 현대 무용계 인사들은 “안은미가 한국 무용을 망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천편일률적인 작품만 내놓는 한국 무용계에 지친 일부 사람들은 안은미가 “한국 현대무용의 정체기에 일침을 가했다”며 극찬했다. 그럼에도 그는 ‘모난 돌’이었다. 안은미를 바라보는 한국 무용계의 시선은 전반적으로 곱지 않았다. 그럴수록 안은미는 더 파격적인 작품으로 화답했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맞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의 파격에 비난도 커졌지만 지지자와 팬 층도 늘어갔다. 그는 사람들의 다툼이나 비난, 지지와 찬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직 ‘무엇을 파괴하고 무엇을 새롭게 창조할 것인가’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2017년 현재 안은미는 한국 무용계의 악동에서 대모로 거듭났다.

30년 넘게 안은미는 한국 현대무용계를 이끌었다. 그가 단지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작품만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대중들에게 즐거움도 선사했다. 안은미는 누구보다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예술가다. 예술계에서도 불모지에 가까운 게 한국 현대무용 시장이다. 난해한 춤 동작과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세계 때문에 대중이 외면한 장르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은미의 공연을 보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안은미의 공연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매진 사례를 기록할 만큼 인기가 높다. 그의 최신작인 ‘땐쓰 3부작’ 발표 후 안은미와 안은미무용단은 한국에 머문 시간이 해외에 체류한 시간보다 더 짧을 정도다.

DBR은 안은미가 창의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성공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분석했다.

 

서양 무용 따라 하기의 한계를 넘어서다

현대무용은 서양에서 나온 춤이다. 발레에서 파생된 새로운 춤의 형식이다. 움직임의 기본형은 같지만 큰 차이가 있다. 발레는 표현하는 방식이 정해져 있다. 정해진 몸의 움직임을 통해 기교를 부리고 무용수가 그 안에 감정을 넣는다. 현대무용은 비교적 규칙에서 자유롭다. 보다 더 자유로운 몸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때론 더 과장되게, 때론 더 축소해 몸을 움직이면서 극적인 효과를 낸다. 그래서 현대무용에선 무용수의 표현력과 창의성이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대무용은 자유로움과 거리가 멀다. 비슷비슷한 형식과 틀에 맞춘 작품들이 대부분이란 평가다. 특히 한국 현대무용은 1950년대 해방 이후부터 시작돼 역사가 짧다. 대부분 일부 대학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학문적 이론, 이미 서구에서 구축한 현대무용 방법론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형성됐다.

1980∼90년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현대무용은 트렌드가 생명인데 그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는 정보망이 많지 않았다. 또 현대무용은 서구의 무용이며, 이들의 문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강박도 존재했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보다 서구의 무용 기술이나 기법을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정해진 규칙과 틀 안에서 무용계가 움직이다 보니 새로운 작품이나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 무용계가 정체 상태라는 비판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안은미는 누구보다 이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986년부터 한국현대무용단에 들어가 뛰어난 기량으로 군무를 주도하며 리더로 활약했다. 그러나 남들이 추는 춤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은 그가 생각하는 현대무용의 본질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춤꾼의 개성과 고민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복사기가 돼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안은미는 1988년부터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현대무용단과는 별개로 매회 개인발표회를 열었다. 이때 발표한 ‘메아리’라는 작품에서는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을 대거 섭외해 춤을 췄다. 이들은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않고, 팔과 다리가 고정된 줄에 묶여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목적 없이 사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속박을 표현한 것이다.

안은미는 이 작품을 통해 대학을 중심으로 정형화된 춤의 세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내면의 고통이나 슬픔 등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아름다운 몸짓만 강조하던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1992년 발표한 ‘아리랄 알라리오’를 통해 그는 한층 더 파격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성인가요에 맞춰 기괴한 형태로 몸을 흔드는 게 핵심이었다. 예술성만 강조해 일반 대중들이 다가가기 힘든 현대무용은 결국 소수의 전유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후에도 안은미는 연극과 무용을 접목한 현대무용의 한 장르인 ‘탄츠테아터(Tanztheater)’를 한국 전통문화와 결합해 최초로 무대에 올렸다. 또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포스트 드라마틱 시어터(Post Dramatic Theatre)’도 처음 국내에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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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미(美) ‘오리엔탈리즘’의 재해석

“보통 서구에선 동양에 대해서 ‘신비롭다’는 이미지를 많이 떠올려요. 조용하면서 뭔가 감추고 있는 듯한 여성의 이미지죠. 실제로 아시아인이 연출한 작품은 서구인들이 이미 규정해 놓은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건 안은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시아 출신 여성 무용가의 작품은 어때야 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안은미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정립한다. 동양인의 신체적 불리함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안무가 대표적인 예다. 아시아 무용수들은 서양 무용수보다 다리와 팔이 짧다. 이런 신체적 특징은 춤을 추는 데 단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안은미는 단점을 극복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짧은 팔다리를 최대한 많이 사용하면서 동양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움직임을 만들었다.

‘하늘고추’라는 작품에서 이 특징이 두드러진다. 여성 무용수 10여 명이 땅에 허리를 대고 팔은 땅을 짚은 채 발을 회전하며 무대를 가로지른다. 상대적으로 다리 길이가 짧아도 얼마든지 소박하면서 여유로운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평단에서는 파워를 중시하는 서양의 무용인들에게서 보기 힘든 동양인만의 독특한 유연성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국의 전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도 안은미식 춤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안은미는 보통의 한국 예술가들처럼 한국의 정체성을 ‘한’이라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유쾌함과 경쾌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 비뚤어지고 울퉁불퉁한 형태 그대로 집의 기둥으로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건축 양식에선 여유로움이 느껴진다”며 “우리나라의 회식 문화나 음주 문화만 봐도 넘치는 에너지와 끼를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춘향(2006)’ ‘바리공주-이승 편(2007)’ 등은 한국의 전통을 안은미식으로 재해석한 점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두 작품 모두 한국 전통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지만 원작과 전혀 다른 스토리가 전개된다. 신춘향에는 10대 소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정절을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 40대 노처녀 춘향이 20대 이몽룡을 유혹한다. 안은미는 가슴을 드러낸 당당한 춘향을 연기한다. 붉게 물든 무대와 무용수들이 입은 형형색색의 치마는 춘향의 정열과 강인함을 나타낸다. 공연 막바지에는 안은미가 길게 땋아 내린 가발을 벗고 안은미의 상징과도 같은 민머리를 드러낸다. 이 장면이 연출하는 풍자와 해학에 사람들은 또 한 번 감탄한다.

바리공주도 마찬가지다. 그는 바리공주를 부모에게 버림받은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버려진 후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자신을 버린 부모를 끝내 용서하는 포용력을 중심으로 바리공주를 바라본다. 안은미가 바리공주 무대에서 보여준 의상에서도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그는 발목 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와 소매를 걷어 올린 저고리를 입고 나와 바리공주의 적극성과 활동성을 강조했다.

이 독특한 이야기들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통했다. 전통적인 요소에 현대적인 메시지가 더해져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 것이다. 프랑스의 한 언론은 “현재와 과거의 절묘한 조화”라며 극찬했다.

신춘향은 2006년 세계음악극축제에 초청받아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 4개국에서 공연했다. 사람들은 몽환적이면서 화려하고 익살맞은 이 무대에 열광했다. 바리공주는 2011년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EIF)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900석 규모의 에든버러 플레이하우스 극장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관객들이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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