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2차 대전 종전 이후 발달한 위성, 대륙 간 탄도탄, 우주 비행의 등장이 정치 세력 간 갈등의 잠재 범위를 대기권을 벗어난 외기권과 달, 화성을 비롯한 외계 천체까지 확장시키면서 우주정치적 위험이 부상하고 있다. 우주정치적 위험과 이를 둘러싼 역학 관계, 즉 ‘우주정치적 다이내믹스(Heliopolitical Dynamics)’는 향후 기업의 투자와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이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워 미국과 우주정치적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미국에 우호적이며 위협이 되지 않는 우리나라는 매력적인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은 동맹 관계와 반도체, 배터리, 제조 로봇 등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민간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우주 탐사 글로벌 공급망에 안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정치적 위험의 부상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함께 지정학(Geopolitics)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정학이란 지리적 조건과 경제가 국가 간의 정치와 상호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지정학적 위험이란 글로벌 차원에서의 지정학적 상황이 기업의 해외 투자와 공급망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을 뜻한다. 미국의 압도적 힘의 우위가 저물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이 생겨난 상태에서 앞으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갈등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난 1990~2020년 한 세대 간의 평화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이 기간 동안 나고 자란 세대가 세계 인구의 주축이 되면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평화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어찌 보면 이제 역사가 상시적인 정치 세력 간의 갈등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일 수 있다. 이른바 ‘정글의 귀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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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으로는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무력 갈등의 영역이 지표면과 대기권을 넘어 우주 영역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전쟁은 주로 지표면에서 벌어진 데다 대기권 중에서도 지표면과 가장 가까운 대류권 상공에서만 벌어졌다. 하지만 2차 대전 종전 이후 발달한 위성, 대륙 간 탄도탄, 우주 비행의 등장은 정치 세력 간 갈등의 잠재 범위를 대기권을 벗어난 외기권과 달, 화성을 비롯한 외계 천체까지 확장시켰다.
특히 1969년 유인 우주선의 달착륙 이후 우주 탐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미국이 여론과 비용 문제로 다소 정체된 사이 중국은 우주 탐사에서 미국을 추월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중국은 2019년 달 뒷면 착륙, 2021년 화성 착륙, 2022년 우주정거장 임무 개시 등의 이정표를 세우며 2031년까지 화성 표면의 샘플 채취 후 귀환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실로 패권 경쟁의 범위가 지구 대기권을 훌쩍 뛰어넘어 태양계 전체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하원의원 6명은 미국항공우주국(NASA) 빌 넬슨 국장에게 화성 표면 샘플 귀환 프로젝트에 6억5000만 달러의 예산을 보장할 것을 요청하는 공개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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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폴란드의 가톨릭 사제이자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는 가톨릭교회의 우주관인 천동설(Geocentrism)에 맞서 지동설(Heliocentrism)을 제안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사망 즈음 출간된 그의 저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를 만들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인류의 힘의 투사(Power Projection) 범위가 태양계 전체로 확장되는 새로운 지정학적 갈등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의 중심이자 지구(Geo)의 반대말인 태양(Helio) 중심의 지정학적 위험, 즉 우주정치적 위험(Heliopolitical Risk)이 부상하고 있다. 우주정치적 위험이란 우주 공간 중 이미 인간의 활동 범위로 자리 잡은 태양계 차원에서의 지정학적 상황이 기업의 투자와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 위험을 뜻한다. 지정학적 위험의 공간적 확장판인 셈이다. 우주정치적 위험과 이를 둘러싼 역학 관계, 즉 ‘우주정치적 다이내믹스(Heliopolitical Dynamics)’를 2025년 비즈니스 키워드로 주목해 살펴보자.
라그랑주 점을 차지하라우주정치학의 첫 번째 관심 영역은 어디일까? 달과 화성 표면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실제 활용 가능성이 높은 곳들은 라그랑주 점(Lagrange Point)이라 불리는 지구 공전 궤도상의 점들이다. 고전역학의 삼체 문제(Three-body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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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특수한 경우로 태양계에서 압도적 질량을 가진 태양과 지구 사이에 중력 평형이 이뤄지는 점들을 의미하며 총 5개가 존재한다. 라그랑주 점에 우주선을 위치시키면 별다른 추진력 없이도 중력 평형에 의해 궤도를 유지한다.
이 중 L2라고 불리는 라그랑주 점에 우선 주목해보자. L2 점은 태양에서 보면 지구 반대편으로 약 150만 ㎞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이는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약 4배에 해당한다. 2021년 발사돼 2022년부터 궤도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 놀라운 해상도의 우주 관측 사진을 제공하고 있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바로 이 L2 점 부근에 위치해 있다. L2 점은 지구 궤도를 도는 다른 우주망원경들과 달리 늘 태양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열에 민감한 적외선 센서들을 태양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용이해 우주 관측 임무를 수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L1 점은 태양과 지구 사이, 지구에서 약 150만 ㎞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중력 평형점이라는 특성 때문에 활용도가 매우 높으며 특히 태양 관측용 탐사선들이 주로 활용해왔다. 2006년에는 이 부근에 가림막을 펼쳐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광을 줄임으로써 지표면 기온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제시됐고 현재는 미국 MIT대 연구소에서 L1 지점에 인공위성을 배치한 뒤 무수히 많은 비눗방울을 분사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광에너지를 1.8% 정도 줄여 글로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아이디어가 추진되고 있다.
이 밖에 L4와 L5 점은 지구 공전 궤도에서 지구를 두 달 선행하거나 후행하는 점들로 이 점들에 인공위성을 위치시키면 태양광발전과 에너지 송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L3 점의 경우 지구 공전 궤도 정반대편에 위치해 도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지만 천체망원경을 위치시킨다면 태양 반대편의 우주를 탐사하기에 최적의 위치다.
아직까진 총 5개 라그랑주 점으로 쏘아 올린 인공물이 NASA의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을 비롯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부 개척 시대에 선착순으로 토지를 배분해 ‘Sooner State(먼저 온 사람의 주)’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 오클라호마주처럼 현재 무주공산(無主空山)인 라그랑주 점을 차지하고 활용하기 위한 국가들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라그랑주 점 부근의 공간이 한정적인 탓에 여러 국가가 경쟁적으로 발사체를 쏘아 올리기 시작하면 향후 혼잡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우주 개척 시대의 새로운 위험인류의 인공위성 발사 65주년이 되는 올해 기준 지구 궤도상에는 1만500여 개의 인공위성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 궤도 중 특히 활용 가치가 높은 영역은 적도 상공 3만6000㎞ 궤도로 ‘정지궤도(GEO, Geosynchronous Equatorial Orbit)’라고 불린다. 지표면의 자전과 위성의 지구 궤도 공전이 각속도 면에서 일치해 정지위성으로 기능할 수 있는 궤도다. 이론적으로는 3600여 개의 정지궤도 위성이 활동할 수 있으나 위성 간 주파수 간섭과 인구 밀집 지역 상공에 대한 선호 문제 등으로 인해 현재 운용 중인 550여 개 정지궤도 위성만으로도 이미 정지궤도는 포화 상태로 여겨진다.
현재 운용 중인 대부분의 인공위성은 지구 상공 200~2000㎞의 저궤도(LEO, Low Earth Orbit)에 위치한다. 우주정거장이나 허블 우주망원경과 같이 잘 알려진 우주 탐사 미션도 이 고도를 활용하며 가장 많은 우주 쓰레기가 부유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지구 궤도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초속 8㎞ 속도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만약 충돌이 일어나면 큰 피해와 함께 더 많은 잔해를 만들게 된다.
이처럼 우주 쓰레기의 존재가 임계점을 넘으면 물체들 간의 충돌 확률이 높아지면서 그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를 케슬러 증후군(Kessler Syndrome)이라 한다. 이런 상황이 오면 인류의 우주 탐사에 따르는 위험과 비용이 지나치게 커져 우주 탐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우주 쓰레기를 추적하고 수거, 처리하려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으나 아직은 가성비가 낮아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진 않다. 이런 맥락에서 가까운 시일 내 벌어질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우주정치적 위험은 바로 우주 쓰레기 양산이다. 특정 국가나 조직이 저궤도에 우주 쓰레기를 양산할 목적으로 충돌용 인공위성을 발사해 통신, 기상 관측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서비스를 교란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 공간은 선발 주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공간인 동시에 무상 투기(Free Disposal)가 가능한 공간이기도 하다.
15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어 새로 발견한 땅을 임의로 양분해 나눠 가진 것처럼 로켓과 우주선을 운용할 기술력을 가진 국가나 기업이 자기 뜻대로 우주 영역을 전유할 수도 있다. 1967년 소위 우주 조약이 체결돼 외기권을 인류의 공유재로 정의하고 평화적 이용만을 명시했으나 실질적인 집행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상징적인 선언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국가들에 적용되는 조약이지 기업과 같은 비국가 조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주 공간은 개척 시대,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황량한 서부(Wild West)에 비유할 수 있다. 우주 공간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패권 경쟁의 일환으로 이미 시작됐다. 2022년 발사돼 달 궤도에 진입한 다누리호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전 세계 일곱 번째 달 탐사국이 됐기 때문에 이미 우주정치학의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다.
기업, 우주로 시야 확장해야15세기 콜럼버스와 신대륙, 21세기 일론 머스크와 화성 중 어느 쪽의 거리가 더 멀까? 지리적 거리로 따지자면 당연히 화성이 더 멀다. 스페인에서 신대륙까지의 거리는 대략 6400㎞지만 지구로부터 화성은 최소 5460만 ㎞ 떨어져 있다. 기술적인 측면을 따져 봐도 15세기 항해술로 신대륙은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화성까지 사람을 보내 탐사하려면 매우 어려운 난제들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통신 측면에서 보면 얘기가 다르다. 15세기 신대륙에서 스페인에 통신하기 위해서는 직접 인편을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최소 수개월이 걸리고 전령이 무사히 도착할지도 불확실했다. 하지만 현대의 통신 기술을 활용하면 지구에서 화성까지 메시지를 보내는 데 최소 3분, 최대 22분이면 가능하다. 머스크에게 화성은 콜럼버스의 신대륙보다 통신 측면에서는 훨씬 가까운 셈이다.
실제로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의 미션은 “Making human civilization multi-planetary (인류를 다행성 문명으로 만들기 위한 기업)”이고, 파타고니아의 미션은 “We are in the business of saving our home planet(모행성 지구를 살리기 위한 기업)”이다. 이미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지구를 넘어 우주로 시야를 확장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 이후 신대륙에 정착지가 건설될 때까지 150여 년이 걸렸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1959년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로 시작된 우주 탐사가 21세기 내 인류의 외계 행성 거주지 건설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큰 그림과 우주정치적 위험을 기업이 인지할 때 다가올 미래를 더 멀리, 더 넓게 내다보고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주 탐사와 개척에 따르는 지정학적 도전을 고려해볼 때 미중 패권 경쟁과 민간 주도의 우주 상업화라는 현재 트렌드는 우리나라에 매우 반가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워 미국과 우주정치학적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미국에 우호적이며 위협이 되지 않는 우리나라는 매력적인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사의 달 표면 거주지 구축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계획’에 우리나라가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우리 기업들은 동맹 관계와 반도체, 배터리, 제조 로봇 등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민간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우주 탐사 글로벌 공급망에 안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확보한 수요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비용을 절감하고 학습을 통한 노하우 습득과 추가적인 공정 혁신을 통해 선도 기업들과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미국과 러시아가 우주 탐사 분야의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상태에서 후발 주자들은 상상력을 총동원해 미지의 영역을 찾아 도전해왔다. 일본은 ‘하야부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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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통해 소행성의 샘플을 가지고 귀환하는 데 성공했고, 인도는 놀라운 비용 경쟁력으로 ‘찬드라얀 3호’를 최초로 달의 남극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중국은 ‘창어 6호’를 달의 뒷면에 착륙시켰으며 우리나라도 ‘다누리호’를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다누리호는 기존에 주로 활용되던 궤도가 아닌 BLT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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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활용함으로써 달 궤도 진입에 필요한 감속 시 연료를 25%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우주에는 아직 누군가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 넘쳐난다. 우주 탐사야말로 인류 지식과 기술의 프런티어이며 인류 최고의 두뇌들을 끌어들이는 자석과 같다. 패권 경쟁이 파국적인 전면전으로 이어지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패권 경쟁의 승패는 결국 누가 더 뛰어난 인재들을 끌어모아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동통신, GPS, 전자레인지, 신소재 등 일상생활을 바꾼 신기술들이 지난 세대의 우주 탐사에서 파생된 혁신 기술이듯 향후에도 우주 탐사를 위해 개발된 첨단 기술들이 인류 복지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류가 바라보고 있는 태양계는 광대하지만 무한하진 않다. 더군다나 우주 탐사와 개척에 수반되는 비용을 생각해봤을 때 우주정치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국가는 한 자릿수를 넘기 힘들 것이다. 경제와 기술 선진국이자 민주주의와 문화 선진국을 달성한 우리나라의 차세대 기업들이 꿈과 시야를 태양계 전체로 확장해 우주정치학의 주체로 발돋움하는 것이야말로 추구해볼 만한 목표가 아닐까.